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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2-01)


깨우쳐 회개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에스겔 12장 1-16절


 

몇 년 전에 겨울에도 서울 시내를 맨발로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최춘선’이란 분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미친 노인’ 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를 유심히 살핀 취재 PD는 미친 행동으로 보지 않고, 그 속에 메시지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삶이 방송 후에, 사람들은 그 분을 ‘맨발의 천사’라고 물렀습니다. 이처럼 어떤 메시지를 몸으로 전달하는 행위를 ‘퍼포먼스(performance)’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행위가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 본문에 나타난 에스겔의 행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강력한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짐을 싸서 포로로 끌려가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예언하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관련한 다섯 개의 표적 행위

에스겔 12장 1-16절(유배)과 17-20절(황폐해진 성읍)의 두 표적 행위는 주제와 사건의 전개에 있어 4:1-5:17에 수집된 세 표적 행위의 연속입니다. 첫 번째 표적 행위(4:1-3)는 적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을, 두 번째(4:9-17)는 양식이 바닥난 포위당한 성의 굶주림을, 세 번째(5:1-17)는 성의 점령과 멸망을, 12:11b의 네 번째 표적 행위는 사로잡힌 자들의 유배를, 12:17-20의 다섯 번째는 폐허가 된 땅에 남은 자들의 절망적 형편을 시연합니다. 포위-기근-함락-유배-황폐로 구성된 다섯 개의 표적 행위는 고대 근동에서 성을 공격해 함락해가는 일반적인 과정과 일치합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지 못하고 완전한 멸망에 떨어질 것을 보여줍니다.

 

유배를 예고하는 상징 행위(1-7)

사역자들은 인간적으로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백성들에게 바르게 전달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고충이 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완악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지시하십니다.

 

1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3인자야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4너는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네 포로의 행장을 밖에 내놓기를 끌려가는 포로의 행장 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들의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되어 가는 자 같이 하라 5너는 그들의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따라 옮기되 6캄캄할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라 하시기로 7내가 그 명령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장을 끌려가는 포로의 행장 같이 내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장을 내다가 그들의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1-7)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은 상징적으로 자신의 짐을 지고 포로처럼 행동하며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그로 인한 심판을 알립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백성이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회개하길 바라십니다.

 

(1) 도입부(1)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보편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전달하셨습니다. 하지만 항상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본 것을 인정하지 않고 들은 것을 부정했습니다. 표적 행위의 명령에 앞서 먼저 이스라엘의 완악함에 관한 고발의 말씀이 나옵니다.

 

(2) 책망의 말씀(2)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 반역하는 집입니다(2, 참조. 사 6:9-10). 여호와께서는 환상과 말씀의 계시를 통해 당신의 심판 의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셨지만, 이스라엘은 눈을 닫고 귀를 막고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이 있었지만, 귀와 눈이 영적으로 그 기능을 상실했기에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배는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의 자기파멸적 반역을 고발하신 후,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표적 행위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여호와의 명령은 반복적이고 때로는 혼란스러워 세부적으로는 이해가 어렵지만, 전체적으로는 분명합니다. 그분의 명령은 함락한 성의 약탈에 뒤이은 유배를 배경으로 합니다.

 

(3) 표적 행위의 명령(3-6)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보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유배 짐을 싸서 끌려가는 것처럼, 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3). ‘포로의 행장’은 문자적으로는 ‘유배의 그릇’으로, 먼 길을 가는 여행에 가장 요긴한 최소한의 짐으로 꾸려집니다. 3-7절에 일곱 번 반복 사용된 ‘그들의 목전에서’는 에스겔의 행위가 반드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가운데 행해져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낮에’도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선택된 시간 같습니다. ‘혹’은 ‘울라이’의 번역으로, 어떻게 해서든 당신 백성이 파국적 심판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그분의 절망적 기대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시지만, 그래도 마지막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다음 세 절은 3절의 명령을 시간별로 세분합니다. 유배 짐을 싸서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밖에 내놓았다가, ‘저물 때에 (너는) 그들의 목전에서’ 유배를 떠나듯이 떠납니다(4). 성을 떠나는데 특이하게도 ‘그들의 목전에서’ 벽을 뚫고 나갑니다(5). 또 ‘캄캄할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않습니다(6). ‘성벽을 뚫고’는 적의 공격으로 무너진 성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데, 12절의 해석에 따르면 시드기야의 탈출을 위해 그의 부하들이 성벽을 뚫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지어다’가 유배와 관련해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불분명하기에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사로잡혀 떠나가는 수치나 강제로 고향 땅을 떠나야 하는 고통이나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끌려가는 두려움을 보여주는, 유배자의 감정과 관련한 표현으로, 또는 다시는 고향 땅을 보지 못하게 될 것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표적 행위를 낮과 저녁과 밤의 세 번에 걸쳐 행하게 하신 배경도 불분명합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밤에 군대가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저물 때’와 ‘캄캄할 때’는 포로를 이송하기에 적합한 때가 아닙니다. ‘캄캄할 때’는 차라리 적의 눈을 피해 도주하기 용이한 때입니다.

