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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07)


바울의 두 번째 기도

에베소서 3장 14-21


정치인들은 공식적으로 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후원회의 밤을 실시합니다이러한 후원회 활동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습니다될 수 만 있으면 많은 사람을 초청해서 많은 후원을 받으려 합니다만찬회는 일정한 원칙에 따라서 자리를 배치해 줍니다그것은 기부금액이나 정치 영향력에 따라 앞자리부터 앉도록 특혜를 줍니다세상의 법칙은 일반적으로 이런 모습입니다자신의 유익에 따라 좋은 자리를 배치하지만천국에서는 세상의 법칙과 다릅니다천국에서도 세상의 법칙을 따라 배치한다면조차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의 법칙대로 하지 않으시고 모든 성도들에게 잔치 자리를 공평하게 배치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전반부인 교리 부분을 기도로 마감합니다그 기도는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기도와 그 기도를 응답해주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기도의 내용은 첫째속사람이 강전해지길 위한 것둘째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실 것셋째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해달라는 것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충만케 하신 것으로 채워달라는 것을 구합니다이 기도는 전반부 신학을 마감하며후반부 권면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14-15)

날마다 기도하면서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무의식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기도하는 대상과 응답해주시는 분을 잊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기도를 형식적으로 하다 보니기도를 응답해주실 분을 잊어버린 것입니다어려움에 빠지면 스스로 연민을 느끼면서 기도합니다때로는 푸념을 늘어놓고나중에는 기도가 원망으로 변한 경우가 있습니다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4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4-15)

사도 바울은 자신의 형편에 대해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을 설명한 후이제 다시 돌아와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이 기도는 첫 번째 기도인 1장 15-23절을 이어받아서 하는 두 번째 기도입니다.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 기도는 앞부분에서 한번만 등장합니다하지만 에베소서에서는 앞부분뿐만 아니라 이렇게 특이하게 중간에서도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앞부분의 기도는 에베소 교회를 위한 감사 기도였다면본문에서는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관심과 소원 기도였습니다.

(1) 기도를 드릴 마음(14)

사도 바울은 이전에 3장 1절에서 이러므로라고 기도하려다가 잠시 동안 기도를 멈추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 갔었습니다에베소 성도들이 바울이 투옥된 상황에 대해 오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설명했습니다그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위해 로마 제국의 죄수가 되었고 환란을 당하지만그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을 동일하게 구원을 주신 사실과바울 자신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모든 족속을 위해 전한다는 것입니다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란 사실에 대해 설명했었습니다.

이제 재정비하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그래서 3장 1절과 똑같이 ‘이러므로’란 단어로 시작합니다. 1절에서 이어 받고 싶었던 내용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사람을 내가라고 소개합니다기도하는 사람이 바울이란 걸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그는 변함없이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그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살펴보면서자연스럽게 성도들의 좋은 점도 보았지만 부족한 점을 보았습니다사랑이 없다면 비판했을 뿐일 것입니다그러나 부족한 점을 보면서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처럼(마가복음 14:32-42), 그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2) 기도를 드릴 대상(15)

① 기도의 대상(15a)

사도 바울은 항상 기도할 때마다 기도를 드리는 대상을 잊지 않았습니다자신의 기도를 받으실 분인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굶고 간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데 기도를 받으실 분에 대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하나님을 아버지 즉 이 세상에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의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있을 만큼하나님과의 친밀함 관계를 의미합니다그 친밀함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일 수 있는 것은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 의미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만물의 소유주임을 증명한 단어이기도 합니다더욱 설득력 있는 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이란 말이 아버지를 수식하기 때문입니다이는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권세를 가졌다는 의미입니다우주적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 하나님을 우주적인 아버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온 족속의 아버지이십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예상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아버지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한편으로 바울의 기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마태복음 6:9;요한복음 17).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갖는 화해적 성격에서 보여줍니다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아버지로서 사랑하시고 자녀로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로마서에서는 성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4-18)

하나님께서 아버지란 사실은 하나님과의 회복과 친밀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친근한 아버지로서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그분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에 소유하시고그리고 모든 통치하신 전지전능하신 주권자이십니다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참 주인이십니다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께 아버지로 모시면서 그 아버지께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족속(πατρια)’는 한 조상에게서 파생된 가족 단체를 나타내는 말입니다창조주 한분 하나님 아래서 한 족속으로 창조되었지만아담 타락 이후 바벨탑 사건을 통해 각 족속별로 나누어졌습니다(창세기 11:1-9). 그 결과는 사람들 사이족속들 사이에 분열과 전쟁이 지속하였습니다바울은 전도 여행을 통해 이렇게 분열한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하나 되지 못하고 이처럼 분열한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의 대상을 소개하면서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듣고 응답하신 것을 소개합니다또 다른 숨은 의도는 에베소서가 추구하는 교회의 연합에 대한 의도를 명확하게 제시한 것입니다성도들로 하여금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로운 연합을 원하신다는 것을 알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② 기도의 자세(15b)

다른 사람 앞에 자세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대하는 태도에 따라 상대방의 위치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하나님 앞에서는 몸의 자세보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합니다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일반적인 기도의 자세는 두 가지로 서서하는 기도(마태복음 6:5;마가복음 11:25;누가복음 18:11,13)와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에스라서 10:1;누가복음 18:13)가 있었습니다당시에는 대부분 서서 하늘을 향해 손을 펴서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방법들 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당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경외심과 기도하는 사람의 겸손을 나타냈습니다(누가복음 22:41;사도행전 7:60;20:36;21:5). 기도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성경에서는 이처럼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가 여러 번 소개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6:39;누가복음 10:13; 18:11,13;디모데전서 2:8). 바울의 기도하는 자세는 아마도 이사야서 45장 23절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23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이사야서 45:23)

전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함께 무릎 끓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장로들은 생전에 바울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을 알고 그들 끌어안고 입 맞추며 크게 울었습니다(사도행전 20:36-37). 그 장로들은 기억 속에 바울과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던 모습을 인상 깊게 남았을 것입니다바울이 이렇게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는 서신을 보면서그 때 간절하게 기도하던 모습을 기억했을 것입니다에베소 성도들은 바울의 깊은 사랑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겸손함과 간절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왕 노릇하실 것입니다그 기도는 약해지거나 비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더 강력하게 간구할 것입니다.

 

바울 기도의 내용(16-19)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닮아갑니다부모님이 기도하면 자녀도 기도하고성경을 읽으면 자녀도 같이 읽습니다이처럼 영적 부모인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그들을 위한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바른 신앙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16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6-19)

사도 바울을 살펴보면투옥된 상태에서도 자신의 안위보다 밖에 있는 성도들을 더 생각합니다이러한 모습은 빌립보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본문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자신의 처지를 설명한 후다시 돌아와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본문의 기도를 정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본인은 설교학에서 가장 존경하는 영국의 존 스타트 목사(Rev. John Stott)의 견해를 따라 네 가지-강건사랑지식 그리고 충만-로 정리해 봤습니다.

(1) 속사람이 강건하길(16)

사도 바울은 먼저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하길 위해 기도합니다에베소 환경은 심적으로 낙심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3:13). 이러한 낙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강건하게 하시는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성령을 의지할 때, ‘속사람이 힘을 얻어 강건해집니다.

이곳에서 중요한 두 단어인 ‘속사람’과 ‘강건한다’는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먼저 ‘속사람’이란 바울서신에만 나타난 독특한 표현으로(로마서 7:22;고린도후서 4;16), 회심할 때 입는 새사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속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거주하는 내적 부분곧 마음이나 심령을 의미합니다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계속해서 머물러 계시면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또한 ‘강건한다(κραταιωθηναι)’는 강해지다란 뜻입니다세상적인 기준으로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서 강해진 것입니다그리고 영광의 풍성은 하나님의 모든 면에서 완전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그리고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이것은 성도들을 구원하는 근원일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역사하여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합니다그러므로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 해달라는 기도는 성도들의 마음을 강건하게 해달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강건해져야 할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승리의 비결은 오직 성령충만입니다에베소처럼 도덕적으로 문란한 이방 사회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면서악한 영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심령이 강건해야 합니다약한 성도는 자기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며우유부단하여 죄의 유혹에 쉽게 굴복하고시험과 고난 앞에 무너집니다그런 사람들은 거룩한 삶을 살 수도결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은 모든 부분의 주인이 그리스도께서 되신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시면 모든 삶이 그리스도의 가치관으로 대처하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도들 한 사람 한사람의 그리스도로 심령이 강건해져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시간이 흐르면 나이 들고 육신은 늙어지고 병들고 그리고 죽게 됩니다세상 이치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하지만 늙어 질병으로 무너져 가지만속사람인 영혼은 결코 쇠하거나 약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인간 스스로 인격 수양이나 교양으로도 가능하지 않고사람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드십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것을 위해 성령께서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겉사람인 육체가 강건하게 하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하물며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강건 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바울은 속사람의 강건해야 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먼저 간구했던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6-18)

사도 바울이 말한 속사람은 이 말씀을 기본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복음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유혹과 고난 그리고 환난을 받을 수 있지만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승리케 하는 배경입니다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달라는 간구는 인격수양이나 성품 훈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때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 있습니다그러한 삶을 살려고 할 때유혹이나 핍박에 직면할 것입니다속사람이 강건하면 이 모든 것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우리도 항상 속사람이 강건할 수 있도록 이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며 승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17a)

성도들의 강건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령에 내주하셔야만 가능합니다바울은 첫 번째 제목은 성령의 임재를 통한 성도들의 강건을 위해 기도했고두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시길 위해 기도합니다성령의 임재를 통해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은 같은 의미입니다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에 내주하심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의 심령에 거하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한복음 15:4-10)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심령에 거하심으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내기 시작됩니다이 약속은 이미 예수님께서 성도들 속에 성령으로 내주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20). 바울도 같은 의미로 성도의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6;19).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주인됩니다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면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어려운 일을 만나면 위축되고 초라해 집니다반대로 예수님께서 심령에 내주하시면 더 강력해집니다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충만하면 더욱 강건해집니다.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이미 영접한 순간 성령께서 심령에 내주하고 계십니다하지만 이상스럽게 또 내주하심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이런 기도한 이유는 성령께서 내주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통해 흔들림 없이 견고해지길 위해서입니다영적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길 위한 것입니다그리고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과 강건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서 심령에 내주하시면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성령의 능력으로 인도함을 받기 때문입니다바로 머리나 입술만의 믿음을 아닌 실질적으로 삶 속에서 증거 됩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좌정하시면 선하게 인도하시고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사랑을 분명히 깨달음(17b-19a)

계속해서 세 번째 간구는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을 깨달게 해달라는 것입니다올바른 지식을 기초해서 하나님의 충만을 경험할 수 있도록 원했던 결과입니다그 제목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하고 강건해지기를 간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식물과 건물에 비교합니다. 바람직한 믿음은 단순히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마치 식물이 계속 성장하듯, 그리고 건물이 계속 건축되듯이 믿음 또한 계속적으로 성장해 해야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보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날씨에 상관하지 않고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본문에서 ‘사랑’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랑’(17)은 그리스도와 관계 때문에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을 말하지만, 두 번째 ‘사랑’(18)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너무나 무한해서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런대도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로 사랑을 측량할 수 있는 것처럼 수사적(修辭的)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8절에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라고 동일하게 표현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식으로 아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체험적인 사랑을 알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한없이 넓고, 깊고, 높아서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깨닫게 됩니다.

