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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3-01)


지극히 존귀하나 멸시받은 종

이사야 52장 13절-53장 12절


세상은 죄를 용서받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죄인이 용서 받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양한 선행과 고행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힘으로는 죄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성경의 대답은 ‘고난 받으신 메시아를 믿는 것’입니다.

 

  • 네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입니다. 낮아졌던 종이 여호와에 의해 높임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종의 외모에 걸려 종에게서 여호와의 능력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종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구원과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에 외적으로 가장 부적격한 자가 여호와께서 보낸 그분의 종이었습니다.

 

높임 받는 여호와의 종(13-15)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강한 권능으로 열국을 결박하고 심판하며, 이스라엘을 단번에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는 너무도 약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고, 사람들 앞에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몰골의 사람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상상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13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15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13-15)

 

여호와의 종은 ‘형통하는’ 즉 성공하는 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높이 들리고 지극히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많이 상한 모습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고난을 받아 상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1) 하나님에 의한 종의 인정(13)

 

여호와께서 종을 “내 종”이라 부르시며 그의 미래에 관해 이중적으로 말씀하십니다(13). 종의 사역이 인정받을 것입니다. 헛수고한 것처럼 보이지만(49:4) 그가 뿌린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또한 종은 마침내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멸시당한 당신의 종을 최고의 위치로 높이셔서 영화롭게 하십니다(참조. 빌 2:9). 종은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한 인생이지만, 여호와의 눈에는 성공적으로 사명을 완수한 인물입니다. 시점이 미래에서 과거로 옮겨집니다.

 

(2) 종의 망가진 외모(14)

 

사람들이 종의 외모를 보고 놀라고 얼굴을 돌렸습니다(14). 종은 사람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처럼 보였습니다. 신의 진노 아래 있는 자였기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화를 자초할 수 있었습니다. 시점이 다시 미래로 바뀝니다. 종의 미래적 영광이 과거의 수욕과 대조됩니다.

 

(3) 민족들의 놀람(15)

 

‘많은 사람’에 의해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여겨졌던 종이 ‘많은 민족들’에 의해 인정을 받습니다(15).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거절이 종의 사역을 세계사적으로 넓혀줍니다(49:6). 민족들과 왕들이 종이 행한 일을 깨닫고 다 놀라고 침묵할 것입니다. 종의 고난과 죽음에서 하나님의 구원 의지와 영광을 볼 것입니다. 멸시와 고난을 당했던 종이 왕들의 왕으로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종에 관한 공동체의 고백(53:1-11a)

예수님께서 못과 창에 찔리실 때 우리의 죄와 허물은 용서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도 함께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죄의 대가는 영과 욱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셨기에 죄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죽으심이었고, 모든 인류가 함께 죽는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1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1-11a)

 

보통 이방 나라에서는 외모가 탁월하고 풍채가 좋은 자가 왕으로 인정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여호와의 종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아름다운 것이라고는 없는 사람입니다. 멸시를 받고 사람들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1) 잘못을 고백하는 공동체(1)

 

1절부터 화자가 여호와에서 ‘우리-공동체’(의 대표인 예언자?)로 바뀝니다. 화자 “우리”는 15절의 민족들이 아니라 (후에 종을 인정하게 된 일부)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들었지만(참조․ 42:1-4; 49:16; 50:4-9) 깨닫지 못한 무지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팔(능력)이 전혀 볼품없는 인물에게 나타났음을 늦게야 깨닫습니다.

 

(2)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종(2-3)

 

2-3절은 사람들이 종을 멸시한 원인이 그의 외적 모습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좋은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새순처럼 태어날 때부터 볼품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모양, 풍채, 외모(아름다운 것)’는 생명의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초라한 몰골을 하여 흠모할 만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풍채”의 ‘하다르’는 왕의 영광을 기술할 때 사용됩니다(2:10,19,21; 35:2; 63:1). 종은 외모만 초라하지 않고 고통과 질병에도 시달렸습니다. 그에게는 시선을 끌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의 표지를 몸에 지니고 사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인 듯 보이는 자가 그분의 구원을 선포했기에 그를 향한 무시와 멸시는 당연했습니다.

 

(3) 종의 대속적 고난(4-5)

 

그러나 4-5절에서 ‘우리’는 종에 관한 자신들의 무지와 과오를 시인합니다. 종의 질병과 고통이 하나님의 구원 의지에서 기인했음을 깨닫습니다. 전에는 종의 병과 고통을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로 보고 그를 멀리하고 멸시했는데 뒤늦게 그가 받은 징벌이 도리어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종은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죄악 때문에’ 찔리고 상함을 입었습니다. 종의 고난은 폭력에 의한 약자의 희생이 아닌, 평화와 치료를 주기 위한 대속적 희생이었습니다. 종이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짊어지고 고난을 받음으로써 ‘우리’가 죄에서 놓임을 받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종의 고난과 거절당함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실천하는 길이었습니다. 종의 상처가 치명적이었음을 시사해주는 “찔림”과 “상함”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백성에 의한 멸시와 영적 고통도 포함합니다.

