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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0-01)


전화위복을 이루시는 하나님

이사야 49장 14절- 50장 3절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바꾸어 복을 만드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실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서 떠나 죄를 짓는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시지만, 사실 그 재앙마저도 이후에는 그들을 위한 복이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결국 멸망하겠지만 그것마저도 복이 되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 시온은 유배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고 잊힌 존재가 됐다고 불안을 토로하며 탄식합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이해하는 전통 신학 안에서 바벨론 유배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학적 단절이었습니다. 시온의 제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은 한순간도 시온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과 관심을 시온이 멸망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시온의 회복(14-21)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잊으실 수 없습니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이름은 절대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속을 상하게 만들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식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도 그러지 않을까 지레짐작하지만, 걱정할 필요없습니다.

 

14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네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21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14-21)

 

이사야는 시온, 곧 예루살렘 성을 의인화해서 노래합니다. 시온은 유배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버림받고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고 탄식했습니다.

 

(1) 시온의 탄식(14)

 

시온은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라고 탄식합니다. 그들은 남편에게서 버림을 받고 잊힌 여자처럼 됐고 여호와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면서 그분의 무관심을 탄식합니다(14; 참조. 40:27; 54:8; 애 5:20). 동사 ‘버리다’와 ‘잊다’는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2) 여호와의 답변(15)

 

탄식하는 시온에게 여호와께서 비유를 사용해 그 부당함을 지적하십니다(15). 어머니가 제 몸에서 난 젖먹이를 잊고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 자식을 버리는 여인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인 환경에서 자포자기적 행태를 보일 때가 없지는 않지만(참조. 왕하 6:26; 애 4:10),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당신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3) 성의 재건(16-17)

 

하나님께서는 지워지지 않게 손바닥에 시온을 새겨놓고 늘 기억하십니다(16). 그분은 한순간도 시온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는 그분께서 손바닥에 새긴 것이 시온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벽이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절망에 빠진 시온의 눈에는 잊힌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시온의 재건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의 귀환과 시온을 파괴하던 자들의 떠남이 대조적으로 기술됩니다(17). 민족들 가운데 흩어졌던 시온의 자녀들이 여호와께서 평탄하게 만들어준 대로를 통해(11-12) 시온을 향해 가벼운 걸음으로 달려오고, 시온을 허물고 부수던 자들은 급히 시온을 떠난다. 성벽이 파괴된 시온을 괴롭히고 약탈하던 자들이 갑자기 도망하고 새로운 구원 시대가 도래합니다.

 

(4) 주민들로 넘치는 성(18-21)

 

여호와께서 황폐해진 땅을 내려다보며 절망 가운데 사는 시온에게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보라고 권면하십니다(18). 시온은 눈앞의 암담한 현실에서 눈을 돌려 저편에서 오는 소망의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약속을 의지할 때 시온은 사방에서 서둘러 달려오는 자녀들을 보며 그분께 버림받거나 잊히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시온은 그분께서 맹세하신 구원 약속을 믿고 그 성취를 기다려야 합니다. 시온은 흩어진 자녀들이 돌아오는 것을 볼뿐 아니라 이들을 다시 자녀들로 맞아 잃어버렸던 영광도 되찾게 됩니다. 자식들을 잃고 티끌에 내려앉았던 시온에게 어머니의 지위와 기쁨이 주어집니다. 시온의 영광을 최상급으로 표현한 신부의 비유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회복된 결혼 관계를 암시해주기도 합니다.

시온의 처량한 현재 모습과 다가오는 구원 시대의 충만한 모습이 대비됩니다(19). 주전 587년의 재앙으로 시온은 폐허가 됐고, 일부 남은 자들이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시온이 재건되고 생존의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 외부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거주 공간이 부족해질 정도로 주민들이 많아집니다. 시온은 자식을 다 잃어버렸다고 절망했지만, 자녀들이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녀들이 유배지에서 크게 자라 다시 돌아옵니다.

