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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7-02)


다니엘의 통찰력: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

다니엘 7장 15-28절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가 일시적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 아래에서 평안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는 기도와 말씀 연구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결국, 성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 다니엘이 본 환상들을 설명합니다. 바벨론에서 메대로, 메대에서 바사로, 바사에서 그리스로 패권이 넘어가는 땅의 역사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혼돈의 바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시간표에 따른 통제된 진행입니다. 마지막 때에 세상 통치자에 의해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겠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제한된 시간의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멸망할 것입니다.

 

첫 번째 반응과 해석(15-18)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또한, 말씀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와 말씀의 실천은 신앙 생활의 기초가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15○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16내가 그 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17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18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15-1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으로 인해 심히 놀라며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세상의 권세가 심판받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왕국의 일원이 되어 그분의 통치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임을 강조합니다.

 

(1) 다니엘의 반응(15)

 

다니엘은 깊은 환상을 보면서 자신의 이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함을 나타냅니다. 네 짐승의 환상이 다니엘을 혼란과 놀람에 빠뜨립니다. 환상에서 나타나는 권세와 시련은 다니엘에게 심각한 영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현실 세계에서도 신자들이 마주하는 도전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2) 천사에게 해석을 묻는 다니엘(16)

 

다니엘은 환상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그 의미를 알고자 합니다. 환상을 이해할 수 없던 다니엘은 “그 곁에 모셔 선자들 중 하나”에게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묻습니다. 다니엘의 질문은 개인적인 이해를 넘어, 이 환상이 신의 백성 전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3) 환상의 해석(17-18)

 

천상적 존재는 환상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알려줍니다.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고, 그 마지막에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어 영원히 통치할 것입니다. 넷째 짐승을 “땅의 넷째 나라”로 해석하는 23절은 “네 왕이 네 나라”의 의미로 사용됐음을 보여줍니다. 네 짐승의 환상이 네 금속으로 이뤄진 신상의 꿈(2장)과 구조적으로 일치하기에, 첫째 짐승은 바벨론이 되고, 또 유사한 표상들이 사용된 8장에 따르면 넷째 짐승과 셋째 짐승은 각각 그리스와 주전 331년 알렉산더에 의해 멸망 당한 바사가 되고, 다니엘서의 역사 이해에 따르면 둘째 짐승은 바벨론을 계승한 메대가 됩니다(5:30-31).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은 천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서의 종말론적 배경에서 보면 천상의 싸움과 지상의 싸움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기에 미가엘의 보호를 받는 유다 백성이 이 성도들에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반응과 해석(19-27)

세상의 권세와 악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 생활 중 겪는 어려움과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분의 의도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도들에게 소망과 인내를 줍니다.

 

19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 21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22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23○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며 24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6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27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19-27)

 

본문에서는 강력한 짐승과 그 권세가 심판받고,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이 이루어질 것임을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겪더라도 결국 승리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희망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으로서 경배와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 넷째 짐승에 관한 다니엘의 반응(19-20)

 

다니엘의 관심이 아주 무섭게 생긴 네 번째 짐승에 집중됩니다. 그는 네 번째 짐승과 그 머리의 열 뿔, 특히 세 뿔을 밀치고 나오는 다른 한 뿔의 진상에 관해 알기를 원합니다. 넷째 짐승과 열 뿔과 열한 번째 뿔에 관한 묘사는 7-8절을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세 뿔을 밀치고 나온 다른 한 뿔이 성도들과 싸워 압도합니다. 성도들이 희생당하고 환난에 떨어지지만, 다른 한 뿔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개입하시기 전까지만 승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판결을 내리시면 성도들이 나라를 차지하게 됩니다. 승리한 듯했던 폭력적인 권력이 때가 되면 하나님의 간섭으로 멸망에 떨어집니다. 여기서도 “성도들”은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묵시문학적 사고에 따르면 지상의 싸움과 천상의 싸움은 서로 병행합니다. 이스라엘이 땅에서 헬라와 싸울 때 천상에서는 이스라엘의 수호천사 미가엘이 헬라의 수호천사에 싸웁니다(10:20-21).

 

(2) 넷째 짐승에 관한 부가적 묘사(21-22)

 

땅에서 이스라엘의 박해와 패배는 하늘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적대적 민족의 수호천사에 의해 공격당하기 때문입니다(참조. 8:10). 이런 배경에서 보면, 성도들과 싸우는 뿔은 패권을 추구하는 지상 통치자를 넘어 그 배후에서 작용하는 천상의 악한 세력도 상징할 수 있습니다.

 

(3) 환상의 상세한 해석(23-27)

 

한 천사가 다니엘에게 넷째 짐승과 그 뿔들에 관해 상세히 설명합니다. 넷째 짐승은 이전의 다른 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잔혹한 나라로,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짓밟아 으스러뜨립니다. 이 짐승의 머리에 난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고, 세 뿔을 밀치고 나올 열한 번째 뿔은 앞의 세 왕을 쓰러뜨리고 보좌를 차지할 자입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성도들을 괴롭히고, 때와 법을 고칠 것입니다. 성도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집니다. 하지만 이 폭군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심판이 시작되면 권세를 빼앗기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고, 박해를 당하던 거룩한 백성에게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주어집니다. 땅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영원한 나라를 넘겨받은 성도들을 섬기며 복종할 것입니다. 열 뿔이 상징하는 열왕은 셀류코스 왕조의 열 왕을, 제거되는 세 왕은 셀류코스 4세와 그의 두 아들 데메트리오스와 안티오코스를 가리킬 것입니다. 세 뿔을 밀치고 나오는 열 한 번째 뿔이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 175-164) 임은 분명합니다. 그의 악행은 한마디로 신성모독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는 그가 주조한 동전에 쓰인 글과 관련한 고발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주전 173/2년에 ‘왕 안티오코스, 신의 현현’(BASILEWS ANTIOCOUQEOU EPIFANOUS)이라는 글이 적힌 동전을, 주전 1698년에는 여기에 ‘승리자’(NIKHFOROU)가 첨가된 동전을 발행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에피파네스’와 같은 신적 수식어를 사용한 최초의 헬라 왕입니다. 경건한 유다 사람들에게 지상 왕에게 붙여진 ‘에피파네스’와 같은 표현은 여호와의 신성과 유일성을 모독하는 행위와 다름없었습니다. 안티오코스가 고치려고 한 “때와 법”은 종교적 절기와 할례 같은 모세 율법입니다. 헬레니즘을 다양한 민족들의 통합 이데올로기로 삼은 안티오코스는 유다 민족의 고유한 관습을 억압하고 이교적 제의로 대체하려 하였습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표현에 어떤 의미가 내포됐는지는 모호합니다. 보통은 세 단위를 모두 합해서 완전수 칠 년의 반에 해당하는 삼 년 반을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과 관련시켜 이해합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주전 167년 키스레브(Chislev; 11-12월의 아홉번째달) 15일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증한 것”(9:27)을 세우고 그 달 25일에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대략 3년 지나 주전 164년 키스레브 25일에 유다 마카비가 셀류코스 왕조의 세력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여호와께 바쳤습니다. 성전이 더러워졌기에 이 기간 동안 경건한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정한 짧은 기간이 지나면 뿔을 재판하는 법정이 열리고, 뿔은 통치권을 빼앗기고 완전한 멸망에 떨어집니다. 같은 법정 모티브가 사용된 9-10절로부터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뿔을 심판하는 재판장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로 옮긴 아랍어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끝까지’입니다. 뿔의 승리와 멸망이 시간적으로 대비됩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성도들을 박해했던 뿔이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영원히) 멸망합니다. 13-14절에서는 “인자 같은 이”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주어지는데, 27절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주어집니다. 인자 같은 이의 권세가 영원한 권세인 것처럼 백성의 나라도 영원한 나라이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인자 같은 이를 섬기는 것처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다” 유다 백성을 섬기며 복종합니다. 인자 같은 이와 거룩한 백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됐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은 문자적으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이들의 백성’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이들’이 천상적 존재들(천사들)이기에, ‘거룩한 이들의 백성’은 이들의 보호 아래 있는 유다 백성입니다. 구약성경의 전통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몫으로 그분의 보호 아래 있지만,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천사장 미가엘이 이스라엘을 지켜줍니다(참조. 12:1). 당혹감에 사로잡힌 다니엘에 대한 묘사로 네 짐승의 환상 이야기가 끝을 맺습니다.

 

맺는 말(28)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와 힘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이는 인간의 권력과 세상의 통치가 결국에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원한 주권이 남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그의 계획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이나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은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며, 참된 안정과 평화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소망과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28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 내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28)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문자적으로, ‘여기가 말의 끝이다’)는 1절 마지막의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와 짝을 이루며 전체 단락의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도 내용상 1절의 “그 꿈을 기록하며”에 상응합니다.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는 15절의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와 함께 환상의 해석(15-27)을 감쌉니다. 다니엘은 환상 해석을 듣고도 환상의 의미를 몰랐을 때와 유사하게 반응합니다. 나라들의 멸망과 그 뒤를 잇는 성도들의 영원한 통치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 다니엘이 중심에 번민하여 얼굴빛이 변합니다. 그 이유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세상의 권세와 악이 결국 심판받을 것임을 강하게 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며, 그들에게 마지막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서 소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를 이루시며,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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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7-01)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을 꿈꾸는 다니엘

다니엘 7장 1-14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과 왕국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왕국은 불안정하고 변동성이 크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인간의 권력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결국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됩니다. 성도들에게 정의와 공의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줍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최종적으로 승리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의 힘과 인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 2장에서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주었던 다니엘이 여기서는 꿈에서 세 개의 서로 관련된 환상을 봅니다. 첫 번째는 바다에서 나오는 네 짐승의 환상이고, 두 번째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왕좌에 앉아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 특히 네 번째 짐승을 심판하시는 환상이고, 세 번째는 인자 같은 이가 구름과 함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는 나오는 환상입니다.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1-8)

세상의 왕국은 변동성이 크고 불안정합니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세상의 권력이 영원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강력한 악의 힘과 불의가 존재하며, 이는 성도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과 불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정의를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4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5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6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7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8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1-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네 짐승의 환상을 보며 인간의 왕국이 변동성과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각 짐승은 강력한 악의 힘과 세상의 불의를 상징하며, 이는 신자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악과 불의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합니다.

 

(1) 도입부(1)

 

“벨사살 왕 원년에” 이는 다니엘서의 역사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다니엘은 밤의 환상 가운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젓는 것을 봅니다. 그는 꿈의 내용을 기록하고 간략히 설명하는데, 이는 그의 신앙적 책임을 보여주며,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2) 네 짐승의 출현(2-3)

 

“하늘의 네 바람”은 동서남북을 가리킵니다. 온 세상에서 거대한 바람이 불어와 바다를 뒤흔듭니다. “큰 바다”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참조. 시 74:13; 사 27:1) 혼돈의 바다입니다(참조, 사 51:10; 암 7:4). 혼돈의 바다에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올라왔습니다.

 

(3) 사자와 같은 첫째 짐승(4)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습니다. 들짐승 가운데 가장 힘센 사자와 날짐승 가운데 가장 힘센 독수리의 결합은 첫 번째 짐승의 압도적인 힘을 시사해줍니다. “그 날개가 뽑혔고”가 현재 문맥에서 세력의 약화를 함축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뒤따르는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함께 고려하면, 사자에게 사람의 자세를 마련해주기 위한 준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두 발로 일어선 사자의 모습은 근동의 그림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됩니다. 사람의 자세를 갖게 된 사자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집니다(참조. 4:16). 사자에게 주어지는 사람의 마음은 4장에서 짐승 수준으로 낮아졌다가 다시 인간의 위엄을 회복하는 느부갓네살의 운명과 관련한 언급 같습니다. 교만의 징벌을 통해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게 됐기에 바벨론을 상징하는 첫 번째 짐승에 관해서는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 같다(참조. 2:37-38).

