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57-02)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하실 하나님
이사야 57장 14-21절
인간의 뿌리 깊은 절망스럽습니다. 문명은 발전해도 야만의 시대는 지속되고, 오랜 신앙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회개를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비와 위로와 평강으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 왕정시대나 심판을 경험한 포로기 이후나 이스라엘의 종교적 형편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산과 골짜기와 성읍에는 우상이 마치 제 집인 양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어 보였지만, 역설적이기도 이스라엘의 한계와 무능력이 그분의 긍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는 분께서 자기 마음의 길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고 그 고질병을 고쳐주기로 하십니다.
내적 영적 정화(14)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그들을 치시는 까닭은 그들을 없애버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의 욕망에 영합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오도록 인도하라고 명합니다.
14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14)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해방과 구원을 얻게 된 이스라엘은 그들의 범죄로 인해 또 다시 심각한 영적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죄악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내 백성”으로 부르고, 그들 가운데 일부에 속한 너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라는 대상은 문맥상 ‘내 백성의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이 56:9-12에서 고발당한 지도자들과 같은 집단인지는 불분명하지만, 56:9-57:21의 넓은 문맥에서는 가능합니다.
여호와께서 지도자들에게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돌을 깔고 길을 평탄하게 닦아 걸림돌을 들어내는 사명이 맡겨집니다. 이 길은 유배민이나 흩어진 자들의 귀환을 위한 물리적 길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돌아오시는 길도(40:34) 아닙니다. 여호와의 백성이 그분께로 나아가는 내적-영적 갱신의 길입니다.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52:7-9)를 맞이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은 백성을 영적으로 준비시켜야 합니다.
13절까지 폭로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비해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두드러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우상이 사실은 바람에 날려가는 헛된 것임에 불과한 것임을 보이신다는 말씀이 심판의 전부인 듯합니다. 오히려 14절부터는 범죄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돌리킴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거치는 것”(걸림돌)은 잘못이나 죄를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구원이 지체되지 않도록(56:1) 자기 안에 있는 악한 요소들,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55:6-7). 62:10에서는 예언자가 같은 표현을 사용해, 아마도 그의 제자들에게, 백성이 여호와께서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을 제거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구원 선포(15-19)
하나님의 책망의 목적은 회복과 세움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통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분노를 그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며 그리고 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그 용서와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찬양하는 삶으로 살아갑니다.
15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16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17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18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19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14-19)
하나님의 징계 목적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거룩한 행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백성들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에 앞서 말씀하시는 분을 삼중으로 소개합니다.
(1) 영과 마음의 소생(15)
15절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장엄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지극히 존귀하며”라고 소개합니다. 6:1의 ‘높이 들린’과 동일한 표현으로(참조. 53:12) 하나님의 공간적 초월성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높고 높으신 분으로(33:5,16) 땅의 사건에 개입하시지만,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는 않으십니다.
(2) 영원히 다투지 않으시는 여호와(16)
“영원히 거하시며”는 그분의 시간적 초월성을 보여줍니다. 흥망성쇠를 경험하는 민족들의 신들과 달리 그분은 변함없이 활동하시며 언제나 왕으로 통치하십니다.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8:18)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십니다(41:4; 44:6; 48:12). 또한,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다 이름 하는 이”입니다(15).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것은 전적으로 구별되시는 분으로 비교를 거부하시는 그분의 배타성과 절대성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홀로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그분의 거룩함은 역동적 힘으로 때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도 하고(5:24; 10:20; 31:1), 때로는 민족들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도 합니다(41:14; 43:3,14; 49:7). 여호와의 높으심과 영원하심과 거룩하심이 그분 백성에게 구원과 화평의 문을 열어줍니다.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시는 여호와께서는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는 분입니다(15). 여호와는 초월적이고 배타적이시지만, 당신을 찾는 자를 즐겨 만나십니다(55:6). ‘통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부서졌음을 발견하는 이들입니다. 그분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자는 거룩한 산에서 그분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57:13).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는 회개한 자보다는 현재의 재앙과 환난을 받아들이고 유일한 피난처와 도움이신 여호와를 향해 겸비한 자세를 내보이는 자를 가리킵니다(시 34:18; 잠 29:23). 