장소가 협소해서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녀가 사방에서 시온으로 돌아옵니다(20). 시온은 믿기지 않는 현실을 보고 놀라움에 사로잡힙니다(21). 시온의 탄식(14)이 감탄과 놀람으로 바뀐다. 시온은 자신이 여호와께 버림받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보게 됩니다. 시온이 절망에 빠져 탄식하는 동안 여호와께서는 먼 곳에서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고 키워주셨다. 시온을 잊은 것이 아니라 시온을 기억하시고 그의 미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돌아오는 시온의 자녀들(22-23)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인간들은 고통이 임했을 때, 마치 모든 희망을 잃은 것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나보다 훨씬 더 멀리 보시고,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을 오히려 찬양하고 이 고통 뒤에 무엇이 있을지 기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2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23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22-23)

 

예루살렘의 회복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회복을 직접 경험한 자들조차 의아학 여길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스라엘 자손이 기대하거나 요구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1) 안내자가 되는 민족들(22)

 

여호와께서 민족들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손을 드십니다. 그분의 권능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깃발을 올려 먼 곳에서 민족들을 불러오셨던 여호와께서(5:26) 이번에는 당신 백성을 귀향시키기 위해 깃발을 올려 민족들을 부르십니다. 민족들에게 유배민을 안전하게 시온으로 데려가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민족들이 시온의 아들들을 품에 안고 시온의 딸들을 어깨에 메고 데려옵니다.

 

(2) 시온에 굴복하는 민족들(23)

 

민족들에 의해 쫓겨났던 시온의 자녀들이 민족들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시온으로 돌아옵니다. 민족들을 대표하는 왕들과 왕비들이 시온의 자녀들을 돌보는 양부와 유모로 임명되고, 시온에 절하고 그 발의 먼지를 핥습니다. 시온을 지배하던 민족들이 시온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경의를 표합니다. 물론, 시온의 영화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 일을 통해 시온이 당신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시온은 여호와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우상을 섬기다가 수치를 당하지만,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은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유배민의 구출(24-26)

두려워하지 말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매일 변하는 세상의 평가에 마음을 너무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무엇보다 귀한 사람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이름이 새겨진 사람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몰라보아도 하나님께서는 아시는 귀한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24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25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26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24-26)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면 우리는 머누 쉽게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기도 하고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자녀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1) 시온의 탄식(24)

 

바벨론에 멸망당한 경험이 있는 시온은 여호와의 구원 능력에 의심을 품습니다(24). 여호와께서 유배민의 귀향을 약속하시지만 무슨 능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바벨론의 손에서 유배민을 구해내실 수 있겠습니까?

 

(2) 여호와의 응답(25-26)

 

어떤 나라와 신도 바벨론 제국의 폭력에서 제 민족을 구해낼 수 없지만, 바벨론을 대적하시는 분이 여호와라면 사정은 전혀 달라집니다(25). 바벨론을 대적하시는 여호와께서 시온을 억압하던 자들이 서로 죽이고 피를 흘리게 하실 것입니다(26). 서로 제 살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듯이 제 피를 취하도록 마시게 하실 것입니다. 바벨론이 내부 분열과 다름으로 멸할 것을 시사해줍니다. 바벨론의 폭력에서 시온의 자녀들을 구하시는 여호와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모든 육체가 그분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시온을 억압하는 자들과 구별되는, 여호와의 권능과 영광을 목도하는 자들입니다(참조, 40:5). 이들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배민을 구하는 여호와의 능력을 보고 여호와께서 시온의 구원자요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이심을 알게 됩니다. 구속자(고엘)는 씨족사회의 유산에 속하는 표현입니다. 억압자들의 손에 떨어진 시온의 자녀들을 구출하는 것이 여호와의 권리이자 의무에 속함을 보여줍니다. 야곱의 전능자는 야곱이 대표하는 모든 지파를 위해 개입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함축하는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의 책망(50:1-3)

신앙인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잘 모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롬 하나님께서는 죄인이건 의인이건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사람이냐 아니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1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2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3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1-3)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시고 이방의 손에 파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도, 이방의 손에 너기신 것도 아님을 밝히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악과 배역함 때문에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1) 유배에 관한 논쟁(1)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배는 구원사적 전통 안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파국이었습니다. 유배민 가운데 일부는 그 책임을 여호와께로 돌렸습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어느날 갑자기 이혼 증서를 손에 들려주고 내쫓아버리셨다고, 빚에 쪼들려 채주에게 팔아넘기셨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에 맞서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임의적 결정이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죄악과 배역 때문이었음을 주장하십니다(1). 여호와께서 무관심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유배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 여호와의 무한 능력(2-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찾아오셔서 불렀지만, 이스라엘은 응답하지 않았다(2). 그분의 ‘손’이 짧아서, 힘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구속함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구해주시려고 구속의 손을 내밀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도무지 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도와줄 마음도 있고 도와줄 능력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하고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고 불평을 늘어놓거나 그분의 구원 능력에 회의하지 말고 먼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분의 무한 능력에 의지해야 합니다. 유배민은 한마디 호령으로 바다와 강을 말리시고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신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뜻을 거스르고 등을 돌렸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분은 잠시도 우리를 잊지 않으셨으며, 보이지 않게 회복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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