굳이, 이곳에서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에 대한 의미를 찾는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넓이’는 모든 사람들을 품을 만큼 유대인을 넘어서 이방인 즉 땅끝까지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범위를 의미하고, ‘길이’는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긴 사랑, 즉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지속되는 사랑이며, ‘높이’는 모두를 무한한 영광으로 인도할 만큼, 변질된 사랑이 아니라 변함없이 차원 높은 사랑이며, ‘깊이’는 모든 필요를 채우고 죄나 상처에 덮을 만큼, 무한히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광대한 능력과 무한한 사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상상할 수 없지만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설명하기 위한 표현입니다바울은 연약한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세상의 기준을 통해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모두를 이해할 순 없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믿음에 멈추지 않고 체험적인 믿음으로 더욱 성장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는 모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지만, 심령에 내주하셔서 깨닫게 하시면 능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체험 속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을 때만 비로써 바른 신앙고백이 가능합니다(고린도전서 8:1;13:2; 빌립보서 4:7). 이렇게 하는 목적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사랑이 없는 교회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고생명력이 없는 교회는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없었습니다그래서 이 사실을 잘 아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드린 사랑처럼 성도들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심령에 계시길 바라며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들에게 잘 뿌리내려져서 성장하길 원하는 것입니다에베소 성도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합니다한마디로 요약한다면에베소 성도들이 매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면서 교제를 나누길 원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 위에 굳건히 세워지길 기도하였습니다그리스도의 사랑은 세상의 지식을 초월해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해주심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심령에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신 결과, 성령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집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뿌리는 내리고 견고해질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4) 충만함으로 채워짐(19b)

사도 바울의 마지막 기도는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었습니다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유한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하나님으로 가득 채울 순 없습니다(역대하 6:18). 하지만 바울이 의도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가능한 역량의 최대치만큼 하나님의 힘과 사랑과 지식이 흘러넘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본문을 쉽게 번역하면하나님께서 너희로 점점 충만하게 하사 하나님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시길 구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바울은 ‘충만하다(πληρωμα)’를 두 번이나 사용합니다사람은 하나님처럼 될 수 없지만현재보다 더 성장해서 온전해져 갈 수 있습니다즉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 내용이 서로 같습니다.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8)

성도들에게 성숙한 목표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심령에 충만하게 채우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성품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온전하씸 같이 온전해 가는 것입니다특별히 성도들이 충만하게 되는 것은 성령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인도됨을 암시합니다이 충만은 이미 1장에서 교회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케 된다고 했습니다본문에서도 유사하게 말씀하시고에베소서 4장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십니다.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에베소서 4:13-14)

하나님의 소원은 성도들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 것이 그 절정(絶頂)입니다하나님의 충만한 의와 진실과 사랑을 본받고그분과 같이 온전하게 해달라는 중보기도입니다.

성도들의 최종적인 결정체(結晶體)는 지상이 아니라 천성에서 누리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늘에서 완벽하게 변화될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하게 구비되길 간구합니다인간의 노력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변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사도 바울처럼먼저 성령 충만하게 무장해서 승리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거룩한 하늘나라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두 번째 간구에 대한 제목은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간섭을 전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이 성령을 통해 심령이 귀경되는 것이라면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깨달아 가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각 개인이 성령으로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길 바라며 나가서는 온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송영 하나님께 영광(20-21)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면 가질수록하나님께 경배를 할 수 있습니다세상 지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오직 성령께서 주신 올바른 지식으로 예수님에 대해 깨달을 때하나님을 충만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20-21)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기도로 네 가지 제목으로 기도한 후에이렇게 위대한 기도를 응답하실 하나님께 찬송하며 장엄함으로 전반부를 마무리합니다.

(1) 영광의 대상(20)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의 경륜을 시작하셨고 또한 완성하셨습니다그 구속의 경륜 가운데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충만한’, ‘넉넉한’, ‘후히 주는’, ‘채우시는’, ‘능히 하시는’ 분이십니다사도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실 때은혜의 역사가 한없이 크고 풍성하다는 사실을 묘사합니다(로마서 8:28; 빌립보서 4:7). 바울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심에 압도되었습니다크고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십니다그 풍성하신 능력으로 세우신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이 지상의 교회들도 그분의 능력과 은혜의 작품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그 하나님의 모든 부분을 신뢰하기 때문에교회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2) 송영(21)

사도 바울은 그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대대로 있기를 기원합니다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넘치도록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송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에베소서가 특이한 것은 다른 바울 서신의 송영에는 없는 교회라는 단어가 있습니다대부분 다른 서신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라고 끝맺지만에베소서는 교회 안에서라고 첨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본 에베소서가 교회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서로 연합되어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성도들에게 나타내셨고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참으로 놀라운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만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하면 갓난이 옹알이에 불과합니다하나님의 영광이 성령을 통해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납니다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가 교회답게성도가 성도답게 온전히 있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나타나고하나님께서 성도와 교회를 통해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실 분입니다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위대한 것뿐 아니라구하는 것 이상으로 넘치게 주시는 풍성하신 분입니다이런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리시길 바랍니다.


바울의 기도는 만유(萬有)의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기도의 마지막은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마무리 합니다이제 조직신학적인 부분을 마무리합니다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인 기초가 제대로 구비되어야만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오직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손길로부터 시작하여 마무리됨을 신뢰하며더욱 성도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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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06)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사도

에베소서 3장 1-13


누구에게나 알 수 있는 내용은 ‘정보’이라고 하지만몇몇 사람들에게만 알고 있는 것은 ‘비밀’이라고 합니다대부분 ‘비밀’은 사적이고 은밀하게 전해집니다만약 어느 지역을 도시개발한다면그런 사업은 계획단계에서는 비밀스럽게 몇몇 사람들만 진행합니다그렇지 않으면 투기꾼들이 투기하여 사업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이처럼 어디선가 일어났던 사실을 몇몇 사람만 아는 것을 ‘비밀(秘密)’이라고 합니다이 세상의 비밀도 때로는 많은 유익을 주지만천국의 비밀을 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유익을 줄 것입니다사도 바울은 천국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그 사실을 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일이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이 상황을 오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기도하다가 잠시 멈추고하나님의 은혜의 경륜과 자신의 사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이전까지는 경륜이 하나님의 비밀이었지만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그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이루고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새로운 한 형제를 이룬 것이었습니다그는 이 소식을 전파 하면서 투옥이라는 고난을 받았습니다이것 때문에 받은 고난을 두려움이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 바울의 상황(1)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선하십니다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담대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의 인도하신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은.....(1)

바로 앞부분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담이 무너졌고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유대인과 이방인이 구분되지 않고 함께 새로운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존재임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계획 따라 자신이 지금 기도하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려 합니다그런데 기도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이 때문에 낙심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합니다그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비밀’과 자신이 받은 사명에 주안점을 두고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⑴ 그리스도의 갇힌 자(1b)

사도 바울은 속 시원히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라고 소개합니다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지금 로마 감옥에 ‘갇힌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노년인데도 감옥에 투옥된 상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당당하게 자신이 투옥된 상황을 소개합니다.

이렇게 투옥된 상황을 갈라디아 성도들처럼 에베소 있는 성도들도 들었습니다(갈라디아서 1:23). 에베소 교회 안에 연약한 성도들은 바울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하거나 흔들리고 있었습니다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투옥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바울 당시는 어떻겠습니까그는 감옥에 갇혔지만 죄수된 상태에 메어있지 않았습니다투옥 중에도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사역을 멈추지 않고조금도 움츠려들지 않았습니다사령관으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사령관실에서 영적 전투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습니다그 결과 빌레몬과 같은 좋은 일군들을 만나서 동역하기도 합니다(빌레몬서 1:10).

오히려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고 전했습니다이렇게 여유로운 것은그만큼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투옥된 죄목은 실질적으로 ‘로마 반역죄’이지만 영적인 계획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모함이나 고소 때문에 로마 황제나 로마법 아래 있는 죄수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주권 아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성취된 일일뿐입니다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의 일’인 즉‘복음 사역’ 때문이었습니다그리스도께서 허락하지 않았으면로마 감옥에 투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당당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그리스도의 비밀이 퍼지면 퍼질수록 사단의 나라는 치명적인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어떻게 하든지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려 했던 것입니다사람들을 충동질해서 사역을 방해하고 더 나가서 바울을 모함하여 감옥에 넣었지만복음은 더 힘차게 뻗어 나갔습니다마치 예수님을 죽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복음을 완성시키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을 로마 반역자로 투옥시키는 것은 사단의 큰 착각이었습니다바울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핍박할수록 고난 받기를 즐거워하고 기꺼이 고난에 동참했습니다(베드로전서 4:13).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장되어 나갔습니다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그러므로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한 감옥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에 묵묵히 순종하며 나갔던 것입니다오히려 투옥된 사실을 더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비밀(2-7)

동일한 비밀을 소유한 사람들끼리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비밀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는 것과반대로 알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도 같습니다바울은 에베소 성도들과 복음에 대한 비밀을 공유한 상태라서 서로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2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7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2-7)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은 로마 감옥에 투옥된 이유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아마 자신의 투옥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성도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그는 지금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고 소개합니다.

(1) 바울의 사역 소개(2-4)

사도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비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① 은혜의 경륜(2-3)

사도 바울은 먼저 전반적인 자신의 사역이 은혜의 경륜이라고 소개합니다‘경륜(οικονομια)’은 직분(職分)’이나 사명(使命)’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주신 ‘은혜의 직분’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직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사역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면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을 맡을만한 자격이 전혀 없었던 죄인에 중 괴수였습니다(디모데전서 1:15).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불가능했고더 더욱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사역을 맡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살기가 등등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핍박했습니다그의 열정적인 소원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의 씨를 말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성도들을 잡으러 가던 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을 계시(啓示)해주셨습니다(갈라디아서 1:11-12). 또한 그 비밀을 깨닫게 된 것만도 감사한데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비밀을 전파하는 사명까지 주셨던 것입니다(사도행전 9:1-9).

위대한 사역을 바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하나님께서 ‘은혜의 경륜’을 따라 바울에게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직분을 맡기셨습니다때문에 그는 어떤 일이든지무슨 일을 만나든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일군으로서 사역을 잘 감당해 나갑니다그러므로 에베소 성도들은 사역하던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 했었지만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면서 희망을 갖도록 인도합니다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② 이해할 수 있는 방법(4)

사도 바울은 이해하지 못한 에베소 성도들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자분하게 근본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점을 풀어갑니다다른 무엇보다도 진리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앞부분 1-2장에 기록한 내용-만물의 통일(1:9-10), 이방인의 구원(2:11-22)-을 잘 읽어보면그 동안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이해하면자연스럽게 바울의 현재 어려운 상황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위해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순종했습니다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면서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명을 다했습니다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마서 11:13)로서 ‘그리스도의 비밀’이 이방인들에게 전달되었고그 결과는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에베소 이방인 성도들과 이후 모든 이방인 성도들은 바울과 같은 일군들의 헌신에 감사해야 합니다그들의 수고를 통해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의지와는 다르게 감옥에 갇혀있습니다이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라고 고백했습니다순간적인 시점에서 보면 고난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 있었습니다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비밀’을 더 힘을 받아서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어떤 환경이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바울은 로마 투옥된 것까지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직분으로 고백했습니다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2) 그리스도의 비밀(5-6)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거론한 사실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그리스도의 비밀’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에서 ‘비밀(μυστηριον)’은 영어 ‘미스테리(mystery)’를 파생시켰습니다이는 비밀스러운 내용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단어를 과거에 용도를 살펴보니이방 종교에서는 제사 의식의 내용이나 제의(祭儀)에 참석한 사람들이 받은 비밀스러운 신탁이나 신접 그리고 환상 등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유대인들도 사용했는데하나님의 계시로 알려진 어떤 사실들즉 일정 기간 숨겨졌던 하나님의 종말적 구원 계획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비밀’이란 단어를 유대인이 사용하던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신비’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이 ‘신비’는 과거에는 숨겨져 하나님의 계획이 때가 되자 선지자나 사도들에게 계시된 종말의 사건들즉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 이루실 종말적인 구원 계획으로 사용합니다(로마서 11:25;16:25;고린도전서 2:7;15:51;골로새서 1:27;데살로니가후서 2:7).

