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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4-01)


구속받은 자들의 특권

이사야 54장 1-17절


 

장기화 되는 포로 생활에 백성들은 지쳐갔습니다. 회복의 여망은 사라져가고 암울한 두려움에 희망의 빛이 꺼져갑니다. 광풍에 요동하며 안위를 받지 못하던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희망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어려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 아이를 낳지 못한 불임의 여인이, 산고도 겪어보지 못한 버림받은 여인이 자식을 갖는 것이 가능합니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인의 운명에 개입하신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사라의 태를 열어 당신 약속을 이행하신 분이 아닙니까? 예루살렘의 재건과 번성에 관한 약속도 이와같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변함없는 예루살렘 사랑(1-8)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이나 한 교회를 보면서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소망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할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1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4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1-8)

 

바벨론에 초토화된 예루살렘은 임산할 수 없는 여인과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생명이 태어날 것을 기대할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이루실 것입니다.

 

(1) 예루살렘의 번성(1-3)

 

1절에서 ‘너’는 시온/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시온을 수식하는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산고를 겪지 못한”은 시온을 임신할 수 없었던 족장의 부인들에 연결해줍니다. 자식이 없었던 사라(창11:30)와 리브가(25:21)와 라헬(29:31)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시온도 그분의 간섭으로 자녀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1; 51:1-2). 시온은 현재의 비참한 처지에 절망하지 말고 약속에 신실하셨던 족장들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된 여인”은 임신 능력이 없고 남편도 없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가능해집니다. 약속의 말씀이 명령형으로 주어집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약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시온은 많은 자식이 새로운 가정을 꾸밀 수 있도록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두어야 합니다(2).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 성취돼 불임의 사라가 많은 후손을 본 것처럼 시온도 자녀의 축복을 얻을 것입니다. 자손이 많아져 사방으로 퍼져나가 황폐한 성읍에 정착하고 나라를 차지하게 됩니다(3). “좌우”는 여기서는 사방을, “퍼지며”는 영토의 확장보다는 인구의 증가를, “황페한 성읍들”은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의 성읍들을(40:9; 44:26) 가리킵니다. “열방을 얻으며”는 무력에 의한 점령보다는 여호와의 구원과 공의가 이스라엘을 넘어 민족들에게로 확대될 것을 시사합니다(42:1, 6; 49:6; 참조. 창 12:3; 28:14).

 

(2) 수치에서 벗어나는 예루살렘(4)

 

고대세계에서 불임은 여인의 수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시온을 수치와 부끄러움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시온은 이제 생명력을 상실한 여자로 조롱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전의 수치와 치욕이 말끔히 잊힐 것입니다(4). 여기 ‘잊음과 기억함이 없음’은 죄사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이 시온에게 마련됩니다. “젊었을 때”는 가나안에 살던 왕정 시대를, “과부 때”는 모든 것을 상실한 유배기를 가리킵니다.

 

(3) 예루살렘의 남편 여호와(5-6)

 

완전한 용서는 예루살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그녀의 남편이 시기 때문입니다(5). 예루살렘은 여호와에 의해 그분의 아내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독점적 권리와 책임을 갖고 계시며, 예루살렘의 실존은 철저하게 그분께 의존적입니다. 예루살렘의 구속자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해방과 번영을 통해 여호와의 능력이 온 땅에 알려지고 민족들이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제 별거기간은 끝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소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십니다(6). 여호와께서 시온을 신혼의 아내처럼 따뜻한 사랑으로 바라보십니다. 훼손된 결혼 관계가 회복됩니다.

 

(4) 일시적 별거(7-8)

 

시온은 이혼증서를 주고 내보낸 것이 아니라 “잠시” 버려졌을 뿐입니다(7). 여호와께서는 “큰 긍휼”로 시온을 받아들이실 것이다. 넘치는 진노 때문에 “잠시” 얼굴을 가리셨지만, “영원한 자비”로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8). 그분의 진노는 훼손된 공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시려는 그분의 부정적 응답에 속합니다. 그분의 진노가 일시적인 데 비하여 그분의 자비(헤세드)는 영원합니다.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 기간이 매우 제한적이지만, 시온의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그분의 영원한 자비와 긍휼에 근거하기에 영원합니다.

 

화평의 언약(9-10)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은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고, 당신의 거룩한 언약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성실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합시다.