 

(4) 곰과 같은 둘째 짐승(5)

 

두 번째 곰 같은 짐승은 메대를 상징합니다. “몸 한쪽을 들었고”가 공격하기 위해서 앞발을 들었다는 의미인지, 단지 몸의 한쪽을 다른 쪽에 비해 올렸다는 의미인지, 또는 (쇠퇴기의 시작을 상징하는) 몸을 돌리기 위한 자세인지 불분명합니다. 다수는 앞발을 세우고 먹이를 향해 덤벼드는 공격적인 모습으로 이해합니다.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의 해석도 다양하지만, 먹이를 뜯어먹는 곰의 난폭한 모습에 관한 현실적이고도 생생한 묘사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5) 표범과 같은 셋째 짐승(6)

 

세 번째는 네 머리와 네 날개가 달린 표범과 같은 짐승으로 바사를 상징합니다. 첫 번째 짐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짐승으로 묘사됩니다. 새의 날개는 독수리 날개보다 왜소하고, 표범은 사자보다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한 짐승입니다.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바사는 바벨론에 비하여 위협적이지 않았습니다. 짐승의 네 날개는 바사 군대의 신속한 움직임을 상징합니다. 네 머리는 네 날개와 함께 세상의 네 방향, 곧 사방으로 확장된 바사의 통치권을 시사합니다. 세 번째 짐승에게만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2:39에서도 세 번째로 등장하는 “놋 같은 나라”가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6) 열 뿔을 가진 넷째 짐승(7)

 

잘 알려진 동물에 비교해 처음 세 짐승과 달리 네 번째 짐승은 어떤 동물에도 비교되지 않습니다. 뿔을 열 개나 달고 있고,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다고만 말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짐승입니다. 커다란 쇠 이빨로 먹이를 으스러뜨리고 남은 것은 짓밟았습니다. 쇠는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네 금속으로 만들어진 신상에서도 네 번째 나라를 상징했습니다(2:40). 다니엘서의 역사 이해에 따르면 네 번째 짐승은 바사를 무너뜨린 ‘그리스’를 가리킵니다. 뿔은 힘이나 세력을 상징하고(슥 2:1-4), 열 뿔은 알렉산더 대왕 이후의 그리스 왕들이나 셀류코스 왕조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이 뿔에 주목합니다. 열 뿔 사이에서한 작은 뿔이 나오더니 먼저 나온 뿔 가운데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갑니다. “작은”은 ‘하찮은’을 의미합니다(참조. 11:21).

 

(7) 사람의 눈과 입을 가진 작은 뿔(8)

 

작은 뿔에 달린 “사람의 눈같은 눈”은 오만함과 뻔뻔스러움을(참조. 8:23), “큰 말”을 하는 입은 교만함을(참조. 11:36) 함축합니다. “다른 작은 뿔”은 우선적인 왕위 계승권을 가진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주전 175년 셀류코스 왕조의 보좌를 차지한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9-10)

하나님께서 심판의 자리에 앉아 계신 것은 성도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제공합니다. 이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이 정의를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상기시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믿음을 통해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궁극적으로 정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신앙의 근원이 됩니다.

 

9○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9-10)

 

환상의 무대가 혼돈의 바다에서 땅의 법정으로 옮겨집니다. 왕좌들이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자리에 앉으십니다.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하는 재판이 열립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최고 재판장이시기도 합니다(참조. 시 82:1; 94:2; 96:13).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문자적으로는 ‘날들에 있어 오래 되신 분, 연세가 많으신 분’으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왕좌들이 놓인 장소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바퀴가 달린 보좌의 표상은 재판이 열리는 무대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해주니다. 다니엘의 시선이 보좌에 앉으신 분에서 그 주변으로 옮겨집니다. 불꽃 같은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서 불이 강처럼 뿜어 나와 흐르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그분을 모시고 서서 시중을 듭니다.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불의 강은 하나님의 신비스럽고도 초월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천천의 섬기는 자와 만만의 모셔 선 자는 하늘 어전회의의 표상에 속하는 언급으로, 재판장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상적 존재들을 가리킵니다(참조. 왕상 22:19). ‘펼쳐진 책들’은 짐승의 운명을 결정하는 재판과 관련된 책입니다.

 

짐승들의 심판(11-12)

교만은 정말 위험하고 무섭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과 불의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성도들에게는 정의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주어집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믿음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실 것입니다.

 

11그 때에 내가 작은 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말미암아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12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11-12)

 

본문에서는 마지막 짐승이 매우 두렵고 강력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입에서 나오는 큰 말을 통해 교만과 악을 드러냅니다. 이 짐승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며, 다른 짐승들은 권세를 잃으나 생명은 유지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와 정의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네 번재 짐승의 멸망(11)

 

다니엘은 네 번째 짐승이 멸망 당하는 것을 봅니다. 네 번째 짐승이 ‘어떻게’, ‘누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지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관심은 짐승의 완전한 죽음을 선포하는 데 집중됩니다. 짐승이 살해당하고 몸이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집니다. 쇠 이빨로 먹이를 으스러뜨리고 발로 짓밟아버리는 무시무시한 네 번째 짐승이 영원한 멸망에 떨어집니다.

 

(2) 생명을 보존하는 처음 세 짐승(12)

 

처음 세 짐승의 운명도 언급되는데, 이들에게는 사뭇 다른 판결이 내려집니다. 통치권을 빼앗기지만, 네 번째 짐승과 달리 완전한 죽음에 넘겨지지는 않습니다. 한동안 생명을 보존하게 됩니다. 처음 세 짐승과 네 번째 짐승이 상이한 운명의 판결을 받는 이유는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짐승들이 상징하는 나라들이 차례로 멸망하기에 정한 시기가 이르기까지 생명이 보존된다는 말도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심판의 주된 관심이 네 번째 짐승의 멸망에 있기에 처음 세 짐승의 운명이 달리 언급된 것 같습니다.

 

인자 같은 이(13-14)

하나님의 계획은 인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제공합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진리를 통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순종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이끕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결국, 이러한 교훈은 성도들이 믿음의 길을 견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13-14)

 

본문에서는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그는 모든 민족과 언어가 그에게 경배하며, 그의 통치가 영원하고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왕국이 세상에 임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오는 인자 같은 이(13)

 

다니엘은 또 밤의 환상 중에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 곧 천사들과 함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으로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인자 같은 이의 정체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고, 단지 그가 네 번째 짐승이 멸망 당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세상 통치권을 위임받게 될 것만 말합니다. 인자 같은 이의 신분이 모호하게 처리됐음은 그가 누구인지보다 그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누가 짐승들과 싸워 이들을 멸망시키는지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오는 인자 같은 이(14)

 

9-10절의 재판정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 의해 짐승들이 멸망 당할 것을 시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13-14절의 인자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과 함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로 인도를 받는 모습은 전쟁에서 적들을 물리치고 왕에게로 나아오는 용사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법정에 세워 심판하시고 그들에게서 권세를 빼앗아 인자 같은 이에게 주시고, 후자의 경우에는 짐승들과 싸워 이기고 돌아온 인자 같은 이에게 하나님께서 세상 통치권을 넘겨주십니다. 짐승들의 나라들과 달리 인자 같은 이의 통치는 영원하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그의 주권을 이루시며, 그 어떤 권세와 세력도 그의 계획을 저지할 수 없습니다. 인자 같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는 모든 민족의 구원자이자 영원한 왕으로서 다스리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합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하며, 그의 나라를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이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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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6-02)


사자굴 속에 던지지 다니엘

다니엘 6장 16-28절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를 의지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이는 개인의 신앙을 강화하고 공동체에 신앙의 힘을 전파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자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왕의 총애도 다니엘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떨어지고, 왕은 번뇌하고, 음모자들은 승리를 즐깁니다. 하지만 음모자들의 주도면밀한 계획은 바로 여기까지였습니다. 풀무불이 왕의 권력 밖에 있었던 것처럼 봉인된 사자 굴도 이들의 능력 밖에 있었습니다. 사자굴은 오직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만 활동하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16-17)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앙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호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삶의 힘이 되고,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16○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16-17)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라고 말합니다. 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진 후, 큰 돌로 굴 입구를 막고 왕의 도장을 찍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왕은 다니엘의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자신의 명령을 지키게 됩니다.

 

(1) 다니엘의 하나님께 맡기는 왕(16)

 

해가 지도록 버티던 왕이 신하들의 압력에 굴복합니다. 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처형이 즉각 집행됩니다. 사자 굴로 끌려가는 다니엘에게 왕은 자신의 소망을 담은 간절한 마음을 전합니다. 왕의 권력으로는 구해줄 수 없지만, 신이 개입하신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앞에 첨가된 “네가 항상 섬기는”은 다니엘의 신앙적 성실함을 강조합니다. 다리오는 다니엘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에서 구원 가능성을 본 듯합니다(참조, 3:15).

 

(2) 어귀를 돌로 막아 봉인하는 신하들(17)

 

사람들이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자, 왕과 귀족들은 도장으로 그곳을 봉인합니다. 다니엘에게 우호적인 왕도, 다니엘에게 적대적인 자들도 더는 어떻게 할 수 없게 됩니다.

 

다니엘의 경이로운 구원(18-24)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자를 반드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적 결단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18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19○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24○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18-24)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후 밤새도록 못이겨 슬퍼하며 기도합니다. 다음 날 아침 왕은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사자들의 입을 막아주셔서 무사히 구출되었음을 보고하며, 왕은 기쁨과 놀라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 다니엘을 찾아가는 왕(18-19)

 

다니엘의 처형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왕궁으로 돌아간 왕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금식하고 오락을 멀리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금식은 자주 종교적인 애도 행위에 속하지만, 여기서는 왕의 큰 슬픔을 표현합니다. 무리의 교활한 음모에 떨어져 죽음에 넘겨진 총애하는 신하의 목숨을 구해줄 수 없었던 왕은 좌절감과 절망감에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고 밤올 새웁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속아 명령을 반포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참회의 밤을 보낸 것 같습니다. 금식과 번민의 밤을 보낸 왕은 날이 밝자마자 급히 사자 굴로 갑니다. 신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왕은 봉인된 사자굴에서 신적 구원이 발생했는지를 알아보려고 급히 굴로 간 것입니다. 밤이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라면, 어둠을 밀치고 나오는 새벽은 여호와께서 개입하시는 구원과 소망의 시간입니다.

