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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2-02)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

다니엘 12장 5-13절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역사와 우리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계획은 때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결국 좋은 결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신뢰는 우리의 삶에 힘과 평안을 줍니다.

 

  • 다니엘서의 마지막 단락은 두 단계의 대화, 곧 천사들의 대화와 천사와 다니엘의 대화로 구성됩니다. 천사들의 대화를 듣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다니엘이 설명을 요청하자 한 천사가 그에게 종말에 관해 요약적으로 알려줍니다. 두 대화는 동일한 주제에 의해 서로 연결됩니다. 두 천사의 대화가 마지막 때의 기간에 초점을 맞춘다면, 다니엘과 천사의 대화는 마지막 때가 환난의 기간임을 알려줍니다.

 

천사들의 대화(5-7)

하나님께서는 역사와 인생의 마지막 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계획은 종종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비를 경외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은 고난과 시련이 따를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뢰는 우리의 삶에 힘과 평안을 줍니다.

 

5○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6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7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5-7)

 

다니엘은 두 인물이 강가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한 인물이 마지막 때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에 다른 인물은 시간의 경과를 언급하며, 많은 사람들이 정화될 것이라고 답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라고 강조합니다.

 

(1) 강 좌우편의 두 천사(5)

 

다시 강이 환상의 무대로 등장합니다. 힛데겔 강가에서 한 천사를 보았던(10:4-6; 참조. 8:2; 겔 1:1) 다니엘이 이번에는 강가의 두 천사를 봅니다. 한 천사는 강 이쪽 기슭에, 또 한 천사는 강 저쪽 기슭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은 두 천사가 10장에 나온 천사와 구별되는 인물임을 시사하고, “강”은 10:4의 “큰 강”을 받습니다.

 

(2) 질문한 자(6)

 

질문하는 자는 강기슭에 서 있는 두 천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질문을 받는 천사는 두 가지 점에서 강가의 두 천사와 구별됩니다. 먼저 천사의 위치가 다릅니다. 두 천사는 각각 “강 이쪽 언덕”과 “강 저쪽 언덕”에 서 있는데, 질문을 받는 천사는 “강물 위쪽에” 있습니다. 천사의 외모를 보면, 두 천사는 단순히 “다른 두 사람”으로 지칭하고, 질문을 받는 천사만 “세마포 옷을 입은 자”로 그 외관이 묘사됩니다. 이 표현은 10:5에 한번 더 나오는데,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은 세마포 옷을 입은 한 사람을 봅니다. 세마포 옷을 입은 자가 동일 인물임을 시사해주는 것 같습니다.

요약하자면, 강기슭 이편과 저편에 있는 두 천사 가운데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천사에게 질문합니다. 환상의 등장인물을 이렇게 이해할 때 ‘다른 한 사람’이 아닌 ‘다른 두 사람’의 등장은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현재 문맥에 따르면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고, 두 천사와 다니엘이 그의 맹세 행위를 지켜봅니다. 이스라엘의 법정은 사건을 확정할 때 중인 둘 또는 셋을 요청합니다(신 19:5). 이런 배경에서 보면, 다른 두 사람은 두 증인의 역할을, 다니엘은 세 번째 증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강가의 천사가 “이 놀라운 일의 끝”에 관해 묻습니다. “어느 때까지냐”는 하나님의 신속한 개입을 갈망하는 마음이 담긴 질문입니다(참조. 8:13). “이놀라운 일”은 안티오코스의 멸망에서 정점에 도달하는 사건들(11장)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의 ‘펠레’는 다니엘서에 두 번 더 나오는데, 모두 안티오코스와 관련된 문맥에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됩니다(8:24 11:36). 강물 위쪽의 천사는 오른손과 왼손을 하늘로 쳐들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두고 엄숙히 맹세하며 답변합니다.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는 4:34의 “영생하시는 이”와 같은 표현으로, 내용상 7:9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와 동일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드는 행위는 원래 간구의 기도에 속하는 동작으로, 맹세의 경우에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맹세의 엄중함과 장엄함을 최상급으로 강조하기 위해 좌우의 두 손을 든 것 같습니다. 답변은 이중적입니다. 기간과 관련해서는 “한 때 두 때 반 때”가 지나야 합니다(참조 7:25; 9:27). 이 표현이 상징적인지 사실적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악이 승리하는 기간이 짧게 정해졌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끝이 정해진 박해의 기간을 지나야 합니다. 시대적 상황과 관련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모두 굴복하게 될 것을 말하는지, 유다의 무장 저항세력의 패배를 가리키는지, 유배로부터 시작되는 환난 기간의 요약적 표현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깨닫지 못한 다니엘의 질문(8)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한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신뢰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깊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8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8)

 

환상의 보고를 시작하면서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10:1)라고 말한 다니엘이 마무리하면서는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라고 말합니다(참조. 8:27). 10:1의 깨달음의 확신과 12:10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는 다니엘이 봉함된 환상의 내용(4)이나 천사의 대화 자체를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님을 시사해줍니다.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는 강기슭의 천사가 한 질문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의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에 관해서는 다니엘이 이미 알고 있는, 천사의 명에 따라 봉함한 것입니다. 천사처럼 다니엘도 종말에 관해 묻지만, 그의 질문은 “놀라운 일의 끝” 이후까지를 내다봅니다. 다니엘은 강물 위에 있는 천사의 답변을 듣고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묻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악의 세력이 종말을 맞은 이후에 있을 승리한 성도의 미래에 관해, 아마도 부활 이후의 삶에 관해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주는 천사의 말(9-13)

하나님의 계획은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분의 뜻과 계획 안에 있습니다. 최종적인 승리는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희망을 줍니다.

 

9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10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11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12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13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9-13)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후, 마지막 때의 비밀을 듣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일이 끝날 때까지 봉함하라고 말씀하시며, 많은 사람들이 정화되고 지혜를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부활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1) 말씀을 봉하도록 명하는 천사(9)

 

다니엘의 질문에 천사는 답변을 거절합니다. “갈지어다”는 다니엘의 시선을 환상에서 현실로 돌려주는 권면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허락된 땅에서의 삶을 살면 됩니다. 후반절은 답변이 주어지지 않은 이유를 보여줍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비밀로 해두고 봉인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4절의 ‘봉인하라’는 명령이 이미 실행됐음을 전제합니다. “이 놀라운 일의 끝”에 관한 말씀은 이미 봉함됐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때를 위한 말씀이기에 누구도 변경하거나 읽을 수 없도록 그때까지 비밀에 부치고 간직하는 것뿐입니다(참조. 8:26). 환상을 본 다니엘에게도 남은 삶을 신실하게 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봉인된 “진리의 글”에 더 첨가될 것이 없기에 답변 대신 “이 놀라운 일의 끝”에 관한 요약 가르침이 주어집니다. 환난의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정화되지만 악한 자들은 여전히 악할 것입니다. 박해 중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는 변절자도 있을 것입니다(참조. 11:32). “악한 자”는 깨닫지 못하고, “지혜 있는 자”(11:33,35; 12:3)만 깨달을 것입니다.

 

(2) 마지막 때에 관한 요약적 가르침(10-12)

 

마지막 때에 봉인이 풀릴 다니엘서를 통해 지혜자는 참된 깨달음을 얻고 박해의 시대를 이겨낼 것입니다. 11-12절은 내용상 강가의 천사에게 주는 세마포 옷을 입은 천사의 계속된 답변처럼 보입니다. “천이백구십 일”과 “천삼백삼십오 일”이 환난이 끝나는 기간으로 주어집니다. 7절의 "한 때 두 때 반 때"가 환난의 마지막 시점을 내다보는 기간이라면, “천이백구십 일”과 “천삼백삼십오 일”은 환난의 시작 시점부터 계산한 기간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참조. 8:13; 9:27; 11:31)는 대략 주전 168-167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안티오코스에 의해 주전 167년에 성전제사가 중단되고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이방신”(39)을 위한 제단이 세워지고 아크라에 셀류코스 왕조의 수비대가 배치됩니다. 두 날짜 사이의 차이와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추측의 영역에 속합니다. 두 기간의 출발점이 같기에 막연히 종말의 연속적 단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이백구십 일이 환난 시대의 전환점이기는 하지만 마지막은 아닙니다. 다니엘 개인에게 주는 끝날의 약속으로 다니엘서의 대단원이 막을 내립니다.

 

(3) 다니엘에게 주는 권면과 약속(13)

 

13절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는 끝까지 가거라. 네가 (잠들어) 쉬다가 끝날에 네 몫을 받기 위해 일어나리라.’ 전반절은 9절의 “갈지어다”를 그대로 받습니다. ‘끝까지’를 첨가해 어려움이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권면합니다. 후반절은 다니엘에게 주는 부활의 약속입니다. 동사 ‘가다’가 땅에서의 삶을 가리킨다면, 동사 ‘쉬다’는 죽음의 표상입니다. 세상에서 살다가 종국에는 무덤에서 쉬는 것이 인생이지만, 다니엘에게는 그 다음이 약속됩니다. 끝까지 제 길을 간 후 잠들어 쉬던 다니엘이 끝날에 일어나 제 몫을 받습니다. ‘쉬다’와 ‘일어나다’는 내용상 각각 2절의 ‘자다’와 ‘깨어나다’에 상응합니다. “몫”은 “영원히 살아 계신 이”에 의해 할당된 몫 곧 부활로 결정된 운명을 가리키고, “끝날”은 4절의 “마지막 때”와 동의적 표현입니다. 환난과 박해의 시대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자들(2-3)이 잠에서 깨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때, 다니엘도 일어나 영원한 생명을 몫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마지막 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화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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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2-01)


마지막 시대의 왕과 하나님의 계획

다니엘 11장 36절-12장 4절


 

모든 사건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닥칠 어려움과 환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따라서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안티오코스 4세의 교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는 자신을 높여 모든 신들 위에 올려놓습니다.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 아래 있는 민족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헬레니즘에서 찾는 안티오코스에게 종교는 정치의 봉사자여야 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아폴로 대신 제우스를 셀류코스 왕조의 신으로 섬겼고, 예루살렘의 일부 세력은 그의 도움을 받아 유대교의 헬라화를 추진했습니다. 율법에 신실한 많은 유대인이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로 내몰렸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의 교만(36-39)

교만한 자는 자신의 권력과 영광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이는 인간의 교만과 자아 중심적인 태도를 경고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영적 파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과 신앙으로 살아가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36○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 37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의 조상들의 신들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어떤 신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38그 대신에 강한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39그는 이방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점령할 것이요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 주기도 하리라(36-39)

 

본문은 마지막 시대의 왕이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는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하고 많은 사람들을 속이며 행동합니다. 이러한 예언은 하나님의 주권과 궁극적인 계획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1) 신보다 높다고 여기는 자(36)

 

안티오코스의 교만이 신학적 시각에서 기술됩니다. “속임수로” 나라를 얻은(21) 안티오코스는 자신을 신들 위에 올려놓고 “신들의 신”이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안티오코스에게 종교는 정치의 봉사자였습니다. 종교가 정치 아래 놓이기에 신들 또한 통치자 아래 들어오게 됩니다. “비상한 말”은 신성모독적 말을 가리킵니다. 안티오코스는 여호와의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만 형통할 것입니다. 역사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정하신 계획에 따라 진행되기에 지상의 권력은 그분께서 정해주신 기간 동안만 세력을 떨치고 퇴장해야 합니다.

