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15-01)
포도나무와 같은 이스라엘
에스겔 15장 1-8절
과일나무는 열매가 맺을 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그 나무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특히 포도나무는 더욱 그렀습니다. 열매가 아니면 나무는 땔감으로 밖에 쓸모가 없습니다.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맺을 때, 그 나무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열매 없는 포도나무와 같아서 불에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목재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땔감으로밖에 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주민의 범법함으로 인해 그들을 불에 던질 땔감처럼 황폐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께서 여호와인 줄 알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무익한 포도나무(1-5)
하나님의 은혜 중에 있는 이스라엘은 풍성한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비유한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포도나무처럼 이스라엘은 열방보다 더 특별한 것은 없지만,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 가치 있는 나무가 됩니다. 하지만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 백성은 열매 없는 포도나무와 같아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4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포도나무를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는 하나의 가지가 여러 갈래로 퍼져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삶의 풍요로움과 행복과 생명을 상징했는데,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 이스라엘과 포도나무
민수기의 정탐꾼 이야기에서 포도나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풍요를 상징하는 표지로(민수기 13:23), 아들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에서 포도주는 메시아 시대의 축복을 상징하는 표지로(창세기 49:10-12) 등장합니다. 요담의 우화에 따르면 포도나무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나무입니다(사사기 9:13). 이스라엘의 가장 이상적 삶은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평안히 사는 것이었습니다(열왕기상 4:25; 미가 4:4).
포도나무와 포도원의 표상은 일찍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데 사용 됐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약속의 땅에 심은 포도나무요(시편 80:8),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가지’요(시편 80:15),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만난 포도요(호세아 9:10), 여호와께서 정성을 다하여 마련한 포도원이었다(이사야 5:1-2a).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포도나무로 그분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았지만, 은혜에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시편 80:91; 호세아 10:1). 이스라엘은 그분의 축복에 배반으로 응답했다. 여호와께서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은 이스라엘이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됐습니다(예레미야 2:21).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란’ 포도원 주인의 기대를 배반하고 들포도를 맺었습니다(이사야 5:2b).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아무 데도 쓸모없기에 잘려질 수밖에 없습니다(예레미야 8:13; 미가 7:1a). 크게 실망하신 여호와께서 포도원의 울타리와 담을 허시고 숲 속의 들짐승에게 넘겨 황폐하게 하십니다(이사야 5:5-6; 예레미야 5:10-14;12:10; 시편 80:12-13).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라는 사실은 예언자들에게도 분명합니다(참조. 마태복음 21:33-46; 요한복음 15:1). 차이가 있다면, 이를 언제나 유효한 신학적 진술로 이해하는 동 시대 사람들과 달리 예언자들은 이를 회고적으로 바라봅니다. 한때는 여호와의 돌봄을 받고 풍성한 열매를 맺었지만, 지금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퇴화된 포도나무일 뿐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잘려 땔감으로 불에 던져지는 것 외에 다른 용도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심으셨다는 값진 전통이 포도나무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에스겔의 포도나무 비유는 이스라엘이 이미 오래전부터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였음을 전제합니다.
(2) 포도나무 비유(1-5)
본문으로 들어와서 다른 단락의 경우처럼 계시의 전형적인 도입부로 시작합니다. 에스겔서에 도합 50회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는 말씀과 선포를 매개로 여호와와 에스겔이 긴밀하게 연합됐음을 보여줍니다.