결국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은 신약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알려지기 전에는 전대미문의 것이었습니다이 ‘그리스도의 비밀’이 과거에 숨겨져 있다가 때가 되니깐 사도들에게 계시되었고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일군인 바울 자신에게도 계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앞 장(1-2)에서 소개한 그리스도의 비밀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메시아를 통해 새로운 백성을 만드실 것과그 새로운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갈 계획이셨습니다그 계획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행되어 가고 완성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과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동일한 한 몸으로 연합 되었고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는 자로 참여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살던 사람(특히 유대인)들은 대부분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그들은 장차 메시아가 오신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하지만그 메시아가 언약의 백성인 유대인만 위한 분이지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제시될 줄 몰랐습니다그 당시에는 그림자로만 보여주셨기 때문에(히브리서 8:5) 실체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갈라디아서 4:4-5). 그리고 성령을 통해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그가 메시아임을 알려주셨습니다(참고 누가복음 1-2).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동안 감추진 비밀들을 갈보리 십자가 위에 모두 이루셨습니다(요한복음 19:30). 그리고 바울과 같은 일군들을 택하셔서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세상에 전하도록 부르셨던 것입니다이 사실은 앞에서 기록한 내용을 자세히 살폈으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매우 거북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스스로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유일한 하나님의 선민입니다이렇게 자부심 강한 이스라엘에게 바울이 와서 유대인의 메시아가 모든 이방인들은 구원하시고 한 백성으로 연합한다니 충격과 반감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정리하면그리스도의 비밀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위해 종말적인 구원의 계획을 의미하며좁은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함께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 받는 새로운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이 비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집니다(갈라디아서 2:16).

(3) 비밀의 일꾼인 바울(7)

사도 바울은 이제 간략하게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직분을 감당했는지 과정을 설명합니다그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고 나니세상에 어떤 소식보다 더 놀랍고 위대한 사실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깨닫는 것으로만 멈추지 않고 그 비밀을 전하는 직분까지 맡기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훼방했으며그리스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진멸하려고 했었습니다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사역을 이제는 자신이 그 사역을 감당하는 일군이 되었습니다그가 말하는 ‘일군(διαχονς)’이란 ‘하인’, ‘봉사자’라는 뜻입니다이렇게 자신을 ‘일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의 삶이 변화된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라고 표명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이 사역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과거에는 혈기가 가득한 사람의 일군이었지만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신 대로 따라가는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습니다일군으로 ‘그(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움직였다고 말합니다자신의 능력으로 사역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이 인도하는 대로 ‘복음의 일군’된 것을 시인한 것입니다과거의 그를 그리스도께서 넘어뜨리셨고이제 그를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 주신 것입니다.

자신이 감당했던 사역을 이 복음을 위하여라고 소개합니다이 복음은 지금까지 누누이 강조했던 ‘그리스도의 비밀’과 동일한 내용입니다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함께 상속자가 되고그리고 함께 지체가 되고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이방인에게는 영광이지만 유대인에게는 논란거리였습니다바울은 바로 이 ‘복음’을 땅끝까지 이방인에게 전하도록 세움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나타난 이 위대한 소식을 누군가는 전해야 했지만아무나 함부로 감당할 수 없었고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만 가능했습니다바울은 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일군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사역의 일군으로 예수님의 12사도들은 주로 예루살렘과 주변 유대인에게 전했지만바울은 소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건너가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사도로 세우셨던 것입니다오직 은혜로 사도가 되었기에그는 일군으로서 은혜의 복음을 더 잘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 사역하면 할수록 절실하게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자신같이 자격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가망 없어 보이는 이방인도 그리스도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그리스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바울은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기쁘게 복음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비밀을 전하는 바울(8-12)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행할 일들이 많습니다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세상에서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세상을 감동시켜야 합니다그러면 세상에 속했던 사람들이 감동되어 복음을 듣고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됩니다.

8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8-12)

그리스도의 좋은 일군의 특징 중 하나는 ‘겸손’입니다. 자기를 높이거나 들어내지 않고 낮추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 위에 군림하고 명령하고 주장하는 자세는 처음부터 일군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바울에게 복음의 비밀을 맡기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1) 비밀을 맡기신 이유(8-9)

사도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먼저 하나님께서 일군으로 삼으신 이유에 대해첫째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따라서 세워졌고둘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 때문입니다이 경륜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에게 미빌을 맡기신 것입니다.

① 일군으로서 자격(8a)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그는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을 강조하면서받은 직분에 비해 자신의 인간적인 자격에 대해 얼마나 초라한 사람인지를 고백합니다.

과거 자신을 돌아보면인간적으로 훌륭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지만하나님 앞에서는 배설물과 같아서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자신의 존재만 보였습니다그래서 현재의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자격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고백합니다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신에 대해 제자인 디모데와 고린도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모데전서 1:15)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린도전서 15: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던 과거 모습은 능력 있는 ‘일군’이 아니라 심판을 받을 ‘죄인’일 뿐입니다그리스도 예수를 만남으로 변화된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직분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자격 없는지를 깨닫고 인정합니다복음을 위해 30년 가까이 헌신했고심지어는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바울은 모든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여겼습니다그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하지만사역은 가장 위대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도’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연약한 다른 ‘성도’들과 비교해 보았습니다그래도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작은 성도보다 더 작다고 고백합니다이것은 자신이 작아진 만큼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려 노력합니다오직 사역에 대한 성패가 아니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② 맡겨진 사명들(8b-9)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중요한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 이방인에게 전함(8b)

첫째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하도록 부르셨습니다바울은 자신을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8)하려고 부르셨다고 말합니다이곳에서 ‘그리스도의 풍성함’은 구원의 부요함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만남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신비한 비밀을 깨달았습니다그 비밀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께 나오면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놀라운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파하지 않으면 누구도 들을 수 없습니다(로마서 10:14).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방인에게 이 소식을 전파하는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 감추인 경륜을 들어냄(9)

사도 바울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9)고 소개합니다영원 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경륜은 비밀스럽게 감추어졌습니다때가 차매하나님께서 감추어졌던 비밀의 장막을 벗기셨습니다장막을 들추어보니그 속에 ‘그리스도의 풍성’이 하나님의 비밀 경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이것을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알려해 했습니다그래서 바로 바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반역과 범죄로 타락하여 온갖 불의와 혼돈에 빠진 만물을 회복하여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이미 십자가로 시작하셨고장차 완성하실 것입니다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감추어졌던 비밀즉 우주적인 구원의 계획(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류를 만드심)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들을 실행해 가시는지를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에 드러내도록 바울에게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이러한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의 역사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동일했습니다바울의 사명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합니다(참고 로마서 1:14).

이러한 모든 사역들-이방인에게 전하고모든 사람들에게 들어내는 일-을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에게 맡기신 직무임을 강조합니다하지만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자격은 모든 성도들 중에 가장 작다고 겸손하게 생각했습니다세상에 바울처럼 겸손한 그리스도의 일군이라면맡겨진 사명에 대해 충성스럽게 잘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2) 비밀을 맡기신 목적(10-12)

이제까지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전파하는 목적과 비밀의 경륜(직무)을 설명했습니다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비밀의 경륜을 전파하도록 맡기셨던 것입니다바울은 다시 이 경륜이 어떻게 실현되는지그 비밀의 경륜이 전파되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바울의 복음 전파를 통해 어떤 결과를 내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는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① 전파할 대상(10a)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기실 때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를 대표해서 일군을 세우셨습니다그 일군을 통해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참 권세자이며 통치자라는 들어나도록 증명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전파할 대상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라고 지적합니다이 부분의 해석에 에베소서 난해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해 보면 그 대상을 두 가지 학설로 한정할 수 있습니다. ‘지상 악한 통치자들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라는 학설인데, ‘천상의 존재들을 설명합니다에베소서 본문 전체를 통해 보면후자가 천사의 존재인 천사가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의 사역이 이방인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었고, 이제 영적 존재들에게 까지 확장 됩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위해 주어졌지만, 영적 권세들에게까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② 전파할 내용(10b)

하나님께서는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적 존재들을 집합시켰습니다증인으로 집합한 모든 선한 천사나 악한 천사(사단)들에게 준비된 소식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그들 앞에 전파될 내용을 하나님의 각종 지혜라고 설명합니다이곳에서 ‘각종(πολυποικιλος)’이란 가장 다채로운’, ‘한없는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하는 우주적 구원 계획이었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경륜과 섭리에 대한 지혜를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입증했습니다그 내용은 누누이 강조하지만십자가로 죄인을 구원하시고 만물을 통일하셨고적대관계였던 유대인과 이방인도 하나 되게 하여 새로운 인류즉 교회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취해 가시는 방법은 비교할 수 없이 매우 탁월했습니다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의 가장 지혜로움보다 월등했습니다하나님의 오묘하심과 무한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섭리 속에 나타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오묘함 그리고 무한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③ 전파할 방법(11)

이제까지는 그리스도의 경륜이 비밀로 들어나지 않았습니다(5). 하지만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비밀을 완전히 들어 내셨습니다.

그 지혜를 입증하는 방법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참 권세자이고 통치자라는 것을 증명합니다이 모습을 통해 영적 존재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을 통해 사단이 장악했던 악한 모든 세력이 약화되어 갈 것입니다.

이제 교회를 통해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인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까지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전파되었습니다지금 에베소 교회를 미혹하는 세력은 하늘의 권세를 잡은 악한 자들입니다이 세상을 미혹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며십자가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합니다교회의 역할과 성도의 정체성을 망각하여서세상과 구별됨이 없이 살아가도록 하는 시도입니다이런 미혹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④ 전파한 결과(12)

전파됨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맺습니까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먼저 본문에 ‘담대함(παρρησια)’는 자유로운 말’, ‘명백’, ‘확신과 ‘당당히(πεποιθησια)’는 확신’, ‘신뢰의 뜻을 함께 지녔습니다이 두 단어는 모두 확신과 신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인들은 감히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습니다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히브리서에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나가는데 담대하게 나가길 권합니다.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서 10:19-22)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양으로서 대속적 죽음즉 십자가의 구속에 대한 믿음의 결과로서만 생길 수 있습니다(고린도후서 1:15;3:4).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 받아서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께 떳떳하게 나아가는 확신에 찬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 모든 구원의 사역은 유일하신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합니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담대함과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게 됩니다복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그리고 모든 세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을 위한 위로(13)

하나님께서는 지상 위에도 교회를 세우셨습니다하지만 교회가 세워짐으로 많은 핍박이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때로는 이러한 모습이 두렵거나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풍성한 은혜 그리고 각종 지혜를 드러내는 영적인 곳입니다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은 하나님에 세워진 교회임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그의 영광을 위해 헌신을 다해야 합니다.

13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13)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의 투옥된 이유와 자신의 직분에 대한 설명했습니다모든 것이 ‘하나님의 경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이제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통해 2-12절까지 설명했던 내용을 그 결론으로 맺으려 합니다.

그는 독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1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은이라고 시작해서 기록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을 통해 에베소 성도들에게 자신이 감옥에 갇힌 상황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실망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빌립보서 1:12).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잘 살펴보면바울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갇힌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눈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유혹되어 악에게 굴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이렇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모습 때문에 낙심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그리고 바울의 고난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희의 영광’으로 귀하게 생각해라고 권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수고한 만큼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달되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어떤 고난이든지너희 영광을 위한 것이니 절대 낙심하지 말라고 더 담대하길 원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고난에 동참한 것이 사역자의 영광입니다자신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됩니다.