 

(2) “강한 신”을 공경하는 자(37-38)

 

37-38절은 안티오코스의 종교 정책에 관한 언급입니다. 안티오코스는 “그의 조상들의 신들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을 돌보지 않고 “강한 신”을 공경합니다. “그의 조상들의 신들”은 시리아의 전통 종교에서 섬겨오던 신들, 특히 셀류코스 왕조의 보호자 역할을 담당했던 아폴로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은 풍요제의에 속한 담무스 또는 아도니스를, “강한 신”은 특히 시리아 군인들의 주둔지에서 섬기던 올림포스의 제우스를 가리킵니다. 안티오코스는 제우스를 셀류코스 왕조의 신으로 선택해서 그 지배 아래 있는 다양한 민족들의 통합을 시도했습니다.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은 제우스에 대한 안티오코스의 편애를 보여줍니다. 제우스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폴로를 셀류코스 왕조의 수호신으로 섬긴 조상들과 달리 안티오코스는 제우스 숭배에 우선을 두었습니다. 안티오코스가 제 조상들의 종교적 전통을 무시한 것은 예루살렘의 종교적 전통 또한 유린될 것을 시사합니다.

 

(3) 복종의 대가에 따른 통치술(39)

 

안티오코스는 “이방 신”을 앞세우고 전쟁에 나갑니다. 그의 산은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이기에 낯선 산입니다. 그는 조상들이 왕조의 신으로 섬겼던 아폴로 대신 제우스의 도움을 받아 “견고한 산성들”을 공격합니다. 산성을 수식하는 “견고한”과 38절에서 신을 수식하는 “강한”은 같은 단어입니다. 안티오코스가 조상의 신들보다 이방 신을 더 선호한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강한 산성들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강한 신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목적에 더 적합한 신을 공경하듯, 자신을 인정하는 자에게 권력과 부를 나눠주어 충성하게 합니다.

 

안티오코스 4세의 애굽 원정과 죽음(40-45)

마지막 시대의 왕과 그의 적국 간의 갈등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 속에서 드러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됩니다. 하나님은 결국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승리를 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는 신앙인에게 큰 희망과 위로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40○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 41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하게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42그가 여러 나라들에 그의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하지 못할 것이니 43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44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를 번민하게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이요 45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40-45)

 

본문에서는 마지막 시대의 왕과 그가 맞서게 될 강력한 적국의 충돌을 다룹니다. 이 왕은 전쟁과 갈등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확립하려 하지만, 결국 그의 운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됩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그의 뜻을 이루어가며 승리를 가져오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나라들과 유다의 침략(40-41)

 

마지막 때의 전쟁은 이집트의 도발로 시작됩니다. 이집트가 공격하자 안티오코스가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를 거느리고 반격합니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듯이, 홍수가 온 땅을 뒤덮고 쓸어가듯이 그의 군대가 많은 나라를 휩쓸고 지나갑니다.

 

(2) 일시적 승리(42-43)

 

그의 공격 앞에 이집트와 주변 나라들은 속수무책입니다. 그는 애굽을 유린하면서 “금과 은과 모든 보물”을 약탈하고, 이집트의 동맹국인 리비아와 구스 사람을 굴복시킵니다. 애굽 원정의 길목에 놓인 “영화로운 땅”(유대)도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합니다. 안티오코스의 침략으로 많은 유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반면에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은 그의 공격권에서 벗어납니다.

 

(3) 퇴각과 종말(44-45)

 

마지막 때의 전쟁은 안티오코스의 승리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승리를 목전에 두었을 때 예기치 않았던 일이 발생합니다. 동쪽과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문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중단합니다. 타국으로 원정 중에 듣게 되는 반역이나 외침에 관한 소문은 왕에게 치명적입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안티오코스는 관련자들을 처벌하려고 돌아가는 중에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지중해와 시온 산) 사이의 어느 지역, 곧 애굽과 시리아를 이어주는 바닷길에 위치한 해안 평야에 장막을 치지만 다시 거두지는 못합니다. 영화로운 땅에 들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인 안티오코스는 영화로운 땅 서쪽 변방에서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습니다. 여호와께서 결정하신 운명이기에 그의 죽음에 누구도 간섭하지 못합니다(참조. 8:25).

 

영원한 생명의 약속(12:1-4)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이는 신앙인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는 신앙 생활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난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1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2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3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4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1-4)

 

본문에서는 마지막 때에 미가엘이 일어나 백성을 보호하며,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때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많은 이가 깨닫고 돌아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에게는 이 예언을 기록하고 지켜보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1) 마지막 때의 구원(1)

 

마지막 때 이스라엘은 미증유의 극심한 환난을 당하지만 혼자는 아니다.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나 안티오코스의 추종자들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을 도와줍니다. “네 민족을 호위하는”은 문자적으로 ‘네 백성의 자녀들 편에 선’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호하다’를 의미하는 ‘~의 편에 서다’는 ‘~를 변호하다’ 또는 ‘심판을 집행하다’를 함축하기도 합니다. 미가엘이 이스라엘을 변호하고 악한 세력을 심판합니다. 미가엘은 바사와 헬라 군주에 대항하는 이스라엘의 군주로 가브리엘을 도와줍니다. 세 번 반복 사용된 “그 때”에는 40절의 “마지막 때”를 받습니다. “환난”은 원문에 충실하게 ‘환난의 때’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 때인 그 때는 새벽빛이 떠오르기 직전의 짙은 어둠과 같은, 미가엘이 개입하여 악의 세력을 완전히 끝장내는 환난의 때입니다. 환난의 극심함에서 구원의 임박함을 보고 마지막 때를 견뎌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책에 기록된” 사람만 구원을 받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의로운 자들은 환난중에 있거나 죽음에 넘겨졌거나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은 땅에서의 삶에 관심을 집중하고 죽음 이후에 관해서는 사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스올로 내려가는 것으로 끝나는데, 2절은 유일한 예외입니다. 순교자와 배교자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각자의 삶에 상응하는 몫을 받습니다. 끝까지 조상들의 전통에 충실하게 믿음을 지키다가 죽음에 넘겨진 사람에게는 “영생”이, 안티오코스 편에 서서 헬라적 개혁을 지지한 자에게는 “영원한 부끄러움”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의인과 악인의 운명이 최종적으로 결정됩니다.

 

(2) 죽은 자들의 부활(2-3)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참조. 사 26:19)는 죽은 자들 가운데 일부가 깨어날 것을 전제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깨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깨어남의 범위가 안티오코스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로 한정됩니다. 마지막 때에 조상의 전통을 포기하기보다 생명을 내놓은 신실한 자들과, 이들을 박해하며 유대교의 헬레니즘화를 추진한 사악한 자들이 우선 죽음에서 깨어납니다. “영”(문자적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부끄러움”은 구약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판결의 최종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지혜 있는 자”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동일한 집단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마지막 때 유대 공동체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한 자들이며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에 속합니다. “궁창의 빛”은 별의 동격이거나 또는 빛나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지혜로운 자에게는 영생뿐만 아니라 빛나는 영예도 주어집니다. 낮의 하늘과 밤하늘의 별이 창조 이래로 영원히 빛나는 것처럼 이들에게는 영원히 빛나는 영예가 주어집니다.

 

(3) 봉함된 글(4)

 

천사는 다니엘에게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명령합니다. ‘간수하다’는 ‘비밀에 부치다’를 의미합니다. 누구도 책을 열어 읽을 수 없게 봉인하고,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게 비밀스럽게 간직해야 합니다(참조. 8:26; 12:13). 고레스 제3년에 주어진 다니엘의 환상은 종말에 있을 사건을 기술한 것이기에, 그때가 오기까지 기다리며 봉인해두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의 역사가 계시됐지만, 이를 기록해놓은 글이 봉인되기에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히 감춰집니다. 봉인해서 비밀에 부쳐야 할 말과 글은 일차적으로는 10:11-12:3을 가리키지만, 폭넓게 다니엘서 전체를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봉인된 계시와 관련해 주어진 후반절은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빨리 왕래하며”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마지막 시대의 환난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환난이 닥칠 때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며, 이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하며 영적으로 준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끝으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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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1-02)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역사

다니엘 11장 20-35절


 

모든 역사적 사건과 권세는 하나님의 계획 아래 진행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 중의 어려움과 환난은 믿음을 시험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강한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의와 불의가 맞서 싸우고 있으며, 우리는 불의에 맞서 정의를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하고,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으로 항상 준비하고 경계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21절부터 45절까지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와 관련한 이야기다. 안티오쿠스 4세의 통치는 다니엘서가 그리는 땅의 역사의 마지막 때가 된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안티오쿠스 4세는 권력의지가 강하고 정치적 이해타산에 빠른 냉혹한 현실 정치가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예루살렘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에 신실한 유다 사람들을 박해한 교만한 왕이었다.

 

셀류코스 4세(187-175)(20)

모든 권세와 권력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해야 합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교활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진리와 정의를 따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20○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20)

 

안티오코스 3세의 왕위를 계승한 셀류코스 4세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다른 일은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는 바닥난 재정을 채우기 위해 재무장관 헬리오도로스(“압제자”)를 징세관으로 파견한다. 아버지 안티오코스의 부채에 짓눌려 신음하던 셀류코스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곧 헬리오도로스가 꾸민 음모에 의해 암살당한다.

 

 

안티오코스 4세(175-164)의 등장(21-24)

권력을 가진 자들은 교활하고 기만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진실과 정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강력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이용할 때,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믿음이 시험받는 상황에서도 신실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신실함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21또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22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으로 말미암아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23그와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요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 24그가 평안한 때에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의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그는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21-24)

 

본문에서는 한 왕이 평화롭게 집권하지만, 그의 통치 방식이 교활하고 기만적임을 설명합니다. 그는 약한 자들을 이용하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권력을 강화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세력을 확장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실한 자들은 그의 교활한 계획에 대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1) 안티오코스의 왕의 계승(21)

 

혼란에 빠진 셀류코스 왕조의 권력을 쟁취한 인물은 암살당한 셀류코스 4세의 동생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였습니다. 셀류코스 왕가의 혈통에 속하지만, 불법으로 권력을 찬탈했다는 점에서 안티오코스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원래 “나라의 영광”은 셀류코스 4세의 적법한 상속자인 그의 두 아들 가운데 하나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던 안티오코스가 어린 조카들에게서 왕위 계승권을 빼앗아 대신 보좌에 올랐습니다.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는 공동 통치를 매개로 왕위에 오른 안티오코스의 교묘한 정치적 술수를 반영합니다. 안티오코스는 조카를 공동 통치자로 내세워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고 세력을 공고히 한 후에 조카를 조용히 제거해 버렸습니다. 안티오코스의 세력이 막강해서 누구도 그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둑을 넘쳐흐르는 홍수처럼 쳐들어왔던 자들이 쓸려나가는 홍수처럼 쫓겨 도망합니다. “동맹한 왕”은 ‘언약의 지도자’로 옮겨야 합니다. 오니아스 3세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그는 안티오코스에 의해 예루살렘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났다가 주전 170년 대제사장 메넬라오스의 음모에 걸려 살해당합니다. 23절은 페르가몬과 맺은 동맹과 관련한 언급입니다. 안티오코스는 오랫동안 로마에 인질로 머물렀기에 셀류코스 왕조 내에서 권력기반이 취약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음모와 이중거래의 정치력과 통치술로 극복합니다. 페르가몬 왕 유메네스와 동맹을 맺고(“약조한 후에”) 그의 힘을 빌려 바벨론에서 권력을 장악합니다. 함께하는 병사가 수적으로 많지 않았지만(“소수의 백성”) 정치적 술수를 무기로 세력을 강화해 나갑니다. 24절은 안티오코스의 침략전쟁에 관한 일반적 진술입니다. 안티오코스의 침략은 약탈을 위한 전쟁으로, 그는 노략한 재물로 부하들의 환심과 충성을 삽니다. 그는 불시에 비옥한 지역으로 쳐들어가 많은 재물을 약탈해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줍니다.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는 안티오코스의 시대가 이전의 다른 왕들의 시대와 확연히 다를것을 보여줍니다.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는 안티오코스의 이집트 원정을 시사해주는 듯합니다. 그의 권세는 단지 한동안만 지속될 것입니다.