 

(2) 다니엘을 부르는 왕(20)

 

사자굴에 가까이 간 왕은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을 부릅니다.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소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며 다니엘의 운명에 하나님을 끌어들입니다. “살아 계시는”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활동성을 의미하고, “종”은 다니엘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자임을 보여줍니다. 왕이 마지막 소망을 두었던 하나님에 의한 다니엘의 구원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3) 다니엘의 응답(21-22)

 

사자굴에서 왕의 외침에 응답하는 다니엘의 음성이 들립니다. 다니엘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공손하게 인사를 올립니다.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는 왕을 알현할 때 드리는 의례적인 인사로(2:4; 3:9; 5:10), 다니엘이 왕궁에 있는 것만큼이나 사자굴에서 안전하게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대적과 사자가 목숨을 노릴지라도, 왕이 보호해주지 못할지라도 다니엘은 동요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항상” 섬기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함을 누립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를 왕에게 설명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사자 굴로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아 보호해주셨습니다(참조. 3:25; 히 11:33).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생사는 하나님만 결정하십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기적적 구원에 근거해서 왕에게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합니다. 누구도 봉인된 사자굴에서 살아날 수 없기에 다니엘의 구원은 신적 사건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구하시기에 신적 간섭에 의한 구출은 다니엘의 무죄 증명이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왕의 금령을 어긴 다니엘을 구해주셨다는 것은 왕의 금령이 그분의 의지에 반한 것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금령을 만들게 한 자들이 왕을 위험에 빠뜨린 자들입니다. 금령이 반포되기 전에 다니엘은 왕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가 왕에게 더 충성할 수 있음을, 세상의 왕보다 하늘의 왕을 우선하는 것이 세상의 왕에게 더 도움이 됨을 보여줍니다. 왕은 살아 있다는 다니엘의 말을 듣고 심히 기뻐합니다. 다니엘에 대한 왕의 총애가 얼마나 큰지를 시사해줍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굴에서 끌어올려진 다니엘을 살펴보니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참조. 3:27).

 

(4) 다니엘의 구원과 음모자들의 멸망(23-24)

 

다니엘의 기적적 구원으로 이제 누가 사자 굴에 들어가야 할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왕은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해놓은 나무에 달렸던 것처럼(에 7:9-10) 음모자들이 다니엘을 위해 마련해놓은 사자 굴에 떨어집니다. 이들이 죄가 없다면 다니엘의 경우처럼 신이 개입해서 지켜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달려들어 이들의 뼈를 모조리 부수어버립니다.

 

왕의 조서와 맺는 말(25-28)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세 위에 계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타인에게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신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은 결국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은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25○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25-28)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구원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백성에게 다니엘의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명령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막아주셔서 안전하게 구출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다니엘은 왕과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명하며,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1) 조서를 내리는 다리오(25)

 

풀무불에 던져졌던 세 친구가 불에 탄 냄새도 없이 살아나온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제국의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에 회람용 조서를 내린 것처럼(3:28-29) 다리오도 회람용 조서를 내립니다. 조서의 도입부(25)는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조서의 도입부(4:1)와 유사합니다.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은 메대-바사 제국의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이 읽어야 할 조서임을 보여줍니다.

 

(2) 경외 받으실 다니엘의 하나님(26)

 

봉인된 사자굴에서 기적같이 살아나온 다니엘을 통해 알게 된 “다니엘의 하나님”은 제국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알고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조서의 서두에 오는 상투적인 인사입니다. 히브리어 샬롬에 해당하는 “평강”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안녕과 평화가 가득찬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리오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데, 어감에서 느부갓네살과 많이 다릅니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3:29)하고 위협적으로 말하는데, 다리오는 다니엘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도록 권면합니다.

 

(3)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27)

 

26-27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다양한 표현은 이미 앞에 나왔던 것들입니다. 6:21에도 나오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은 능력과 권능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4:34의 “영생하시는 이”에 상응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는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현역에서 은퇴하는 고대 근동의 신들과 달리 변함없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멸망하지 아니할 나라와 무궁한 권세는 2:44; 4:3,34에도 나옵니다. 만신전과 세상 나라는 부침과 흥망성쇠를 거듭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쇠함 없이 영원히 지속되고, 그분의 권세는 누구에게도 양도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구원 능력(참조. 3:28-29)은 사자의 입에서 다니엘을 구하시는 그분의 “이적과 기사”를 통해 다리오가 직접 목격한 사건입니다. 이적과 기사를 베풀어 바로의 집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하나님께서 봉인된 사자굴에서 당신 종을 구원하시는 이적과 기사를 베푸십니다. 한마디로, 제국의 모든 백성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 고백하고 찬양해야 합니다(참조. 4:1-2). 사자굴의 이야기가 다니엘의 성공적 삶에 대한 요약으로 끝을 맺습니다(참조 3:30; 2:48; 5:29).

 

(4) 다니엘의 형통(28)

 

시기심에 사로잡힌 대적들에 의해 사자 굴에 들어갔다가 구원을 받은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시대를 넘어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이 통치할 때도 중요한 직분을 맡아 활동합니다. 다니엘을 제거하려던 음모자들의 의도와 달리 다니엘은 다음 시대에도 형통합니다. 악한 자들이 악한 꾀로 하나님의 종을 죽음의 함정에 빠뜨릴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항상 섬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왕조는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순서에 따라 바벨론에서 메대를 거쳐 바사로 바뀌지만, 하나님께 언제나 신실한 다니엘은 변함없이 왕궁의 중요 인물로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구원하신 기적을 통해 그의 신실함을 드러냅니다. 신앙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의 충성과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신앙의 힘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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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6-01)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 6장 1-15절


신앙을 지키는 일관성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우리의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결국, 신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 역사의 무대가 바벨론에서 메대로 바뀝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을 계승한 메대 왕 다리오 시대에도 왕의 최측근으로 활동합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의 성실함과 뛰어남을 높이 평가해 최고의 자리에 앉히려 하자 기득권을 가진 신하들이 보이지 않게 반발합니다. 다니엘을 향한 왕의 남다른 총애를 시기하는 모든 신하가 그를 제거할 흉계를 꾸밉니다. 이들은 그의 종교적 열심을 이용해 덫을 놓고 기다립니다.

 

왕의 총애를 받는 다니엘(1-3)

우리는 맡은 일에서 신뢰를 얻고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직업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직장에서의 신앙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1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1-3)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고위 관리로 임명하며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인정했습니다. 다니엘은 신뢰를 얻고 신앙과 직업을 조화롭게 유지하며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1) 다리오의 행정 조직(1-2)

 

새로이 제국을 신실한 다리오 왕은 효율의 통치를 위해 행정 조직을 정비합니다. 그는 120명의 고관을 임명하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누이 이들을 관리하게 합니다. 고관은 왕을 대리해서 각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을 가리켰습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입구는 행정구역 안에 사는 민족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왕에게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총리들에게는 고관들의 업무를 보고받고 지휘하면서 “왕에게 손해가 없게” 했습니다. 왕실과 제국의 존립과 번영에 직접 영향을 미쳤던 재정 관리가 제일 중요한 임무였을 것입니다. 이들은 행정과 집세를 담당한 고관들이 할당된 세금을 제대로 거둬 보내는지를 감독해서 재정이 부족하지 않게 관리해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세 총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2) 다니엘에 대한 왕의 평가(3)

 

갈대아 왕 벨사살의 마지막 날에 셋째 통치자로 세움 받은(5:29) 다니엘이 다리오 시대에도 최고위직에서 활동합니다. 그는 세 총리 가운데서도 으뜸이었습니다. 빼어난 정신과 탁월한 능력으로 다른 총리나 고관보다 일을 뛰어나게 처리하여 다리오의 남다른 총애를 받습니다. 느부갓네살의 통치 아래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며 모든 지혜자의 어른’(2:48)으로 활동했던 것처럼, 메대에서도 다니엘은 2인자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참조, 창 41:38-44). 다니엘의 하나님께서 다리오 시대에도 그를 형통하게 하십니다.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신하들의 음모(4-9)

신앙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종종 적대감이 따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신앙을 지키며 어려움과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신앙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합니다.

 

4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6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7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4-9)

 

본문에서는 신앙을 지키는 사람에게 적대감과 고난이 따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기도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지키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결국, 신앙을 지키는 태도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인도합니다.

 

(1) 다니엘의 제거 방법을 찾은 자들(4-5)

 

다니엘을 제국의 행정 수반으로 삼으려는 왕의 시도가 총리들과 고관들의 불만과 시기심에 불을 붙입니다. 이들은 왕의 신임이 다니엘에게 독점되는 정치적 상황에 조직적으로 반발합니다. 다니엘을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먼저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아보지만, “아무 그릇됨”도 “아무 허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릇됨’의 아람어는 태만이나 게으름을(참조, 스 4:22; 6:9), ‘허물’은 부패를 의미합니다. 다리오가 다니엘을 총애했을 때는 마음의 민첩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왕궁에서 파당을 짓고 제 사욕을 채우는 자들과 달리 다니엘은 열심을 다해 정직하고 공평하게 총리의 직분을 수행하는 신하였습니다.

 

(2) 왕에게 금령을 제안하는 신하들(6-8)

 

공적 영역에서 약점이나 비리를 찾지 못하자, 총리들과 고관들은 공직 수행의 완벽함을 인정하고 공격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들은 다니엘의 사적 삶에서 고발의 근거를 찾기로 합니다. 이들은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의 종교적 경건생활에 있음을 간파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관습과 전통입니다.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치명적인 덫을 놓습니다. 이들은 다니엘의 종교 생활이 위법이 되게끔 법을 만들기로 합니다. 금령을 하나 만들어 왕을 찾아갑니다. 왕이 거절할 수 없도록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해서 만든 법임을 주장합니다. 금령은 두 가지 면에서 파격적입니다. 먼저 금령의 유효 기간이 “삼십 일”로 제한됩니다. 한 달의 한시적인 법령은 극히 예외적으로, 특별한 의도에서 만들어졌음을 시사합니다. 또 법의 내용을 보면, 왕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왕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지 못하도록 금지시킨 경우는 고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총리와 고관들이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취약점을 그의 기도에서 찾은 것입니다. 금령을 어긴 자를 처형하는 방법도 예외적입니다. 왕의 명령을 어긴 자를 사자굴에 던져넣어 처벌하는 방법은 바벨론이나 바사의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3) 금령 조서에 도장을 찍는 왕(9)

 

음모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경우에도 변경할 수 없게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선포하도록 요구합니다. 왕이 다니엘을 남다르게 총애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이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왕도 법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끔 치밀하게 준비한 것입니다. 이들의 음모를 알지 못한 다리오 왕은 신하들의 제안을 수용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립니다. 다니엘의 대적은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치명적 함정을 파놓는데 성공합니다.

 

다니엘을 참소하는 신하들(10-13)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용기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은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신앙을 지키는 이들은 주변에서 시기와 질투를 경험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 있게 신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13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10-13)

 

다니엘은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이를 문제 삼아 다니엘을 고발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는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 용기와 결단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1) 예전처럼 기도하는 다니엘(10)

 

대적의 예상대로 다니엘이 함정에 빠집니다. 사자 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매일 해왔던 대로 경건 생활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동요 없이 늘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다니엘은 지붕 위에 있어 비교적 시야가 트인 윗방을 개인 기도를 위한 방으로 활용했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은 고국,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하는 다니엘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다리오 왕의 신하로 이방 나라 메대에 살지만, 자신이 예루살렘 성전의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 사람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는 이미 솔로몬의 기도에 나옵니다(왕상 8:35-36). 다니엘은 아마도 유배민들의 관습에 따라 자발적으로 하루 세 차례씩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 세 번의 기도’는 시편 55:17에도 나옵니다. 다니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는데(참조, 왕상 8:54; 대하 6:13; 스 9:5), 이런 기도 자세는 왕 앞에서의 겸비와 자기 낮춤을 보여주는 특별한 경건의 모습이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서 기도했습니다(참조. 대상 23:30; 느 9:3; 마 6:5; 막 11:25; 눅 18:11,13).

 

(2) 고발의 근거를 찾은 신하들(11)

 

다니엘의 기도 습관을 알고 있던 음모자들은 왕의 도장이 찍혀 선포된 금령을 다니엘이 어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몰려갑니다. 다니엘이 숨지 않고 예전처럼 기도했기에 쉽게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을 덮쳤기에 다니엘에게는 사자 굴을 피할 길이 없게 됩니다. 모든 일이 음모자들이 의도한 대로 차질 없이 진행됩니다.