여호와께서 사회적-종교적으로 짓밟히고 당신 앞에 낮아진 자들의 영과 마음을 되살려주십니다. 현재의 역경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소망을 주십니다. “통회하고” 의 ‘다카’는 ‘짓밟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단순히 뉘우치거나 회개한 자보다는 현재의 어렵거나 악한 형편으로 인해 짓밟힌 자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참조. 3:15; 53:5,10). “겸손한”의 ‘샤팔’은 원래 ‘낮다’, ‘낮아지다’, ‘가라앉다’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회적으로는 귀함과 대조되는 천함을, 신학적으로는 ‘자신을 높이는’ 교만에 대응하는 ‘자신을 낮추는’ 복종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공의 앞에 구원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파수꾼과 목자는 부패하고 무능하고(56:9-12), 사람들은 의인이 폭력에 희생당해도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고(57:1-2), 여호와를 잊고 높은 산에서 계곡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우상이나 섬기는데(57:3-13)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다시 진노하시는데 어떻게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의 의로운 심판을 견딜 수 있는 피조물은 없지만, 당신 백성의 피곤함(연약함)을 아시는 여호와께서 영원히 다투지는 아니하시고 끝까지 노하지는 아니하시기에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16; 참조. 60:10; 출 34:6; 렘 3:5). 유배를 포함한 현재의 절망적 형편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고발하시고 진노하신 결과였기에(47:6; 54:8; 64:4), 구원 약속도 이중적으로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의 고발과 진노를 버텨내지 못하고 쇠약해져서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아시기에 계속 고발하거나 진노하지 않기로 결심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지으신 분께서 이스라엘의 한계(나약함)를 인정하십니다. ‘다투다’의 ‘립’은 원래 법정 다툼을 가리킵니다. 용서와 위로를 선포하시기 전에 여호와께서 지난 심판을 되돌아보십니다. 탐심의 죄악 때문에 화가 나서 그를 치셨고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습니다(17). 유다의 멸망과 유배로 나타난 여호와의 진노와 징계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악 때문이었습니다. 탐심(베차 23.3)은 1차적으로는 물질적 이득으로(33:15; 56:11), 이를 위해 사람들은 폭력을 사용하거나 살인을 범하기도 합니다(렘 22:17). 탐심에 사로잡힌 자는 필연적으로 여호와의 계명을 무시하게 됩니다. ‘얼굴을 가림’은 관계의 단절로 심판을 의미합니다.
(3) 목적을 이루지 못한 여호와의 징계(17)
여호와의 심판은 의도한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로 돌아오길 거절하고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갔습니다(참조. 53:6). 다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와 심판에 떨어질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노하지 않기로 하신 여호와께서 “그의 길”을 보시고 이전과는 달리 반응하십니다. 죄악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이들의 절망적 형편에 개입하십니다.
(4) 고쳐주시는 여호와(18)
여호와께서 불치의 병을 고쳐 생명의 길로 이끌어주시고, 위로로 갚아주시고, 그 가운데 슬퍼하는 자들에게 입술의 열매를 맺어주십니다(18). “슬퍼하는 자들”은 여호와의 진노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를 모르는 자들이고, “입술의 열매”는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의미합니다. 병(진노)에서 신음하는 자들이 고침(구원)을 받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받기만 하는 우상들과 달리 여호와께서는 감사할 수 있도록 조건도 마련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배신을 일삼는 악한 마음을 고쳐주시기에 이스라엘이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5) 평강의 회복(19)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치료와 평강의 약속이 주어집니다(19). 불치의 병에 걸려 멸망의 길로만 내딛던 이스라엘이 여호와에 의해 값없이 치유함을 받고 평강을 누립니다. “가까운 데 있는 자”와 “먼 데 있는 자”는 각각 예루살렘과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평강(샬롬)은 모든 종류의 안녕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의사이신 여호와(출 15:26)에 의해 보장됩니다.
악인의 심판(20-21)
구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원하시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회를 주고 기다리고 용서하여도 거치는 것을 제거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요동치는 바다처럼, 자신과 공동체에서 평강을 앗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20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21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20-21)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낮추십니다. 탐욕스러운 백성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죄를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진노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을 낮추신 다음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심판과 죄인들을 향한 긍휼로 언제나 고통당하십니다.
(1) 요동치는 바다와 같은 악인(20)
치유와 평강이 모든 사람에게 약속되지만(19), 다 치유함을 받고 평강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악인은 그 물결이 오물과 진흙을 밀어 올리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요동치는 바다 같아서 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악인은 자신도 평온함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악한 영향으로 공동체도 평강이 없게 타락시킵니다. 여기 악인은 “거치는 것”(14), 곧 우상들을 제거해버리지 않는 자들입니다(3-13a).
(2) 평강이 없는 악인(21)
여호와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자(13b),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15)는 여호와께 그 길의 고침을 받아 평안을 누리고, 여호와를 잊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끊임없는 두려움과 놀라움으로(11)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구원의 여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상한 심령에 자비의 씨앗을, 절망의 진흙탕에 위로의 씨앗을, 혼돈과 불안으로 두려워하는 영혼에 평강의 씨앗을 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희망이고, 위로고, 생명이십니다. 다른 대상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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