 

첫 번째 이집트 원정(25-28)

전쟁은 단순한 힘의 대결이 아니라 전략과 기만이 얽힌 복잡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속임수를 사용하여 이익을 챙길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권세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시며, 궁극적인 승리를 주십니다.

 

25그가 그의 힘을 떨치며 용기를 다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울 것이나 능히 당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계략을 세워 그를 침이니라 26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하리니 그의 군대가 흩어질 것이요 많은 사람이 엎드러져 죽으리라 27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28○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는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며(25-28)

 

본문에서는 한 왕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벌여 승리하지만, 그의 마음은 교활하고 기만적인 전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평화로운 시기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결국, 그의 통치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1) 안티오코스와 프롤레미 6세의 싸움(25)

 

이 네 절은 제6차 시리아전쟁(주전 170-168년)과 관련한 언급입니다. 안티오코스의 누이 클레오파트라가 죽은(주전 173년) 후 이집트는 어린 프톨레미 6세가 대신들의 도움을 받아 통치합니다. 특히 두 고위관료 욜라이오스와 레나이오스(“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궁정에는 셀류코스 왕조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됩니다. 안티오코스는 시리아와 가나안을 재점령하려는 프톨레미 왕궁의 의도를 간파하고 사전에 대비합니다. 그는 군사적 준비를 마친 후선제 공격에 나섭니다. 안티오코스는 애굽의 동부전선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새인 펠루시움 전투에서 프톨레미 군대에 승리를 거둡니다.

 

(2) 프롤레미의 어리석은 섭정들(26)

 

많은 병사를 잃은 프톨레미는 잠시 나라 밖으로 피신합니다. 여러 차례의 협상 끝에 프톨레미는 안티오코스와 함께 멤피스로 옵니다. 안티오코스는 어린 조카를 돌보면서 통치에 관여하는 일종의 보호자의 직(protectorat)을 맡은 것 같습니다. 이들은 한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를 하지만, 마음속에는 서로를 해칠 생각뿐입니다. 멤피스에서 안티오코스와 프톨레미가 악한 의도를 감추고 한 식탁에 앉아 서로 거짓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애굽의 귀족들이 프톨레미의 동생 프톨레미 유에르게테스를 왕으로 세우고 저항합니다.

 

(3) 안티오코스의 철군(27-28)

 

안티오코스는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하지만 함락하지 못하고 주전 169년 가을에 포위를 풀고 철군합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안티오코스는 예루살렘을 지나가면서 성전을 더럽히고 약탈합니다. 전쟁으로 바닥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성전의 보화를 공세처럼 가져간 것입니다. ‘거룩한 언약’은 ‘언약 백성’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 이집트 원정(29-35)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며, 우리는 그 계획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신뢰해야 합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고난과 시험을 통해 더욱 강하게 성장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실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은 궁극적인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29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30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면서 맺은 거룩한 언약에 분노하였고 자기 땅에 돌아가서는 맺은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필 것이며 31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32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33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34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35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29-35)

 

본문에서는 그 왕이 다시 돌아와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큰 환난을 일으킨다고 경고합니다. 신실한 자들은 믿음을 지키며 시험을 받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정결하게 되고 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시고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1) 로마의 간섭으로 실패로 끝난 원정(29-30a)

 

안티오코스가 철군한 후에 프톨레미 집안의 두 형제 프톨레미 6세와 프톨레미 8세가 누이 클레오파트라 2세의 중재로 화해하고, 셋이서 함께 통치하기로 합의합니다. 안티오코스의 첫 번째 이집트 원정이 헛수고가 됩니다. 주전 168년 안티오코스는 두 번째 이집트 원정에 나서 알렉산드리아를 다시 포위하지만 처음과 달리 아무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안티오코스가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하고 있을 때 포필리오스 라이나스(Gaius Popillius Laenas)가 이끄는 로마 사절단(“깃딤의 배들”)이 도착해 원로원의 명령으로 즉각 철군할 것을 위협합니다. 로마의 위협에 굴복해 애굽에서 쫓겨난 안티오코스는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중에 “거룩한 언약에 분노”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개입의 빌미는 예루살렘에 소요사태를 야기한 친(親)프톨레미 세력에 의해 마련됩니다.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난 후 프톨레미 진영으로 옮겨간 야손이 기회를 이용해 다시 예루살렘을 장악하려고 시도합니다.

 

(2) 예루살렘에 분노를 푸는 안티오코스(30b-35)

 

안티오코스는 예루살렘의 친 셀류코스 세력(“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징계에 나섭니다. 그는 용병 대장 아폴로니오스(Apollonius)를 예루살렘으로 파견해 소요를 진압하게 합니다. 아폴로니오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부수고, 성전을 통제할 수 있게 다윗성 북쪽에 있는 아크라(akra)를 요새화해병사들을 주둔시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더럽혀지고 제사가 중단됩니다.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참조. 9:27:12:11)은 아크라에 주둔한 이방인 용병들이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진 제우스를 위한 번제단을 가리킵니다. 주전 167년 12월에는 종교법이 반포되고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인들의 제사가 드려지고, 유대교의 율법에 따른 제사와 할례도 금지됩니다. 실질적인 탄압은 유대교의 헬레니즘화를 추진한 대제사장 메넬라오스와 그의 지지자들이 주도합니다. 그는 언약을 배반하도록 속임수로 유혹하지만,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습니다. 대대로 믿어왔던 여호와 신앙을 가르치는 “지혜로운 자들”이 유다의 종교와 사회를 헬레니즘 세계로 편입시키려는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을 당합니다. 정통 신앙에 충실한 소수의 지혜자들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지키지만, 다수는 거짓이나 위선으로 이들의 가르침에 합류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순교적 삶은 폭력에 의한 억울한 희생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화의 기간으로 주어진 믿음의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은 이중적입니다. 종말이 오기까지 신실한 자들에게 환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또 분명한 것은 악한 세력이 활개 치는 기간의 끝이 이미 정해졌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 속에서의 계획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의 권력과 교활함이 만연하지만,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해 정결하게 하시고, 궁극적으로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준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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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1-01)


역사의 흐름 속의 하나님의 계획

다니엘 11장 1-19절


 

세상의 권세는 강해 보이지만 결국 유한하며 사라집니다. 여러 왕들의 흥망성쇠가 역사 속에 나타나듯이, 인간의 권력은 한계를 가집니다.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으며 영원히 지속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영원한 승리를 보장합니다.

 

  • 바사와 그리스를 간략히 언급한 후에 셀류코스와 프톨레미 왕조의 세력 다툼을 전자에 초점을 맞춰 기술합니다. 두 왕조의 거듭된 갈등과 대립은 두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유다의 생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지만, 유다에 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언급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백성의 운명에 아무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단편적 언급은 유다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결정됨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소개와 바사(559-331)의 네 왕(1-2)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신앙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모든 상황을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움 없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1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2○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1-2)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세를 다스리시며, 우리는 그분의 주권을 신뢰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들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1) 역사적 소개(1)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일”은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된 말처럼 보입니다. 도움을 받은 ‘그’가 다리오를 가리키는지 미가엘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0장의 문맥과 민족들의 수호천사에 관한 신학은 후자를 지지합니다. 세마포 옷을 입은 천사가 바사 군주와 싸울 때 미가엘이 도와주듯이(10:13), 미가엘이 바벨론 군주와 싸울 때 세마포 옷을 입은 천사가 그를 도와준 듯합니다. 바사와 헬라의 운명은 하나님의 결정에 속하기에 반드시 이뤄질 참된 것(진리)입니다.

 

(2) 바사의 네 왕(2)

 

고레스 이후 바사를 통치한 열왕 가운데 네 명만 언급된다. 고레스, 다리오,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입니다. 헬라 왕국을 칠 넷째 왕에 관해서는 특별히 큰 재물을 모아 강력해진 왕이라고 말합니다. 바사 왕들 가운데 다리오 1세(주전 522-486년)와 아하수에로 1세(주전 486-465년)가 그리스를 침략했고,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아하수에로 1세의 부에 관해 언급했기에 넷째 왕을 아하수에로 1세로 추측하며, 또한 다리오 3세로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헬라: 알렉산더(336-323)와 제국의 분열(3-4)

세상의 권세는 인간의 뜻대로 유지되지 않고 결국 사라집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영원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적인 힘과 영광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주권자이시며, 역사는 그분의 계획 속에서 움직입니다.

 

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4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3-4)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하는 “한 능력 있는 왕”은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한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킵니다. 후계자도 지명하지 못한 채 주전 323년 서른셋의 나이로 죽습니다. 이복동생 아르히다이오스(Philip Arthidaeus)와 유복자 알렉산더 4세는 각각 주전 317년과 310년에 암살당합니다. 알렉산더의 적통이 뿌리째 제거되고, 그의 제국은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넘어갑니다. 혼란스런 후계자 전쟁 끝에 알렉산더의 부하 장수들이 대제국을 나누어 통치하기로 합의합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드라게(발칸반도 동부)와 소아시아, 바벨론과 그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의 네 왕국으로 분할됩니다.

 

셀류코스 1세(312/305-281)(5)

세상의 권력과 지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왕국과 지도자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모든 권력의 이동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힘이나 지위를 의지하지 말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참된 주권자로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5○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5)

 

강한 “남방의 왕”은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를 차지하고 프톨레미 왕조(주전 323-30년)를 창건한 프톨레미 1세를, “그 군주들 중 하나”는 셀류코스 왕조를 연 셀류코스 1세를 가리킵니다. 바벨론의 총독 자리를 얻었던 셀류코스는 주전 316년 안티고노스를 피해 프톨레미에게로 도망해 그의 장수가 됩니다. 주전 312년 프톨레미를 도와 가사(Gaza)에서 안티고노스와 싸워 이긴 후 다시 바벨론의 총독직을 얻고, 주전 301년 입소스(Ipsus) 전투에서 안티고노스가 죽은 후에는 프톨레미 왕조보다도 더 큰 나라의 왕이 됩니다.

 

안티오코스 2세(261-246), 셀류코스 2세(246-225)(6-9)

인간이 세운 약속과 연합은 불완전하여 결국 무너집니다. 참된 평화는 인간의 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결국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주권자이시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참된 승리를 가져옵니다.

 

6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7○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9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6-9)

 

본문에서는 남왕국과 북왕국 간의 정치적 동맹과 갈등이 언급됩니다. 남왕국의 왕이 북왕국의 왕에게 딸을 보내 결혼 동맹을 맺지만, 이 결혼은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후 북왕국은 힘을 키워 남왕국을 공격하고, 여러 전쟁을 통해 권력을 확장하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1) 파국으로 끝난 정략결혼(6)

 

제2차 시리아 전쟁(주전 260-253년)이 끝난 후에 프톨레미 왕조는 정략결혼을 통해 셀류코스 왕조와 정치적 화친을 모색합니다. 주전 252년 프톨레미 2세는 딸 베레니케를 아내가 있는 안티오코스 2세와 결혼시킵니다(6).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 직후 안티오코스는 이혼한 아내 라오디케와 다시 화해하고, 라오디케와 그녀의 두 아들이 거주하던 에베소에 머물다가 갑자기 죽습니다.