 

(4)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6-7)

 

6-7절은 양의 비유를 사용해 종의 죽음이 자발적-대속적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는 길 잃은 양처럼 각자 자기 길을 갔습니다. 참된 목자이신 여호와의 인도를 거절하고 자기 생각과 판단에 따라 멸망의 길을 갔습니다. 여호와께서 종의 고난과 죽음의 궁극적 원인이셨습니다. 죄로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습니다. 종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이 여호와의 구원 의지에 속함을 알기에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과 죽음의 부당함에 항거하거나 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멸시와 폭력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겼습니다. 종의 고난은 죽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5) 종의 부당한 죽음(8-9)

 

종은 사법적 폭력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종의 죽음이 부당했지만, 아무도 그의 죽음에 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8). 그의 죽음을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의 마지막으로 당연시하였기에 그의 고난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해방과 구원을 선포한 종이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생명의 땅에서 잘려 죽음에 넘겨졌습니다. 폭력과 거짓을 행한 적이 없었지만, 종은 죽어서 “악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9). 살아서는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고난을 당했던 종이 불의한 재판 끝에 중죄인의 판결을 받고 처형당해 죄인들이 묻히는 곳에 묻혔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무덤에 묻힐 때까지 종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모두 버림받았습니다. 다소 돌출적인 표현인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는 무슨 뜻입니까? “부자”는 여기서 “악인들”과 동격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예언자들이 고발한 고리대금업자들이나 사회적-정치적 지위를 남용해 부를 축적하는 자들인지 혹은 단순한 부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죽은 종의 무덤이 죄인들 가운데 마련됐다는 점입니다.

 

(6) 종의 대속적 죽음(10-11)

 

지금까지 종의 삶을 되돌아보며 경험을 전하던 화자가 10-11a절에서는 앞을 내다보며 말합니다. 이제 그는 깨달아 알게 된 종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선포합니다. 종의 고통과 질병과 부당한 죽음은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좋은 여호와께 드려지는 속건제물이었습니다. "속건제물”의 ‘아샵’은 원래 ‘보상’, ‘배상’을 의미하는데, 소유권을 가진 사람의 권리가 훼손당했을 때 드려지는 희생 제사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범한 잘못(죄)을 해결하기 위해서 보상이 필요했고, 종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자신을 속건제물로 드렸습니다. 죽은 종이 오래 살면서 많은 후손을 본다는 말은 종의 제사가 여호와께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주는 비유적 언급입니다. 종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구원과 생명이 주어집니다. 종을 통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구원 계획이 성취되고, 결실을 보지 못했던 종도 자신의 사역이 구원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에 의해 인정받는 종(53:11b-12)

하나님의 메시아 사역은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기적,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전제되지는 않고 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예언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에 이미 초상식, 초윤리, 초자연적인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구원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전부터 준비하시고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11b…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11b-12)

 

여호와의 종이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익울한 일을 자기 종에게 요구하실 수 있는가 싶어질 정도입니다.

 

(1) 종의 성공적 사역(11b)

 

11절의 두 번째 문장부터 화자가 여호와로 바뀝니다. 내용상 5-6절의 요약에 해당합니다. 저주받은 자로 살다가 죄인으로 죽은 종이 여호와에 의해 “나의 의로운 종”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종이 저들의 죄악을 짊어짐으로써 많은 사람이 의로움을 받습니다. 종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구하려고 자발적으로 희생의 길을 간 자였습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주인에게 철저하게 순종한 종에게 상급이 주어집니다.

 

(2) 인정받는 종(12)

 

여기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종국에는 종이 왕들의 왕으로 높임을 받는데(52:13) 그가 자신의 대속적 고난과 죽음에 힘입어 구원받는 자들과 몫을 나눈다는 것은 서로 충돌됩니다. 아마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을 나누는 전통을 비유적으로 활용한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명을 완수한(승리한) 종에게 많은 몫을 주실 것입니다. “몫”, “탈취한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을 포함한 민족들(52:15)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여호와의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여호와의 구원이 ‘땅 끝까지’ 미치도록 ‘이방의 빛’으로 세움을 받은 (49:6) 종에게 주는 최상의 보상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은혜는 인간의 상식이나 윤리, 그리고 자연법칙을 모두 뛰어넘는 기적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사실만 생각해도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귀하며 놀라운 일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죽기까지 순종하겠노라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그 기적을 묵상하며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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