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05-01)
의인 한 명이 없는 예루살렘
예레미야 5장 1-9절
그리스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죽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와서 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당신이 내 앞에서 햇볕을 가리지 말아 달라!”라고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또 이 사람이 유명한 것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그리스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정직한 사람을 찾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정직한 사람을 몇 명이나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에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하나도 없으며, 유다 백성은 여호와의 길과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배부르며 부유하나 음욕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버리고 떠난 유다 백성을 반드시 징계하실 것입니다.
한 명의 의인이 없는 예루살렘(1-6)
사람들은 혼자 정의롭게 살아봤자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게 지혜롭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꼐서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의 의인을 주목하십니다. 한 사람의 의인을 보시고 그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심판을 철회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로 했습니다. 심판하시기 전에 의인이 있다면 심판을 유보한다고 했습니다. 그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1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2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찌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3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찌라도 그들이 아픈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찌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4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 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1-6)
하나님께서는 유ㅠ다 백성을 향해 예루살렘 거리로 다니면서 ‘정의를 항하여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의인 10명을 찾으신 것과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ㅇ었는데 예루살렘에는 의인 1명이 조건으로 제시된 것을 볼 때 예루살렘의 죄악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1) 의인이 없는 예루살렘(1)
하나님께서 복수의 청자 ‘너희’에게 주시는 말씀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1).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는다면, 그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읍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옛적에 소돔을 구하기 위해서는 의인 열 명이 필요했는데(창 18:23-33), 예루살렘의 용서는 의인 한 명만으로도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성읍도 아닌, 여호와의 성전과 다윗 왕조가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선포되는예루살렘에서 단 한 명의 의인이 없어 멸망을 피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 악함에 있어 예루살렘은 소돔을 압도했습니다(참조, 겔 16:47-48). 소돔에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했다면, 이제 단 한 명의 의인도 없는 예루살렘이 멸망을 피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2) 여호와 이름의 남용(2)
한 명의 의인도 없다는 하나님의 주장은 어쩌면 예루살렘 주민에게 황당하게 들렸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했지만, 이는 모두 거짓 맹세였습니다(2). 고대 세계에서 특정 신의 이름을 부르며 맹세하는 자는 자신이 그 신의 통치 아래 있음을 전제하는 행위로, 일종의 신앙고백과도 유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자들은 원칙상 여호와의 통치를 인정하는 자들, 곧 여호와께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사람들은 입술로만 여호와의 통치를 인정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자들이었습니다(참조, 출 20:7). ‘정의’는 일차적으로는 이웃들 사이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으로 사회·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불법과 폭력을 멀리하는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경험되고(참조, 7:5-6), ‘올곧음’을 의미하는 ‘진리’는 ‘거짓’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참조, 9:3)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교훈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나타납니다(참조, 7:28).
(3) 열매 없는 하나님의 징계(3)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 거리와 광장을 찾아가 살펴본 결과, 예언자는 낙담하였습니다. 예언자는 자신이 경험한 예루살렘 주민들의 영적 무능력과 완악함을 탄식하듯 보고합니다. 여호와께서 찾으시는 올곧게 사는 사람이 예루살렘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자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들 영적으로 무감각하여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3a). 이들은 거듭 임하는 재앙에서 이스라엘의 실존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재앙의 배후를 살펴 그분의 의지를 읽어내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도를 더해가며 치셨지만, 이들은 그분의 징계를 받아들이기는커녕 그럴수록 더욱 완강해져 갔습니다. 얼굴을 바위보다 더 굳게 하며 돌아오기를 거절했습니다(3b). 하나님의 징계가 아무 결실도 보지 못하고, 거꾸로 노골적 반감만 초래했습니다.