 

(2) 프톨레미 3세의 보복 원정(7-8)

 

라오디케는 안티오코스가 죽기 직전에 자기 아들 셀류코스 2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주장하고, 안디옥에 머물던 베레니케는 오라버니 프톨레미 3세에게 군사적 도움을 요청합니다. 프롤레미는 원정에 나서 안디옥에 입성하지만, 누이와 조카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합니다. 이집트 군대가 도착하기 직전 라오디케의 앞잡이들에 의해 베레니케와 그녀의 아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이집트에서 데려온 수행원들(“도와 주던 자”)도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프톨레미는 누이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안디옥을 떠나 메소포타미아로 올라가 많은 승리를 거두고, 소아시아의 에베소도 수중에 넣습니다. 그의 성공적인 원정은 갑작스럽게 중단됩니다. 반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철수합니다.

 

(3) 셀류코스 2세의 실지 회복(9)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방으로 밀려났던 셀류코스 2세는 프톨레미가 잠시 활동을 멈춘 사이 실지를 회복합니다.

 

안티오코스 3세(223-187)(10-19)

세상의 권세를 쫓는 자들은 갈등과 혼란 속에서 살아갑니다. 참된 평화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계략은 한계가 있으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권력을 의지하는 자는 몰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영원한 소망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10○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11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12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13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14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15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16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17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18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19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10-19)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기도한 후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천사는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지연된 이유를 설명하며, 영적 전쟁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랑하고 그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1) 첫 번째 시리아 전쟁(10-12)

 

셀류코스 2세의 아들 셀류코스 3세는 통치 3년 만에 암살당하고, 동생 안티오코스 3세가 형의 자리를 계승합니다. 주전 221년 유약한 프톨레미 4세가 왕위에 오르자 안티오코스 3세가 원정에 나섭니다. 주전 217년 안티오코스는 애굽의 국경 근처에 있는 라피아(”견고한 성“)에서 프톨레미 4세에게 크게 패합니다. 그러나 프톨레미는 승리의 여세를 활용하지 못하고 안티오코스와 강화조약을 체결합니다. 프톨레미 왕조는 세력 확장에 나설 만큼 그렇게 강하지 못했습니다.

 

(2) 두 번째 시리아 전쟁(13-15)

 

13-15절은 안티오코스의 두 번째 시리아 전쟁과 관련한 말씀입니다. 군사력을 재정비한 안티오코스는 주전 204년 프톨레미 5세가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많은 물자와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원정에 나섭니다. 안티오코스 편에 가담하여 프톨레미를 치는 자들(“여러 사람”)은 그와 동맹을 맺은 마케도니아 왕 빌립과 프톨레미에 반기를 든 애굽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도 분열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는 친(親) 셀류코스 노선을 추종하는 유다 사람들일 것입니다.

 

(3) 안티오코스 3세의 영화(16-18a)

 

안티오코스에 우호적인 일부 유다 사람들이 “환상”의 도움을 받아 프톨레미에 반기를 들지만, 스코파스(Scopas)가 지휘하는 프톨레미 군대의 반격을 받은 안티오코스가 퇴각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싸움은 주전 200년에 벌어집니다.

 

(4) 안티오코스 3세의 종말(18b-19)

 

스코파스의 원정군이 헤르몬 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파네아스(Paneas)에서 안티오코스에게 참패를 당합니다. 누구도 안티오코스의 진격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프톨레미의 지배 아래 있던 유다와 예루살렘(“영화로운 땅”)도 그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통로를 확보한 안티오코스가 전쟁 대신 안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프톨레미 5세와 강화조약을 맺고 정략결혼으로 이를 보강합니다. 그는 딸 클레오파트라(“여자의 딸”)를 프톨레미 5세에게 주어 결혼시킵니다. 18절은 주전 197-190년 사이의 파국적 원정을 요약합니다. 동맹국 마케도니아 왕 빌립이 로마에 결정적으로 패하자 안티오코스는 소아시아로 원정을 떠나 그리스의 많은 섬들을 점령하고, 주전 196년에는 발칸 반도 동쪽의 드라게(Thrace)에 도달합니다. 주전 192년 그리스로 원정갔다가 191년 테르모필래(Thermopylae)에서 로마에 패하고, 190년 돌아오는 길에 스미르나 근처의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 다시 참패를 당합니다. 안티오코스의 오만에 종지부를 찍고 그의 오만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한 “한 장군”은 로마의 집정관 스키피오를 가리킵니다. 소아시아 원정은 안티오코스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로마의 봉신이 되어 돌아옵니다. 주전 189년의 아파미아(Apamea)조약에 따라 안티오코스는 소아시아의 지배권과 전진기지였던 엘레판틴과 그의 함대를 로마에 넘겨주고 전쟁 배상금도 지불해야 했습니다. 과도한 배상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진 안티오코스는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의 성전(“자기 땅 산성들”)을 약탈합니다. 그는 주전 187년 엘리마이스(Elymais)에서 벨 신전을 약탈하려다가 수치스런 죽음에 넘겨집니다.


다니엘은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영적 전투의 실체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기 위해 천사를 보내시며, 그가 겪는 고난과 갈등을 이해하고 위로하십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확신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와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수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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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0-02)


하나님의 사자 응답의 메시지

다니엘 10장 10-21절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즉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때로 응답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연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훈련을 위한 과정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환상적 존재가 큰 충격과 놀람에 빠진 다니엘이 기운을 회복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세 단계에 걸쳐 세심하게 도와줍니다. 먼저 그는 손의 접촉과 격려의 말로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진 다니엘을 일으켜 세워주고, 뒤이어 그의 입술에 손을 대어 말할 수 있게 입을 열어주고, 마지막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다니엘에게 손을 대며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다니엘의 간구와 관련된 소개(10-1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 따라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물리적 세계를 넘어서 영적 세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필요한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는 그분의 계획과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해는 기도의 인내와 믿음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10○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11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12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13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14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10-14)

 

본문에서 다니엘은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에게 응답합니다. 사자는 다니엘의 기도가 들려졌음을 전하며, 영적 전투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는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응답의 타이밍을 강조합니다.

 

(1) 다니엘을 일으켜 세우는 천사(10-11a)

 

큰 충격을 받고 탈진 상태에 빠진 다니엘이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천상적 존재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힘을 북돋아 주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술됩니다. 땅바닥에 엎드러진 다니엘이 두 단계를 거쳐서 일어섭니다. 먼저 천상적 존재의 손이 그를 만지고 흔들자 다니엘이 무릎과 손바닥을 땅에 대고 엎드린 자세로 반쯤 일어나고, 뒤이어 “(발로) 일어서라”는 명령에 따라 떨며 일어납니다. 9:23에서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말한 것처럼 여기에서도 천상적 존재는 다니엘을 “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부릅니다.

 

(2) 첫날에 응답받은 다니엘의 말(12)

 

천상적 존재는 떨며 일어선 다니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하며 힘을 내도록 격려하고(참조, 창 15:1; 26:24; 삿 6:23), 자신이 오게 된 과정과 목적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은 세 이레를 다 채울 때까지 금식하고 애도하지만, 세 이레의 끝에 답변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춘 첫날에 다니엘의 말이 하나님에게 들렸습니다(참조. 9:23). 다니엘이 결심을 실행에 옮긴 바로 그날 하나님께서는 천상적 존재를 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식과 애도 안에 담긴 다니엘의 진정성과 열심을 인정해주셨습니다.

 

(3) 천사의 도착이 지체된 이유(13)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는 다니엘이 하나님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구체적 예입니다. “네가 깨달으려 하여”는 다니엘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세 이레 동안 음식을 절제하고 애도하기로 결심했음을 시사해줍니다. 또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는 다니엘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간구했음을 전제합니다.

 

(5) 천사가 온 목적(14)

 

14절에 의하면 다니엘이 깨닫기 원한 것은 마지막 날의 일입니다. 곧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위한 목적으로 금식하며 애도했습니다. 이미 첫째 날에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됐음에도 이십일 일이 돼서야 전달의 책임을 맡은 천사가 다니엘에게 도착합니다(참조 9:20-23). 천상적 존재는 도착이 지연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첫날부터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기를 파견하셨지만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 늦게 도착했습니다.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길을 막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의 도움을 받아 오게 됐습니다. 바사 왕국의 군주는 하늘에서 바사 왕국을 보호하고 대표하는 천사장을, 미가엘은 이스라엘의 천상적 보호자를 가리킵니다(12:1). 다니엘서의 신학에 따르면 지상의 사건은 천상의 사건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땅에서 바사와 이스라엘의 대립은 천상에서 바사 왕국의 군주와 이스라엘의 수호천사 미가엘의 대립으로 나타납니다. 천상적 존재는 “마지막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다니엘이 깨닫게 하려고 왔습니다. 동사 ‘깨달다’에 의해 14절은 12절과 1절에 연결됩니다. 다니엘이 “깨달으려 하여”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자(12), 그를 “깨닫게 하러” 천상적 존재가 와서 보여주었기에 (14)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관한 환상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1).

 

다니엘과 천사의 대화(15-21)

영적 전투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을 통해 그분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가 필요할 때 도와주시는 위로의 존재입니다. 신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해야 하며,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큰 힘과 방향성을 제공합니다.

 

15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16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7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와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하니 18○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19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20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21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15-21)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중요한 메시지를 듣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사자는 다니엘에게 그의 기도가 들려졌음을 전하며, 페르시아 왕국과의 영적 전투에 대해 설명합니다. 또한, 마지막 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언급하면서, 다니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자는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하며,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안내합니다. 이 구절은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1) 말문이 막힌 다니엘(15)

 

천사의 말에 다니엘은 충격과 탈진에 빠집니다. 8-9절에서는 갑작스럽게 출현한 천상적 존재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 두려워 기력을 상실한 채 얼굴을 땅에 대고 쓰려지고, 여기서는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을 땅으로 숙인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충격으로 말을 잃어버린 채 망연자실 서 있는 다니엘을 “인자와 같은 이”가 도와줍니다.

 

(2) 입술을 만져 입을 열어주는 천사(16a)

 

입술을 만져 말할 수 있게 입을 열어주자 다니엘은 환상 때문에 고통이 엄습해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대화는커녕 숨조차 쉴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인자와 같은 이”는 문자적으로 ‘사람의 아들들의 형상처럼 (생긴 이)’입니다. 7:13의 “인자 같은 이”와 구별되는 천상적 존재입니다.

 

(3) 무력감을 호소하는 다니엘(16b-17)

 

“근심”은 ‘해산의 고통’을 가리키는 단어로 다니엘이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인 고통에 떨어졌음을 시사해줍니다. ‘~의 입/입술에 대다’의 모티브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의미는 서로 다릅니다. 이사야 6:6-7에서는 죄사함의 제의적 정결의식과 관련해서, 예레미야 1:9에서는 예레미야의 선포와 하나님의 말씀의 일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로 사용됩니다.