본문에서 복음의 씨앗은 옥토나 척박한 땅이든지 세상 어느 곳이든지 뿌려야 합니다바울은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그는 환경에 구애 받지 않고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며 자신의 사명에 따라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그 결과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을 당할지라도 오직 자신의 사명에 매달렸습니다그 결과 많은 이방인 성도들을 열매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우리도 어느 위치에 있든지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사명에 매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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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05)


하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에베소서2장 11-22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한쪽 벽과 다른 한쪽 벽을 연결하는 부분입니다. 서로의 벽을 이을 때 중요한 돌을 사용하여 이어갑니다. 이 중요한 돌을 모퉁이돌이라고 합니다. 이것의 역할은 두 개의 벽이 직각으로 마주하는 곳에 놓아 그 벽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다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퉁이돌로서 어떤 역할을 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앞 단락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의 구원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루었습니다이제 본문에서는 이방인 성도들의 구원에 대해 초점을 맞춥니다과거 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던 비참한 모습을 상기시키고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광스러운 모습과 대조시킵니다본 단락을 세 부분으로첫째는 그리스도와 상관없던 이방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묘사하였고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화해의 관점에서 이방인이 완전하게 변화된 삶을 소개합니다마지막으로 구원받은 이후 영광스러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이방인(11-13)

차별(差別)’이란 둘 또는 여럿 사이에 차등을 두어 구별함을 말합니다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차별과 억압이 많습니다인종적 차별성별적 차별신분상 차별지역적 차별 등수도 없습니다대부분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 위에 군림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이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사도 바울은 차별 때문에 섭섭함을 느끼고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 위로를 전합니다.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1-13)

사도 바울은 먼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에게 과거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때를 생각하라고 촉구합니다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던 비참한 상황을 생각하면현재 영광스러운 삶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감사가 넘칠 수 있습니다과거에 이방인들은 어떤 비참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11)

사도 바울은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의 영적인 신분에 대해 먼저 무할례당(ακροβυστια)’라고 일축합니다유대인에게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영적인 특권과 복을 누릴 신분증 역할을 했습니다그래서 유대인은 할례라는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민족적 우월성을 가졌습니다유대인은 할례 받지 않는 이방인들을 향해 포피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한 백성들이라고 무시했고 언약의 백성이 아니라고 경멸했습니다.

이방인의 비참한 상황은 12절에서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를 소개합니다이방인의 상황은 그만큼 너무 비참했었습니다.

⑵ 그리스도 밖에 여러 가지 상황(12)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보는 관점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영적인 신분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이렇게 한 목적은 과거에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부각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복과 특권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입니다.

① 그리스도가 없었음

유대인들은 메시아 사상으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창세기 3장 15절에서 이미 구원자가 예언되어 있었습니다유대인은 메시아가 자기 민족에게서 나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사무엘하 7:13,16; 이사야 9:1-9). 그러나 과거에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서 메시아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메시아 자체를 알지 못했고당연히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② 이스라엘 나라에서 단절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나라에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이곳에서 이스라엘은 단순히 유대인의 나라만 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종교적 정치적인 공동체를 말합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셨고 유대인들은 그의 백성이었습니다하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었으므로 그의 백성에서 제외되고 단절되어 있었습니다이스라엘 나라의 합법적인 백성이 아니고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이 누리는 영적인 복과 특권에서 제외되었습니다.

③ 언약들에 대해 외인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 있었습니다그 언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를 통해 구원과 복을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2:1-3,사무엘하 7;8-16;시편 89).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 언약과 상관이 없는 외인(外人)’즉 외국인이었습니다따라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 주신 언약들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는 외국인이었습니다.

④ 세상에서 소망이 없음

과거에 이방인들은 세상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이방인들도 인생의 성공이나 번영에 대한 소망은 있었습니다이것이 진정한 소망일 수 없습니다참 소망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에 근거한 것만 입니다하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참 소망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세상에서 불안과 절망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⑤ 하나님이 없는 자

과거 이방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스스로 우상들을 만들고 신으로 섬겼습니다신들은 많았지만 자신을 구원해줄 참 신은 없었습니다그 신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스스로 만든 신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이방인들이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한마디로 매우 비참한 상태였습니다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었고언약들과 무관한 외인들이었고소망도 없었고하나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유대인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던 비참한 상황을 생각하라고 충고합니다은혜 받기 전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합니다과거를 잊어버리면 스스로 주인이 되고 점점 교만해져 버립니다에베소 교회는 하나님께서 받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그러므로 처음 믿을 때 가졌던 열정믿음 그리고 소망을 잊고 변질되었습니다첫사랑이 변질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요한계시록 2:4-5)

사도 바울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에게 과거 비참한 상태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그러면 현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구원에 대해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⑶ 그리스도로 가까워짐(13)

사도 바울은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언급한 후에이제 그들의 공통된 해법을 제시합니다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본 절에서 과거 상황의 멀리과 현재 상황의 가까운을 대조 시키면서 완전하게 달라졌음을 설명합니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영적으로 멀리는 11-12절에서 언급한 과거 이방인들의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을 의미하고현재 가까운 상황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요약해서 설명합니다이러한 비참한 상황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도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비참했던 상태로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들을 찾아오셨듯이(창세기 3:9), 허물과 죄로 죽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던 비참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그리고 우리 함께 계서서 인도하고 계십니다(마태복음 1:23).

멀리 비참한 상황에 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가까이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신 중매자가 있었습니다모든 사람을 위해 죄값을 지불한 순간 분리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바로 그리스도의 피 때문이라고 소개합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서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공동체 일원이 되는 방법은 할례의 피를 흘려야만 유대인으로 자격이 될 수 있었습니다그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이제는 십자가에 대속적인 보혈을 흘려주심으로구원의 증표를 할례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바꾸셨습니다정말 놀라운 그리스도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더 이상 비참한 외국인이나 나그네가 아닙니다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길을 열었습니다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인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14-18)

인간의 죄성(罪性)’은 관계를 파괴합니다서로 높은 담을 만들고 깊은 틈을 만들어 점점 관계가 깨어집니다그 결과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죄성의 결과로 항상 혼자라 생각하며 불행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지냅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 관계 회복을 위해 사람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4-18)

이제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멀리 있던 비참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워진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인은 과거의 습관대로 자기 민족에 대한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하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서로 화목하고 하나로 연합된 화해의 사건으로 설명합니다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을 평화와 화해로 꼽습니다.

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14-16)

예수 그리스도께서 멀리 있던 이방인들을 찾으려 오셨습니다그리고 예수께서 많은 일들을 이루셨습니다수평적으로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서로 화평을 이루셨고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이에 평안을 만드셨습니다이 사역을 통해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공동체에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① 그리스도의 사역(14-15a)

㉮ 둘을 하나 되게 하심(14a)

14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소개하길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로 소개합니다화평(ειρηνη)’는 구약의 샬롬(מולשׂ)’과 동일한 의미이며나라끼리 화목함 또는 마음이 평안함을 의미합니다구체적으로 불화나 적대 관계가 해소됨으로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성령의 세례를 통해 서로 하나로 연합합니다.

불일치와 갈등 그리고 적대감의 관계가 그리스도께서 중재자가 되시어 하나님과 사람사이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조화와 평화의 일치로 회복시키시고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여신 것입니다영적 화평을 가져다주면 세상에 많은 충돌을 유방하는 요인들이 사라집니다.

㉯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심(14b)

사도 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화평을 위해 이루신 일을 설명합니다본문에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소개합니다이곳에서 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셔서 적대감을 없애고 하나로 일치와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과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장막이라는 담이 있었고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견고한 장벽도 존재했습니다막힌 담이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던 성전의 담을 염두해 둔 것입니다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막혔던 휘장을 제거시키셨고(마태복음 27:50-51),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서로 원수 되었던 막힌 담을 하나로 무너뜨려 다 이루셨습니다(요한복음 19:30). 이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습니다.

㉰ 계명들의 율법을 폐하심(15a)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중에는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존재했던 적대감을 제거하셨는지 설명합니다본문은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라고 소개합니다서로 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계명의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 백성으로 지켜야 했던 법을 주신 것입니다그런데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기 때문에 언약의 율법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는 막힌 담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라고 하셨는데폐하셨다(καταργησας)’는 무력화했다라는 뜻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는 모든 인류에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막혀 있던 율법의 담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셨던 것입니다이제는 하나님께서 나가는 율법의 담은 사라지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담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② 그리스도의 결과(15b-16)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던 지상의 사역에 대한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지상 사역을 한 결과를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첫째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부터 수평적인 관계 회복의 창조와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 적대감을 소멸하시고 화목하게 하신 수직적인 창조인 것입니다.

㉮ 새 사람의 창조(15b)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의 결과로 한 새 사람의 창조를 제시합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옛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듯이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 새 사람’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창조됨을 설명합니다후반부에서 설명하겠지만이 사실에 대해서 에베소서 4장에서 잘 설명합니다.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1-24)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열과 대립의 옛 사람 대신에 화평과 연합하여 새롭게 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아닌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창조하신 것입니다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전하게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사람들과의 수직적인 관계로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여자나 남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가 다 함께 한 지체가 된 것입니다(갈라디아서 3:28; 골로새서 3;11). 하나님께서 첫 창조 후에 타락한 사람들은 분열과 전쟁으로 비극적인 상황이었지만이제는 새로운 창조를 통해 서로 화해시켜 하나로 아름다움을 회복시킨 것입니다만물을 새롭게 회복시킨 재창조 사건도 첫 창조 때처럼 하나님께서 보시기 매우 좋았습니다

 ㉯ 하나님과 화해시킴(16)

사도 바울은 수평적인 관계인 사람과 사람들과 화목과 연합을 거론한 후에이제 하나님과 사람과의 수직적인 화목한 관계를 언급합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궁극적이 목적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그 둘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로 서로 화목하게 된 믿는 유대인과 믿는 이방인들을 즉모든 사람들이 수직적인 관계에서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습니다화목하게 하다라는 불화하는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을 재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타락으로 둘 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어 하나님과 적대관계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노와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로마서 1:18).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라졌습니다그 결과 대적하던 원수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에 수평적인 관계 회복으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그리고 더 나가서 수직적인 관계 회복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리에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의 원하심은 서로 화목하며 하나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나가길 원하십니다.

⑵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17-18)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원래 자신의 자리인 하나님 우편으로 돌아 가섰어도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지금부터 하늘에서 하신 사역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모두에게 평화를 선포(17)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셨다고 말합니다십자가를 통해 먼 데 있던 이방인과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한 평화가 임했습니다바울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명합니다.

19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사 57:19)

이사야서는 멀리는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과 가까운 데는 본토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로 대조를 이루어 설명했지만에베소서에서는 멀리 있는 여러분은 이방인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평화는 가까이 있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이방인들에게 그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평안(ειρηνη)’은 걱정이나 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개인적인 내적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진 관계적인 차원에 평화입니다그러므로 이제는 이방인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아무 걱정 없이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이방인들도 이방인의 뜰을 지나서 유대인의 뜰을 지나고 더 하나님의 성소까지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5-16)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 선포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수직적인 관계 회복에서 평화가 임하는 것을 의미하지만더 나가서 수평적인 관계인 유대인과 이방인들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합니다그 바탕에서 하나의 새로운 인류인 하나님의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② 함께 아버지 하나님께 나감(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평화를 이루었습니다하나님께 누구나 똑같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대제사장을 통해 1년에 한 번 속죄일에만 하나님의 성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레위기 1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마태복음 27:50-51). 이 사건은 모든 성도들이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까지 교회 안에서 조차도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반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그럼에도 바울은 한 성령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하나님께서 나아간다고 담대하게 주장합니다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유대인들에게 분노를 살만했지만분명히 그리스도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적대감을 제거하셨고 한 공동체인 교회를 이루고 생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근거는 사람의 행위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로 입양하셨고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 나가는 데는 더 이상 제사장이나 복잡한 의식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누구나 똑같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동일하게 믿는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과거에 원수같이 반목하고 대립하던 둘이 이제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한 형제와 자매가 되었습니다하나님께 함께 손을 잡고 나갈 수 있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입니다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새로운 인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인(19-22)

이주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내에서 자국민들과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같은 땅에 같이 살지만한국인으로서 누릴 특혜들을 누리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이유는 대한민국 국적(國籍)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그들도 국적을 취득하면 자국인들과 동일한 해택을 받습니다이처럼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도 혈통적으로 유대인처럼 구원의 백성이 아니었지만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19-22)

사도 바울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이 이방인이라고 무시당하고 소외되지 않길 원했습니다과거에 아무 소망도 없던 이방인들도 이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나님 백성으로서 특권을 누립니다이방인 성도들이 누릴 새로운 신분과 특권이 무엇인지를 풍성하게 묘사합니다.

