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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1-01)


교만한 지도자에 대한 심판

에스겔 11장 1-13절


 

조직이나 단체 따위에서 전체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일컬어 리더(leader)라고 합니다. 리더가 어디로 이끄느냐에 따라 전체의 방향이 정해지기에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 보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 본문은 환상 중에 성전 동문에서 악을 꾀하는 25명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헛된 낙관주의를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그들을 향한 심판을 선고하게 하십니다.

 

도입부(1)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화의 기회를 주시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그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서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그 문에 사람이 스물다섯 명이 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그들은 백성의 고관이라(1)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지역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에스겔에게 한 장면을 더 보여주십니다. 그분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올려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으로 데려가십니다. 10:19에 의하면 성전 오른쪽에 있던 그룹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으로 이동해 머물렀습니다. 이제 환상의 무대가 성전 울타리 안에서 성전 울타리 밖으로 옮겨집니다. 동문 어귀에서 에스겔은 백성의 고관 스물다섯 명이 모여 있는 것을 봅니다. 고관의 수 ‘스물다섯’은 성전의 현관과 번제단 사이에서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태양을 숭배하던 자들의 수(8:16)와 일치합니다. 숫자가 같기에 때로는 동쪽을 향하여 태양에게 예배를 드리는 자들과 백성의 고관들을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위치는 두 집단이 동일하지 않음을 시사해줍니다. 고관들이 모여 있는 동문 어귀는 번제단이 놓인 안뜰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들은 안뜰이 아니라 안뜰 밖에 있었습니다. ‘백성의 고관’은 이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치 지도자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고관들 가운데 두 사람은 실명으로 언급합니다.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로, 에스겔은 유배당하기 전에 이들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환상의 내용에 역사성과 사실성을 더해줍니다.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는 13절에 다시 등장합니다.

 

고관들을 책망하시는 여호와(2-3)

지도자들과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데 필수적입니다. 또한,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며, 그들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반드시 이루신다는 경고를 통해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우십니다.

 

2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 중에서 악한 꾀를 꾸미는 자니라 3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하나니(2-3)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악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경고를 전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하십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1) 고관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2)

 

예루살렘 왕궁의 권력을 장악한 신흥 세력은 유배 이후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치명상을 입은 유다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능력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 중에서 악한 꾀를 꾸미는 자(들)’이었습니다(2). 백성의 지도자란 자들이 실상은 불법을 일삼고 악을 모의하는 자들이었습니다.

 

(2) 인용문(3)

 

3절의 인용문은 이들이 꾸민 악한 꾀(계획)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참조. 8:12).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그 자체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현재의 문맥에서는 고관들의 자만심을 담고 있는 말 같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가마에 안전하게 보관된 고기에 비유합니다. 예루살렘 성이 가마처럼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우리’가 가마의 고기처럼 남아 있기에 예루살렘의 위기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집을 건축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전시의 위기를 반영한 언급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집이 많이 남아 있기에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주전 597년의 첫 번째 유배 때 주로 예루살렘 사람들이 사로잡혀 갔기에 집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새로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자들은 주전 597년의 파국에서 어떤 경고나 교훈도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항복과 유배의 재앙은 이들에게는 이미 지나간 과거사에 속했기에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고발과 심판(4-12)

하나님게서는 악한 행동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개인과 사회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진정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 5○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6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웠도다 7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성읍 중에서 너희가 죽인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인데 너희는 그 가운데에서 끌려 나오리라 8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니 내가 칼로 너희에게 이르게 하고 9너희를 그 성읍 가운데에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넘겨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니 10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심판하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1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에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심판하리니 12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4-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악한 행동에 대해 심판하신다고 경고합니다. 이 구절은 회개와 진정한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돌아가야 함을 일깨웁니다. 또한, 개인과 공동체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책임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1) 예언의 명령(4-6)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자만심에 빠진 자들에 맞서 예언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혀 이들의 교만을 고발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것까지도 아시기에, 그분의 고발은 항상 정당합니다. ‘너희 마음’은 문자적으로는 ‘너희 영’으로, ‘여호와의 영’과 대조를 이룹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에 힘입어 말씀을 선포하고, 이스라엘 족속(집)은 자기 영에 따라 처신합니다. 불의와 악한 계획만 자라나는 마음(영)이 동하는 대로 행동하기에 폭력과 불법이 일상사가 됩니다. 백성의 고관들과 이스라엘 족속 모두 제 마음의 악한 생각에 따라 이웃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예루살렘 거리가 폭력에 희생당한 자들의 시체로 가득 채워집니다(참조. 8:23b; 9:9a).

