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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2-01)


마지막 시대의 왕과 하나님의 계획

다니엘 11장 36절-12장 4절


 

모든 사건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닥칠 어려움과 환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따라서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안티오코스 4세의 교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는 자신을 높여 모든 신들 위에 올려놓습니다.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 아래 있는 민족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헬레니즘에서 찾는 안티오코스에게 종교는 정치의 봉사자여야 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아폴로 대신 제우스를 셀류코스 왕조의 신으로 섬겼고, 예루살렘의 일부 세력은 그의 도움을 받아 유대교의 헬라화를 추진했습니다. 율법에 신실한 많은 유대인이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로 내몰렸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의 교만(36-39)

교만한 자는 자신의 권력과 영광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이는 인간의 교만과 자아 중심적인 태도를 경고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영적 파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과 신앙으로 살아가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36○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 37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의 조상들의 신들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어떤 신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38그 대신에 강한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39그는 이방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점령할 것이요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 주기도 하리라(36-39)

 

본문은 마지막 시대의 왕이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는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하고 많은 사람들을 속이며 행동합니다. 이러한 예언은 하나님의 주권과 궁극적인 계획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1) 신보다 높다고 여기는 자(36)

 

안티오코스의 교만이 신학적 시각에서 기술됩니다. “속임수로” 나라를 얻은(21) 안티오코스는 자신을 신들 위에 올려놓고 “신들의 신”이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안티오코스에게 종교는 정치의 봉사자였습니다. 종교가 정치 아래 놓이기에 신들 또한 통치자 아래 들어오게 됩니다. “비상한 말”은 신성모독적 말을 가리킵니다. 안티오코스는 여호와의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만 형통할 것입니다. 역사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정하신 계획에 따라 진행되기에 지상의 권력은 그분께서 정해주신 기간 동안만 세력을 떨치고 퇴장해야 합니다.

 

(2) “강한 신”을 공경하는 자(37-38)

 

37-38절은 안티오코스의 종교 정책에 관한 언급입니다. 안티오코스는 “그의 조상들의 신들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을 돌보지 않고 “강한 신”을 공경합니다. “그의 조상들의 신들”은 시리아의 전통 종교에서 섬겨오던 신들, 특히 셀류코스 왕조의 보호자 역할을 담당했던 아폴로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은 풍요제의에 속한 담무스 또는 아도니스를, “강한 신”은 특히 시리아 군인들의 주둔지에서 섬기던 올림포스의 제우스를 가리킵니다. 안티오코스는 제우스를 셀류코스 왕조의 신으로 선택해서 그 지배 아래 있는 다양한 민족들의 통합을 시도했습니다.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은 제우스에 대한 안티오코스의 편애를 보여줍니다. 제우스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폴로를 셀류코스 왕조의 수호신으로 섬긴 조상들과 달리 안티오코스는 제우스 숭배에 우선을 두었습니다. 안티오코스가 제 조상들의 종교적 전통을 무시한 것은 예루살렘의 종교적 전통 또한 유린될 것을 시사합니다.

 

(3) 복종의 대가에 따른 통치술(39)

 

안티오코스는 “이방 신”을 앞세우고 전쟁에 나갑니다. 그의 산은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이기에 낯선 산입니다. 그는 조상들이 왕조의 신으로 섬겼던 아폴로 대신 제우스의 도움을 받아 “견고한 산성들”을 공격합니다. 산성을 수식하는 “견고한”과 38절에서 신을 수식하는 “강한”은 같은 단어입니다. 안티오코스가 조상의 신들보다 이방 신을 더 선호한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강한 산성들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강한 신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목적에 더 적합한 신을 공경하듯, 자신을 인정하는 자에게 권력과 부를 나눠주어 충성하게 합니다.

 

안티오코스 4세의 애굽 원정과 죽음(40-45)

마지막 시대의 왕과 그의 적국 간의 갈등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 속에서 드러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됩니다. 하나님은 결국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승리를 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는 신앙인에게 큰 희망과 위로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40○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 41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하게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42그가 여러 나라들에 그의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하지 못할 것이니 43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44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를 번민하게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이요 45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40-45)

 

본문에서는 마지막 시대의 왕과 그가 맞서게 될 강력한 적국의 충돌을 다룹니다. 이 왕은 전쟁과 갈등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확립하려 하지만, 결국 그의 운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됩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그의 뜻을 이루어가며 승리를 가져오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나라들과 유다의 침략(40-41)

 

마지막 때의 전쟁은 이집트의 도발로 시작됩니다. 이집트가 공격하자 안티오코스가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를 거느리고 반격합니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듯이, 홍수가 온 땅을 뒤덮고 쓸어가듯이 그의 군대가 많은 나라를 휩쓸고 지나갑니다.

 

(2) 일시적 승리(42-43)

 

그의 공격 앞에 이집트와 주변 나라들은 속수무책입니다. 그는 애굽을 유린하면서 “금과 은과 모든 보물”을 약탈하고, 이집트의 동맹국인 리비아와 구스 사람을 굴복시킵니다. 애굽 원정의 길목에 놓인 “영화로운 땅”(유대)도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합니다. 안티오코스의 침략으로 많은 유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반면에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은 그의 공격권에서 벗어납니다.

