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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02-01)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예레미야 2장 1-8절


한자성어 ‘조변석개(朝變夕改)’, ‘조령모개(朝令暮改)’, ‘작심삼일(作心三日)’ 등은 사람들이 자꾸 변하는 속성을 잘 말해줍니다. 자꾸 변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변질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변질되면 사람을 해롭게 하여 해치게 됩니다. 변질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은 변질된 신앙을 가진 이들입니다. 변질된 신앙의 무서움을 명심하고 우리 인생길 종착역에서 기다리시는 주님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성도가 됩시다.

 

여호와께서는 과거 이스라엘의 순종을 기억하십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신실한 언약적 사랑을 나누었던 광야시절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망각과 무관심을 질타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 땅을 더럽히며, 지도자들 또한 악을 행합니다. 그들의 죄악은 두 가지, 곧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한 광야의 이스라엘(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하여 깨뜨려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십니다. 본래적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실 것입니다. 그 까닭에 이스라엘이 관계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로서는 단지 하나님의 주도적인 갱신 행동에 응답할 수만 있을 뿐이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3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3)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자격과 상관없이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언약을 맺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광야에서 은혜 때문에 사랑을 나누었던 신혼 시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를 회상하시며 이스라엘의 과거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와 그 정체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 말씀의 계시(1)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말씀을 주시며 ‘예루살렘의 귀에’ 외치게 하십니다. 선포해야 할 말씀은 이스라엘 초기 역사와 관련한 하나님의 회고적 평가입니다.

(2) 광야의 신혼(2)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2)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한 광야의 여정을 신혼의 밀월여행으로 기억하십니다.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부족하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열심을 다하여 남편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만 따랐습니다. 4절 이하와 함께 읽으면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실망, 그리고 어떻게든 처음 사랑을 회복해보려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의 동의어로 사용된 ‘인애’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 헌신’을 가리킵니다. ‘씨 뿌리지 못하는 땅’은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가나안 땅에 대비되는 표현입니다. 척박하고 위험한 땅이지만, 광야는 풍요 제의를 주관하는 바알이 없는 곳으로 이스라엘이 여호와만 따른 구원의 장소입니다.

(3) 여호와를 위한 성물(3)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소유관계로 표현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이었습니다. 구별되어 여호와께 드려진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할 그분을 위한 민족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9:6에서도 유사하게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소산 중 첫 열매도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 줍니다. 수확의 첫 열매가 하나님의 몫으로 돌려지는 것처럼(참조, 출 23:19a),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로부터 구별되어 그분의 몫으로 드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내로, 그분의 소유물로 남아있을 때 이스라엘은 남편과 소유주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남편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 그분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분의 보호는 중단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내요 소유물이라는 사실 자체가 구원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결혼 관계 안에 있을 때만, 소유관계 안에 있을 때만 그분의 보호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버린 가나안의 이스라엘(4-8)

미국의 청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소위 ‘파티 문화’랍니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자주 파티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 때 분위기에 휩쓸려 성관계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경우 동거하기도 합니다. 이 때 자신의 신앙과 삶 사이에 감당하기 힘든 괴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양심의 가책에 지치고 죄악된 생활 방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경우 결국 신앙을 저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지적 회의나 교회에 대한 실망감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이런 도덕적 타협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는 것입니다.

4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5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8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4-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가장 값진 소유입니다. 성물과 첫 열매는 아무도 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것으로 제사장과 그 직계만 먹을 수 있었고, 그것을 어기면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은 그토록 소중했는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선택 사랑 중 하나였고, 그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상도 되지 못했습니다.

(1) 도입부(4)

예언자가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4). 현재 문맥에서 야곱과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조상들부터 현 세대까지 모든 이스라엘이 고발 대상이 됩니다. 우상숭배는 가나안 정착 이후 계속된 고질병입니다.