⑴ 동일한 시민들(19)

첫 번째 특권으로 영적인 신분의 변화가 있습니다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 이방인의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외인이 아니며 나그네도 아닙니다그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고 선언합니다.

과거에 이방인은 하나님 나라에서 외인이라서 차별을 받아 하나님의 권리나 특권을 별로 누리지 못했습니다하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바울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들이라고 주장합니다아무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과거처럼 출신이 이방인이라 구원에 대해 외국인이나 손님도 아닙니다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도이며 동일한 시민이며 동일한 권속(眷屬)이 되었습니다.

당시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 중에는 육신적으로 신분의 변화는 꿈도 꿀 수 없는 종()들이었습니다비록 그들은 육신적으로 계속해서 종의 신분으로 살지만영적인 면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에서 자유자로하나님의 자녀로서 동일한 시민권을 가짐으로 신분의 변화되었습니다신분은 종이지만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나라의 모든 특권을 함께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합니다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모든 보장과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출신 배경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더불어 살아가고자 힘써야 합니다이러한 공동체 교회의 생활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⑵ 사도와 선지자들의 토대 위에 세워짐(20)

두 번째 특권을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신앙을 성전 건물에 빗대어 묘사합니다.

이방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처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그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며 그것을 전파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건물 전체의 모퉁잇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교회로서 한 구성원이 되었습니다에베소 교회 안에 비록 이방인이고 종의 신분일 수 있지만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수고를 통해 맺어진 영적 열매들입니다.

⑶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감(21-22)

이방인 성도들은 굳건한 반석으로 만들어진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를 기초로 해서 세워졌습니다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이방인들도 쓰임 받아 함께 성전으로 세워간다고 합니다.

교회를 성전에 비유할 때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성전을 구성하는 돌입니다(베드로전서 2:4-5). 다양한 돌들이 모여서 건물을 이루듯이 다양한 배경의 성도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모퉁잇돌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이룹니다서로 주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함께 아름답게 지어져 갑니다.

건물은 수많은 돌이 모아져서 아름다운 건물을 만듭니다구성하는 건축 자재는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이 모두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아름다운 교회에서는 성도들 또한 이방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모두가 귀중한 성도들입니다모퉁잇돌인 그리스도께서 믿는 모든 자들을 연합시키고 결속시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현대 교회에도 성도들은 각자 출신 성분이 다릅니다성품도학벌도재물도 달란트까지도 모두 차이가 있습니다에베소 교회 안에서는 이런 차이가 서로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었습니다각자 성도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일률적인 재료로 건축할 수 없습니다각자 성분과 형태가 다른 건축 재료들을 통해 특성에 맞게 이용해서 아름다운 건축을 만드는 것입니다서로 장점과 단점을 통해 서로 상합해서 버팀이 되어줍니다교회 안에 구성원들도 서로 보완해서 되어 하나님의 한 공동체인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야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성도나 교회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미완성적인 존재입니다현재도 하나하나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바울은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아직 불안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성 되어져 가는 존재입니다서로가 단점은 보완해주고 세워줌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완성해 나가야합니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성전으로 묘사함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공동체가 되는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히 밝힙니다이제는 더 이상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닙니다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백성한 가족이 되었습니다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방인들이 구원 받은 후성도로서 영적 변화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습니다과거에는 외인으로서 소망 없던 죄인이었지만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모든 권세와 특권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용서와 사랑을 통해 하나 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완성되어 나갑니다당신이 속한 교회가 서로 화해가 이뤄지고 상호 간의 신뢰 속에서 평화의 공동체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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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04)


구원을 성취하신 하나님

에베소서 2장 1-10절


미국에서 일어난 황당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한 어르신이 길거리에서 쓰러져서 응급차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의사가 진단해본 결과, 이미 숨도 맥박도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망진단을 내렸습니다.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고 장의사가 염하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처럼 죽었던 사람이 생명을 얻어서 다시 살아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만약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있으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었던 사람을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본문은 구원 받은 전후 상태와 직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앞 장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찬양’(3-14)과, 그 사역을 온전히 알기 위한 ‘기도’(15-23)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성도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제 바울은 성도들이 알아야할 ‘구원론’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 내용은 먼저 구원 받기 전에 비참한 상태와,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구원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소개합니다.

 

구원을 받기 전 상태(1-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죽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이 있어보지만 이미 죽은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그 비참한 상태로 놓아두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비참한 상태에서 어떻게 살리셨는지에 설명합니다.

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1-3)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먼저 구원 받기 이전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이본문은 신약성경에서 구원에 대해 명확하고 사랑 받는 설명 중 하나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구원에 대한 기준점을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단연코, 그리스도 이전의 구원 받기 전 모습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비참한 상태라고 선언합니다. 구원 받기 전 과거에 비참한 모습을 상기시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에서 자신을 제외시키려 하고 그 문제는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유대인들도 영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이런 비슷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지그까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왔고 말씀을 지켜 왔기 때문에 죄와는 상관없이 구원이 확정된 민족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죄인의 범위를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본문에서 대명사의 변화를 중요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2)는 이방인들을 의미하지만, ‘우리’(3)는 유대인들을 지칭합니다. 결국, 본문을 살펴보면, 죄인의 범위에 대해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인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죄인의 범위에 대해 로마서에서는 설명합니다.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기 전의 상태를 이방인부터 시작해서 유대인까지 살피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영적인 상태를 살펴보겠습니다.

⑴ 구원 전 이방인의 상태(1-2)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이방인 성도들에게 ‘너희’(2)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에게 영적으로 죽었었다고 단언합니다. 당연히 이방인들은 조상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죽은 사람들이 맞습니다. 죽은 시신은 외부 환경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의 사랑에 대해 아무런 반응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죽음의 상태를 두 가지 영적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① 죄와 허물 가운데 행함(2a)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만드셨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계속적으로 생명을 공급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환자실 환자에게 산소 호흡기를 떼면 죽은 것처럼 하나님과 영적으로 단절된 사람은 영생이 없고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에 관한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 없는 사람은 영적인 죽음으로 간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죽음에 대한 원인을 ‘허물과 죄’이라고 관련짓습니다. 허물과 죄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그(허물과 죄) 가운데서 죽었다’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허물(παραπτωμα)’은 ‘경계선을 넘어 벗어나는 것’을 의미함으로, ‘사람이 잘못된 행위나 실패하여 하나님의 뜻과 법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죄(ἁμαρτιαις)’는 ‘과녁을 비켜 가는 화살’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뜻과 법에 어긋나게 행하는 것’이나 ‘잘못된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두 단어는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어거스틴(Augustine)의 해석에 의해서, ‘허물’은 고의성이 없이 범한 죄이고 ‘죄’는 고의성을 가지고 행한 것이라고 구분합니다. 두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인간의 죄악성을 포괄적이며 다양성을 설명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께 창조되었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만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만 높이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 있는 목적에서 벗어난 죄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이방인들이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떠나 있었습니다(에베소서 4;18; 골로새서 1:21; 2:13). 이것은 바로 죄이며 영적 죽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에 대한 결과에 대해 말씀합니다.

23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이러한 인간의 비참한 상태는 이미 인간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선악과 언약을 맺으면서 경고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경우 사람에게 반드시 임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2:17). 시조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실제적으로 죽음이 임하게 되었습니다(창세기 3:24).

② 세상과 악한 영을 좇음(2b)

사도 바울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이 ‘허물’과 ‘죄’ 때문에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만나기 전까지 그 가운데 살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 가운데서 행하여’라고 소개한데, ‘행한다(περιπατεω)’는 행동이나 생활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 구원 전의 이방인 성도들이 죽음의 상태에서 계속해서 어두운 방식으로 죄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를 표현합니다. 바울은 과거의 ‘어두운 삶’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현재 ‘영광스러운 삶’(10)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의 과거 어두운 삶에 대한 특징을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이 세상 풍속’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의도한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된 불신앙의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요한복음 17:14). 세상 풍속을 좇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노아 시대 사람들’(창세기 6장)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창세기 19장)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을 배척하고 세속적 사고, 물질적인 가치 그리고 육체적인 쾌락에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도 죄악에 대해서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두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들의 삶과 별로 차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도 ‘노아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비교했을 때, 참으로 답답하고 슬퍼집니다.

이방인 성도들은 과거의 세상에서 삶의 인도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이며, ‘불순종의 영’이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공중(αμρ)’는 ‘하늘’과의 차이를 두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 보좌가 있는 높은 신성한 곳으로, ‘공중’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바로 위인 세속적인 곳을 의미했습니다. 그만큼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사람들에게 쉽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사용한 것입니다. ‘권세 잡은 자’는 ‘불순종의 영’과 동격입니다. 성령께서 순종하는 영혼들 가운데서 선한 일을 역사하듯이 사단은 악인들 가운데서 악한 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던 이방인 성도들은 과거에는 공중 권세자를 따르면서 불순종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대한 결과는 죄이고 사망이었습니다. 공중 권세자에게 불건전한 지배 영역과 분위기를 받으면서 모든 거짓과 악을 행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⑵ 구원 전 유대인의 모습(3)

사도 바울은 이제 눈을 돌려서 에베소 교회 안에 유대인 성도들을 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유대인 성도들을 이방인들과 구분해서 부릅니다. 유대인들을 ‘우리(유대인)도 다 그 가운데서’라고 강조한 표현을 사용해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도 별반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범죄 상태 있다는 증거로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① 정서적인 타락(3)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도 구원 전의 삶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살았다고 합니다. 입니다. 본문에서 ‘육체(σαρξ)’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육체의 욕심’은 정신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충동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5:16).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은 관심 없고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로마서 8:7). 그들의 생각에는 육체의 욕심이 기준이 되어 살았던 것입니다. 자아 중심적인 욕망에 지배할 뿐 아니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② 신체적인 타락(3)

이어서 바울은 두 번째 증거는 ‘육체의 원하는 것’을 제시합니다. ‘육체’는 ‘성령’과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정신이 타락하면, 자동적으로 행동도 타락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세속 중심적인 가치관의 중심-물질만능주의, 권력만능주의, 육체쾌락주의 등-으로 살아갑니다.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모든 역량을 다해서 살아갑니다. 삶에 하나님께서 끼어들 곳이 없습니다. 구원 전의 유대인들도 옛 본성의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다름없었습니다. 허기진 사람들처럼 채우지 못한 세상의 욕망을 채우기 모든 가득하였습니다.

③ 이성적인 타락(3)

마지막으로 바울은 유대인들의 타락한 모습을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했다고 지적합니다. 사람의 이성적 기능은 지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이성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면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육적 우선순위에 따라 자기기만, 자기 합리화, 혼미함, 불합리한 신념 등으로 결정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까지도 완벽하게 죄인이라고 세 가지 반증을 들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민이기 때문에 이방인들과는 구별된 존재라고 생각했고, 이방인들을 부정한 죄인으로 간주해서(갈라디아서 2:15),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도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사도행전 10:28). 겉으로는 선민으로서 하나님께 제사하고 말씀을 가르쳤지만, 내면에는 이방인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속적인 가치관에 순응하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동족이라고 해서 연민으로 감싸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죄인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죄인이란 사실은 의사에게 암 3기를 진단 받은 것보다 더 하늘이 무너지는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들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선언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조건이든지 예외 없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모든 인류의 구원 받기 이전 인류의 상태를 간결하게 살폈습니다. 모든 인류가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살고 있음을 밝혔습니다(로마서 5:12-14). 죽은 사람은 움직일 능력이 없는 것처럼, 구원을 위해 어떤 능력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범죄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세상의 풍조를 따랐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지배를 받으면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았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까지도 패역한 삶을 살았습니다. 영적으로 아무런 소망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하심만이 필요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4-9)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외적으로는 아무런 육체적인 변화는 없지만,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단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가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됩니다(로마서 8:15; 갈라디아서 4:6).

4(그러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4-7)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이방인이나 유대인 모든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입니다. 사람들은 죽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어떤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죽음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구원 작전을 수행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서 죄인들을 구원하신 일입니 다(요한복음 3:16; 갈라디아서 4:4-5; 디모데전서 1:15).