 

(3) 왕의 금령을 재차 확인하는 신하들(12)

 

다니엘에 대한 왕의 총애를 알고 있었기에 음모자들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이들은 왕에게 곧바로 다니엘의 범법 행위를 고발하지 않고, 먼저 왕의 도장을 찍어 선포한 금령의 내용을 왕에게 다시 확인시킵니다.

 

(4) 다니엘을 고발하는 신하들(13)

 

음모자들의 악한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왕은 이들의 계획에 말려듭니다. 왕이 나중에 달리 말할 수 없게 해놓고 나서 이들은 다니엘의 위법을 왕에게 고발합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왕 이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지 못하도록 한 금령의 위반에 해당하기에 음모자들의 계획은 완벽하게 마무리됩니다.

 

왕과 신하들의 충돌(14-15)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을 지킬 때 우리는 다양한 시험과 도전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을 지키는 이들은 주변의 시기와 압박을 받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결단은 신앙의 힘과 의지를 시험하는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14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15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 하니(14-15)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랑하고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만, 법의 압박으로 인해 그를 처벌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왕은 다니엘을 구하고 싶어도 자신의 명령을 어길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합니다. 이 장면은 신앙과 권위 사이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1) 다니엘을 구하려 애쓰는 왕(14)

 

왕은 너무 늦게 신하들의 의도를 파악합니다. 신하들이 고발하려는 대상이 다니엘임을 알고 어떻게 해서든 구해보려 애쓰지만, 다니엘의 대적은 한 치도 물러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금령을 위반한 것은 분명했고, 또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에 따라 선포된 금령이기에 왕의 권한으로도 다니엘을 구해줄 길이 없었습니다.

 

(2) 다니엘의 처벌을 요구하는 신하들(15)

 

개인적으로 총애하는 신하를 구하기 위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를 무시한다면, 왕이 법을 무시하는 자가 되면서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권위를 상실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왕은 시간을 끌면서 구해낼 방도를 찾아보지만, 길이 없었습니다. 왕이 혹시 금령을 취소시키고 다니엘을 구하지 않을까 의심이 된 신하들이 밤에 다시 왕에게로 몰려와서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하고 왕을 강하게 몰아붙입니다. 왕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왕에게는 다니엘을 사자굴에 내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게 됩니다.


신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변의 시기와 압박 속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처럼 신앙의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임을 믿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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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5-02)


벨사살과 그의 왕국의 종말

다니엘 5장 17-31절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고하십니다. 이러한 경고를 귀 기울여 듣고,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르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모후의 천거로 벨사살 왕 앞에 나온 다니엘은 먼저 왕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엄중히 꾸짖습니다. 벨사살은 아버지 느부갓네살의 경험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하늘의 주재를 거슬러 자신을 높였습니다. 교만이 누구에게나 파멸적 결과를 초래하지만, 어리석은 자의 교만은 더욱 치명적입니다. 성전 그릇을 술잔 삼아 유흥을 즐기며 신상들을 찬양한 자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분노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다니엘의 답변: 왕을 책망(고발)하는 다니엘(17-23)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하며,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신앙과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진정한 지혜와 강함을 가져다줍니다.

 

17○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 18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20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21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22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23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17-23)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이 주신 경고의 의미를 설명하며, 왕의 오만함과 죄악을 책망합니다. 그는 왕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상인 느부갓네살의 교훈을 잊었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다니엘은 벨사살에게 회개와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1) 상급 거절(17)

 

다니엘은 글을 읽고 해석해주면 예물과 상급을 주겠다는 왕의 제안을 불손하게 보일 정도로 퉁명스럽게 거절합니다. 상급과 상관없이 가감 없이 풀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상급의 거절은 다니엘과 왕 사이의 긴장감을 시사하며 해석의 확실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대가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전달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2) 느부갓네살의 경험 회고(18-21)

 

해독과 해석을 알려주기에 앞서 다니엘은 먼저 왕의 어리석음을 그의 아버지 느부갓네살에 비교해서 신랄하게 책망합니다. 느부갓네살과 달리 벨사살에게는 누가 세상의 참된 통치자인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통치하던 느부갓네살이 교만으로 인해 심판을 받고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졌다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사람 나라”를 다스리심을 깨닫고 나서 복권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의 경험이 벨사살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하게 처신했습니다. 다니엘은 지금 벨사살에게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려고 느부갓네살의 운명을 언급한 것은 아닙니다. 일곱 때가 지나 다시 보좌에 오른 느부갓네살과 달리 벨사살에게는 왜 복권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지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벨사살은 모든 것을 알고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성모독을 주저하지 않는 그의 맹목적 어리석음이 교훈적 징벌을 불필요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정한 권력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느부갓네살이 큰 권세를 휘두르며 온 세상을 통치했지만, 권세의 실질적인 주인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권력을 행사했을 뿐입니다. 19절의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에 나타난 표현들은 여호와의 능력과 권세를 기술할 때 사용되는 것들입니다(참조, 신 32:39; 삼상 2:6-7; 왕하 5:7). 하나님의 권세가 느부갓네살에게 위임됐음을 시사합니다. 느부갓네살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도취된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께서 정하신 한계를 벗어났을 때, 그는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왕좌에서 쫓겨나고 영광을 빼앗겼습니다. 그래도 느부갓네살은 인간 사회에서 추방당하는 징벌을 통해 권력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됐고, 다시 보좌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벨사살은 아버지 느부갓네살의 운명으로부터 배웠어야 했습니다.

 

(3) 벨사살 책망(22-23)

 

4장의 느부갓네살에게는 권력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본보기가 없었지만, 벨사살의 사정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보고 알았으면서도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지 않고 하늘의 주재를 거슬러 자신을 높였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을 무시하고 신성모독과 우상숭배의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통치자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심을 보았음에도 벨사살은 그 하나님께 속한 성전 기물로 신하들과 술을 마시고 온갖 우상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잠시 느부갓네살의 손에 맡기셨던 성전 그릇을 술자리의 여흥과 우상숭배에 사용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철저하게 무시해버렸습니다. 성전 그릇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극적인 낮아짐과 높아짐을 통해 당신께서 하늘의 주재이심을 보여주셨기에, 벨사살의 어리석음과 방자함은 어떤 경우에도 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을 떤 벨사살은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제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니엘의 해독과 해석(24-2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동과 선택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메시지를 인식하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회개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4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25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24-28)

 

하나님께서는 벨사살 왕의 교만과 불순종을 심판하며, 그에게 “메네, 메네, 테겔, 바르신”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메시지는 왕의 왕국이 끝나고 심판받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은 벨사살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로 멸망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1) 하나님께서 보낸 손가락(24)

 

글자 해독과 해석에 앞서 왕궁의 석회벽에 글자를 쓴 손가락의 기원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그의 앞에서” 나온, 곧 왕의 생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능멸한 왕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보내신 손가락입니다.

 

(2) 글자 해독(25)

 

다니엘은 글자를 읽고 감춰진 의미를 해석해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손가락이 석회벽에 쓴 신비한 글자는 문장이 아닌 네 단어의 나열이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어원적으로 보자면 세 단어는 중량이나 화폐의 가치를 나타내는 단위였던 것 같습니다. ‘메네’와 ‘데겔’은 각각 히브리어 ‘므나’와 ‘세겔’에 상응합니다. 므나와 세겔은 무게 단위로, 므나는 세겔의 오십 배 또는 육십 배에 해당합니다. “우”는 ‘그리고’를 의미하는 접속사입니다. “바르신”은 베레스의 복수 또는 쌍수로, 베레스는 므나 또는 세겔의 절반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르면 석회벽에 쓰인 글자는 "한 므나, 한 므나, 한 세겔, 그리고 반 므나들/반 세겔들이 됩니다. 단순히 무게 또는 화폐 단위를 나열해놓은 글자로,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무게나 가치가 작아지는 순으로 열거하면서 메네를 두 번 사용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3) 글자 해석(26-28)

 

26절의 해석은 ‘메네’의 반복 사용에 관해서는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일부 주석자들은 첫 번째 메네가 합계의 의미로 사용됐으리라 추측합니다. 한마디로, 손가락이 쓴 글자는 알레고리적 해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글자입니다. 바벨론 지혜자들이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줄 수 없었음도 나름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무게 단위에서 동사를 찾아내 해석합니다. 먼저 ‘메네’에서 ‘세다’를 의미하는 동사 ‘머나’를 찾아내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라고 해석합니다. ‘(날수를) 계산하다’는 ‘운명을 정하다’를 의미합니다(참조. 시 90:12).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수가 다 찼기에 바벨론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합니다. ‘데젤’에서는 ‘무게를 달다’를 의미하는 동사 ‘터칼’을 찾아내고 이를 다시 ‘가볍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칼랄’의 미완료로 읽어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라고 해석합니다. 공의로우신 재판관 여호와께서 벨사살 왕의 행적을 심판의 저울에 달아보니 기준에 못 미쳤습니다. 복수 ‘바르신’의 단수 ‘베레스’에서는 ‘나누다’를 의미하는 동사 ‘퍼라스’를 찾아내고 동시에 나라 이름 ‘바사’를 읽어내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로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벨사살의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메대와 바사에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맺는 말: 다리오에게 넘어간 벨사살의 나라(29-31)

우리는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과신하지 말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시므로, 우리는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경청해야 합니다. 인간의 권세와 영광은 일시적이며, 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29○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30○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31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29-31)

 

벨사살 왕은 다니엘의 해석을 듣고 그에게 명예를 주며, 금사슬을 걸고 왕국의 제3의 통치자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 메대와 바사 군대가 왕국을 공격해 벨사살이 죽게 됩니다. 이로써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벨사살 왕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1) 높임 받은 다니엘(29)

 

벨사살은 바벨론의 멸망과 왕의 죽음에 관한 다니엘의 해석을 인정하고 약속한 상급을 줍니다. 마치 남의 일처럼 받아들입니다. 여기서도 느부갓네살과의 대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2장에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2:47-48), 4장에서는 하나님의 왕권을 찬양하고(4:3, 34-35, 37) 조서를 내려 자신의 경험을 모든 백성과 나라들에 알립니다. 반면에 벨사살은 다니엘의 해석은 수용하지만, 그 배후에 계신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23)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 느부갓네살의 삶을 보고도 배운 바가 없는 벨사살은 다니엘의 해석을 듣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합니다.

 

(2) 벨사살의 죽음과 바벨론의 멸망(30-31)

 

다니엘의 해석이 즉각적으로 벨사살에게 임합니다. 큰 잔치를 베풀었던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살해당하고 그의 나라를 메대 사람 다리오가 차지합니다. 다니엘서의 역사 이해에 따르면 메대가 바벨론 다음에 등장하는 나라가 됩니다. 예레미야 51:11도 유사하게 메대를 통해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합니다(참조, 사 13:17; 21:2). 땅의 역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계획대로 진행되어 갑니다.


교만과 불순종의 결과로 벨사살 왕이 멸망한 이야기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심판하시며, 그분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인간의 권세는 일시적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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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5-01)


영광의 잔치와 하나님의 심판

다니엘 5장 1-16절


 

교만은 인간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게 만듭니다. 교만한 행동은 자신의 힘과 부에 취해 하나님을 경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무시당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니다. 그 결과는 반드시 나타나며, 심판의 형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바벨론 왕이 느부갓네살에서 그의 아들 벨사살로 바뀌고, 교만의 주제도 약간 변화가 생깁니다. 느부갓네살의 경우에는 권력의 교만이 문제였다면, 벨사살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놓고 신성모독의 악행을 저지릅니다. 연회장의 흥취를 더하기 위해 벨사살은 아버지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마르둑 신전의 보물창고에 보관해둔 여호와의 성전 기물을 가져다가 술잔으로 사용합니다. 여호와께 속한 거룩한 기물이 왕의 노리개가 됩니다.