 

9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9-10)

 

하나님의 진노는 노아의 홍수처럼 무섭지만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끝나고 나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수 같은 비가 내려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 무조건적 약속(9)

 

바벨론 유배가 노아의 홍수에 비교됩니다. 심판보다는 심판 이후가 비교 대상입니다. 심판에서 구원받은 인류의 조상 노아에게 항구적인 보존 약속이 은총으로 주어졌던 것처럼(창 8:21; 9:11), 그분의 무조건적 약속이 버림받은 예루살렘에게 주어집니다(9). 여호와께서 심판에 떨어진 예루살렘에게 다시는 노하거나 책망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약속에 따라 노아 이후의 인류가 홍수의 위협에서 벗어난 것처럼 예루살렘도 멸망의 위협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2) 화평의 언약(10)

 

견고함과 영원함을 자랑하는 산과 언덕마저 물에 잠겨 사라지는 대홍수에서도 당신의 은혜를 입은 노아(창 6:8)를 지켜주셨던 것처럼, 심판에서 벗어난 예루살렘을 변함없이 지켜주실 것입니다(10). 중도에 거둬지지 않는 “영원한 자비”(8)로 긍휼히 여기시기에 그분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자비와 긍휼이 토대가 되기에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습니다(참조. 렘 31:31 이하; 겔 34:25; 37:26). 화평의 언약은 체결의 결과로 화평이 주어지는 언약을 가리킵니다.

 

새 예루살렘(11-17)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셔서 믿음을 갖게 하시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인생길에는 고난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성도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11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12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13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14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 15보라 그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너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너로 말미암아 패망하리라 16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17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1-17)

 

예루살렘은 죄악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자격도 공로도 없는 예루살렘을 화려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풍성한 분이며 구속의 공로는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새 예루살렘의 외적 모습(11-12)

 

예루살렘의 참담한 형편이 3중으로 기술됩니다(11a). ‘곤고한 자’는 여호와 외의 다른 곳에서 도움을 찾을 수 없는 자를, ‘광풍에 요동하는 자’는 광풍으로 원래 자리에서 쫓겨난 자, 곧 흩어지거나 유배당한 자를, “안위를 받지 못한 자”는 위로의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아직 온전히 회복을 경험하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시온이 안위를 받습니다. 황폐해진 예루살렘이 화려하고 막강한 성으로 재건됩니다(11b-12). 벽돌 대신 청옥으로 성벽의 기초가 쌓이고, 성가퀴들은 홍보석으로, 성문들은 석류석으로, 성벽은 모두 보석으로 만들어집니다.

 

(2) 새 예루살렘의 내적 모습(13)

 

새 예루살렘의 자녀는 모두 여호와의 제자가 됩니다(13). ‘교훈을 받다’는 배움의 지적 활동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준수도 포함합니다. 구원받은 예루살렘 주민들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분 말씀에 따라 살아갑니다.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들에게 “큰 평안”이 주어집니다. 생명과 구원의 지속적 상태를 의미하는 평안(샬롬)에는 영적 번영과 물질적 번영이 모두 주어집니다.

 

(3) 공의가 회복된 새 예루살렘(14)

 

예루살렘이 공의로 굳건하게 세워지기에 다시는 주변 나라들에게 억압과 위협을 당하지 않습니다(14). 이 평안과 공의가 학대와 두려움을 멀리 쫓아냅니다. 공의는 구원을 의미하지만, 13절에 따르면 윤리적 차원도 포함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고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그분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며 도덕적 윤리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외적-내적으로 아름답게 회복시켜주신 여호와께서 지속적인 보호도 약속하십니다.

 

(4) 안전하게 보호받는 새 예루살렘(15-17)

 

백성을 바벨론의 손에 넘기셨던 여호와께서 다시는 예루살렘을 공격하도록 민족들을 부추기지 않으실 것입니다(15). 앞으로 적이 예루살렘을 공격할지라도 그것은 그분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너로 말미암아 패망하리라”는 변화된 예루살렘의 지위를 보여줍니다. 진노의 대상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바뀌었기에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자들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이 되며, 그들은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무기를 만드는 장인과 무기를 사용하는 전사가 모두 여호와의 피조물로 그분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16). 강력한 무기와 용맹한 전사가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합니다.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께서 지배하십니다.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는 특정 대상보다는 전사의 기능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언급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보호 앞에 침략자들의 모든 무기는 무용지물이 됩니다(17). 대적이 때로는 혀를 사용해서 공격하겠지만, 공의로 굳건하게 세워진 예루살렘에 의해 정죄를 당할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 나온 구원 약속을, “여호와의 종들”은 13절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기업”은 상속재산으로 받을 몫을 가리키고, “내게서 얻은 공의”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구원 또는 승리를 의미합니다.


백성의 희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어둠의 권세가 깃든 연장은 쓸모없어질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평화를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대가 불안하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린다면 더 두려울 것입니다. 약속을 붙들고 살면 서광이 비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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