 

(3) 퇴각과 종말(44-45)

 

마지막 때의 전쟁은 안티오코스의 승리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승리를 목전에 두었을 때 예기치 않았던 일이 발생합니다. 동쪽과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문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중단합니다. 타국으로 원정 중에 듣게 되는 반역이나 외침에 관한 소문은 왕에게 치명적입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안티오코스는 관련자들을 처벌하려고 돌아가는 중에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지중해와 시온 산) 사이의 어느 지역, 곧 애굽과 시리아를 이어주는 바닷길에 위치한 해안 평야에 장막을 치지만 다시 거두지는 못합니다. 영화로운 땅에 들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인 안티오코스는 영화로운 땅 서쪽 변방에서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습니다. 여호와께서 결정하신 운명이기에 그의 죽음에 누구도 간섭하지 못합니다(참조. 8:25).

 

영원한 생명의 약속(12:1-4)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이는 신앙인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는 신앙 생활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난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1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2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3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4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1-4)

 

본문에서는 마지막 때에 미가엘이 일어나 백성을 보호하며,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때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많은 이가 깨닫고 돌아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에게는 이 예언을 기록하고 지켜보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1) 마지막 때의 구원(1)

 

마지막 때 이스라엘은 미증유의 극심한 환난을 당하지만 혼자는 아니다.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나 안티오코스의 추종자들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을 도와줍니다. “네 민족을 호위하는”은 문자적으로 ‘네 백성의 자녀들 편에 선’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호하다’를 의미하는 ‘~의 편에 서다’는 ‘~를 변호하다’ 또는 ‘심판을 집행하다’를 함축하기도 합니다. 미가엘이 이스라엘을 변호하고 악한 세력을 심판합니다. 미가엘은 바사와 헬라 군주에 대항하는 이스라엘의 군주로 가브리엘을 도와줍니다. 세 번 반복 사용된 “그 때”에는 40절의 “마지막 때”를 받습니다. “환난”은 원문에 충실하게 ‘환난의 때’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 때인 그 때는 새벽빛이 떠오르기 직전의 짙은 어둠과 같은, 미가엘이 개입하여 악의 세력을 완전히 끝장내는 환난의 때입니다. 환난의 극심함에서 구원의 임박함을 보고 마지막 때를 견뎌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책에 기록된” 사람만 구원을 받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의로운 자들은 환난중에 있거나 죽음에 넘겨졌거나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은 땅에서의 삶에 관심을 집중하고 죽음 이후에 관해서는 사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스올로 내려가는 것으로 끝나는데, 2절은 유일한 예외입니다. 순교자와 배교자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각자의 삶에 상응하는 몫을 받습니다. 끝까지 조상들의 전통에 충실하게 믿음을 지키다가 죽음에 넘겨진 사람에게는 “영생”이, 안티오코스 편에 서서 헬라적 개혁을 지지한 자에게는 “영원한 부끄러움”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의인과 악인의 운명이 최종적으로 결정됩니다.

 

(2) 죽은 자들의 부활(2-3)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참조. 사 26:19)는 죽은 자들 가운데 일부가 깨어날 것을 전제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깨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깨어남의 범위가 안티오코스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로 한정됩니다. 마지막 때에 조상의 전통을 포기하기보다 생명을 내놓은 신실한 자들과, 이들을 박해하며 유대교의 헬레니즘화를 추진한 사악한 자들이 우선 죽음에서 깨어납니다. “영”(문자적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부끄러움”은 구약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판결의 최종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지혜 있는 자”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동일한 집단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마지막 때 유대 공동체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한 자들이며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에 속합니다. “궁창의 빛”은 별의 동격이거나 또는 빛나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지혜로운 자에게는 영생뿐만 아니라 빛나는 영예도 주어집니다. 낮의 하늘과 밤하늘의 별이 창조 이래로 영원히 빛나는 것처럼 이들에게는 영원히 빛나는 영예가 주어집니다.

 

(3) 봉함된 글(4)

 

천사는 다니엘에게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명령합니다. ‘간수하다’는 ‘비밀에 부치다’를 의미합니다. 누구도 책을 열어 읽을 수 없게 봉인하고,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게 비밀스럽게 간직해야 합니다(참조. 8:26; 12:13). 고레스 제3년에 주어진 다니엘의 환상은 종말에 있을 사건을 기술한 것이기에, 그때가 오기까지 기다리며 봉인해두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의 역사가 계시됐지만, 이를 기록해놓은 글이 봉인되기에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히 감춰집니다. 봉인해서 비밀에 부쳐야 할 말과 글은 일차적으로는 10:11-12:3을 가리키지만, 폭넓게 다니엘서 전체를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봉인된 계시와 관련해 주어진 후반절은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빨리 왕래하며”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마지막 시대의 환난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환난이 닥칠 때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며, 이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하며 영적으로 준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끝으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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