6절의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가 예언자를 여호와의 메신저로 전제한다면, 이 말씀 사건의 양식은 예언자의 선포에 신적 권위를 더해줍니다. 이스라엘의 신학적 전통을 잘 알고 있는 자들에게 도발적으로 다가왔을 비유가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임을 분명히 해줍니다. 여호와께서 일상적 삶에서 끌어온 비유를 통해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운명에 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2-3절의 질문은 포도나무의 재목으로서의 가치와 유용성에 집중합니다. 포도나무가, 숲속 의 나무들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 가지가 다른 나무보다 나은 게 무엇입니까? 포도나무에서 무엇을 만들 나무가 얻어지겠습니까? 포도나무에서 물건을 걸어둘 못이라도 얻을 수 있겠느냐? 포도나무의 가치가 포도 열매에 있고 그 가지에 있지 않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숲의 다른 많은 나무에서는 집을 짓게 나 가구나 물건을 만드는 목재를 얻을 수 있지만, 덩굴 식물에 속하는 포도나무 가지에서는 어떤 목재도 얻지 못합니다. 포도나무 가지로는 작은 못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포도나무나 잘린 가지는 아무 쓸모가 없기에 땔감으로 불에 들어갈 뿐입니다(4a). 마른 포도나무 가지는 불이 잘 붙기에 불쏘시개로는 나름 유용합니다. 4b-5절의 질문은 ‘목재로서 쓸모없음’을 마지막 단계까지 끌고 갑니다. 땔감으로 불에 넣어진 포도나무 가지는 보통은 완전히 타서 재가 되지만, 불가에 떨어진 가지는 부분적으로만 타고 불이 꺼지는 경우도 있는데, 여호와의 질문은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배경으로 합니다. 불이 양쪽 끝을 살랐고 가운데는 그을었는데, 그것을 무엇에 쓰겠느냐? 보아라. 포도나무 가지로는 온전할 때에도 무엇 하나 만들 수 없었는데, 불에 타고 그은 것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겠느냐? 반문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질문입니다. 잘린 포도나무 가지도 땔감 외에는 달리 소용이 없는데, 불에 타다 남은 포도나무 가지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불쏘시개로 다시 불에 넣어질 뿐입니다.
에스겔의 포도나무 비유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로 알고 있는 청중의 허를 찌르는, 매우 도발적인 비유입니다. 비유의 초점을 포도나무의 열매에서 그 가지로 옮겨 청중이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발가벗겨버립니다. 이스라엘은 ‘포도나무’가 아니라,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또는 ‘잘린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를 자랑하고 싶으면, 심으신 분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심으셨을지라도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더는 그분의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열매가 없을 때 신학적 전통은 죽은 전통이 된다. 예레미야도 유사하게 고발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었도다’(예레미야 11:16). 이스라엘이 좋은 감람나무였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여호와께서 선택하셨다는 신학적 전통이 이스라엘의 실존을 무조건 지켜주지 않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한 시든 나무에 불과하기에, 그것이 감람나무라 할지라도 불에 던져질 뿐입니다.
농부가 열매를 기대하며 나무를 심는 것처럼, 하나님은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믿음의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지금 어떤 믿음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심판받는 이스라엘(6-8)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지 매일 알아가는 것은 성도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거룩함, 사랑, 공의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순종하며 날마다 경험해야 합니다. 은밀한 죄를 반복하다가 벌을 받은 후에야 하나님을 경험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자 말아야 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 포도나무는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6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7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8내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6-8)
여호와의 해석에 따르면 땔감으로 불에 넣어지는 포도나무 가지는 예루살렘 주민의 운명을 상징합니다. 6절은 2-4a절의 해석이고, 7절은 46-5절의 해석입니다.
여호와께서 숲의 나무들 사이에 있는 포도나무를 땔감으로 불에 넣듯이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불에서 빠져나온다 해도 불이 다시 그들을 삼켜버릴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두 번 불 속에 들어갑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불 속에 한 번 들어갔다 빠져나온 포도나무 가지는 주전 597년의 재앙을 가리킵니다. 주전 598/7년의 겨울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배반한 여호야김을 징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성을 포위했습니다. 포위 직전 또는 직후에 여호야김이 죽고, 절박한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저항을 포기하고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했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성문을 열고 굴복함으로써 멸망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유다와 예루살렘은 배반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습니다.
주전 597년 여호야긴을 비롯해 예루살렘의 지배 계급에 속한 자들과 장인들이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아직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주전 597년의 재앙으로 예루살렘은 이미 멸망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두 번째 불은 주전 587년의 재앙으로, 이때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포도나무 가지처럼 되고, 땅이 황무지가 될 때는 물론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8). 이들이 여호와를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4-5)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세상의 물질과 우상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뿌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의 존재는 아무런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게 됩니다. 나무를 떠난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버려지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쓸모없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잘 붙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내려야만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쓰임 받는 인생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열매는 없지만 수려한 포도나무는 쓸모가 없습니다. 과실수에 과일이 없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행위구원이 아니라 그 나무의 생명과 정체성을 증명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인생이 되는 일꾼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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