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01-02)
지켜보시며 지켜주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1장 11-19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보내시는 분 이십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부르시는 것을 소명이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는 것을 사명, 미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르시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 사명을 주시고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다 사명 받은 사람입니다. 사명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맡은 사명을 온전히 책임감 있게 감당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시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소명을 확신하도록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 환상과 끓는 가마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먼저는 함께하심에 대해 약속하시고, 이어서 예언한 메시지의 내용을 알려 주십니다. 이러한 환상으로 두려워하는 예레미야에게 다시 한 번 함께하심에 대한 약속으로 격려하며 권면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모두 유다에 전하라고 명령받습니다.
두 가지 환상(11-15)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인간이 만든 우상을 섬기면,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기다려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이는 예레미야에게 구원 사역에 대한 비전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1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13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15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11-15)
예레미야에게 나라들과 왕국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시는’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 번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두 환상은 하나님의 질문과 예언자의 답변과 하나님의 해석이라는 동일한 구조로 보고됩니다.
(1) 살구나무 가지 환상(11-12)
첫 번째는 언어적 유사성을 활용한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주시고 그 의미를 해석해주십니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함이라”(12). 이른 봄에, 때로는 1월 말에서 2월 초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로 알려진 살구나무(편도나무)의 어원을 활용한 해석입니다. ‘살구나무’의 히브리어 ‘샤케드’는 ‘지켜보다’를 의미하는 동사 ‘샤카드’에서 나온 이름이고, 12절의 ‘지켜’로 옮긴 히브리어 ‘쇼케드’는 동사 ‘샤카드’의 현재분사 형태입니다.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들로 자음이 같고 발음도 거의 유사합니다. 살구나무가 봄이 오는 것을 지켜보듯이 하나님께서 당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십니다. 예레미야를 당신의 예언자로 부르신 분께서 모든 것을 지켜보시다가 때가 되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2) 끓는 가마 환상(13-15)
두 번째는 상징을 활용한 환상으로, 예레미야가 앞으로 선포하게 될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예레미야가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를 봅니다. 아마도 가마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진 채 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마에서 끓는 내용물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하지 않았지만, 가마가 엎어진다면, 그 안에서 끊는 것은 쏟아지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기울어져 끓는 가마가 상징하는 바를 알려주십니다.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14). 여기서는 재앙의 내용에 관해서는 생략하고, 재앙이 오는 방향만 언급합니다. 재앙이 덮치는 대상인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은 15-16절이 보여주듯이 일차적으로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주민들이지만, 10절은 민족들도 이 재앙에서 안전하지 못할 것을 시사합니다. 예를 들면, 25:11에서 예레미야는 민족들이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길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재앙이 임하는 이유는 16절에서 설명됩니다. 북방에서 내려오는 재앙은 20:46에 가서야 바벨론으로 밝혀집니다. ‘북방으로부터 오는 재앙’이 예레미야가 선포해야 할 핵심 메시지가 됩니다.