 

(4) 명령의 행위의 명령(7)

 

에스겔은 여호와의 명령을 그대로 실행에 옮깁니다. 낮에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내놓았다가 저물 때에 손으로 벽을 뚫고, 어두울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갔습니다(7). 행위만 간략하게 전하는 에스겔의 보고에 따르면 낮에는 유배 짐을 싸서 밖에 내놓고 저녁에는 벽에 구멍만 뚫고 밤에 짐을 메고 나간 것 같습니다.

 

표적 행위의 해석(8-16)

개인이나 공동체의 불순종은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종종 경고와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행동과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므로, 그로 인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삶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비록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은 항상 회복과 구원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8○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그 반역하는 족속이 네게 묻기를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더냐 10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에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 하셨다 하고 11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도 포로로 사로잡혀 가리라 12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장을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장을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리라 하라 13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에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14내가 그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15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나라 가운데에 헤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16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들이 이르는 이방인 가운데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8-16)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과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경고를 전합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그들의 죄와 심판을 알리도록 지시받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 일부는 구원받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1) 도입부(8-9)

 

표적 행위가 낮에(3-4a) 시작해서 저녁을 지나(4b-5) 밤에(6) 끝나기에(7) 여호와의 말씀이 다음 날 아침에 주어집니다(8). 모든 표적 행위를 ‘그들의 목전에서’ 행하였기에 ‘이스라엘 족속 곧 반역하는 족속’의 질문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말할 답변을 에스겔에게 주십니다(9).

 

(2) 왕과 백성의 유배(10-15)

 

먼저 표적 행위(신탁)의 대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제후’(나시)와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이 언급됩니다(10). 에스겔은 왕을 자주 ‘나시’로 표현하는데, 여호와를 만왕의 왕으로 전제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유배를 모면하고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이 모두 사로잡혀 끌려가지만(11,15), 유배의 초점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운명에 맞춰집니다. ‘나시’의 (유배와) 탈주를 언급하는 12절은 5-6절을 거의 문자적으로 반복합니다. ‘어두울 때에’는 히브리어로는 ‘캄캄할 때’와 같습니다. 시드기야가 부하들이 성벽에 뚫은 구멍을 통해 도망하지만, 사냥꾼이 길목에 쳐놓은 그물에 짐승이 걸리듯이, 여호와께서 그를 잡으시려고 친 그물에 걸려 바벨론으로 끌려가 거기서 그 땅을 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13). 여호와께서 그를 호위하는 자들과 군대를 사방으로 흩으시고 칼을 빼 들고 뒤쫓으시기에, 시드기야의 도주는 어떤 경우에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12절의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얼굴을 가리리라’가 13절의 ‘그 땅을 보지 못하고’에 연결된다면, 수치스럽게 성을 빠져나간 시드기야가 눈멀게 될 것을 암시해주는 말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12-14절의 서술은 시드기야 왕의 마지막을 보고하는 열왕기하 25:4-7에 대체로 일치합니다.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고 진입하자 어둠을 이용해 시드기야가 탈출을 시도합니다. 시드기야는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윗성 남동쪽에 위치한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을 통해 동쪽 아라바 길로 도망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여리고 평지에서 바벨론의 추격군에 따라잡힙니다. 호위병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시드기야는 사로잡혀 느부갓네살의 사령부가 있던 리블라(6:14의 디블라)로 잡혀갑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앞에 끌려간 시드기야는 주군을 배반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릅니다. 그는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후에 두 눈을 빼앗기고 사슬에 결박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두 눈을 잃었기에 바벨론에 끌려가서도 바벨론 땅을 보지 못합니다.

 

(3) (제2차) 유배민들의 역할(16)

 

16절은 죄의 고백보다는 살아남은 자들의 역할과 관련한 언급입니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넘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민족들 가운데 살며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동사 ‘사파르’를 번역한 ‘자백하게 하리니’는 ‘이야기하게 하리니’로 옮겨야 합니다. 주전 587년의 유배민은 하나님 백성의 계승자로 남겨진 것이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자신들과 온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민족들 가운데 알리는 역할이 주어졌을 뿐입니다(14:21-23; 참조. 6:9). 이들을 통해 민족들은 하나님 백성의 타락과 불법이 그분의 심판을 초래했음을 알게 됩니다. 곧, 이스라엘의 멸망이 이들의 우상숭배와 불의를 징벌하시는 여호와의 심판이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상징적 행동은 우리의 삶에서 신앙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행동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올바른 선택을 통해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회복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희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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