(4) 예언자의 착각(4-6)
예언자는 자기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인정합니다. 한때 그는 예루살렘 주민 가운데 다수는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할지라도 지배 계급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예루살렘 거리나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지위가 낮은 계층의 사람들로 배우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법을 알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그들은 어리석게 처신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길, 저희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4절의 사역). ‘여호와의 길’을 모르는 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찾는다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분명 지배 계급에 속한 자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이들을 찾아가 보았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도자들이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리라는 기대는 온전히 예언자의 착각이었습니다(5). 이들은 하나님의 길과 법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었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안다는 자들이 모두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는 소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길과 법을 모르는 비천한 자들은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길과 법을 아는 지도자들은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습니다.’ 아는 자나 모르는 자나 하나님을 떠나 제 생각과 결정에 따라 산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비천한 자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난한 자들을, ‘대인들’로 옮길 수 있는 ‘지도자들’은 왕궁의 관료와 성전의 종교 지도자, 부자와 지역 사회의 장로와 같은 지배계층을 구성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의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할 수 없는 예루살렘이기에 심판이 확정됩니다.
(5) 멸망의 심판(6)
하나님께서 택하신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길과 법을 아는 자가 한 사람도 없어 모두가 멸망을 당합니다. 숲속의 사자가 물어뜯고, 사막의 이리가 찢어발기고, 표범이 성을 엿보다가 나오는 자들을 모두 갈기갈기 찢어 죽이듯이 모두 죽음에 넘겨집니다(6). 모든 성읍이 파괴되고 폐허가 됩니다.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하기 때문에’ 심판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고 철저하게 집행됩니다.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7-9)
의인 한 사람이 없어 멸망을 당했던 예루살렘은 타락한 인간의 영적 무능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의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도는 생명과 진리와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는 무엇입니까?
7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 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9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7-9)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용사할 수 없다고 학정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꼐서 아닌 것, 곧 우상을 두고 맹세했고(7a),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저질렀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상기시키십니다.
(1) 수사적 질문(7aa)
화자가 예언자에서 하나님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예루살렘의 우상숭배와 배은망덕과 파렴치를 고발하십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거짓 맹세를 일삼을 뿐만 아니라(2), 더 나아가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기도 했습니다(7a). 필요에 따라 여호와의 이름으로도, 우상의 이름으로도 맹세했습니다. 혼합주의의 늪에 빠져 우상을 섬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공적 자리에서는 여호와를 찾고, 사적 자리에서는 우상을 찾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다가도 환난을 당하면 여호와께 구원을 간구했습니다(참조, 2:27). 이들의 악행은 한계를 몰랐습니다.
(2) 책망의 말씀(7ab-8)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 도다”(7b-8). 하나님의 축복으로 배가 부르자 복을 주신 분을 잊고 간음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돌리기는커녕 그분께서 주신 풍요를 파렴치한 짓거리에 썼습니다. ‘창기의 집’과 ‘이웃의 아내’는 간음이 우상숭배보다는 윤리적 타락과 관련해 사용됐음을 보여줍니다. 종교적 혼합주의의 간음이 윤리적 간음을 조장합니다. 욕정을 주체할 수 없는 우상숭배자들은 성욕을 채우기 위해 무리 지어 창녀의 집으로 몰려다닙니다. 발정기의 수말이 암말을 찾아 들판을 헤매며 돌아다니듯, 음란에 빠진 예루살렘 사람들이 헐떡이며 제 이웃의 아내를 뒤쫓습니다. 종교적 간음에 빠진 자들에게 윤리적 간음은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참조, 29:23). 예루살렘 사람들의 종교적 간음과 윤리적 간음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3) 수사적 질문(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9). 하나님께서 용서의 한계를 넘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종교적·윤리적 타락에 책임을 물어 보복을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의 보복’은 악인에 의해 훼손된 그분의 정의를 바로잡는 사법적 행위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의인에게는 구원으로, 악인에게는 심판으로 구체화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그분의 길과 법’을 잊어버리고 ‘이런 나라’, 곧 우상을 숭배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이방 민족들 가운데 하나로 변질되어 하나님의 보복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눈이 의로운 자 한 사람을 찾고 계실 때,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 되길 원합니다. 불신앙과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해드릴 수 있는 의로운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에는 의인 한 명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한 사람이라는 책임감으로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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