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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01-01)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받는 예레미야

예레미야 1장 1-10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믿음의 큰 격려를 받습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세워져 갑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두려워하고 떨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해가 되지 안 되더라도 순종하면 나중에는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데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출신과 활동 시대 그리고 소명 기사를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나돗 지역 출신이며, 제사장 가문에 속한 인물입니다.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4-5km 떨어진 곳으로, 솔로몬 시대 제사장 아비아달이 권력에서 쫓겨난 후에 유배된 지역입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에 처음 선포를 시작했고, 남유다의 멸망을 직접 경험한 몇 안 되는 예언자입니다.
 

시대적인 배경(1-3)

우리는 부름을 받은 자리도 고난 받는 역사의 한복판입니다. 처한 시대와 자리에서 부르심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심판 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먼저 경고하십니다.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들려주고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의 끝은 아닙니다. 그러니 희망마저 거세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1-3)
예레미야서의 서론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동한 기간을 매우 구체적으로 보고합니다. 요시야의 통치 십삼 년부터 시드기야의 통치 십일 년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동한 기간은 회복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가 갑자기 사그라지고, 유다가 멸망의 길로 내몰린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생존을 위한 유다의 정치와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서로 격렬하게 충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할 뿐입니다.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 함락, 그리고 성전의 파괴와 하나님 백성의 유배는 그 근본에 있어 신학적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의지를 계시하시며 살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는 사람은 하나님 백성이 멸망의 심판에 떨어지게 된 참 원인을 깨달아, 다시는 그러한 파국적 재앙이 임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 속한 성읍으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대략 4-5km 떨어져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2:26-27에 의하면 솔로몬은 다윗의 후계 자리를 놓고 다툴 때 아도니야 편에 섰던 제사장 아비아달을 그의 고향 아나돗으로 추방했습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예레미야의 집안이 실로 성소의 전통을 잇는 아비아달의 후손에 속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주전 722년 북왕국이 멸망할 때 남쪽으로 피난 온 제사장들이 아나돗에 집단으로 정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 집안 출신이지만 예레미야의 선포에는 제사장직 특징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은 주전 627-626년이고 ‘시드기야의 십일 년’은 주전 587-6년이므로, 예레미야의 사역은 대략 사십 년간 지속됩니다. 40-45장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한 이후에도, 그리고 애굽으로 끌려가서도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아마도 예레미야의 핵심적 선포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배로 성취됐기 때문에 머리글은 이를 예언 활동의 하한선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예언자로 부름을 받는 예레미야(4-10)

미래를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암흑기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암흑의 터널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신 이 뜻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 다시 살아나는 역사를 경험합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4-10)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심을 따라 열방의 선지자로 예레미야를 택하셨습니다. 선지자가 자격 없다고 항변했는데도 가라고 명하시고 동행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실한 메신저로 불러 말씀을 선언하도록 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주저하지도 말고, 기쁘신 부르심에 기꺼이 응하시길 바랍니다.
(1) 도입부(4)
예레미야의 부름은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적이었습니다. 모태에서 지으시기 전에 여호와께서 이미 예레미야를 아셨고, 태어나기 전에 그를 구별하셨습니다(53: 참조. 사 49:1). 예언자는 일반적으로 생의 한가운데서 부름을 받는데(참조, 겔 1:1-3: 암 7:15). 예레미야는 놀랍게도 예언자로 지음을 받아 예언자로 태어났습니다. 말씀 선포가 예레미야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 됐기 때문에 그에게는 개인적 삶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여호와의 메시지로 내드리며 예언자적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참조, 16:1-9), 그에게 맡겨진 역할은 세계사적 지평으로 확대되었습니다.
(2)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하나님(5)
예레미야는 단순히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아니라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5).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범위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곧 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배가 세계사적 차원에서 선포되었습니다.
(3) 부르심을 거절하는 예레미야(6)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우셨음은 민족들의 운명과 역사를 결정하시는 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신비스럽기까지 한 출생 전의 선택과 부름의 말씀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응은 놀랍게도 부정적입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6). 예의상 한번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언자의 직분을 감당할 능력과 자질과 자격이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모든 심에 기쁘게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나가 즐기는 개인적·사회적 삶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했습니다. 출생 전에 민족들의 예언자로 성별됐다는 말씀은 너무나도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문자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예레미야가 거절의 근거로 제시한 ‘아이’와 ‘말할 줄을 알지 못함’은 아마도 사회적 의미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가 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려면, 그 사회가 인정하는 자격이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했습니다.
(4) 예레미야의 거절을 거부하시는 하나님(7)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의 능력과 자격이 없다는 예레미야의 주장을 무시하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누군가를 당신의 예언자로 부르시는 사건은 하나님의 일반적 결정이기에 부름을 받는 자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부름을 받은 자는 부르신 분께서 ‘누구에게 보내는지’ 그 사람에게로 가야하고, ‘무엇을 명령하든지’ 그 명령한 것을 말해야 합니다(7). 여호와의 예언자로 활동하는데 개인적 자질이나 사회적 조건은 부차적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예언자에게 요청하시는 유일한 것은 순종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에게 가서 그분께서 전달하라고 주신 말씀을 전하면 되었습니다. ‘누구에게 보내든지’는 예레미야의 활동 반경이 예루살렘과 유다에 한정하지 않고 그 너머로 확정될 것을 ‘무엇을 명령하든지’는 심판 예언뿐만 아니라 구원 예언까지 선포하게 될 것을 시사합니다.
(5) 도움을 약속하시는 하나님(8)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의 사건을 홀로 주도하시고 부름을 받은 자에게 오직 순종을 요구하시는 절대자이시지만, 명령만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부르시는 분은 부음을 받은 자를 지켜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수행하다가 직면하게 될 어려움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8).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하며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예레미야의 선포를 듣는 자들의 반응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매우 적대적일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존해 적대적 세력의 위협과 공격에 맞서나가야 합니다.
(6) 표적 행위(9)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서 ‘아이’이고 ‘말할 줄을 알지 못하는’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손을 내미셔서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고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하고 말씀하십니다(9).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지와 결정을 선포할 자로 예레미야를 택하셨습니다.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가는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예레미야는 15:16에서도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닌’ 묵시를 말하는(23:16) 거짓 예언자들과는 달리,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입에 담아주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입니다.
(7) 사명을 맡기시는 하나님(10)
예레미야를 당신 의지의 대언자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위임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10).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주신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에게 민족들을 멸망시키고 나라들을 세우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처음 네 동사는 심판 행위를, 뒤의 두 동사는 구원 행위를 기술합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일차적으로는 심판 예언자이지만, 더 나아가 구원 예언자로도 활동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문자적으로는 ‘나라들과 왕국들’은 그의 활동 범위, 곧 그가 선포하는 말씀의 지평이 세계사적으로 확대될 것을 시사합니다. 예레미야의 사명을 기술하는 여섯 동사는 다양한 형태로 결합해 거듭 사용되는데, 여기를 제외하고는 동사들의 주어가 언제나 하나님으로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예레미야의 선포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 땅의 통치자이심이 드러납니다.
 


 
어둡고 절박한 시대일수록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종을 찾으시고 그 사람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세상의 흐름에 맞서 통렬한 메시지를 전할 대언자를 찾고 계십니다. 악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릴 수 있는 사람, 의의 나라를 건설하고 전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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