(2) 여호와의 자기변호(5)

하나님께서는 먼저 수사적 질문을 통해 실망과 당혹스러움을 토로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5). 광야에서 하나님을 따라갔던(2)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는 그분을 멀리하고 ‘헛된 것’을 따라가다 헛것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의 배반은 하나님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조상들의 행태를 이해하실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들이 가나안에서 그처럼 돌변했는지, 당신께 무슨 잘못이 있었기에 당신을 떠나 우상을 찾아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으셨습니다. ‘헛된 것’으로 옮긴 ‘헤벨’은 ‘(사라져버리는) 입김/숨결’, ‘아무것도 아닌 것’, ‘덧없음’을 의미하고, 자주 ‘우상’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우상은 본질상 헛것이기에 헛것을 쫓은 이스라엘은 헛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하나님께 ‘불의함’이 없었음은 이스라엘이 잘 알고 있는 출애굽과 광야와 가나안 정착의 역사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해하신 일을 돌이켜 본다면 헤어짐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3) 잊힌 여호와(6)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애굽 바로의 강제노역에서 해방해주셨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게 보호하고 인도해주셨습니다(6).

(4) 더럽혀진 땅(7)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는 광야에서 양식과 물을 제공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의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셨습니다(7). 출애굽부터 광야를 지나 가나안 정착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부족함 없이 베풀어주기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경험에 따르면 가나안 정착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당연히 하나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쓰셨던 일들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처럼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던 여호와를 과거의 인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아내요 ’자신의 소산 중 첫 열매‘로 여기셨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출애굽과 가나안 정작으로 그 역할을 다한 신처럼 여겼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결별을 선언하고 우상들을 섬기며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7b). 가나안은 원칙상 여호와의 소유로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땅 가나안에서 그분을 위해 구별된 민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땅을 선물로 주신 분을 버리고 가나안에서 바알을 섬겼습니다. 마치 가나안이 바알의 소유인 양 바알에게 땅의 결실과 풍요를 간구했습니다. 7b절이 레위기 18:24-30을 배경으로 주어진 말씀이라면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습니다. ‘가증한 일’로 땅을 더럽힌 가나안 원주민을 땅이 토해낸 것처럼 ‘역겨운 것’으로 땅을 더럽힌 이스라엘도 땅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고발 대상이 이스라엘 전체에서 백성이 배교에 더 큰 책임이 있는 종교·정치 지도자들로 좁혀집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여호와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백성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는 총체적 부패였습니다(참조, 5:3-5). 율법과 제의를 책임진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하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전에서 그분께 제사를 드릴 뿐, 예배의 대상인 그분의 의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하고 묻지 않았기에 백성 또한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하고 묻지 않았습니다(6).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그 법을 주신 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명목상으로만 인정하는 자들이 그분의 법을 가르쳤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형체만 남은 전통과 교리로 변질시켰기 때문에 백성은 땅의 ‘열매’와 ‘아름다운 것’을 먹으면서도(7) 이를 주신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5) 지도자들의 배반(8)

‘제사장들’과 ‘율법을 다루는 자들’이 하나님을 예루살렘 성전과 신학적 전통 안에 유폐했다면, 예루살렘의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다른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관리’로 옮긴 ‘목자들’은 원래 왕들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왕궁의 고위 관료들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도록 위임받은 목자들이 그분께 반역한 자들입니다. 양 떼의 원주인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주인인 양 다스렸습니다. 예루살렘 왕궁은 다윗 왕조의 영원한 보좌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종주권을 거절하고 독립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분의 뜻을 선포해야 하는 예언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여호와의 예언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바알의 예언자였습니다. 예언자들이 여호와와 바알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합주의에 빠졌습니다. 예언자들은 ‘무익한 것들’을 따라가다 무익한 존재가 됐고, 이스라엘은 ‘헛된 것’을 따라가다 헛것이 됐습니다(5).


주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빛 된 삶을 살아 내면서 소금과 같이 맛을 드러내어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희망이 없다는 그들에게 산 소망과 평안의 길을 안내하는 등대와 같은 삶을 살아 내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선 곳에서 신을 벗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파송한 선교지라 믿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과 정직하고 진실하게 감당할 때, 이 시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와 선한 일꾼으로 우뚝 서게 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섬김의 자리와 헌신의 자리가 되게 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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