 

벨사살 왕의 연회(1-4)

교만과 방종은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 의존하거나 경배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시며, 그에 따라 판단하십니다. 따라서 교만과 방종은 결국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1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2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3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4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1-4)

 

본문에서는 벨사살 왕이 큰 잔치를 벌이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과 은 그릇을 사용하여 술을 마시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왕은 하나님을 모독하며, 그의 조상 네부갓네살이 섬기던 신들과 함께 이 그릇을 사용하여 술을 마십니다. 이로 인해 왕의 교만과 신에 대한 경시가 드러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준비가 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1) 대연회(1)

 

벨사살 왕이 큰 잔치를 벌이고 술을 마신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왕후들과 후궁들의 참석도 이례적이지 않습니다. 천 명의 참석자도 온 세상을 정복한 바벨론 왕이 베푸는 잔치임을 고려할 때 대단한 규모는 아닙니다(참조, 에 1:3-5; 느 5:17). 왕의 잔치를 바벨론이 멸망하던 해에 성대하게 거행된 신년축제와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추측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인 왕의 잔치인 것 같습니다.

 

(2) 술잔이 된 예루살렘 성전 기물(2-3)

 

잔치 중에 벨사살이 ‘황당한’ 유흥을 생각해냅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온 금은 기물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함께 술을 마십니다. 취하기 전이건 취한 후건 그의 행동은 바벨론 시각에서도 신성모독입니다. 점령지에서 약탈한 것이라도 성전기물은 신께 속한 것이기에 그것을 연회의 술잔으로 사용하는 짓은 이교 세계에서도 극히 예외적인 일입니다. 벨사살의 이런 파렴치한 행동은 여호와의 전 그릇을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둔(1:2) 느부갓네살의 처신과 대조됩니다. 예루살렘 성전기물이 전리품이긴 해도 느부갓네살은 그 신성을 인정해 마르둑 신전의 보물 창고에 두었는데, 아들 벨사살은 술맛을 더하려고 술잔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벨사살은 교만하게 행하다 보좌에서 쫓겨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왕권을 깨닫고 다시 복권된 사건은 기억하지 못한 채 그가 약탈해온 성전 기물만 기억합니다.

 

(3) 우상의 찬양(4)

 

성전 기물과 그 주인이신 여호와는 그에게 전쟁포로에 불과했습니다. 벨사살과 잔치에 참여한 자들의 파렴치와 방자함이 신성모독을 넘어 우상숭배로 나아갑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 기물로 술을 마시며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합니다. 여호와께 전제를 드릴 때 사용하던 기물로 바벨론의 신들에게 헌주(酒)를 드립니다. 교만하고 경솔한 우상숭배자들에 의해 여호와께서 철저하게 모독당하십니다. 이제 조롱을 수용하면서 우상보다도 못한 무능력한 신으로 남으시든지 저들의 오만함과 방자함을 징벌하심으로써 당신이 하늘의 왕임을 보여주시든지 여호와께서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이십니다.

 

사람의 손가락들의 출현(5-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무시하면 불안과 두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위 위에 계시며, 인간의 교만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5○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5-6)

 

본문에서는 벨사살 왕이 잔치를 벌이는 가운데, 갑자기 하늘에서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자를 쓰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왕은 그 글자를 보고 두려움에 떨며,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등 극심한 공포에 휩싸입니다. 이 사건은 왕에게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이 임할 것임을 암시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냅니다.

 

(1) 벽에 글자를 쓰는 손가락(5)

 

벨사살의 오만하고 경솔한 신성모독에 예루살렘 성전 기물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즉시 반응하십니다.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촛대 앞 왕궁 석회벽에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출애굽기 8:19과 31:18에 의존해서 사람의 손가락들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을 보기도 하지만, 벨사살이 손가락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지를 계시하려고 주신 천상적 존재의 손가락임을 시사합니다(참조. 3:25; 6:22).

 

(2) 두려움에 사로잡힌 왕(6)

 

잔치의 여흥이 한순간에 깨지고 두려움과 공포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공황에 사로잡힌 벨사살의 반응이 생생하게 기술됩니다. 왕의 안색이 확 변하고, 놀라서 사지가 풀리고 무릎이 떨려 서로 부딪쳤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떨어진 자의 전형적인 반응입니다(참조. 시 69:23; 사 21:3; 45:1; 겔 21:7;2:10).

 

해결을 시도하는 왕(7-12)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어려운 순간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혜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믿을 수 있는 이들의 지원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7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8그 때에 왕의 지혜자가 다 들어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려 주지 못하는지라 9그러므로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의 얼굴빛이 변하였고 귀족들도 다 놀라니라 10○왕비가 왕과 그 귀족들의 말로 말미암아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 이에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하게 하지 말며 얼굴빛을 변할 것도 아니니이다 11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12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7-12)

 

본문에서는 벨사살 왕이 손가락이 쓴 글자를 해석할 사람을 찾기 위해 마술사와 점쟁이를 소집하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왕은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그때 왕의 어머니가 다니엘의 지혜와 해석 능력을 기억하고 그를 추천합니다. 다니엘은 이전에 왕의 조상 네부갓네살에게도 해석을 제공했던 인물로, 그의 명성이 왕에게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1) 해독하지 못하는 바벨론의 지혜자들(7-9)

 

왕은 급히 바벨론 지혜자들을 모두 불러 많은 상급을 약속하면서 글자를 읽고 해석하도록 독려합니다. 자주색 옷은 왕족이나 귀족이 입는 옷이고(참조, 에 8:15), 목에 거는 금 사슬은 특별히 귀한 장식이었던 같습니다. 애굽의 바로도 꿈을 해석해준 요셉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주었습니다(창 41:42). “나라의 셋째 통치자”는 서열 세 번째의 지위 또는 왕궁의 고위직일 것입니다. 큰 상급의 약속도 바벨론 지혜자들의 무능력을 도와주자 못했습니다. 저들은 글자를 읽지도 못하고 해석을 왕에게 알려주지도 못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은밀한 것이기에 바벨론 지혜자들이 알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2:27). 그 뜻을 알아야지 그 내용이 나쁘면 제의나 주술을 사용해 부정적 결과를 막아볼 것인데, 읽을 수도 없기에 불안과 두려움만 커졌습니다. 크게 놀란 왕은 낯빛이 변하고 귀족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가 알 수 없는 언어나 비밀스런 문자로 기록됐음을 가리키는지 또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음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25절에 의하면 문장이 아닌 단어로 됐기에 단어의 뜻을 넘어 그 안에 함축된 메시지를 찾아내는 해석 작업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2) 다니엘을 추천하는 모후(10-12)

 

연회의 혼란스런 상황을 보고받은 왕비가 등장해 왕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줍니다. 벨사살이 모르는 왕궁 역사를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을 볼 때, 왕비는 아내가 아니라 왕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의 어머니는 특별한 정치적 지위와 영향력을 인정받아 왕에게 나아가 조언을 하거나 제안을 할 수 있었습니다(참조. 왕상 15:13; 왕하 11:13; 24:12; 렘 13:18). 모후는 선친 느부갓네살이 중용한 다니엘을 벨사살에게 소개하고, 그를 불러 물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다니엘이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으로(4:8,9,18),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로 소개됩니다. 그의 남다른 능력은 이미 검증됐습니다. 꿈이나 수수께끼(“은밀한 말”)나 어려운 문제(“의문”)를 풀 수 있는 뛰어난 정신과 지식과 통찰력을 지녔기에 느부갓네살이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11; 참조. 2:48;4:9)으로 삼았었습니다. 바벨론의 지혜자들과 달리 신적 영감을 받은 자이기에 석회벽에 쓰인 글자를 틀림없이 해석할 수 있을 거라면서 적극 천거합니다. 본문에 따르면 벨사살은 부왕 느부갓네살의 통치 아래서 제2인자였던 다니엘을 전혀 모릅니다. 벨사살의 어리석음이 간접적으로 고발당합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을 멀리한 어리석은 통치자입니다. 다니엘이 왕 앞에 등장하는 방식도 벨사살을 간접적으로 비판합니다. 바벨론 지혜자들의 무능력이 드러난 후에 다니엘이 등장하는 것은 앞의 이야기에서와 같지만, 그가 왕 앞에 나아가는 과정은 사뭇 다릅니다. 2장의 다니엘은 왕에게 직접 나아가거나(16)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을 찾아가 왕 앞으로 인도해줄 것을 부탁하고(24), 4장의 다니엘도 직접 왕을 찾아가(8) 꿈을 해석해줍니다. 다니엘이 적극적으로 왕을 찾아갑니다. 반면에 5장의 다니엘은 매우 피동적입니다. 모후의 천거로 왕의 부름을 받아 나옵니다. 느부갓네살의 통치에는 적극 참여하지만, 벨사살의 통치로부터는 거리를 둡니다.

 

왕의 발언(13-16)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어려운 상황에서는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는 결국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진리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3○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되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14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15지금 여러 지혜자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16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13-16)

 

본문에서는 벨사살 왕이 다니엘을 불러 그에게 큰 보상을 약속하며, 글자의 해석을 요청합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보상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왕은 다니엘의 지혜와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그가 과거에 해석한 경험을 강조하며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1) 왕 앞에 나온 다니엘(13)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 앞에 나옵니다. 앞에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간단히 물어보았는데(2:26;4:9), 벨사살은 직전에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다니엘에게 알려주고 글자 해석을 요청합니다.

 

(2) 다니엘과 지혜자들의 대비(14-15)

 

벨사살은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해석하지 못했기에 자기에게는 모후의 조언을 따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음을 밝힙니다. 그는 다니엘에게 별다른 신뢰를 내보이지 않습니다.

 

(3) 상급의 약속(16)

 

지혜자들에게 준 보상의 약속을 다니엘에게도 그대로 반복하는데, 이는 다니엘을 바벨론 지혜자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는 모후의 말 가운데 11b절은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니엘을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다니엘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13, 참조. 2:25)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교만과 하나님의 경고가 결합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벨사살 왕은 세속적인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무시했지만, 다니엘은 그에게 진리를 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신앙의 책임과 헌신이 필요함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그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결국, 진리를 전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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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4-02)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간 느부갓네살

다니엘 4장 19-37절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성취에 자만하지 않고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게 하며, 진정한 지혜와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때, 우리는 더 큰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겸손은 신앙생활의 핵심이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 다니엘의 해석이 그대로 이뤄집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자신을 역사의 주인으로 만들려다가 파국에 떨어집니다. 업적과 위대함에 취해 자만해진 순간 느부갓네살은 보좌에서 쫓겨납니다. 자기 능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한 것을 다 잃은 후에야 권력이 자기 소유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늘의 교육적 징벌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이가 역사의 주인임을 인정합니다.