 

(4) 다니엘에게 힘을 주는 천사(18-19a)

 

다니엘의 경우에는 충격으로 인해 벙어리가 된 다니엘이 다시 말을 할 수 있도록 입술을 열어줍니다. 숨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는 다니엘에게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행동과 언어를 통해 용기를 내도록 도와줍니다. 입술을 만져 말문을 열어주었던 것처럼 다시 다니엘을 만져 힘을 북돋아 주고,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도록 격려합니다. 천상적 존재의 격려에 원기를 회복한 다니엘은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됐다고 응답합니다.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의 문자적으로는 ‘사람 모양처럼 (생긴 이)’입니다. 천상적 존재가 다니엘을 세 번 만지는데, 그때마다 그를 가리키는 표현이 다릅니다. 10절에서는 “손”이 다니엘을 16절에서는 “인자와 같은 이”(‘사람의 아들들의 모습처럼 [생긴 이]’)가 그의 입술을 18절에서는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사람 모양처럼 [생긴 이]’)가 그를 만집니다. 세 표현 모두 5절의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5) 천사에게 말하도록 요청하는 다니엘(19b)

 

11-12절과 19절에서 천상적 존재가 동일하게 다니엘을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 부르며 “두려워하지 말라” 위로하고 있는데, 이것도 같은 인물임을 시사합니다. 환상 중에 본 천상적 존재이기에 모호하게 보여주기 위해, 또는 천상적 존재와의 만남이 촉발한 당혹감과 두려움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표현을 달리했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보기에 천상적 존재는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6) 앞날의 요약적 소개(20-21)

 

이미 14절에서 자신이 온 목적을 다니엘에게 말하였기에 20절의 질문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는 수사적 질문일 것입니다.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는 13절에 연결됩니다. 천상적 존재는 바사 왕국의 군주에 의해 이십일일 동안 길이 막혔다가 미가엘의 도움으로 다니엘에게 올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의 일을 다 알려주면 다시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워야 합니다.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환상을 경험한 바사 왕 고레스 제3년의 시점에서 볼 때 바사는 땅을 지배하는 살아 있는 세력입니다. “내가 나간 후”는 바사 군주와 싸우고 전쟁터를 떠난 후를 가리킬 것입니다. 바사의 멸망이 하나님 백성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사 군주의 뒤를 이어 헬라의 군주가 오는데, 바사 군주와 싸울 때처럼 이스라엘 군주 미가엘만이 그를 도와 헬라의 군주를 대적합니다. 이스라엘의 고난이 바벨론을 넘어 바사와 헬라 시대에도 계속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수호천사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은 14절의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의 또 다른 표현으로, 구체적으로는 11:2-12:4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일어날 일을 모두 하늘의 책에 기록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한 것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변경되거나 탈락하지 않고 반드시 그대로 이뤄집니다. “기록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에 “진리의 글”입니다. 민족들의 운명과 역사의 진행을 기록해놓은 진리의 글은 7:10의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심판하실 때 펴놓은 책들하고는 기능상 구별됩니다.


결론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분임을 강조하며 시작됩니다. 이 구절은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영적 전쟁의 실체를 인식하고 이를 기도로 싸워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셔서 어려움 속에서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중요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그 안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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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0-01)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믿음

다니엘 10장 1-9절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힘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며, 그분의 뜻을 기다리는 인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신실한 분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 첫째 달에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마지막 환상을 봅니다. 다른 환상들과 달리 환상 경험의 외적 환경과 천상적 존재를 만난 다니엘의 반응에 많은 절을 할애합니다. 크게 결심하고 세 이레 동안 금식하는 다니엘에게 한 천상적 존재가 나타나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알려줍니다. 다니엘이 환상을 경험할 때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다니엘만 환상 안으로 들어가 천상적 존재의 음성을 듣습니다.

 

환상 보고의 도입부(1)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고 진리를 찾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도전과 갈등은 우리의 신앙과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성경 묵상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1)

 

도입부는 10-12장에 기술된 계시의 진정성과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큰 전쟁”에 관한 말씀은 다니엘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기록한 참된 계시입니다. 어떤 연유에서 다니엘을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다니엘”로 소개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환관장이 지어준 이름 벨드사살은 이곳을 제외하면 언제나 느부갓네살과 관련해서만 사용됩니다(2:26; 4:8,9,18,19; 5:12). 1:21에 의하면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활동하는데, 여기서는 다니엘이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도 환상을 봅니다. 양자 사이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제삼년의 중요성과 의미 때문에 사용한 것 같습니다. 다니엘서의 구조에 있어 제삼년은 역사의 전환점을 시사해주는 듯합니다. 다니엘서는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지 삼 년이 되는 해” (1:1)로 시작하고, 히브리어 다니엘서 본문을 다시 시작하는 8:1에서도 다니엘은 “벨사살 왕 제삼년”에 환상을 보고, 다니엘서의 마지막 환상은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주어집니다. 세 번 “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다바르’는 원래 의미에 따라 ‘말씀’으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환상을 통해 말씀이 계시 됐는데, 그 내용은 큰 전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앞으로 극심한 환난의 시대가 전개될 것을 암시해줍니다.

 

환상 경험의 준비(2-4)

 

영적인 준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시고, 우리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십니다. 우리는 마음 속의 염려와 슬픔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합니다.

 

2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4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2-4)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3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후, 한 특별한 환상을 보게 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슬픔과 염려로 인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24일째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와의 만남이 예고됩니다.

 

(1) 세 이레의 금욕(2-3)

 

다니엘의 금식이 비교적 자세히 서술됩니다. 그는 세 이레 동안 슬퍼하며 좋은 떡을 먹지 않고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기쁨을 바르지도 않습니다. 세 이레의 금식은 예외적으로 긴 기간입니다(참조, 에 4:16). 현재 문맥에서는 13절의 바사 왕국의 군주에 의해 길이 막힌 이십일 일에 일치합니다.

“좋은 떡”은 아마도 출애굽 사건에 나오는 “고난의 떡”에 대비되는 표현 같습니다. 신명기 16:3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말고 이레 동안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바벨론 시대 이후 첫째 달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달이었습니다. 아마도 다니엘은 조상들이 애굽에서 겪은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 첫째 달에 좋은 떡을 먹지 않고 애도했던 것 같습니다. 9장에서는 금식하고 애도하면서 멸망에 떨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고백했는데, 여기서는 그 배경이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12절의 “네가 깨달으려 하여”와 11장의 기도 응답으로 주어진 메시지에 따르면 다니엘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금식과 애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2) 환상을 경험한 때와 장소(4)

 

다니엘은 “첫째 달 이십사일”에 힛데겔, 곧 티그리스 강가에서 환상을 봅니다. 날짜의 정확한 기록은 계시의 확실성을 보여주지만, 계시가 주어진 시점을 거듭 연월일(年月日)로 기록하는 에스겔의 경우와 달리 다니엘서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만 나오는데, 여기에서만 달과 날까지 제시됩니다. 세 이레의 금식이 끝나고 환상을 받는 “첫째 달 이십사일”을 특별히 알려주어야 할 어떤 필요가 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이스라엘의 축제 전통에 따르면 첫째 달인 니산월(3/4월)십사 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고 십오 일부터 이레동안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 축제를 즐깁니다(참조. 레23:5-6; 신 16:3). 이십사 일까지 세 이레를 금식했기에 다니엘이 유월절과 무교절의 기간에도 금식했음을, 곧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절기 규정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자유를 빼앗기고 다시 이방의 종이 되었기에 다니엘에게 유월절은 더 이상 축제의 날이 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이방 땅에서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고 살기에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애도하고 금식하며 왕정 시대처럼 유월절과 무교점을 해방의 절기로 지킬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천사의 모습에 관한 묘사(5-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크고 위대한 존재인지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존재하며, 우리는 이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묵상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의 신앙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5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5-6)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 중에 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 사람은 옷이 세마포로 되어 있고, 금으로 된 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번개처럼 빛나고, 눈은 타오르는 불 같으며, 목소리는 많은 물소리와 같습니다. 이 모습은 매우 경외감을 주며, 다니엘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받습니다.

 

(1) 입은 옷의 묘사(5)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우바스 순금 띠를 두른 한 사람을 봅니다. 세마포 옷은 원래 직무 수행 중인 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정결함과 거룩함을 상징하지만(참조, 레 6:10; 16:4; 겔 44:17), 여기서는 다니엘이 보고 있는 사람이 초자연적 존재임을 시사해줍니다(참조, 겔 9:2,3,11; 10:2, 6-7; 막 16:5; 계 15:6). 우바스 순금은 우바스에서 수입한 금을 가리킵니다(참조, 렘 10:9). 일부 고대 역본은 솔로몬이 금을 수입했던 오빌(왕상 9:28; 10:11)로 번역했지만, 우바스의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2) 얼굴과 신체의 묘사(6)

 

얼굴과 신체를 묘사하는 데 사용한 비유적 표현은 에스겔이 그 강가에서 본 네 생물의 묘사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합니다. ‘황옥 같은 몸’은 ‘황옥 같이 보이는 바퀴’에서(겔 1:6), ‘번갯불 같은 얼굴과 횃불 같은 눈’은 ‘횃불 모양의 생물과 그 가운데의 번개’에서(겔 1:13), ‘빛난 놋과 같은 팔과 발’은 ‘광낸 구리 같이 빛나는 생물의 다리’에서 (겔 1:7), ‘무리의 소리와 같은 말소리’는 ‘군대의 소리 같은 생물의 날개 소리’ (겔 1:24)에서 상응하는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본 사람의 묘사가 에스겔이 그 강가에서 본 네 생물의 묘사에 매우 가까움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서 본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그 서술된 모습이 요한계시록 1:13-16에 묘사된 인자와 유사함에 근거하여 10장의 신적 존재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해왔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인자 같은 이의 모습을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다니엘의 묘사와 일부 유사성이 있지만, 거의 모든 주석자들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이 에스겔에 의존했다는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전에 가브리엘을 만났을(8:17-18) 때보다 더욱 충격을 받은 것처럼 다니엘이 격하게 반응하기에(10:8-9) 때로는 더 높은 지위의 천상적 존재를 추측하기도 하지만, 이는 환상 경험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이해다. 본문에 따르면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본 “한 사람”은 가브리엘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거나 해석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의 도움을 받습니다(10:13,21). 또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9:23) 하고 말했듯이 “한 사람”도 다니엘을 “큰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부릅니다(10:11). 이런 유사성을 고려해 판단하면, “한 사람”은 가브리엘 또는 그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하는 천상적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반응(7-9)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주변의 이해와 지지가 부족하더라도 개인의 믿음과 경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그분의 거룩함과 위엄을 인식하고 경외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 생활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7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8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9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7-9)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을 본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지 못하고 두려워 도망칩니다. 다니엘은 그 환상으로 인해 매우 두렵고 힘이 빠져 쓰러지게 됩니다. 그 후, 그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앞에 엎드리게 되며, 깊은 감정과 경외감을 느낍니다.

 

(1) 다니엘만 본 환상(7-8a)

 

다니엘은 환상을 자기만 “홀로” 보았음을 반복적으로 언급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었지만 환상을 본 사람은 다니엘뿐이었습니다. 환상 안에 들어온 자만 신적 사건을 경험하고, 환상 밖에 있는 자는 이상한 현상만 목도할 뿐입니다. 마지막 때의 계시는 다니엘에게만 주어졌고, 10-12장에 기술된 환상의 진정성과 확실성은 환상을 직접 경험한 다니엘에 의해서만 보장됩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신비스럽고도 두려움을 야기한 어떤 특별한 사건을 경험했다는 사실만 확인해줄 수 있습니다.

 

(2) 혼수상태에 빠진 다니엘(8b-9)

 

초자연적 영역에 속한 신적 존재와의 갑작스런 만남에 다니엘은 사색이 되어 탈진 상태에 빠집니다.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다니엘은 얼굴 땅에 대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경이로우면서도 압도적인 신적 사건(계시)에 완전히 사로잡힌 피조물이 경험하는 전율의 혼수상태입니다(참조, 창 15:12; 삼상 28:20; 겔 1:28).


기도와 금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응답을 기다립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할 때 우리의 두려움이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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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9-02)

 


환상을 설명하는 가브리엘

다니엘 9장 20-27절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간절하게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또한, 기도는 힘이 있어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 다니엘은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자이기에 그가 기도를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에게 명령을 내리십니다.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응답이 가브리엘을 통해 전달됩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통해 알기 원했던 예레미야의 칠십년이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와 한 이레의 세 시기로 나뉘는 일흔 이레로 해석됩니다. 칠십이나 칠십의 일곱 배수인 일흔 이레 모두 완전수에 해당합니다.

