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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1-02)


교만한 지도자에 대한 심판

에스겔 11장 14-25절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이 유순(柔順)한 사람은 잘 듣고 받아들이지만, 마음이 까칠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 듣지 않고 왜곡해 듣습니다. 자신의 마음 그릇만큼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그릇을 넓혀야 합니다. 그릇을 넓히기 위해서는 자신가 생각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시각을 넓혀야 합니다. 항상 성도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이제 그 땅이 자신들만의 기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쫓겨난 포로된 자들 중에 자신의 성소를 마련하시고, 심판의 기간이 끝나면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통해 예루살렘을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유배민들의 구원(14-21)

“착각은 자유”라는 말처럼,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스스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간과하며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착각은 그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4○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5인자야 예루살렘 주민이 네 형제 곧 네 형제와 친척과 온 이스라엘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16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17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18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19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1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14-21)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새로운 마음과 영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 에스겔에게 임한 말씀(14)

 

구원 현재의 문맥에서 14-21절은 바로 앞에 나오는 에스겔의 중보기도(13)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입니다. 여호와의 단호한 심판 의지를 한 번 더 확증하는 것으로 끝난 그의 첫 번째 중보기도(9:8-10)와 달리 두번째 중보기도에는 긍정적인 응답이 주어집니다.

 

(2) 예루살렘 주민들의 주장(15)

 

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 사이에는 계속되는 긴장과 반목이 있었습니다. 에스겔서의 연대기들이 보여주듯이, 유배민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보좌에 앉혀진 시드기야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온 여호야긴을 여전히 유다의 적법한 왕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에 맞서 예루살렘의 새로운 지배 세력은 구(舊) 지배 세력에 속했던 제1차 바벨론 유배민들을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난 자들로 정죄하였습니다.

여러 면에서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공의의 시각에서 보자면, 유배가 하나님의 징벌에 속하기에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로 바벨론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됩니다. 성전 중심적 시각에서 보자면, 바벨론에는 여호와의 성전이 없어 제사가 불가능하고, 그곳에 사는 유배민들은 제의적으로 부정하기에 여호와를 찾거나 부를 수도 없습니다. 유배민은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전통과 신학으로부터도 유배를 당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결정은 신학과 전통 이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배민들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이미 징벌을 받은 유배민들에게는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에게는 멸망의 심판이 선고됩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의 주장과 달리 유배는 뿌리로부터의 잘림이 아니라, 가나안에 다시 뿌리를 내리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적통(嫡統)이 바벨론 유배민들에게 주어집니다.

 

(3) 유배민들에게 주는 구원 약속(16-20)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유배민들을 하나님 백성의 뿌리에서 잘려나간 자들로 간주합니다.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사는 자들만 여호와께 속한 자들이고, 바벨론으로 쫓겨난 자들은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난 자들로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네 형제 곧 네 형제와 친척과 온 이스라엘 족속’은 간접적으로 예루살렘 주민의 이기심을 고발합니다. 유배민들이 에스겔의 형제인 것처럼 예루살렘 주민도 이들을 형제로 생각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주민은 재앙 당한 형제를 도와주기는커녕 형제의 어려움을 이용해 제 몫을 채우려 했습니다. ‘친척’으로 옮긴 ‘안셰 거울라’는 고엘의 의무를 지고 있는 피와 살을 함께한 친척을 가리킵니다. 씨족의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이 어려움에 처해 자유를 잃었을 때 대속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언하신 여호와께서는 유배민들에 의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을 민족들 가운데로 쫓아내셨지만, 이들이 여호와로부터 완전히 버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성전도 없고 제의적으로 부정한 이방 땅에 살지만, 여호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어주시기에 유배지에서도 여호와와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됩니다(16). 유배가 징벌로 촉발됐지만, 다른 한편 여호와께서 이들과 함께하시는 (영적)회복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이들을 민족들 가운데서 모아 고토로 데려가 ‘이스라엘 땅’을 주시고(17), 돌아온 유배민들은 가나안 땅에서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치워버립니다(18). 유배민들의 귀환으로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죄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귀향민이 다시 죄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한 마음’과 ‘새 영’을 주시고, ‘돌 같은 마음’을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꿔 당신의 율례와 규례를 지킬 수 있게 해주십니다(19). 여호와께서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에 다시는 언약을 파기하는 일이 없어집니다(20). ‘한 마음’은 두 마음에 대조되는 표현으로 나뉘지 않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여호와와 더불어 우상을 숭배하는 혼합주의였습니다.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은 문자적으로는 ‘살(바사르)의 마음’으로 에스겔의 독자적 표현입니다. ‘살’로 옮긴 ‘바사르’는 인간의 피조성과 한계를 함축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살의 마음’은 자신의 존재가 ‘바사르’임을 인정하는 마음, 곧 자신의 사멸적 한계를 인정하고 창조주께 자신의 실존을 의탁하는 마음입니다.