 

다니엘의 꿈 해석(19-27)

하나님께서 인간의 교만을 경고하시며, 진정한 권세는 오직 그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회개와 겸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습니다. 또한,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교훈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19○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20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21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 22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23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24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25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26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27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19-27)

 

본문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그 꿈의 해석을 다니엘에게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꿈이 그의 교만과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것임을 설명하며, 왕이 겸손해지고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으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자비와 회개를 통한 구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꿈에 대한 다니엘의 반응(19)

 

꿈 이야기를 들은 다니엘이 몹시 당황하다가 번민하지 말고 말하라는 왕의 말을 듣고 입을 엽니다. 꿈을 해석하기 전에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바벨론의 꿈 해석자들은 꿈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꿈의 내용이 나쁠 때는 주술이나 제의를 통해 그 악한 영향을 쫓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은 박수장의 자격으로 바벨론 전통에 따라 왕의 꿈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제의적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했지만, 왕의 꿈이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임을 알았기에 왕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을 내보일 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꿈 이야기를 다시 인용한 후에 해석합니다. 꿈이 두 개의 환상으로 이뤄졌듯이 해석도 나눠서 진행됩니다.

 

(2) 꿈 해석(20-26)

 

20절은 11절을, 21절은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를 제외하고 12절을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첫 번째 환상의 해석은 22절에서 간단하게 주어집니다. 다니엘의 설명에 따르면 왕이 꿈에서 본 나무는 왕을 가리킵니다. 나무가 하늘에 닿기까지 크게 자라 세상 어디에서도 보이듯이 왕의 권세가 더욱 커져 하늘에 닿고 땅 끝까지 이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두 번째 해석도 왕의 꿈을 인용하지만, 첫 번째와 달리 해석 자체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13b-16절의 주요 내용이 23절의 한 절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 환상의 경우와 달리 꿈과 해석이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임을 먼저 언급합니다. 박수장 벨드사살이 해석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이가 알려주신 것입니다. 해석이 계시의 차원으로 옮겨집니다. 다니엘의 해석을 보면 그가 꿈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놀라 번민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은 사람들에게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고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어 일곱 때를 지내야 합니다. 왕이 왕궁에서 쫓겨나 고립된 야인으로 지내게 될 것을 말합니다. 누구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쫓겨나는 이유는 30절에서 간접적으로 시사됩니다. “소처럼 풀을 먹으며”는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들소에 대비시킨 표현 같습니다. 거칠게 들판을 내달리며 다른 짐승을 공격하는 야생의 들소와 달리 소는 사람에 의해 길들여진 온순한 짐승으로 풀을 먹습니다. 권력의 박탈은 정변에 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육 목적의 징벌입니다. 가장 낮고 비참한 자리로 떨어진 후에야 왕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게 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려고 왕이 징벌 받는 것입니다. 나무뿌리를 남겨 둔 이유가 있습니다. 권력 박탈이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왕들을 폐하시고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통치자들은 안정적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다니엘은 신하의 의무를 끝까지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3) 왕에게 주는 다니엘의 권면(27)

 

왕에게 마지막 가능성에 매달려볼 것을 조언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결정을 되돌리거나 연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이스라엘의 예언 전통에서 찾습니다(27). “공의”는 긍휼과 동의어로 사용된 것 같고, “가난한 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들뿐만 아니라 여러 이유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도 포함합니다. 모든 결정은 하나님께 맡겨야 하지만,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값없이 채워준다면 왕의 평안함이 오래 지속될지도 모르니 선을 베풀도록 충고합니다. 바벨론 식으로 교육을 받고 바벨론의 박수장이 됐지만, 다니엘은 조상들의 전통에 충실한 이스라엘의 예언자였습니다.

 

해석대로 이루어진 왕의 꿈(28-33)

교만한 마음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며, 인간의 권세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삶에 간섭하시며, 그 결과는 피할 수 없는 진리임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은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회복과 은혜가 주어질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전달합니다.

 

28○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29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30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3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28-33)

 

본문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영광을 인정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왕은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 고난을 겪고 회복된 후, 하나님의 통치와 권세를 깨닫고 그를 높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의 은혜를 경험한 느부갓네살의 변화된 마음을 통해, 겸손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왕의 교만(28-30)

 

다니엘의 해석이 그대로 느부갓네살 왕에게 일어납니다. 왕이 다니엘의 진심 어린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전제합니다. 다니엘의 해석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던(18) 왕이 그의 해석은 그렇게까지 신뢰한 것 같지 않습니다. “열두 달이 지난 후에는” 왕에게 다니엘의 권면을 따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을 시사해줍니다. 일곱 때처럼 열두 달도 완전수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기다림의 기간이 헛되이 지나가자 하나님의 명령이 즉각적으로 실행됩니다.

 

(2) 하늘의 판결(31-33)

 

어느 날 느부갓네살이 왕궁의 옥상을 거닐며 바벨론 제국의 도성을 바라보다가 자만에 빠집니다. 왕의 오만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아주 신속하게 집행됩니다. 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치 머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떨어지듯이 심판이 임합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떨어져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라며 느부갓네살 왕의 폐위가 선포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하늘이 왕을 세우고 폐하는 권력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과시합니다. 하늘의 명령이 즉각적으로 이뤄져 왕은 왕궁에서 쫓겨나 들판에서 들짐승과 더불어 삽니다. 권력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로부터도 격리됩니다. 다니엘의 해석대로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왕에게 그대로 일어납니다.

 

느부갓네살의 복권과 찬양(34-37)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의 시작임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모든 권세의 주인이시며, 그의 뜻에 순종할 때 진정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의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전달합니다.

 

34○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6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34-37)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의 시작임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모든 권세의 주인이시며, 그의 뜻에 순종할 때 진정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의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전달합니다.

 

(1) 총명을 회복한 느부갓네살(34)

 

감사와 찬양으로 시작한 왕의 조서가 감사와 찬양으로 끝을 맺습니다. 남겨진 나무뿌리가 시사해주듯이 완전한 멸망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 기한이 차매”는 느부갓네살의 복권이 “일곱 때”의 예언에 따라 이뤄졌음을 보여줍니다. 왕권을 상실할 때처럼 복권에서도 느부갓네살의 역할은 거의 없습니다. 그가 한 것은 하늘을 우러러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32) 분 앞에서 저지른 교만이 그를 보좌에서 내쳤던 것처럼, 하늘의 하나님 앞에 내보인 겸비가 그를 다시 높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봄’은 상황이 절망적임에도 아무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사람의 무언의 간구입니다. 오만에서 벗어나 자신의 한계와 무능력을 깨닫고 하늘만 바라보는 느부갓네살에게 하늘의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왕의 총명이 돌아오고 원래 상태를 회복합니다. 나라의 영광을 높일 수 있는 왕적 권위와 능력(“위엄과 광명”)을 되찾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쫓겨나 고립됐던 왕이 다시 자문관과 관원과 함께 국사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립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위세를 얻습니다. 이적과 놀라운 일을 경험한 느부갓네살은 찬양으로 화답합니다.

 

(2) 첫 번째 찬양(34b-35)

 

첫 번째 찬양은 3b절의 찬양을 확장합니다. 느부갓네살의 권세와 달리 지극히 높으신 이의 권세는 영원하고, 흥망성쇠를 피할 수 없는 땅의 나라와 달리 그분의 나라는 대대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나라가 영원함은 그분께서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영생하시는”은 활동의 영원성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이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한순간도 다른 존재에게 권력을 넘겨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당신 뜻대로 행하시지만, 그분의 손을 막고 이의를 제기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의 군대는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3) 복권된 느부갓네살(36)

 

느부갓네살은 지극히 높으신 이를 깨닫고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그분을 경배하며 그에게 권세와 나라가 대대로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의 보좌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참된 왕은 그가 낮아지고 나서 알게 되고,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권력이 있음을 알 때에 가능해진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4) 두 번째 찬양(37)

 

두 번째 찬양은 그분의 통치 방식과 관련한 찬양입니다. 그분은 하늘 보좌에서 왕으로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진실하고 그분의 길은 의롭기에 세상 왕들은 그분만 찬양하고 높이고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진실과 의로움은 통치자의 덕목에 속합니다. 하늘의 왕은 올곧게 공의로 통치하시는 분이기에 신뢰와 찬양의 대상이 되십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끌어낸 교훈으로 조서를 끝맺습니다. 자기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신의 자리에 오르려는 교만한 권력은 하늘 왕의 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과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교훈을 줍니다. 왕은 자신의 권세를 과신하다가 비참한 상태에 빠지지만, 결국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이는 우리에게 교만의 위험성을 일깨우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회복의 기회를 주시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우리의 삶에서도 겸손과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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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4-01)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신 왕국

다니엘 4장 1-18절


하나님은 모든 권세와 권력을 주관하시며, 인간의 교만은 그 주권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할 때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교훈은 우리가 항상 겸손하고 회개할 기회를 가져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인간의 계획이나 힘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지혜임을 보여줍니다.

 

  • 2장처럼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다니엘이 꿈을 해석합니다. 주제도 유사하게 ‘누가 땅의 역사를 결정하고 지배하는가?’인데, 환상의 시간적 범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2장에서는 세상 권력을 대체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까지의 ‘후일’을 내다보고, 여기서는 느부갓네살의 왕권에 한정됩니다. 느부갓네살이 민족들을 정복하고 바벨론을 제국으로 만들었지만, 그 권력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운명 앞에 무용지물이 됩니다.

 

조서의 도입부와 찬양(1-3)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역사하시며, 그분의 능력과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는 길입니다.

 

1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3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1-3)

 

본문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의 주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역사에 대한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와 번영을 기억하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1) 수신자들에게 주는 인사말(1)

 

느부갓네살 왕이 온 세상에 사는 모든 민족과 나라에 회람용 조서를 보냅니다. 먼저 안부 인사를 하는데, 개인과 공동체의 모든 삶에 안녕과 평화를 보장해주는 신적 질서가 더욱 증대하길 간구합니다.

 

(2) 조서를 내리게 된 동기(2)

 

왕은 자신이 경험한 놀라운 신적 사건에 모든 백성이 참여하도록 초대합니다. “이적과 놀라운 일”은 여호와의 구원행위, 특히 출애굽의 구원사와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표징과 이적’에 상응하는 표현입니다. 애굽 왕 바로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낮추셨다가 다시 높이십니다.

 

(3)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3)

 

3절은 찬양으로, 전반절은 2절의 이적과 놀라운 일을 받아 그 위대함을, 후반절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을 노래합니다. 왕을 세우고 폐하는 이적과 놀라운 일을 경험한 왕은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만이 영원함을 깨닫습니다.

 

꿈으로 인한 왕의 번민과 해석의 시도(4-8)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힘과 지혜가 하나님과 비교할 때 미약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겸손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초가 됩니다. 결국, 자신의 한계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더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게 됩니다.

 

4○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5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6이러므로 내가 명령을 내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더라 7그 때에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가 들어왔으므로 내가 그 꿈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지 못하였느니라 8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내가 그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되(4-8)

 

본문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꿈으로 인해 큰 번민에 빠지며, 그 꿈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결국, 신앙의 공동체인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과정은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1) 꿈으로 번민하는 왕(5)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상황 묘사로 시작합니다. 장소와 느부갓네살의 형편이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왕이 왕궁에서 꿈을 꾼 것은 당연하기에 이 장소 언급은 의도적입니다. 주변 나라들을 다 정복했기에 더는 원정을 나갈 일이 없음을 시사합니다. 바라는 것을 다 성취했기에 성공과 번영을 즐기며 쉬는 일만 남은 왕에게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2장에서처럼 왕이 꿈을 꾸고 그 때문에 두려워 놀랍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위협을 모두 제거하고 자기 왕궁에서 평안하게 지내던 왕이 꿈 때문에 편안함과 평강을 잃었습니다. 왕의 반응은 2장과 엇비슷합니다.