 

다니엘에게 오는 가브리엘(20-21)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의 기본으로, 우리의 마음과 필요를 그분께 드러내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수단입니다.

 

20○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20-21)

 

본문에서 다니엘은 기도하는 중에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기도가 도달했음을 알리고,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다니엘의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응답을 강조합니다.

 

(1) 가브리엘의 등장 배경 (20-21a)

 

20절은 4a절과 함께 다니엘이 드린 기도(4b-19)의 바깥 틀의 역할을 합니다. 4절에 사용된 세 개의 동사 가운데 ‘기도하다’와 ‘자복하다’의 두 동사가 여기에도 나오고, 세 번째 동사 ‘이르다’는 같은 의미의 ‘말하다’로 바뀌어 나옵니다. ‘자복하다’의 목적어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는 5-14절의 요약이고, ‘간구하다’에 연결된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는 15-19절의 요약입니다. 4a절과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동사의 시제입니다. 4절은 세 동사를 ‘와우 미완료’로 사용하면서 다니엘이 기도하고 간구한 사실(일어난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데, 여기서는 네 동사가 모두 현재분사로서 ‘말하고 기도하고 자복하고 간구하는 중에’(동시성)가 강조됩니다. 다니엘이 아직 기도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벌써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가브리엘에 의해 다니엘에게 계시되는 역사의 진행 과정이 그의 기도와 상관없이 결정된 하나님의 계획임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의 확정된 의지에 속하기에 지체되거나 변경되지 않고 반드시 이뤄집니다.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은 “황폐한 성소”(17)가 재건되고 시온 산이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 되길 바라는 다니엘의 소망이 담긴 표현입니다.

 

(2) 가브리엘의 도착(21b)

 

가브리엘의 도착 시간으로 제시된 “저녁 제사를 드릴 때”는 매일 드리는 제사(8:12,13)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전에 본 환상이 7장 또는 8장의 환상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가브리엘의 고지(22-27)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그의 뜻을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며,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정해진 시간 안에 이루시므로, 우리는 그의 신실함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22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24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22-27)

 

본문에서 다니엘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합니다. 70주 동안의 기간이 정해져 있으며, 그 중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마지막에는 황폐한 것이 임하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임을 알립니다.

 

(1) 가브리엘이 온 목적(22-23)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죄를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9:1-21). 이에 하나님은 가브리엘을 보내어 다니엘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칠십 년의 해석에 앞서 가브리엘은 먼저 자신이 다니엘에게 온 목적이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곰곰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주체는 다니엘이지만(2), 깨달음은 신적 계시를 통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속하는 예언은 계시의 빛에 의해서만 참된 이해가 가능합니다. 예언 해석이 예언과 한 차원에 놓이면서 해석에도 동등한 신적 권위가 주어집니다. 다시금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음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특별히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기에 그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말씀이 내렸습니다. “명령”과 “일”을 가리키는 단어 ‘다바르’는 둘 다 ‘말씀’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은 24-27절의 계시를 가리킵니다.

 

(2) 예레미야의 칠십 년 해석(24-27)

 

가브리엘이 예레미야가 선포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2)의 의미를 풀어줍니다. 한 해가 ‘주간(週間)의 해’로 계산돼 칠십 년이 일흔이레, 곧 사백구십 년으로 확장됩니다. 여섯 동사를 사용해 일흔 이레의 마지막에 성취될 일들을 간략히 기술합니다. 처음 세 동사는 부정적이고, 뒤의 세 동사는 긍정적입니다. 허물과 죄와 죄악은 동의어로, 죄악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옵니다. ‘영원한 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움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7,14,16). 이스라엘에 행하신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8:12-14과 관련해서는 성전의 회복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환상과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가리키지만, 폭넓게는 종말에 관한 모든 예언을 포함합니다. 환상과 예언이 그대로 실현돼 진실이었음이 확증됩니다. “지극히 거룩한 이”는 ‘가장 거룩한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원래는 지성소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성소를 가리킵니다. 성소의 기름부음은 성소의 봉헌을 의미합니다. 안티오코스 4세에 의해 더러워진 성소가 유다 저항군의 지도자 마카비에 의해 회복돼 다시 여호와께 봉헌됩니다.

25절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는 (이것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지도자가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가 흐르리라. 또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다시 광장과 해자를 갖춰 재건되겠지만, 어려운 때가 되리라.’ 두 주기의 기간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는 일곱 이레로,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입니다. 사람의 말(영)일 경우에는 유배민의 귀환과 성전의 재건을 허락한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스 1:1-4)을, 하나님의 말씀일 경우에는 예레미야의 칠십 년 예언 또는 23절의 말씀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문맥에서는 세 번째 가능성, 곧 다리오 왕 원년에 가브리엘을 통해 다니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입니다. “기름 부음” 의식은 왕과 제사장에게 적용되기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아마도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재건을 주도한 대제사장 여호수아일 수 있습니다(슥 4:14). 일곱 이레 다음에 올 시대에는 예순두 이레의 기간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 기간은 시작과 마지막에 초점을 맞추는데, 두 번째 기간은 전체를 뭉뚱그려 요약적으로 기술합니다. 재건된 예루살렘에 많은 주민이 정착해 살면서 광장도 마련하고 적의 침입으로부터성을 보호할 수 있게 성 주변에 해자도 세웁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 사회적·경제적으로 활발하게 살아가지만, 평안이 보이지 않는 “곤란한” 시대입니다.

26-27절은 악이 기승을 부리고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마지막 한 이레에 관한 언급입니다. 예순두 이레가 지난 후에 잘려나갈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주전 170년 대제사장 메넬라오스의 술수에 빠져 살해당한 오니아스 3세를 가리킵니다(참조. 11:22; 마카비하 4:23-28).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한 왕(지도자)의 백성”은 대제사장 야손이나 메넬라오스를 지도자로 하는 유대의 헬라주의자들보다는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에 주둔시켜놓은 셀류코스 왕조의 병사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 주둔한 안티오코스의 용병들이 예루살렘과 성소를 허물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상주하는 이방인들로 인해 성읍과 성소가 더러워졌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 그곳에 주둔한 이방 병사들의 통제를 받고, 예루살렘 성소의 제단 위에는 이 이방인들이 자기 신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가증한 것”이 세워집니다. 여호와의 성소가 올림포스의 신 제우스에게 돌려집니다. “그의 마지막”은 안티오코스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자주 전쟁의 표상으로 사용되는(참조. 11:10,22,26,40) 홍수는 안티오코스가 전쟁의 패배로 죽게 될 것을 시사합니다. 죄악이 끝나고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마지막 때는 전쟁의 황폐함이 지배하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12:1)의 때입니다. 마지막 한 이레 동안 안티오코스가 저지를 악행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안티오코스가 동맹(“언약”)을 맺을 “많은 사람들”은 유대의 삶과 종교를 헬라화하려는 유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안티오코스는 헬라주의적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유대의 지배권을 강화합니다. 심지어는 “그 이레의 절반”이 지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킵니다. “그 이레의 절반”은 7:25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상응하는 표현입니다.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는 문자적으로는 ‘가증한 것의 날개를 타고 황폐하게 하는 자가 오리라’ 정도로 옮길 수 있습니다. ‘황폐하게 하는 자’는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이고, “가증한 것”은 여호와의 제단 위에 세운 이교의 제단입니다(참조. 마카비상 1:54). 예루살렘 성소가 더러워지는 기간은 황폐하게 하는 자가 예정된 멸망에 떨어지기까지입니다. 곧 한 이레의 남은 반 동안 제사가 중단되다가, 가증한 것을 세워 성소를 황폐하게 만든 “황폐하게 하는 자”가 멸망하고 성소가 다시 회복됩니다. 역사적으로, 주전 167년에 중단된 예루살렘 성소의 제사가 대략 3년이 지나 주전 164년에 재개됩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진정한 회개와 간구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십니다. 70주라는 기간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상징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사역을 예고하며, 우리에게 희망과 믿음을 줍니다. 결국,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고, 그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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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9-01)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 9장 1-19절


 

개인과 공동체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신자들은 기도를 통해 신앙 생활의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다니엘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신하여 여호와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먼저 예루살렘을 황무지로 만든 조상들의 불순종을 철저하게 고백하고, 이들의 죄를 징벌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합니다. 심판이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사건이기에 구원의 동기를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이나 공동체의 회개에서 찾지 않고, 출애굽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긍휼에서 기대합니다.

 

도입부: 예레미야의 칠십 년 예언을 숙고하는 다니엘(1-2)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그 뜻을 이해하려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신앙 생활의 기초가 되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1-2)

 

본문에서 다니엘은 바사 왕 고레스를 통치하던 첫 해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합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동안 지속될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로 인해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하기로 결심합니다.

 

(1) 다리오 원년(1)

 

바벨론의 왕권을 이어받은(참조. 5:31; 사 13:17; 렘 51:28) 다리오 왕 원년에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칠십년 예언(참조, 렘 25:11-12; 29:10)을 다시 생각해본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2) 예레미야의 칠십 년(2)

 

메대 사람 다리오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으로 예레미야의 칠십 년이 성취된 것 같은데, 유다의 운명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완전한 해방과 회복은 여전히 요원했습니다. 더 나아가 8장의 “마지막 때”를 배경으로 읽자면 바벨론의 멸망을 새로운 구원 시대의 출발로 반기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환상에 따르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성소가 먼 미래에 다시 또 다른 세상 권력에 의해 유린됩니다. 바벨론의 멸망이 유다의 온전한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과 환상 경험에 직면해서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바벨론의 멸망으로 이미 성취된 예언인지 그렇지 않으면 아직 그 완전한 성취를 기다려야 할 예언인지를 알고자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다니엘(3-4a)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진정한 겸손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기도할 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3○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3-4a)

 

본문에서 다니엘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으로 부르며, 언약을 지키고 사랑하시는 분으로 찬양합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1) 참회의 외적 모습(3)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는 행위는 애도나 참회와 관련한 의식으로(참조. 스 9:3-4;느 9:1;에 4:1-4;욘 3:6), 다니엘이 단순히 칠십 년의 역사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님을 시사해줍니다. 10:2-3의 금식 기도와 비교해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뒤따르는 죄의 고백과 긍휼의 간구도 그의 기도가 더 심각한 상황에서 나왔음을 보여줍니다.

 

(2) 참회의 기도(4a)

 

다니엘은 여호와로 칠십 년의 예언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분의 용서와 긍휼을 구하기 위해 참회자의 모습으로 언약의 주께로 나아간 것 같습니다(참조. 사 62:1,6-7). 다니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죄를 고백하며 기도를 드립니다(5-19).

 

기도의 내용(4b-19)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용서와 자비를 베푸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이는 성도들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또한 기도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과의 소통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회개와 기도를 통해 더욱 깊은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4b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4b-19)

 

본문에서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을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용서를 간구하며, 예루살렘과 성전의 회복을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죄의 고백(4b-11a)

 

먼저 다니엘의 하나님께서 이중적으로 소개됩니다.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참조. 신 6:22; 7:21; 삼하 7:23; 느 1:5; 9:32)은 특히 출애굽 가운데 계시된 하나님의 능력과 관련한 표현입니다. 애굽에서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실 때 바로에게 보여주셨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신 6:22)는 지금도 다시 가능합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참조, 신 7:9,12)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에 뿌리를 둔 진술인데, 다니엘은 이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과 인애를 지키시는 분이기에 지금이라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분에 의해 언약관계가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인자(헤세드)는 그분 백성을 위해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멸망을 초래한 죄를 유배의 끝 무렵에 회고적으로 고백하기에 불순종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불순종을 범한 사실 자체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표현이나 단어를 바꿔가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을 단조로울 정도로 거듭 자백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법도와 규례를 떠나고(5b), 그분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갔고(11), 그분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10). ‘우리’는 그분 목소리(10,11)와 그분의 종 예언자들의 목소리(6)를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범죄하고 패역하며 행악하고 반역하였고(5), 그분께 배신을 저지르고(7), 그분께 범죄하고(8), 그분께 패역하였습니다(9). 이스라엘 전체가 죄에 사로잡혔음도 거듭 강조됩니다. ‘우리’는 자신들을 포함시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6),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7),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8), “온 이스라엘”(11)이 모두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고백합니다. 죄로 인해 멸망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얼굴에 가득한 수치(7,8)는 역설적으로 여호와의 의로움에 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는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수치가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의 운명이 됩니다.