 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심(4-6)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비극적인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먼저 ‘(그러나) 하나님께서 …(ό δε θεος)’라고 앞 1-3절의 비극적인 내용을 극적인 반전하면서 시작합니다. 하나님 밖에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습니다. 극적인 변화는 “죽었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5)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데다가 마귀의 권세에 눌려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속죄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시면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들도 함께 살리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은 이미 정죄되어 저주 받을 운명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은 아무런 느낌이 없듯이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물며 구원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능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위대한 사랑이며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셨던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시고 가슴 아파하셨습니다(참고 출애굽기 2:24-25). 가만히 계시지 않고 ‘자기의 큰 사랑 때문에’ 인류를 살리시기 위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아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큰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또한 구체적으로 넘치도록 풍성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기쁜 소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에 대해 ‘우리’를 향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앞에서 유대인들만 한정한 ‘우리’(3)와는 다르게 모든 유대인들을 포함한 이방인까지 모든 인류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와 사역과 연결시킵니다(1:20-23). ‘우리’를 위해 이루셨던 구원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와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1:20)과 동일한 사역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고 하늘에 함께 앉히신 일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전치사와 중요한 세 가지 동사는 ‘함께 살리셨다’, ‘함께 일으키셨다’ 그리고 ‘함께 앉히셨다’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동사들 앞에는 ‘함께(συν)’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 전체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부활과 승귀가 동참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일으키시고 자기 우편에 앉히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동일한 능력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살아 있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입니다(요한복음 3:3,7; 베드로전서 1:3,23).

 아무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건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구원은, 개인적으로 과거 사건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만 그의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 승귀가 자신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연합한 사람들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와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히십니다.

⑵ 구원의 목적(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죽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죽음의 쇠사슬이 풀려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요한복음 5:24; 골로새서 2:13-14). 장차 그리스도의 부활에 함께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릴 것입니다. 이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보이셨습니다(에베소서 1:19-20). 성도의 구원에는 인간은 무능력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강력하게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왜 아무런 가치 없는 사람을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이렇게 하셨겠습니까? 즉,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베푸신 풍성한 은혜를 오는 세대에 알리려는 것’입니다. ‘오는 세대’란 현재 세대와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미래 세대를 모두 포함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보여주시길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영원히 나타나실 원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은혜’를 살펴보면, 사람의 공로가 없이 하나님께 거저 주시는 것, 즉 구원의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베푸신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라고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휘페르발로(ὑπερβαλλω)’, 즉 ‘엄청난’, ‘탁월한’이란 단어와 함께 ‘플루토스(πλουτος)’ ‘부요함’이란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함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긍휼히 충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을 값없이 은혜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하신 분이시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랑이 지극히 많으신 분입니다. 인자하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엄청나게 풍성하신 분입니다. 엄청난 풍성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그의 인자하심에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긍휼히 풍성하신 은혜를 오는 세대들에게 입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히는 특권을 주신 목적입니다. 은혜란 자격과 공로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호의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와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오는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⑶ 구원의 방법(8-9)

이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인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두 가지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의 믿음’을 언급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믿음’은 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잘못생각하면 구원이 하나님과 사람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단언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값없고 조건 없는 긍휼이며 ‘믿음’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 구원을 받았으니’(5,8)라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시작합니다. 단순한 반복 서술이 아니라 기쁨이 넘치는 탄성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지금도 계속 구원을 누리고 있는 상태를 기쁨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구원 받은 ‘그 은혜로’,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이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적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에서 나온 것처럼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위에서 언급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에 대한 성도의 인격적인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이루신 구원의 사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성령께서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제부터 구원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서술합니다. 구원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력한 자들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아드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음으로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선민(選民)’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단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은혜의 역사를 통해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사도행전 18:27; 빌립보서 1:29).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구원에 대해 유대인처럼 구원 받은 백성이라고 거만하게 자랑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구원 받은 인간(10)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선물을 받을 때에 값없이 받지만, 반대로 선물을 줄 때는 선물의 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구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실 때는 값없이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기 위해 값진 대가를 지불했어야 합니다.

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0)

사도 바울은 10절을 ‘그러므로(γαρ)’로 시작하면서, 구원에 대해 인간적인 자랑이 있을 수 없는 이유를 다시 주장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작품이며, 곧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설명합니다.

⑴ 하나님의 작품(10a)

본문에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고 소개합니다. ‘만드신 바(ποιημα)’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미 ‘만들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구원하신 사건을 설명합니다. 구원의 사건은 개인적으로는 구원 받은 성도를 말하지만, 공동체적으로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작품’임을 밝힌 것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작품’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창조하신 피조물을 말합니다. ‘창조’란 단어는, 창조 때뿐만 아니라 재창조 때도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이것은 창조나 재창조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회에게 새로운 피조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누누이 강조하지만,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은 구원에 대해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도자기를 빚듯이 죽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와 함께 일으키시고, 그와 함께 하늘에서 앉히신 것, 모든 구원 사역은 태조에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 사역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재창조를 심도 깊게 하셨습니다.

작품은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솜씨를 그대로 들어냅니다. 재창조된 성도는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동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⑵ 선한 일을 위함(10b)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작품으로 만드신 또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죽어서 스스로 아무 것도 행할 수 없었던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라고 재창조되었습니다.

앞 단락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1:6,12,14).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것과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서로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것은 입술로 찬양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만드실 때,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창세기 1:26). 아담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창조주의 원하심대로 따라 다스렸으면, 만물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 나타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은 죽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권과 영광도 상실되어졌습니다.

새롭게 창조된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를 닮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한 모습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특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선한 모습을 들어 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들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물을 주신 분의 뜻에 합당한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창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회복시키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과 함께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선한 도구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말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어느 한 부분도 우리에게 능력을 허락하신 것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값없이 최고의 선물인 ‘구원’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작품으로서 탄생되었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오직 겸손히 감사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허락하신 이유를 하나님의 선한 일을 도모하기 위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힘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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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03)


교회를 위한 감사와 기도

에베소서 1장 15-23


우리나라에서도 원정출산(遠征出産)이 문제된 적이 있지만, 중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원정출산이란 다른 나라 안에서 출산하면 출산한 나라의 시민권과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출산을 말합니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좀 더 좋은 나라에서 출산하기를 동경합니다. 대부분 미국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미국령인 괌이나 하와이 같은 곳으로 갑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출산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과 모든 복을 누리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한없는 찬양을 드렸습니다이 본문은 찬양이 이어 그의 기도가 기록된 부분입니다에베소서에는 세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구원에 대한 감사의 영광을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그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깨닫고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길 바랍니다더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의 특권을 누리면서 영광된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성도들은 찬양과 기도가 동반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교회에 대한 감사(15-16)

요즘 청소년들이 많이 흔들립니다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부모와 자녀들 간에 가정교육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당연히 자기 뿌리에 대한 교육도 없어 자존감(自尊感)도 사라져 갑니다그러므로 스스로 자존감을 인식하면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지만반대는 좋은 환경 속에서도 쉽게 흔들려서 방황합니다.

15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15-1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습니다그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교회에 있었습니다그 관심은 교회들을 위해 중보기도로 이어졌습니다심지어는 로마에서 감옥에 투옥된 상태에서도 교회와 성도들 생각뿐이었습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는 그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어 있었습니다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정말 어려움 가운데 헌신하면서 세운 교회(사도행전 20:34)이기 때문입니다에베소 교회에 대한 관심은 매우 깊었으므로그들을 위해 당연히 기도했을 겁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표합니다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빠지지 않고 기도했다고 합니다기도하는 동안 에베소 교회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고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⑴ 감사의 근원(15a)

에베소 성도들에 대한 좋은 소식은 먼 로마까지 소문날 정도였습니다그들의 소식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까지 들려졌습니다바울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듣고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바울은 더욱 그들을 한사람 한사람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성장할 수 있는 근원을 이로 말미암아라고 소개합니다이것은 3-14절에서 설명한 주권적인 하나님의 구원에서 근원되었음을 강조합니다그러므로 에베소 성도들에게 감사할 조건은 사람의 능력이나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⑵ 감사의 조건(15b)

에베소 성도의 ‘사랑’과 ‘믿음’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결실이며 증거입니다그러므로 완벽하지 않지만 에베소 교회는 꾸준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말씀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본문으로 돌아와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한 공동체라고 합니다충만한 공동체의 요소인 ‘믿음’과 ‘사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① 믿음

먼저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있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대해 감사합니다이 ‘믿음(πίστις)’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햇볕처럼 내리시는 은혜 아래 머물러 있는 능동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당시에 로마 제국 지배 아래 있는 식민지들은 모두 황제를 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하지만 그들은 순교를 무릎 쓰고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지속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뿌려진 복음이 ‘주 예수 안에’ 성장하여 열매 맺고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거론한 것처럼 에베소 지역은 믿음이 성장하기에 매우 척박한 지역이었습니다당시 에베소는 로마 황제 숭배뿐만 아니라 이방적인 우상과 풍요로운 물질 그리고 방탕한 문화 등이 산재되어 있었습니다마치 지뢰밭처럼 유혹과 시험이 산재되어 있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바울은 3년 동안 이런 에베소에서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어려운 가운데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지만 에베소 성도에게 겨자씨처럼 성장했던 것입니다유혹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고 의 은혜 안에 지속적으로 있었습니다연약해 보이던 이들이 굳건한 믿음을 서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매우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② 사랑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를 향한 실천적인 ‘사랑(την αγαπην)’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로 개종이나 종교 행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도 나타납니다그 실천적 믿음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한1서 4:20)

에베소 성도들이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그 이유는 교회 구성원들이 다른 출신과 배경으로-혈통과 신분유대인과 이방인주인과 노예들이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차별과 분열의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친한 동료들에게만 속 좁은 사랑을 하지 않았습니다말씀대로 하나 되어 모든 성도들을 향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이러한 모습은 교회의 연합과 충만한 공동체로 성장했던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좋은 평판이 주변 소아시아 지역에 교회에 대한 펴졌습니다교회들을 개척할 때여러 모습으로 물심양면 힘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에베소 교회가 ‘믿음’과 ‘사랑’이 가득하다는 소식은 바울에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성도들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하나님의 형상인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했었습니다아름다운 믿음은 바른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주변에 대해서도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⑶ 믿음의 결과(16)

건강한 농작물은 좋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성숙한 믿음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를 맺습니다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은 영적인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기쁨과 동일합니다마치 농부들이 농작물이 성장해서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볼 때처럼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더 나가서 그들의 성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그 사실에 근거해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은 바울이 기록했던 서신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참고 로마서 1:8-9; 빌립보서 1:3-4; 골로새서 1:3,9; 데살로니가전서 1:2; 데살로니가후서 1:3,11). 이러한 ‘감사’와 ‘기도’는 믿음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차차 살펴보겠지만에베소 교회는 좋은 면도 있었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도 있었습니다그들을 현재 미숙한 상태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장차 미래 성숙한 모습을 보며 격려하고 있습니다칭찬과 격려는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기 때문입니다조금 부족하지만장차 성장해서 온 세상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이러한 미래 청사진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감사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를 위한 기도(17-19)

중보기도는 타인을 위한 기도입니다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러기 때문에 항상 모든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하나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7-19)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던 바울은더 나가서 이제 그들의 ‘믿음’과 ‘사랑’에 근거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그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숫자의 부흥성장출세성공 그리고 부귀영화와 같은 자기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아닙니다.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핵심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깊게 인격적으로 안다는 것’즉 ‘하나님 자녀임’을 확신하길 원했습니다.

⑴ 에베소를 위한 중보기도(17)

구체적으로 살펴보면바울은 3-14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에베소 성도들에게 소개했었습니다그러나 짧은 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그래서 자신이 다 이해시키려 하기 보다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영광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그들이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더욱 인격적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먼저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길 기도합니다진리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임하셔야만 가능합니다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역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도 성령께서 자녀에게 임재를 통한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사도 바울도 같은 의미로 고린도 교회에게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10)

그렇다면 이제 성령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성령께서 하시는 일들은 많지만그 사역 중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비밀을 사도와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시고(에베소서 3:5),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려진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특히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요한복음 14:15-21; 16:7-15).