 

(2) 꿈을 해석하지 못한 바벨론 지혜자들(6-7)

 

놀란 왕이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왕궁으로 들어오게 해서 꿈을 해석하게 하지만, 아무도 왕에게 해석해주지 못합니다. 2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서는 왕이 꿈의 내용을 알려주는데, 이는 지혜자들의 무능력을 한결 더 강조하는 효과를 줍니다. 다시금 다니엘이 바벨론 지혜자들과 분리됩니다.

 

(3) 다니엘의 등장(8)

 

바벨론 전문가들이 실패한 후 다니엘이 왕 앞에 나옵니다. 극적 효과를 노린 문학적 기술이지만, 다니엘이 의존하는 지극히 높으신 이와 바벨론 지혜자들의 신들을 구별하려는 세심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박수장이기에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하지만, 이들과 달리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꿈과 환상을 해석하기에 다니엘은 독자적으로 활동합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에에게 이중적으로 소개됩니다. 먼저 “내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입니다. 느부갓네살의 신은 ‘마르둑’을 가리킵니다. 다음으로는 그의 남다른 자질에 관한 것인데, 그는 “거룩한 신들의 영”을 지닌 자입니다. 왕은 다니엘을 신들의 도움을 받아 점을 치거나 꿈을 해석하는 자로 인정하고 높이 평가합니다.

 

왕이 꾼 꿈의 내용(9-18)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고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인간의 교만은 결국 심각한 대가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에게 돌아오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9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 10내가 침상에서 나의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높이가 높더니 11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12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13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14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15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16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17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18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지혜자가 능히 내게 그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라(9-1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교만을 경계하고, 회개와 겸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교훈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며, 신앙의 공동체가 서로를 돕는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1) 다니엘의 능력을 신뢰하는 왕(9)

 

서로 관련된 두 개의 환상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9절과 18절은 다니엘에 대한 왕의 믿음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줍니다. 왕은 꿈에서 본 환상에 관해 말하기 전에 먼저 다니엘의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개인적 신뢰를 표명합니다. 다니엘은 거룩한 신들의 영을 지녔기에 그에게는 “어떤 은밀한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왕의 태도는 다니엘과 바벨론 지혜자들을 더욱 극명하게 대조시킵니다. 은밀한 것은 신적 계시로만 해석될 수 있는 비밀입니다. 신들의 의지에 속한 비밀이기에 거룩한 신들의 영을 통해서만 풀 수 있습니다. 교육받아 해석 전문가가 된 바벨론 지혜자들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박수장은 다니엘의 공식 직함인 듯합니다(참조. 2:48).

 

(2) 우주목에 관한 환상(10-12)

 

왕이 꿈에서 본 첫째 환상은 큰 나무에 관한 것입니다. 땅 중앙에 한 거대한 나무가 있었는데 더욱 크고 견고하게 자랐습니다. 그 높이가 엄청나서 하늘까지 닿아 땅 끝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잎사귀는 아름답고 열매는 풍성하여 모든 생명의 양식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그늘 아래에는 들짐승이 자리 잡고, 가지에는 하늘의 새들이 깃들이고, 모든 생물이 그 나무에서 양식을 얻었습니다. 왕이 본 세상 중앙에 있는 거대한 나무는 우주목으로, 고대 세계에 잘 알려진 신화적 표상입니다. 우주적 나무에 관한 첫째 환상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의 통치와 권력에 신적 권위가 주어집니다.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1)이 안전과 풍요를 누리려면 그의 통치 아래로 들어와야 합니다. 물론 4장은 우주목의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순찰자에 관한 두번째 환상이 보여주듯, 이를 비신화화해서 절대 권력을 지향하는 바벨론의 교만을 심판하는 데 활용합니다.

 

(3) 순찰자에 관한 환상(13-18)

 

둘째 환상은 “한 순찰자”에 관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꿈의 환상 가운데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순찰자를 봅니다. “거룩한 자”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라는 표현은 이 순찰자가 초월적·천상적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순찰자의 등장은 땅의 중앙에 있는 나무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순찰자는 큰 소리로 거대한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외칩니다. 베어지는 이유는 언급되지 않고, 제거 명령만 구체적으로 주어집니다. 나무를 베고, 가지를 자르고, 잎을 떨고, 열매를 헤쳐 짐승들과 새들을 떠나게 합니다. 모든 생물에 안식처와 양식을 제공해준 우주목이 그 역할을 다합니다. 명령을 받는 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순찰자와 거룩한 자가 17절에서 복수로 나오기에 순찰자의 우두머리가 다른 순찰자들에게 명령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나무가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습니다. 순찰자는 땅 속으로 깊게 뻗은 나무의 뿌리(“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남겨두게 합니다. 땅 속에 있는 주근은 뽑히지 않았기에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남겨집니다. 15절의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의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아마도 표상(나무)과 실체(느부갓네살)가 뒤섞인 언급 같습니다. 쇠줄이나 놋줄은 죄인을 결박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기에 왕이 결박될 것을 미리 보여줍니다. 자기 왕궁에서 “사람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을 다스리던(단 2:37-38; 렘 27:56) 왕이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은 채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들과 함께 살게 됩니다. 짐승처럼 들판에서 이슬을 맞으며 사는 삶이 왕의 운명으로 결정됩니다. 왕의 마음도 변형됩니다. 왕은 “짐승의 마음”을 지니고 일곱 때를 지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내적·심리적으로 왕궁에서의 삶을 표현한다면, 짐승의 마음은 사회에서 격리돼 들판에서 짐승들과 함께 사는 삶을 대변합니다. “일곱 때”가 확정된 칠 년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칠 일의 주간을 배경으로 한다면, 새로운 시작이 다시 가능해지는 완전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순찰자들의 명령”과 “거룩한 자들의 말”은 동격입니다. 물론 이들이 직접적인 명령자는 아닙니다. 24절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결정을 순찰자들이 선포한 것이기에 왕의 운명은 어떤 경우에도 변경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유일한 왕이자 결정권자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온 세상을 정복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보좌에서 내려가라 하시면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그분의 명령에 거슬러 맞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원하는 이에게 나라를 주시고 가장 낮은 사람을 나라 위에 세우기도 하시는 분입니다(참조, 삼상 2:7-8; 시 113:7-8;겔 17:24).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그 해석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구절은 교만이 어떻게 우리를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경고하며, 겸손과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며,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킵니다. 신앙 공동체의 역할도 중요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를 귀 기울여 듣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겸손한 삶을 살아가야 함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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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3-02)


불의 시험에서 드러난 신앙

다니엘 3장 19-30절


 

신앙은 개인의 삶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요구합니다.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앙을 지키는 과정은 종종 고난과 시련을 동반하지만, 이는 결국 더 강한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기회가 됩니다. 따라서 신앙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절대군주의 난폭한 위협에 굴하지 않고 풀무불에 던져지기까지 신앙인의 의무를 다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죽음의 자리에서 구원을 경험하고, 눈앞에 전개된 경이로운 사건에 놀란 바벨론 왕은 세 친구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의 구원 능력을 인정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바벨론 제국의 모든 백성과 민족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존중할 것을 명령합니다.

 

왕의 판결과 처형 집행(19-23)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신앙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극심한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불 속에 던져질지라도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신뢰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데서 오는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결국, 신앙은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 속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을 줍니다.

 

19○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19-23)

 

본문은 신앙의 결단이 불의 시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는 왕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은 진정한 신앙이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용기를 필요로 함을 교훈합니다.

 

(1) 처형 명령(19-20)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신앙인의 의무를 선택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처형이 집행됩니다. 분노한 느부갓네살은 풀무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고 세 친구를 옷을 입은 채로 결박해 타오르는 풀무불 가운데 던지게 합니다. 일곱은 완전수로 최고조에 이르도록 뜨겁게 했음을 의미합니다. 평소의 풀무불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데, 일곱 배나 더 달궈진 풀무불이라면 결과는 뻔했습니다.

 

(2) 처형 집행(21-23)

 

고대 근동에서는 원래 옷을 벗기고 죄인을 처형했습니다. 불에 더 잘 타도록 옷을 입힌 채 풀무불에 던진 것 같습니다. 결박은 죄인을 처형할 때의 일반적 절차에 속하지만, 풀무불의 처형에서는 불필요합니다. 옷의 경우처럼 세 친구의 절망적 형편이 한층 더 강조됩니다.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나오는 불꽃만으로도 세 젊은이를 들어 올렸던 용사들이 타 죽었기에 결박된 채 풀무불 가운데 떨어진 이들의 죽음은 확인이 불필요할 정도입니다. 왕의 판결과 처형을 집행하는 이 단락에서 특히 22절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곱 배나 더 달궈진 풀무불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주지만, 이야기적 차원에서 읽자면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세 친구의 처형을 집행하는 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합니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불의 불꽃에 형 집행자들이 타죽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왕의 계획안에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15)며 절대 권력을 주장하지만, 실은 사소한 불꽃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왕입니다. 용사들을 태워 죽인 불꽃 앞에서 왕의 권력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세 젊은이를 풀무불에 던지는 것까지만 왕의 권한입니다. 이들의 삶과 죽음은 불꽃을 다스릴 수 있는 분께서 결정하십니다.

 

불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세 친구(24-25)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는 신앙을 지키는 자에게 큰 위로와 확신을 제공합니다. 세 친구가 불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은 이야기는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잘 보여줍니다. 신앙을 지키는 과정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동행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곁에 계시며, 그 믿음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24○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24-25)

 

본문은 하나님이 고난 중에도 함께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불속에서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와 함께 있는 네 번째 인물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구절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음을 교훈합니다.

 

(1) 놀라는 왕의 질문과 모사들의 답변(24)

 

일곱 배나 더 달궈진 풀무불에 던져졌기에 상황은 이미 종료된 것과 같았습니다. 바벨론 왕이 자기의 일을 끝낸 시점에 하늘의 왕께서 당신 일을 시작하십니다. 전혀 새로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느부갓네살이 깜짝 놀라 급히 일어섭니다. 느부갓네살은 처형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앞에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놀란 왕은 주변의 모사들에게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확인하는 질문을 던진 이유가 다음 절에 언급됩니다.

 

(2) 불 속을 거니는 네 사람(25)

 

세 명을 결박해서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군 풀무불에 던졌는데, 결박이 풀린 네 사람이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박이 어떻게 풀렸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불이 결박만 사르거나, 네 번째 사람이 풀어주었을 수 있습니다. 근처에 있는 사람도 태워 죽일 정도로 맹렬히 타오르는 풀무불 가운데 있는데도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신적 존재의 보호를 받거나 불이 해할 수 없는 신비한 몸으로 변화됐을 수 있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 눈앞에 전개됩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세 젊은이 외에 또 한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 번째 사람은 그 모습이 “신들의 아들”과 같았습니다. 자주 사용되는 신의 아들들에 비하여 신들의 아들은 매우 특이한 표현입니다. 화자가 다신론적 세계에 사는 느부갓네살이기 때문에 선택된 표현 같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단순히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신의 아들’도 신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신의 아들들은 하늘 어전회의의 표상과 함께 고대 근동에서 빌려온 표현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를 지칭합니다(참조, 창 6:2; 왕상 22:19; 시 29:1; 89:76; 욥 1:6; 38:7).

 

세 친구의 경이로운 구원(26-27)

어려운 상황에서 신념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구원하실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고난에 처했을 때 그분의 역사를 믿고 기다려야 함을 강조합니다. 용기 있게 신앙을 지켰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은 용기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희망을 제공합니다.

 

26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26-27)

 

본문은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그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는 불속에서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안전하게 구출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다는 교훈을 줍니다.