 

(2)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11b-14)

 

유다에 파국적 재앙을 초래한 죄를 고백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유다의 멸망과 유배는 죄악을 떠나 진리 깨닫기를 거절하고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공의로운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이 당신 명령을 준행하지 않을 경우 저주가 임할 것을 선포하셨는데(참조. 레 26:27-45; 신 28:15-68)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12절의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은 유다를 다스렸던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13절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는 ‘여호와의 호의를 간청하다’를 의미하고, 여기서는 회개가 그 방법이 됩니다. 14절의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를 잘 보여줍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다가 죄가 한계를 넘어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하셨을 때 징벌하십니다(참조. 출 32:34; 사 18:4-6). 그분은 오래 참으시지만, 어느 하나 간과하지는 않으십니다.

 

(3) 긍휼의 간구(15-19)

 

회고적 고백에서 여호와의 현재적 개입으로 옮겨가면서 표현 방식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죄를 고백할 때는 7절에서 한 번 호격이 사용되는데, 도움을 호소하는 단락에서는 매 절이 호격으로 시작하면서 기도자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그대로 표출됩니다. 또 하나님께 간구할 때 이스라엘은 언제나 “주의 백성”으로(15,16,19), 예루살렘은 “주의 성”(16,19) 또는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18)으로, 예루살렘 성소는 “주의 거룩한 산” (16절) 또는 “주의 황폐한 성소”(17)로 불립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여호와와의 사적이고도 특별한 관계가 강조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임을, 예루살렘이 그분의 도성임을, 성소가 그분의 성소임을 거듭 언급하면서 소유주 되시는 여호와의 긍정적이고도 즉각적인 개입을 호소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18,19)은 소유 관계를 보여주는 표현으로, 예루살렘 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속한 그분의 성과 백성임을 보여줍니다. 개입의 동기는 철저하게 여호와에게서 찾습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방 민족들에게 수치를 당하기에 여호와의 진노가 떠나고 그분의 “얼굴 빛”이 황폐한 성소에 비추기 전에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얼굴 빛”은 분노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구원과 호의를 베풀기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여호와의 따뜻한 모습을 함축합니다. 죄로 인한 징벌로 멸망했기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지만, 그분의 크신 긍휼에 의존해서 용서를 간구합니다. 구원을 부탁할 만한 공의로운 업적으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베풀어주셨던 그분의 공의로운 행위들에 근거하여 도움을 간구합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직 “주를 위하여”(17), “주 자신을 위하여”(19) 그분께서 개입하실 때만 가능합니다(참조. 사 48:11; 렘 14:7). 이런 배경에서 볼 때 다니엘의 간구가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면서(15)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출애굽이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출 2:23-25) 하나님의 일방적 구원 행위라면,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다시 다니엘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 자신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절망적 운명에 개입하시는 것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회개와 간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와 민족의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분의 자비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회개와 간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결국,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끌어내는 첫걸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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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8-02)


다니엘과 가브리엘의 만남

다니엘 8장 15-27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분의 뜻은 각 사건 속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나 혼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줍니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 환상의 묘사에 상응해서 그 해석도 작은 뿔에 집중됩니다. 여러 시대 후에 올 작은 뿔의 등장이 다니엘이 본 환상의 핵심이기에 그때를 위하여 환상은 봉인돼야 합니다. 주전 2세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년)의 등장과 그의 일시적 성공, 그에 의한 경건한 유대인들의 박해와 그의 멸망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땅의 시간표에 따른 것입니다.

 

해석자 가브리엘의 출현(15-18)

우리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영적 이해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계획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경외심은 우리에게 신앙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역사하시며, 그분의 섭리를 신뢰해야 합니다.

 

15○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16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17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18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15-1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을 이해하기 위해 천사 가브리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상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하며,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의 역할이 강조됩니다.

 

(1) 사람 모양 같은 것(15)

 

거룩한 이들의 대화를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다니엘이 자기 앞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있음을 보고, 올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사람 모양 같은 것”은 문자적으로는 ‘용사의 모습처럼 (보이는 이)’입니다. 젊은 용사처럼 보이는 이가 13절에 나오는 두 거룩한 이들 가운데 하나인지는 불분명합니다.

 

(2) 가브리엘의 등장(16)

 

사람의 목소리에 따르면 사람 모양 같은 것의 이름은 ‘가브리엘’입니다. 신구약성경에 가브리엘은 해석자 또는 계시의 전달자로 등장합니다(참조. 8:16; 9:21; 눅 1:19,26). 가브리엘에게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고 명령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모호합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장소는 가브리엘과 같은 천상적 존재임을 시사합니다(참조. 12:6-7).

 

(3) 다니엘의 반응(17)

 

사람의 목소리는 다니엘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임을 보여줍니다. 10:5에서 다니엘은 천상적 존재를 “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다니엘의 반응이 매우 극적입니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가브리엘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다니엘이 신적 경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압도당합니다.

 

(4) 다니엘을 일으켜 세우는 가브리엘(18)

 

혼수상태에 빠진 다니엘이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가브리엘이 손을 대어 일으켜 세웁니다(참조. 10:10-11,15-19).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인자’라고 부르며, 그가 본 환상이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한 때 끝”은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고 성전이 더러워지는 마지막 단계의 기간을 가리킵니다(참조. 12:4).

 

환상의 해석과 봉인(19-2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대해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와 권력의 흐름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며,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인도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확신을 줍니다.

 

19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20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21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22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에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의 권세만 못하리라 23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24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25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26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19-26)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환상을 통해 말세의 사건과 그에 대한 해석을 보여줍니다. 이 환상에서는 메디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 제국에 대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한 큰 뿔을 가진 양과 염소의 싸움이 상징적으로 설명됩니다. 마지막으로, 환상의 해석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의 통치에 대한 경고가 주어집니다.

 

(1) 마지막 때의 환상(19)

 

19절은 내용상 17b절의 반복입니다. 다시금 환상이 진노의 마지막 때에 속한 것임이 강조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통치자를 진노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이 이방 통치자들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시대는 여호와의 진노 아래 있는 때가 됩니다. 포로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특히 경건한 유대인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 안티오코스의 통치는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려야 하는 그분의 진노 기간입니다. 해석은 20절부터 시작됩니다. 숫양과 숫염소의 행동에 관해서는 생략하고 이들의 정체만 명시적으로 해석해줍니다.

 

(2) 메대와 바사 왕들(20)

 

두 뿔을 가진 숫양(3-4)은 메대와 바사의 왕들이고, 숫염소(5-7)는 헬라 왕으로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헬라의 첫 번째 왕입니다. 큰 뿔이 꺾이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네 뿔은 네 나라로, 큰 뿔의 권세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분열된 네 나라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단지 그 세력이 이전보다 많이 약화될 것만 말합니다. 알렉산더 사후에 그의 제국은 후계자들에 의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드라게와 소아시아, 바벨론과 그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셀류코스 왕조), 그리고 이집트(프톨레미 왕조) 등 네나라로 나뉩니다.

 

(3) 헬라의 첫 번째 왕(21)

 

메대-바사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를 거쳐 네 후계자의 나라로 이어지는 이 100년 이상의 기간이 뼈대만 간략하게 언급됩니다. 다니엘의 환상(9-12)에 일치하여 해석도 작은 뿔에 집중됩니다. 작은 뿔은 분명 셀류코스 왕조에서 나온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주전 175-164년)를 가리킬 것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세계사적으로는 대단한 인물이 아니지만, 예루살렘의 입장에서는 잊을 수 없는 왕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경건한 자들의 눈에 그의 통치는 재앙이었습니다.

 

(4) 네 나라(22)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등장합니다.

 

(5) 마지막 때의 한 왕(23-25)

 

23절의 악인들로 가득한 “이 네 나라 마지막 때”, 17절의 “정한 때 끝”, 19절의 ‘진노의 마지막 때’와 “정한 때 끝”, 26절의 “여러 날 후”는 동의적 표현으로 모두 안티오코스 시대를 가리킵니다. 그의 시대는 반역자들이 가득한 시대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자들로 세상이 가득 찼을 때가 악이 일시적 승리를 누리다가 멸망하는 마지막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내버려 두시다가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왕은 ‘그 얼굴이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한’ 자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합니다. 주저 없이 폭력을 사용하고 능수능란하게 계략을 꾸밉니다. 그런데 그의 강성함은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땅의 역사를 홀로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그는 제한된 권력을 휘두르며 승리를 구가합니다. 끔찍할 만큼 파괴를 자행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망시킵니다. “강한 자들”은 뿌리까지 뽑힌 세 뿔(7:8,20,24)을 가리키는 것 같고, “거룩한 백성”(문자적으로 ‘거룩한 이들의 백성’)은 유다 백성뿐만 아니라 이들을 보호하는 천상적 존재까지 모두 포함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왕위 계승의 우선권을 갖고 있던 조카들을 제거하고 보좌에 오른 안티오코스는 헬레니즘을 강요하면서 많은 유대 사람을 배교의 길로 내몹니다.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는 11:21-35에서,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는 11:36-39에서 구체적으로 다시 언급됩니다.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는 안티오코스가 파견한 징세관이 예루살렘 주민을 좋은 말로 진정시킨 후 기습공격을 하여 성을 점령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 사건(참조. 마카비상 1:29-30)을 역사적 배경으로 합니다. 속임수로 성공한 안티오코스는 교만하여 여호와마저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기 자리를 높이려던 바벨론 왕이 스올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사 14:12-15), 안티오코스도 만왕의 왕을 대적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는 안티오코스가 만왕의 왕에 의해 징벌을 받아 죽게 될 것을 시사합니다. “주야에 대한 환상”은 특히 매일 드리는 제사의 중단에 관한 계시를 가리킵니다. 11-14절에 의하면, 작은 뿔의 악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소가 더러워져서 이천삼백 주야 동안 매일 드리는 제사가 중단되고, 그 후에야 성소가 다시 정결하게 됩니다.

 

(6) 봉인된 환상(26)

 

마지막 때에 일정 기간 동안 작은 뿔이 승리하고 성도가 박해를 당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그분의 계획에 속하는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바뀌거나 취소될 수 없습니다. 이 환상은 “여러 날 후의 일”이기에 안티오코스 4세가 통치할 때까지 봉인되어야 합니다(참조. 12:4,9).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선포되는 예언과 달리 다니엘의 환상은 후대의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문자로 기록되어 은밀하게 보관됩니다. “여러 날”은 문자적으로는 ‘많은 날들’로, 먼 미래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참조. 겔 12:27). 여기서는 “정한 때 끝” 또는 “마지막 때”와 내용상 동일합니다.