엘리사 시대에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합니다엘리사의 사환은 아람 군대의 많은 규모를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하지만 엘리사는 그를 위해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환의 눈을 열어 아람군대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합니다(열왕기하 6:15-17).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간구합니다임한 성령께서 성도들의 눈을 밝혀줌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비밀을 정확히 깨닫고 깊이 통찰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성령의 도우심으로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고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이제 바울을 성도들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⑵ 중보기도의 제목(18-19)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그의 기도 구체적으로 세 가지였습니다그 제목 하나하나에 신앙의 핵심적인 실체들이 담겨 있습니다차례로 기도 제목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부르심에 대한 소망(18)

먼저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열린 눈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망’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단순히 영혼 구원을 위해 부르신 것만 아니라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부르심이었습니다과거 세상에서 사단의 자녀로 죄악에 소망이 없었지만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망’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개인적인 소망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는 것이며(1:14; 5:5), 교회적인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거룩하고 흠 없게 하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신부로 세우시는 것입니다(5:26-27). 마지막으로 우주적인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과 통치하시는 것입니다부르실 때 이러한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성도들을 불러주셨습니다.

하지만 허물과 죄로 어두워진 사람들은 한없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오직 성령께서 임하셔서 사람들의 영안을 여시고 깨닫게 할 때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오늘도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영안을 열어야만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망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②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18)

둘째로 그들이 깨달아야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움’이었습니다본문을 정확히 번역하면‘성도 안에 있는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입니다이것은 ‘성도들에게 부여하신 것’이나 ‘성도들이 소유하거나 앞으로 소유하게 될 기업’을 의미합니다.

이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기업의 풍성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이 사실을 성령께서 보증을 해주셨습니다이제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기업을 계속 누리며 살아가면 됩니다그리고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풍성하고 영광스러운 나라에 들어가서 모두 누리게 될 것입니다아마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풍성하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존재로 대하신다는 것즉 영적 자존감을 깨닫기를 원했던 것입니다이 사실을 깨달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풍성함에 기뻐할 수 있고또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바울이 감옥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광스러운 풍성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능력의 지극히 크심(19)

마지막으로 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자녀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큰 능력’입니다본문을 쉬운 해석을 한다면‘그의 강력한 힘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 여러분으로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강력’, ‘힘’, ‘역사하심’으로 반복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것 위에 매우 뛰어남을 강조합니다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능력은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바울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구원 사역의 예를 들어서 증거 합니다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2:1-5),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시며(2:8-9) 그리고 전에 악하게 살던 사람에게 선한 뜻과 행위로 살도록 깨닫게 하십니다(2:10).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생명을 주관하시고그리스도를 하늘에 오르게 하시고그리고 만물 위에 뛰어난 존재가 되게 하실 만큼 크고 위대한 능력입니다.

이 뛰어난 능력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셨고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힐 것입니다그러므로 구원 받은 성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임하셔서 마음의 눈을 밝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바울은 성도들이 바울은 구원의 능력은 깨닫기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눈이 밝아진 만큼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능력인지를 깨달게 될 것입니다이것을 통해 모든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확실하게 상기시키려 합니다.

정리하면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다른 성도들도 자신처럼 하나님의 구원 사실을 깨닫길 원했습니다그래서 성령님께서 임재 하셔서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더 깊고 풍성함을 깨달을 걸 원합니다지금도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바울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기를 기대합니다.

 

능력을 통한 기도의 근원(20-22)

복음 안에서 하나 되고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증거 하는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하지만 사단은 매우 싫어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바른 하나님의 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을 가만히 두지 않고 흩어 놓으려 합니다여러 가지 궤계를 사용해서 바른 공동체가 분열되길 원합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완전하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20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20-22)

사도 바울은 계속적으로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그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앞에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대해 언급하고성령의 조명으로 깨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이제 19절에서 설명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세 가지 제시합니다그리스도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강력하고 웅장한 기도의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20)

사도 바울이 능력 있게 기도할 수 있는 첫 번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 때문입니다그리스도 이전에는 모든 소망이 끊어졌습니다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소망이 부활하였습니다보란 듯이 죽음을 이기고 삼일만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셨고더 나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본문을 ‘하나님께서 자기의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하늘에서 자기 우편에 앉히셨다’라고 알맞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이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이라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습니다연장선상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표현은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아 만물의 통치하시는 주요 구원자라는 의미로 받아 들렸습니다이미 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것입니다.

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시편 110:1-2)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며 만물을 통일하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이전에 모든 영광의 지위를 회복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살리고 세우시며 주관하시는 강력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이 강력한 능력을 근거로 기도한 것입니다.

⑵ 만물을 복종케 하심(21-22a)

기도할 수 있는 두 번째 근거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복종케 하신 능력 때문입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부터 지금까지 온 천하 만물을 통치하시고 찬양 받으실 분입니다(로마서 9:5). 더욱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고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다시 한 번 온 천하를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나타내셨습니다그의 대상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즉 세상에 존재한 모든 권세들을 통치하실 분이심을 의미합니다이러한 모습을 시편에서 다윗은 잘 설명합니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시편 8: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만물의 의미는 하늘과 땅하늘에 존재한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영적인 존재들과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우주 만물입니다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발 아래 두신 것은 그리스도가 만물을 통치하시는 우주 만물의 주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자기 우편에 앉히시고모든 존재들까지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을 통일시키시고 화목케 하셨습니다마침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사단을 우리 발아래 굴복케 하시고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로마서 16:20). 단지 영적 존재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까지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그의 통치권 아래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히브리서 2: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해 세력도 기도를 막을 수 없습니다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상달되고 응답됩니다.

⑶ 만물 위에 계신 그리스도(22b)

기도할 마지막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통치하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이 부분을 ‘(하나님께서) 그를 만물 위에 계신 머리로 교회에 주셨습니다.’라고 번역해야 합니다‘머리(κεφαλη)’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권위’‘지배자’나 또는 ‘원천’‘근원’으로 사용합니다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골 1:18) ‘정사와 권세의 머리’(골 2:10)라고 소개합니다그리스도께서 ‘만물의 머리’란 그리스도가 만물을 통치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사도 바울은 빌립소서에서 그리스도의 만물의 주되심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9-11)

그리스도는 만물을 통치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만물 위에 계신 머리로, 바로 교회의 머리, 주인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으로 항상 교회를 보호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서 금대접에 향으로 담아서 흠향하실 것(요한계시록 5:8)이며, 그 기도를 선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근거로 해서 기도한다는 했습니다그의 기도는 무기력한 푸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강력한 능력을 근거로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그러므로 사적 기도나 공적 기도든지조용한 골방 기도이나 강한 외치는 기도든지그리고 새벽 기도든지 저녁 기도든지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도를 흠향하고 계십니다그 기도의 제목보다 더 풍성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더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신 자의 교회(23)

세상적으로 물들어 가는 교회는 그만큼 영적 능력을 상실해 갑니다그리고 종종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기도 합니다아무리 무능력한 교회일지라도 그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시고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이곳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치 그리고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아무리 교회가 연약해 보일지라도 함부로 폄하할 수 없습니다.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23)

사도 바울은 앞 절에서 거론된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부연 설명합니다. 두 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간결하지만 에베소서에서 가장 해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⑴ 그리스도의 몸(23a)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또는 ‘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1:23;2:16;4:4,12,16;5:23,28,30).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란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와 ‘생명을 가진 유기적 통일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는 생명적인 관계입니다. 반대로 분리되면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실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생명을 공급 받을 때만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존재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교회’가 ‘유기적 통일체’란 많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4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들은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고 한 몸이 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2:13).

지금도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임재 하시고 각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접붙임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 또한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⑵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23b)

이 부분은 가장 해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먼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곳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한다.’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임재로 온 세상을 가득히 채우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주권적으로 만물을 통치하며 그리고 그 능력으로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죄와 타락으로 상실한 만물을 평화와 조화와 아름다움으로 회복하여 다시 완전하게 만드시는 것이 곧 만물의 충만인 것입니다.

‘교회가 충만하게 되었다’는 구약에 하나님께서 성막이나 성전에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33:22).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2:21-22). 종말에 새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므로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 자신으로 충만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는 만물을 통일하신 하나님의 종말적 구원이 가장 먼저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임재와 통치로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성령의 은사들과 능력을 체험합니다.

이 교회를 통해 만물을 온전히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선교의 도구이자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으로 만물에게 그리스도의 통치를 증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가졌습니다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오염된 세상을 새롭게 회복하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인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갑니다그러므로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이제 당신이 어떤 역할을 살피고 감당하실 원합니다자신의 몸인 성도들이 기도할 때, 그리스도께서 확실히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더 나가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임하셔서 마음의 눈을 밝히길 간구했습니다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계신 머리이지만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주인이심을 깨닫길 원하십니다성령 임재를 통해 에베소 성도들처럼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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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02)


찬양을 받으실 삼위일체 하나님

에베소서 1장 3-14


하나님에 관한 삼위일체(三位一體)’는 신비로운 교리입니다이 신비는 하나님의 계시(啓示)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계시해주신다고 할지라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그래서 이 삼위일체 신비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종종 사물을 통해 삼위일체를 비교 설명하려 하지만어느 것도 이 신비를 적당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을 피조물과 비교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할 수 있는 것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뿐입니다본문에서는 그 위대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찬양을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인사말과 축복의 말을 마친 후이제 복의 근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본 에베소서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기 위해 기록되어졌습니다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일치와 연합에 초점을 맞춘 교회론(敎會論)’이 중심입니다바울은 찬양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소개합니다성부 하나님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을 찬양합니다그 결과 모든 성도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초대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찬양(3-6)

사람들은 백번 잘 해주다가 한 번 실수하면그 실수한 것만 기억합니다그 동안 좋은 일을 잊어버리고 단 한 번의 서운함에 오해하고 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지혜로운 사람은 서운한 일보다 좋은 일을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하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일들을 하나씩 나열하면서 찬양합니다.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3-6)

사도 바울은 인사말을 마친 후수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하지만다른 말을 접고 먼저 벅찬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시작합니다이 방법은 바울의 다른 서신과 차이가 있습니다다른 서신에서는 인사 후 바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 기도를 하지만(로마서 1:8;고린도전서 1:4;빌립보서 1:3-8;데살로니가전서 1:2-4;데살로니가후서 1:3;빌레몬서 1:4), 에베소서에서는 기도보다 먼저 하나님께 찬양합니다찬양은 성도들을 위해 역사하신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참조 고린도후서 1:3).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리로다라고 선언으로 영광송(Doxology)을 시작합니다바울은 신령한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헬라어 원문에서는 3-14절이 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이 문단을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세 단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따라 순서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예수 그리스도성령 하나님 순으로 구원 사역에 대해 찬양합니다.

먼저 성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두 가지 계획은 선택과 예정으로 서술합니다성부 하나님의 계획은 기쁘신 뜻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자녀인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조하려는 것입니다.

(1) 성부 하나님의 선택(選擇)(3-4)

사도 바울은 순서에 따라 첫 번째로 ‘성부 하나님’를 찬양합니다먼저 ‘성부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소개합니다본문에서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소개한 것은 우리의 구원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도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그러니깐 당시 유대인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으로 대단했습니다.

1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한복음 5:17-18)

유대인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관점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구약에서는 감히 함부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거나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막혔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이제는 그 열린 길을 통해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들도 그 길을 따라서 나갈 수 있고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가족 같은 친밀함으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① 모든 신령한 복(3)

성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이 신령한 복은 세상적인 축복보다 영적인 축복으로 즉그리스도 안에서 부여 되는 것입니다(베드로후서 1:3). 죄로 죽었던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생명을 가능하게 가져오신 모든 사역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복은 모든 사람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합당한 사람들에게만 임합니다바로 그 합당한 사람은 선택 받은 사람들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요한복음 1:12). 이들에게 모든 하늘의 신령한 복이 성도들에게 내려 누립니다이는 장차 천국에서 누릴 복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면서 누릴 복입니다이는 이미 앞에서 거론했던 은혜와 평화의 형태로 심령에 임합니다.