 

(1) 세 친구를 부르는 왕(26a)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떨어진 유다의 세 젊은이가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음은 이들이 신의 보호 아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신상에 절하지 않은 세 젊은이가 신에 의해 무죄한자로 인정을 받습니다. 바꿔 말하면, 세 젊은이를 풀무불에 던지게 한 느부갓네살이 신 앞에 죄인이 됩니다. 신의 의지를 거스른 행동은 신의 징벌을 초래하기에 왕에게는 처형을 중지시키고 상황을 다시 바로잡아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신속하게 반응합니다.

 

(2) 상함 없이 불에서 나오는 세 친구(26b-27)

 

위험을 무릅쓰고 풀무불 어귀로 다가가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며 밖으로 나오라고 말합니다. 왕은 세 젊은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그분의 종임을 인정합니다. 특히 아벳느고의 이름과 연결시켜 주목할 만합니다. 환관장이 느고(느보)의 종으로 개명한 유다 청년(들)이 왕에 의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불립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지칭하는 고대적 표현입니다(참조, 창 14:18,19,20,22;시 7:17; 57:2; 78:35,56). 5장에서는 느부갓네살과 관련해서 다니엘의 입에서 나오고(5:18,21), 4장에서는 하나님 없이 단순히 “지극히 높으신 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4:17,24,25,32,34; 7:25).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풀무불에서 나온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상태를 살펴봅니다. 놀람의 연속입니다. 맹렬히 타오른 불이 세 젊은이의 몸을 전혀 해하지 못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았고, 겉옷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불길에 닿은 냄새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불 속에서 나왔는데, 불 속에서 나왔다는 아무 흔적이 없었습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에 대한 분명한 답변입니다. 왕이 분노하여 풀무불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세 젊은이를 조금도 해치지 못합니다. 문맥에서 보자면, 왕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풀무불에 들어간 세 젊은이의 완벽한 구원은 왕의 명령을 수행하다 불꽃에 희생당한 용사들의 헛된 죽음과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왕의 권력은 복종하는 자들조차 멸망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세 친구의 하나님을 향한 왕의 고백(28-3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역사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존재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며, 이를 통해 주변에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전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신앙 고백은 세상에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28○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30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28-30)

 

본문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신앙의 결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의 믿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며, 믿음의 결단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교훈합니다.

 

(1) 종들을 구원하신 하나님(28)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느부갓네살이 일부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전체 이야기가 끝을 맺습니다. 이야기의 구조에 있어 2:46-49과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2) 존중 받아야 할 하나님(29)

 

왕은 먼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찬양합니다. 세 젊은이의 구원이 이들이 죽기까지 의뢰한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것임을 인정합니다. 천사를 보내 명령을 거역하고 다른 신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그분의 종들을 구원하셨다는 고백에서 간접적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왕의 모습을 봅니다. 느부갓네살의 고백은 유배지의 유대 사람들에게 주는 권면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라면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세상 권력과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인정한 느부갓네살은 이제 유대의 종교를 제국의 보호를 받는 합법 종교로 선포합니다. 조서를 내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욕된 말을 하는 자는 예외 없이 사지가 찢기고 그 집이 폐허가 될 것을 고지합니다. 풀무불의 기적은 다른 신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세 젊은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나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바벨론 제국의 국경 안에서 이스라엘 유배민들의 하나님이 온전하게 인정을 받습니다.

 

(3) 높임 받는 세 친구(30)

 

마지막으로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높입니다. 예전의 자리로 복권시킨 것일 수도 있고, 더 높은 자리로 영전시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의 결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는 불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믿음을 지켰고,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어려움과 시련이 닥칠 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충성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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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3-01)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배

다니엘 3장 1-18절


조선들은 하늘의 날씨를 인생에 비유하면서 교훈을 삼았습니다. 날씨는 좋은 날도 있지만,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항상 구진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만 좋은 날도 많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항상 잘 나가는 좋은 날도 있지만, 나쁜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날도 있다가 좋지 않은 날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잘 나갈 때, 나중을 위해 잘 준비합니다.

 

  •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니엘에서 세 친구들로 바뀝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박해 상황에 처합니다. 땅의 권력자에 의해 배교적 타협을 강요받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단호하게 신앙적 의무에 따른 죽의 길을 선택하고 풀무불의 처형장으로 들어간다. 믿음이 현실 권력과 충돌할 때 신앙인은 자신의 믿음에 충실해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상 건립과 낙성식(1-7)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에 맞서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께 충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외부의 압력이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세상의 권위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우선시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1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2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3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4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6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7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1-7)

 

본문은 권력의 압박과 우상 숭배의 유혹을 보여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우상에게 경배할 때, 진정한 신앙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세상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켜야 함을 교훈합니다.

 

(1) 신상 건립(1a)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거대한 상을 만들게 합니다. 상의 높이는 육십 규빗이고, 너비는 여섯 규빗이었다. 높이가 거의 30m, 너비가 3m에 이르는 거대한 상입니다. 조형적으로 특이한 것은 높이와 너비의 비율입니다. 높이가 너비의 열 배가 된다. 2장과 관련 시켜 느부갓네살이 상에 자신의 모습을 새겨 신처럼 경배하게 했습니다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12,14,18)는 신에게 봉헌된 상,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의 신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권력과 통치를 공고하려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곤 했습니다. 신상이 세워진 곳은 두라 평지다. 왕이 직접 주관하는 국가적 행사로 신상의 봉헌식이 거행된다. 왕의 명령에 따라 모든 관리가 두라 평지에서 거행되는 낙성 예식에 참석합니다. 신상의 봉헌식이 왕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해보는 자리로 변질 된다.

 

(2) 낙성식 거행(1b-7)

 

2절과 3절에 등장하는 여덟 개의 관직명은 여러 지역과 분야에서 행정적·사법적 책임을 담당한 고위 관료들을 포함합니다. 27절에도 등장하는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은 개별 지방이나 집단의 행정을 책임진 최고위직에 해당합니다. 네 번째와 여섯 번째의 “모사”와 “재판관”은 사법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자들이고, 다섯 번째의 “재무관”은 나라의 재정과 금고를 담당하는 자들입니다. 일곱 번째의 “법률사”는 좋은 번역이 아니다. 치안을 담당하는 자들로 치안판사가 어울리는 번역입니다. “각 지방의 모든 관원”은 성읍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선포하는 자가 모인 자들에게 왕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은 고위관료들이 백성들과 나라들을 대표해서 봉헌식에 참석했음을 시사합니다. 앗수르나 바사처럼 바벨론도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다민족과 다국가로 구성된 제국이었다.

4-5절은 선포하는 자가 모인 무리에게 외친 말입니다.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가 나면 모두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해야 합니다.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왕의 위협적 명령이 참석자들을 짓누르는 가운데 봉헌식의 축제가 거행된다. 악기 소리가 나자 참석자들은 모두 왕이 세운 금상에 절합니다. ‘엎드려 절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경배 행위에 속합니다. 신명기 율법은 일월성신이나(신 4:19) 신들에게(신 8:19) 절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합니다. 느부갓네살의 억압적 조치는 고대근동에서 다른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신격화된 왕권의 오만함에서 나온 것 같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과 신상에 절하는 것이 동일시되면서 느부갓네살 왕은 신의 자리로 옮겨진다. 왕의 절대 권력이 거대한 신상을 통해 대변된다.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8-12)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 때문에 비난이나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 생활의 일부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신앙 공동체 내에서도 질투와 경쟁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외부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도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8○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9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10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1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2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8-12)

 

본문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용기와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바벨론의 압박 속에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킨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의 모습이 우리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1) 참소자들의 등장(8)

 

왕의 위협적 명령 안에 함축된 긴장이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을 참소합니다. 전체 유다 사람들이 아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고발을 당합니다. 갈대아 사람들의 고발은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른 것이기에 겉보기에는 악의적인 중상모략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고발이 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바벨론 사람들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2장의 경우처럼 전문적인 점성가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변방에 속한 유다 출신 지혜자와의 경쟁에서 밀린 바벨론 점성가들이 기회를 잡아 이들의 제거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참조, 에 3:811). 이들은 왕의 명령을 핑계로 이방 경쟁자를 합법적으로 고발합니다.

 

(2) 참소 내용(9-12)

 

10-11절의 고발은 5-6절에서 선포하는 자가 외친 왕의 명령을 거의 문자적으로 인용합니다. 왕의 통치 아래 있는 백성은 누구든지 신상에 엎드려 절해야 했습니다. 2:49을 받는 12절은 왕이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고위 관리로 임명했음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왕이 직접 바벨론 지방의 일을 맡긴 자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고발 내용은 이중적입니다. 이들은 왕의 명령을 존중하지도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왕의 명령을 무시한 반역자로, 종교적으로는 신상에 절하지 않은 무신론자로 고발을 당합니다. 다신론적 세계에서 볼 때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주 왕과 신의 권위를 무시하는, 곧 국가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자들처럼 보였습니다.

 

재판왕의 심문과 위협(13-18)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나타냅니다. 세상의 명령과 위협에 맞서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중요합니다. 이는 세상의 권위에 대한 저항의 필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13○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3-18)

 

본문에서는 믿음이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구원 여부와 관계없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1) 왕 앞에 끌려온 세 친구들(13)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 사실 여부를 추궁하며 심문합니다. 분노한 절대 권력자 앞에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한 일이 없는 유다의 세 청년이 선다.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사람들의 고발 내용(12) 가운데 첫 번째(“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를 빼고 두 번째에 관해서만 진위를 확인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양자택일을 위협합니다.

 

(2) 왕의 위협(14-15)

 

15절은 대응하는 두 개의 조건문으로 구성됐는데, 두 번째 조건문에만 귀결문이 뒤따른다. 첫 번째 조건문 다음에 나오는 “좋거니와”는 번역에 따른 삽입입니다. 두 개의 조건문이 대등하지 않고 두 번째에 무게중심이 두어졌다.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화형에 처해지는 것은 확실하지만, 신상 앞에 절합니다고 자동으로 목숨이 구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15절의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결정은 신의 고유 역할입니다. 그런데 지상 패권을 장악한 권력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신의자리를 탐하곤 합니다(참조, 왕하 18:35 사 36:20) 이렇듯 신의 역할을 자처하는 느부갓네살의 오만이 이 사건에 여호와의 개입을 초래합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세 친구는 풀무불의 처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지 않는다. 신성모독적 권력 앞에 여호와의 침묵은 그분의 무능력을 의미합니다.

 

(3) 세 친구의 답변: 복종의 거절(16-18)

 

세 친구가 의지하는 여호와께서 그 능력을 의심받는 위기 상황에 내몰리신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생사결정권이 자기 손에 있다는 왕에게 단호하게 응수합니다. “우리가 이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입니다”(16). 외교적 수사 없이 직설적으로 표출된 이들의 이 답변은 왕의 위협이나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느부갓네살은 그렇게 들었겠지만). 목숨을 부지하려고 왕과 타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 표명입니다. 맹렬히 타오르는 풀무불이 무서워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17-18절은 이들의 순교자적 단호함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다.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살아남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지, 그분의 의무에 속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12:1-3의 경우처럼,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에 대한 소망을 내다보며 순교의 길을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계시를 통한 내적 확신에 근거해서 왕의 위협에 단호하게 맞서는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신앙 양심이 이들로 하여금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길로 가게합니다. 이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살든지 죽든지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신실하게 남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위협에 노출된 자에게 요청되는 최고의 덕목은 ‘신앙인의 신실함’입니다. 신앙인은 세상 권력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구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지만, 구원받지 못하더라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유지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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