 

(2) 심판: 사로잡혀 끌려가는 자들(7-14)

 

고관들의 정치적 자만과 이스라엘 족속의 폭력성을 고발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고관들이 사용한 비유를 활용해 이들에게 엄중한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가마의 해석은 일단 같고, 고기의 해석이 달라집니다. 고관들이 자신들로 주장한 가마의 고기를 여호와께서는 이들에 의해 살해당한 자들로 해석하십니다(7). 고관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폭력에 희생당한 자들이 가마의 고기가 됩니다. 예루살렘은 불의와 불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살해당한 자들의 시체로 거리를 가득 채운 성입니다. 고기가 부패하면 가마에서 꺼내져 버려지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불법과 폭력의 성으로 만든 자들을 여호와께서 성 밖으로 끌어내실 것입니다. 10장에서는 불로 심판하시는데, 여기서는 칼로 심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이 두려워하는 칼을 불러들여서 징벌하십니다.

8절의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니’가 주전 597년의 경험을 반영한다면, 여호와께서 다시금 바벨론을 불러 예루살렘을 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자로 믿는 여호와께서 이들을 성읍에서 끌어내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 징벌하시고 이스라엘 국경에서 심판하십니다(9-10).

여호와께서 고관들의 말을 부정적으로 인용해 다시금 이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내용상 앞에 나온 것의 요약입니다. 가마 안에 있는 고기처럼 안전을 확신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은 결코 가마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11).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그 안에 담긴 고기가 된다’는 주장은 위정자들의 허풍에 불과합니다. 성에는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과 이들에 의해 희생당한 자들뿐이기에, 부패한 고기가 가마에서 꺼내 버려지는 것처럼 모두 성에서 끌어내집니다. 예루살렘이 골짜기에 둘러싸여 있어서 정복하기 힘든 성이지만, 여호와께서 적이 되셨기에 물리적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1b절의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심판하리니’는 10a절의 문자적 반복이고, 내용상 9절의 요약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예루살렘은 18개월에 걸친 포위 공격 끝에 주전 587년 7월 말에 함락당했고, 지배 계층의 일부는 사로잡혀 바벨론 원정군의 사령부가 있던 리블라(다윗 영토의 북쪽 경계; 6:14)로 끌려가 처형당했습니다(왕하 25:1-7). 바벨론 침략군은 점령한 지 대략 한 달이 지나 8월 말에 예루살렘을 불살라 잿더미로 만들고, 성벽을 허물어버리고, 사로잡은 자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왕하 25:8-11).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칼에 맞아 쓰러지게 하시고 이스라엘 족속을 국경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실 때는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율례와 규례를 따르지 않고, 주변 민족들의 규례를 따랐기 때문입니다(12). 6절에서 전제된 예루살렘을 지배하는 불법과 폭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보여즙니다. 이스라엘은 종교적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간에서도 여호와의 명령을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의 지위와 특권을 포기하고 민족들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연결구: 에스겔의 반응(13)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슬퍼하시며, 이는 그분의 사랑과 정의를 나타냅니다. 개인의 행동은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므로, 서로를 위해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진정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으며, 믿음의 회복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13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13)

 

에스겔이 예언을 하는 중에 스물다섯 명의 고관들 가운데 한 사람인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갑자기 죽고, 이를 보고 있던 에스겔은 땅에 쓰러져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에스겔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일종의 징조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브나야’는 ‘건축하다’를 뜻하는 동사 ‘바나’와 신명 ‘야훼’의 단축형 ‘야후’가 결합한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를, ‘블라다’(펄라트야후)는 ‘구하다’를 뜻하는 동사 ‘팔라트(피엘)’와 ‘야후’가 결합한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구하셨다’를 의미합니다. 에스겔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의 죽음에서 여호와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참조. 삼하 7장)의 완전한 멸망을,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고 모두 죽음에 처하게 될 여호와의 철저한 심판 의지를 읽고,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 다시 한 번(9:8) 개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악한 행동에 대한 심판과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아시며, 진정한 슬픔과 회개를 원하십니다. 개인의 선택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믿음의 회복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현대인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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