 

다니엘의 반응(27)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에서는 때때로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이 관계를 통해 진정한 이해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27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27)

 

7장의 경우처럼 환상을 경험한 다니엘의 반응으로 끝을 맺습니다. 환상과 그 해석이 다니엘을 “여러 날”(문자적으로 ‘날들’) 동안 병들어 누워 있게 만듭니다. 성소가 더러워지고 제사가 중단되기에 네 짐승의 환상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는 다니엘이 벨사살의 신하로 활동 중 임을 전제합니다. “놀랐고”의 동사 ‘샤맘’은 원래 ‘황폐하게 하다’를 의미합니다. 건물이 무너져 폐허가 되듯이 다니엘이 환상으로 인해 거의 혼절합니다. 이백년 이후에나 있을 사건을 보았기에 해석을 다 듣고도 다니엘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환상과 그 해석의 기록을 봉인해서 잘 간수해두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에서는 때때로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이 관계를 통해 진정한 이해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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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08-01)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의 우리의 역할

다니엘 8장 1-14절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며, 이는 성도들에게 신뢰와 안정을 줍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동안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영적 성장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악의 세력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승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며 영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 8장의 환상이 내다보는 전체 기간은 주전 6세기 중반에서 주전 2세기 초중반 사이의 대략 사백 년에 걸친 긴 기간이지만, 관심은 그 마지막 시기에 집중됩니다. 역사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숫양의 메대-바사(3-4)와 숫염소의 그리스(5-7)는 배경으로 언급되고 네 뿔(8) 가운데 하나에서 나오는 작은 뿔(9-12)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환상 다음에 나오는 천사들의 대화(13-14)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작은 뿔의 파괴적 행태만 주제로 삼습니다.

 

도입부: 환상을 경험한 때와 장소(1-2)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도 자신의 뜻과 계획을 전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소통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항상 활동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신실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으로 준비하고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환상 후 벨사살 왕 제삼년에 다시 한 환상이 나타나니라 2내가 환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 지방 수산 성에 있었고 내가 환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이니라(1-2)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바벨론 왕국의 제3년, 즉 벨사살 왕의 통치 중에 환상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수산 성에서 환상을 경험하며, 엘람 지방의 강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목격합니다. 이 장면은 다니엘의 예언적 사명이 시작되는 배경을 제공합니다.

 

(1) 환상을 경험한 시점(1)

 

다니엘이 벨사살 왕 제 삼년에 다시 환상을 봅니다. “처음에 나타난 환상”은 벨사살 왕 원년에 본 7장의 환상을 가리킵니다. 2년이 지난 후에 본 환상에서는 처음 두 나라는 탈락하고 그 뒤를 잇는 바사와 그리스만 등장합니다.

 

(2) 환상을 경험한 장소(2)

 

다니엘은 엘람 지방 수산 성의 을래 강가에서 환상을 봅니다. 에스겔처럼(참조. 겔 8:1-3;11:24:40:2) 환상 중에 바벨론에서 엘람의 수산으로 옮겨진 듯합니다. 환상의 무대 “엘람 지방 수산”은 환상의 내용이 바사 제국과 관련됐음을 시사합니다. 을래는 그리스·로마 자료에 올레우스(Eulaeus)로 알려진 수사 근처를 흐르는 강 또는 인공 수로들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수산은 엘람 왕국의 수도로, 구약성경에는 바사의 도성으로 나옵니다.

 

두 뿔 가진 숫양(3-4)

모든 권력과 세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세력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3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 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4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으므로 그것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졌더라(3-4)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환상 중에 두 숫양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크고 강력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는 숫양이 서쪽, 북쪽, 남쪽으로 나아가며, 그 앞에 어떤 것도 대적할 수 없음을 목격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 속에서 강력한 제국의 부상을 나타냅니다.

 

(1) 더 긴 나중에 난 뿔(3)

 

다니엘은 두 뿔 가진 숫양이 강가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숫양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숫양의 큰 두 뿔과 그의 눈부신 활동에 집중됩니다. 숫양은 긴 두 뿔을 갖고 있는데, 나중 나온 뿔이 더 길었습니다. 강력한 두 뿔을 가진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들이받지만, 그 숫양을 당해낼 짐승이 없었습니다.

 

(2) 원하는 대로 행하는 숫양(4)

 

숫양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면서 더욱 강해졌습니다.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와 바사가 결합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음을 전제하는데, 메대와 바사를 두 나라로 간주하는 7장의 이해와는 구별됩니다.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는 메대와 바사의 역사를 반영합니다. 주전 7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반까지 그 세력을 크게 떨치던 메대는 바사 왕고레스에 의해 주전 550년에 점령당했습니다. 메대를 무력으로 통합시킨 바사는 거칠 것 없이 사방으로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바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큰 뿔 가진 숫염소(5-8)

하나님께서는 세력의 부상과 몰락을 주관하십니다.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모든 것을 이끌어갈 것입니다.

 

5○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6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 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7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8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5-8)

 

본문에서는 다니엘이 두 마리 숫양과 하나의 수컷 염소를 보는 환상을 설명합니다. 수컷 염소는 강력하게 성장해 숫양을 이기고, 큰 뿔이 부러진 후 네 개의 작은 뿔이 나타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세계 강국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냅니다.

 

(1) 서쪽에서 오는 숫염소(5)

 

두 번째 짐승은 숫염소입니다. 숫양에 비하여 숫염소의 묘사는 훨씬 역동적이고 공격적입니다.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 달려오는데, 너무 빨라서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는 방향 “서쪽에서부터”는 숫염소가 특정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2) 숫양을 짓밟아버리는 숫염소(6-7)

 

두 눈 사이에 “현저한 뿔”이 있는 숫염소가 무서운 기세로 숫양을 들이받아 그 두 뿔을 꺾어버리고, 땅바닥에 쓰러진 숫양을 짓밟아버립니다. 숫양은 숫염소의 공격에 대항하지 못하고 희생당합니다. 메대-바사를 상징하는 숫양을 짓밟는 숫염소는 그리스이고, “두 눈 사이의 큰 뿔”은 알렉산더(356-323년) 대왕입니다(20-21). 주전 336년 마케도니아 왕이 된 알렉산더는 334년 봄에 원정을 떠나 331년 봄에 티그리스 강 상류에 있는 가우가메라(Gaugamela)에서 다리오 3세의 대군을 괴멸시키고 바사를 멸망시켰습니다. 이백 년 이상 근동의 패자로 군림하던 바사가 새로운 군사전략으로 무장한 신흥강국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숫양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지다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더 강한 숫염소로 인해 종말을 맞듯이, 숫염소의 현저한 뿔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3) 큰 뿔을 대체하는 네 뿔(8)

 

힘이 더욱 커져 정점에 도달했을 때 그 큰 뿔이 예기치 않게 꺾이고, 그 자리에 네 개의 뿔이 하늘 사방으로 납니다. 바사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그때까지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지역으로 원정을 떠났습니다. 북쪽으로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약사르테스까지, 동쪽으로는 펀잡 지방까지, 남쪽으로는 인도양까지 가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만, 그의 통치는 단명(短命)으로 끝났습니다. 알렉산더는 주전 323년 서른셋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죽었기에 대제국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많은 전쟁 끝에 네 명의 후계자들(diadochoi)이 분할 통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대략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드라게(발칸반도 동부)와 소아시아, 바벨론과 그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왕국으로 나뉩니다.

 

한 작은 뿔(9-12)

세상에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계속될 것입니다. 교만은 결국 타락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의 메시지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반역을 결코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반드시 정의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심판과 정의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9○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0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짓밟고 11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9-12)

 

본문에서는 한 작은 뿔이 등장하여 강력하게 성장하고, 하늘의 군대와 성소를 대적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 작은 뿔은 진리와 제사를 멸하고 성소를 더럽히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고통을 초래합니다. 이 구절은 악의 세력이 하나님의 계획에 도전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주권이 승리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1) 땅에서 커지는 작은 뿔(9)

 

다니엘의 시선이 네 뿔 가운데 어느 한 뿔에서 나오는 “작은 뿔 하나”에 쏠립니다. 작은 뿔이 남쪽과 동쪽과 영화로운 땅을 향해 심히 커집니다. 작은 뿔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참조. 11:21-45). 영화로운 땅은 예루살렘 또는 유다를 가리킵니다. 정치적·평면적 차원에서 기술한 뿔의 활동이 이번에는 신학적·공간적 시각에서 조명됩니다. 신화적 언어와 표상을 사용해 그의 위세와 교만을 기술합니다(참조. 사 14:12-15).

 

(2) 하늘의 군대와 싸우는 작은 뿔(10)

 

뿔의 위세가 하늘 군대에까지 미쳐 그 군대와 별들 가운데 일부를 땅에 떨어뜨리고 짓밟습니다. ‘하늘 군대와 별들’은 동격으로, 이스라엘 편에서 싸우는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묵시문학적 사고에 따르면 땅에서 유다 백성이 뿔에 의해 박해당하는 것은 하늘에서 유다를 보호하는 천상적 존재들이 뿔에게 속한 다른 천상적 존재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일부 하늘 군대와 별들이 땅에 떨어진 것은 일부 경건한 유다 사람들이 순교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뿔은 더 나아가 군대의 주재에게도 오만하게 행동합니다. “군대의 주재”는 군지도자를 지칭하는데(참조. 창 21:22; 삼상 12:9), 여기서는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킵니다.

 

(3)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는 작은 뿔(11-12)

 

뿔이 직접 군대의 주재를 공격하는 것은 아니고 예루살렘 성소를 공격함으로써 여호와께 대적합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고 성소를 뒤엎습니다. 안티오코스가 제사를 폐지한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소의 번제단 위에 이방의 제단이 세워졌기에(마카비상 1:59) 율법에 따른 제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번제단이 부정해져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것은 성전이 허물어진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원문이 불분명한 12절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사악함 때문에 매일 드리는 제사와 함께 군대가 (그것에게 넘겨진다.’ 일일 번제가 불가능해지고, 일부 하늘의 군대와 율법에 신실한 자들이 희생을 당합니다. 여호와의 성소가 던져지는 것처럼 뿔이 진리를 땅에 던집니다. “던지며”와 11절의 “헐었으며”는 히브리어로는 동일합니다. “진리”는 율법을 가리킵니다. 성소가 더럽혀져 기능을 상실하고 율법의 가르침이 억압을 당하지만, 뿔은 일마다 형통합니다.

 

천사들의 대화를 듣는 다니엘(13-14)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인류 구속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러한 계획은 성도들에게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때때로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정결함을 유지해야 하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듭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13내가 들은즉 한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그 말하는 이에게 묻되 환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14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13-14)

 

본문에서는 두 천사가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간에 대해 대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 천사가 다른 천사에게 저녁 아침이 지나야 성소가 정결하게 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계획과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질문: “어느 때까지”(13)

 

다니엘의 환상이 시각적 경험에서 청각적 경험으로 바뀝니다. 그는 두 거룩한 이가 말하는 것을 듣슨비다. “거룩한 이”는 7:16의 “그 곁에 모셔 선 자들”처럼 천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2) 답변: “이천삼백 주야까지”(14)

 

“다른 거룩한 이”가 뿔의 승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를 묻자, “한 거룩한 이”가 이천삼백 주야까지 매일 드리는 제사가 없어지고 성소와 군대(“백성”)가 짓밟힘을 당한 후에야 성소가 다시 정결해져 기능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천삼백 주야는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번제가 중단된 기간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루에 두 번 드리기에 이천 삼백 번의 번제는 날수로 계산하면 천백오십 일이 됩니다. 성소가 더러워진 천백오십 일 동안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7:25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는 기간입니다. “망하게 하는 죄악”은 일차적으로는 여호와의 번제단 위에 세워진 제우스를 위한 제단(참조. 9:27; 11:31; 12:11)을 가리키지만, 예루살렘과 성전에 행한 뿔의 모든 악행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구속 역사에 대한 확신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미래의 사건들을 미리 알려주시며, 성도들에게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저녁 아침의 기간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적으로 정결함을 유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역사하시며,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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