북방에서 오는 재앙과 그 원인(15-16)
유다가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했다면 이런 끔찍한 재앙의 채찍을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고 그 징계로 하나님의 재앙이 찾아왔습니다. 우리의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주관자이심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형통한 삶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15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15-16)
현재의 문맥에서 이 두 절은 14절을 이증적으로 보충해줍니다.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는 북방의 재앙은 정치적으로는 북방 민족들에 의한 유다와 예루살렘 침략이 원인입니다. 그러나 신학적인 측면에서 틀 때, 재앙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우상숭배가 초래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겉으로는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 침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소국의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의 죄악을 징계하시는 전쟁입니다. 15절의 ‘내가’로 옮긴 ‘힌니’는 ‘보라/이제 내가’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레미야가 환상 중에 본 북방의 재앙은 먼 미래에 발생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즉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재앙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치려고 불러들이시는 치명적 재앙입니다.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은 침략군이 여러 민족들로 구성된 제국의 군대임을 시사합니다. 유다와 같은 변방의 작은 나라가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 막강한 군대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제국의 군대는 용병들과 자국민 병사들과 봉신국의 징집된 병사들로 구성된 다민족 다국적 군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 북방 왕국들의 침략군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보좌)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에 맞서 싸웁니다. 유다의 성읍들도 침략을 고하지 못하지만, 공격의 주요 목표는 예루살렘입니다. 성문을 중심으로 구역을 나눠 왕들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며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 포위 공격을 합니다. 엎어진 가마의 뜨거운 물(기름?)이 북방에서 흘러 예루살렘 성문 입구까지 다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북방 왕국들을 불러 유다와 예루살렘을 침략하게 하실 때는 당연히 그렇게 하실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16). 유다와 예루살렘의 배교와 우상숭배가 재앙을 초래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악’(라아)에 대해 북방의 ‘재앙’(라아)으로 징계하십니다.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은 민족들이 신들로 섬기는 우상들의 본질을 폭로하는 표현입니다(참조, 10:3b-5, 8-9). 예레미야서의 문맥에서 볼 때,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고발(우상숭배)과 심판 선포(북방에서 내려오는 재앙)를 거절한 결과로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다가 멸망했습니다. 파국의 원인이나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서는 안됩니다.
예언자의 파견(17-19)
교회와 세상이 들어야 할 말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는 증인들을 이길 수 있는 세상도 없고 교회도 없습니다. 그렇게 소신 있는 사역자를 교회는 지켜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들과 동행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담만이 아니라 목적이기도 합니다. 일의 성취에 몰두하기보다 내가 놋성벽이 되어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17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보라 18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7-19)
심판의 메시지를 전지자를 완악한 시대가 용납하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동행하시면 스스로 아이같이 여기는 선지자가 난공불락의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길 세력이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맡고 그분과 동행하는 선지자를 이길 자는 없을 것입니다.
(1) 순종 권면(17)
마지막 단락은 예언자 개인에게 주는 권면과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와 예루살렘이 북방의 재앙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이들의 우상숭배를 고발하고 북방의 재앙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도 고난의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예언자로 불러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하나님께 의지해 적다적인 청자들에 맞서야 합니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저항에 부딪혀 심한 좌절과 고난을 겪겠지만, 끝내 승리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단락 서두의 ‘그러므로’는 ‘그러나’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17절의 명령은 소명기사의 일부 내용을 반복하는데, 전반절은 7b절을, 후반절은 8절을 받습니다. ‘허리를 동이고’는 결단과 행동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일하러 나가거나 여행을 떠날 때, 또 싸움에 나설 때 겉옷이 방해되지 않게 허리를 묶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선포의 외적 환경이 호전적일지라도 예언자는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너는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두려워 떨게 하리라’(17b),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예레미야를 징계하셔서 그로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 떨게 하실 것입니다. 예언자는 청중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선포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2) 견고한 성(18)
예언자의 직분에 충실할 것을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뇌성벽이 되게’해 줄 것을 약속하십니다(18). 하나님의 약속은 다른 한편으로 예언자가 모든 백성, 특히 정치·종교·사회 지도자들로부터 대놓고 공격받게 될 것을 시사합니다. 북방 왕국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듯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에워싸고 공격합니다.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예레미야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3) 구원 약속(19)
하나님께서 누구도 함락할 수 없는 ‘견고한 성읍’, ‘쇠기둥’, ‘성벽’으로 만들어주시기에, 적들이 집요하게 공격할지라도 예레미야를 이기지 못합니다(19).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예레미야이기에(20:7; 1:7), 대적들이 결코 그를 이길 수 없습니다(20:11). 듣기 싫어하는 고발과 심판의 말을 선포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환난을 피할 수 없겠지만, 예레미야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19b)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 맡겨진 사명을 충실하게 완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예레미야에게 환상과 약속으로 확신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지금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습니까? 오직 말씀을 성취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이 살아질 것입니다.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것처럼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용기를 얻어서 주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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