 

(4) 우상숭배자들의 징벌(21)

 

원문이 훼손된 것 같아 21절은 대략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따르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 대해서는, 내가 그들의 길을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유배민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구원 시대에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섬기는 예루살렘 주민은 참여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우상숭배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구원 약속이 주어진 유배민들의 운명과 멸망에 떨어질 예루살렘 주민의 운명이 대조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여호와의 영광(22-23)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은 죄악과 불순종으로 인해 떠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정결한 삶을 살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진정성이 필요합니다. 결국, 경건한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2○그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23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22-23)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십니다. 그룹들이 날개를 펴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함께하는데, 그들 위에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한가운데서 떠올라 성읍 동쪽에 있는 산 위에 머물렀습니다. ‘성읍 동쪽 산’은 기드론 계곡 맞은편에 있는 감람산을 가리킵니다. 정변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에 쫓겨 예루살렘을 떠날 때 다윗도 성에서 나와 감람산 길로 올라갔습니다(삼하 15:30). 동쪽 산에 머물던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어디로 옮겨갔는지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8-11장의 환상은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떠나시는 여호와의 영광에만 집중하고, 그 이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43:1-4에서 에스겔은 동문 어귀에서 동쪽으로부터 와서 동문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여호와의 영광을 봅니다.

8-11장의 환상들은 여호와 영광의 이동 경로에 의해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되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나타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에스겔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8:1-3) 그에게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얼마나 심각하게 타락했는지를 보여주시고(8:4-16) 성의 멸망이 재고의 여지없이 확정됐음을 알려주십니다(8:17-18). 심판은 성전에서 시작해서 성읍으로 확장됩니다(9:6-7). 여호와에 의한 예루살렘의 심판은 그분께서 성을 떠나셨음을 전제하기에 심판에 앞서 그분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지성소의 그룹 위에서 떠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가고(10:4). 문지방에서 나와 성전 오른쪽에 서 있던(10:3) 그룹들 위에 머물다가(10:18)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으로 이동하십니다(10:19). 동문 안쪽에 있던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 바깥쪽으로 나와(11:1) 성읍을 지나 성읍 동쪽에 있는 산에 머무십니다(11:23).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와 지리적 위치에 일치하여 여호와의 영광은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옮겨가십니다.

 

환상을 맺는 말(24-25)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개인의 신앙을 넘어서 공동체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깨닫게 합니다. 결국, 신앙의 실천과 복음의 전파가 필요하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4주의 영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영의 환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본 환상이 나를 떠나 올라간지라 25내가 사로잡힌 자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을 말하니라(24-25)

 

유배지의 자기 집에서 장로들과 함께 있던 에스겔을 환상 중에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셨던(8:3) 여호와의 영이 그를 다시 바벨론 유배민들 가운데로 데려가십니다. 환상이 떠나간 후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모든 것을 유배민들에게 알려줍니다. 첫 번째 환상 경험에서는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반응하였는데(3:14), 두 번째 환상 경험에서는 예언자의 직분을 수행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새로운 마음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앙의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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