② 하나님의 선택(4)

본문에서 말하는 ‘신령한 복’은 가장 중요한 복은 성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하나님의 선택에는 수많은 특권이 주어집니다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강조점은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부터 모든 세상을 향한 계획이 있었습니다특히 영혼을 구원하신 선택은 중간에 변경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인 항상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태초에 천지 창조하신 후 좋아하셨고(참고 창세기 1), 창조 사역 중에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창세기 1:31). 하지만아담의 범죄로 인해 세상에 어두움이 가득히 찼습니다새롭게 하시기 위해 세상을 홍수 심판하시고 믿음의 선진들을 선택하지만모두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세상은 다시 죄악으로 돌아 가버렸습니다사람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무엇인가 하면 할수록 더 악화시켰습니다.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 선택의 시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은 사랑하셨고 찾으십니다(참고 신명기 7:7-9). 무능력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바울은 선택한 시기를 창세전에라고 소개합니다(참고 에베소서 3:11). 모든 만물이 아무 것도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기억하셨고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이나 바울을 선택하신 것처럼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하셨습니다상상할 수 없는 너무 놀라운 사실입니다사람들의 성품이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 선택하신 목적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목적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소개합니다결국 모든 인류가 사망에 아니라 구원에 이르기 위한 것입니다즉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서도록 하신 것입니다(참고 골로새서 1:22). 이 모습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드려진 제물들이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선택 받은 사람들은 영접한 순간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얻지만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흠이 없는 완벽한 존재는 아닙니다성령께서 성도들을 점점 거룩하게 성화시키며마침내 그리스도의 날에는 거룩하고 흠이 없으므로 책망할 것이 없는 영화로운 존재로 세우십니다(골로새서 1:22; 에베소서 5:27; 고린도전서 1:8).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받기 위한 차원을 넘어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도록(에베소서 4:1) 선택하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선택 받은 사람들의 삶은 이 세상에서 거룩한 존재(聖徒)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누가복음 3:8). 많은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사람들은 열매 맺는 성도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제자라고 인정할 것입니다(요한복음 15:8; 고린도후서 7:1).

죄인들을 선택하시고 흠 없는 영광스러운 존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자비로운 분이십니까그러므로 찬송가처럼 만 입이 있다면 그 모든 입을 다 가지고 주 크신 은혜를 항상 찬양할 것입니다(찬송가 23).

(2) 성부 하나님의 예정(豫定)(5)

이제 사도 바울은 두 번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언급합니다그 복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 삼으시려고 예정하신 것입니다‘예정하다(προορίζω)’는 ‘미리 결정하다’, ‘사전에 결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예정하신 것은 선택과 같이 단일회적인 사건이며 그 결과가 중간에 변경됨이 없으셨고 지금까지 예정하신대로 계속되고 계십니다.

본래 사람은 ‘불순종의 자녀’이며 ‘진노의 자녀’(에베소서 2:2-3)였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죄인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가운데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1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디모데후서 1:9-10)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새롭게 창조 되었습니다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듯이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된 사람들을 보시면서도 매우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선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그들은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어서이제는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2:18; 3:12).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수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하지만 이것까지도 거부하면 하나님 자녀도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특권을 누릴 수 없습니다.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거부하고 결국 범죄 하고 타락된 피조물이 되었습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 죄악된 상태로 사람들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시기 위해 예정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기 쉽도록 당시에 로마법 절차를 따라 설명합니다당시 한 노예가 주인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 주인의 자녀로 입양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그 순간노예는 종의 신분에서 주인의 자녀가 되고자녀로서 주인의 모든 특권을 누릴 자격 있었습니다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사람은 영접한 순간부터 모든 하나님의 자녀이며하나님의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러한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로마서 8:14-17)

이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과의 누렸던 친밀한 부자관계를 똑같이 누리고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요하나님의 상속자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첫 번째로 성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있어 선택과 예정을 찬양합니다성도들은 과거의 어두운 자녀가 아닙니다이제 하나님께 속한 빛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데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아무 자격 없는 사람들을 자녀 삼으시려고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이끄셨던 것입니다(로마서 8:32). 그 사랑을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넘치도록 주신 것입니다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 앞에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그러므로 바울이 가르쳐 주신 것처럼 성부 하나님의 사역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자 하나님의 구속 찬양(7-12)

조선시대에는 노비()들은 관아(官牙)나 개인의 양반집에게 매어 살았습니다그 노비들이 벗어나는 방법은 일정한 몸값을 주고 그의 노비 신분에서 양민이 되는 ‘속량(贖良)’이란 제도가 있었습니다기독교에서는 이 속량이란 단어를 빌려서사단의 노예 신분인 사람들을 위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물이 되셨고사단으로부터 구원한 사실의 용어로 사용합니다.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7-12)

사도 바울은 성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의 사역을 찬양한 다음이어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찬양합니다그 사역은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구원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많은 사역들 중에서 구속 사역을 정리해서 세 가지 제목으로 찬양합니다이 사역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함께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贖良)(7)

먼저 성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첫 번째 목적은 죄인들을 위한 속량 사역입니다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한 놀라운 계획이 있었습니다그 계획은 세상에 성육신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속죄양이 되신 것입니다성부 하나님의 예정함을 입었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량 또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속량(redemption)’이란 값을 지불하고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구속당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이 깊이 다가오지 않지만당시 에베소 성도들에게는 의미가 확실히 다가오는 단어였습니다.

에베소에는 일반적인 노예나 팔려온 노예들이 많았는데그들 중에 노예 상태로 에베소 교회를 출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들에게 노예에서 해방이란 단어 ‘속량’이란 대단한 소식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속량은 ‘죄사함’으로 동격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속량은 구약 시대는 범죄한 사람들은 속죄 받기 위해 흠 없는 양을 잡아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신약 시대에서도 노예시장에 나온 노예를 위해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인으로 만들어 준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이것은 대가를 지불한다는 동일한 의미로 속량입니다이처럼 구원에서 죄나 매임으로부터 대가를 지불하고 해방되는 것을 속량이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의 속량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입니다죄악 가운데 있던 사람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더 나가서 자유인으로 살도록 하셨습니다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이 속량에 대해 간단하지만 핵심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로새서 1:14)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베드로전서 1:18-19)

실제로 하나님께서 범죄한 사람들에게 대가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그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양이 되셨고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시려고 화목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구원 받은 정도가 아니라 더 넘치도록 풍성하게 복을 받도록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0:10).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속량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만 속량 받을 수 있었습니다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는 더 자세히 속량을 설명합니다.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로마서 5:8-10)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 받은 것은 가장 중요한 복 중레 복이라고 소개했습니다선택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된 것처럼 속량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이 신비한 비밀을 깨닫도록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지혜와 총명(지식)을 주셨습니다현 시대 성도들이 더욱 감사한 것은 에베소 성도들 아니 어느 시대 성도들보다 이 하나님의 진리를 더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⑵ 예수 그리스도의 통일(統一)(8-1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속량된 것은 가장 중요한 복 중에 복이라고 소개했습니다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한 동안 신비로운 비밀이었습니다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비밀(μυστηριον)’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깨닫도록 지혜와 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역은 유대인들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구원하셨고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신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통일’되도록 하시기 위합니다타락한 세상은 무질서와 혼돈이 찾아왔습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로 더 높아지고 더 많이 가지려하다 보니 분열이 찾아왔고 삶은 지옥처럼 살아온 것입니다시간이 흐르면서 시기질투살인전쟁들이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타락한 세상을 버려두지 않으시고창조 때와 같이 온전하게 회복되길 원하셨습니다다시 창조 질서와 조화와 아름다움의 상태로 새롭게 회복시키시길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통일’이라고 표현합니다죄로 혼란스러웠던 세상 즉범우주적인 모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를 제거시키고각자 다양했던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시 조화롭게 하나로 만드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머리 혹은 통치자가 되실 것입니다(에베소서 1:20-23). 그 안에서 모든 만물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유대인 성도나 이방인 성도나 할 것 없이 하나로 만드실 것입니다마침내 완전한 재창조를 통해 하나를 이루실 것입니다우주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들이 모인 교회에서부터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교회 안에서 분열을 버리고 통일을 이루어야 할 이유를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 모든 관계가 새로워집니다분파나 분열우열이 없고 성령으로 하나를 이루어 갔습니다개인적이나 사회적으로도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질서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상태로 회복될 것입니다이것 또한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모든 만물에게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⑶ 예수 그리스도의 기업(基業)(11)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셨을 뿐 아니라 모든 것들을 계획대로 인도하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계획하신 분이 또한 그 계획을 완성해 가실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에 평안함을 줍니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이곳에서 ‘기업(κληροω)’이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 후에 각 지파들이 제비뽑기해서 자신의 분깃 또는 몫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민수기 26:55-56;신명기 3:18; 15:4). 이런 연장선상에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열방 중에 하나님의 분깃으로 선택되었고(신명기 32:9),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사용한 기업의 의미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천국의 기업을 받게 됨을 의미합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선물로 가나안 땅을 주셨듯이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천국을 기업으로 주실 것입니다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것이므로 그의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11,12)는 앞에서 나타난 ‘우리’(3-10)와는 의미가 차이가 있습니다이곳에서 우리는 에베소 교회 안에 있는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 성도들을 가르칩니다그들은 이방인 성도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유대인 성도들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인 유대인들이라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유대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고 예정하여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셨습니다하나님의 기업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소중히 보호하시는 보배로운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유대인들 중에 몇몇 사람을 예정하시고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부르셨습니다그들을 부르신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이 있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함입니다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새로운 백성을 만드시고 자신의 찬송을 부르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43:21).

성부 하나님의 비밀스러웠던 계획 아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이 성취되었습니다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량을 받았고 하나 같이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은혜를 입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하나를 이루어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침 찬양(13-14)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유하시길 원하지만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습니다사람들은 거부했지만인내하시고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쳐 주셨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이제 바울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소개하고 찬양합니다.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3-14)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유대인에게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지금까지도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달된 과정을 설명합니다.

⑴ 성령의 인(印)치심(13)

유대인들은 거부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렇다고 멈추지 않습니다계속해서 모든 이방인들에게까지 확대되어 갑니다성령께서 예정된 성도들에게 약속의 인치심을 받도록 하십니다인치심을 통해 확신한 구원의 보증이 되도록 하십니다.

본문 13-14절에서 이제 너희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이방인 성도들입니다즉 이방인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유대 성도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집니다에베소 교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이방인들과 소수의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유대인들에게 주셨던 특권을 이제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라고 성령의 인치심과 동일한 조건으로 소개합니다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즉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입니다(로마서 10:14;갈라디아서 3:2). 갈라디아서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갈라디아서 3:1-2)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들이 진리의 말씀인 것은 구약 성경이 예고하셨던 내용들의 실제이자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 1:12). 이방인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접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인 인()치심을 받았다고 소개합니다.

이곳에서 ‘인침을 받았으니(εσφραγιαθητε)’란 보통 ‘일을 확정 짓는다’또는 자기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인(引)’은 소유권을 승인하거나 종결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영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백성임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를 할례로 삼았습니다이방인 성도들은 구약의 예식처럼 할례를 증표로 가진 것이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심령에 성령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표식을 받은 것이 인침입니다(로마서 8:16;요한1서 3:14). 성령의 인치심은 심령에 내주하심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식이며성도들은 이러한 인치심의 내적 표식을 외적 표지(標識)하는 것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큰 특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실 기업은 상상할 수 없이 풍성한 것입니다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고 살 수 있습니다특히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사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입은 사람들입니다창조하시기 전부터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이 진리에 믿음으로 응답한 이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하나님께서 인()쳐 주셨습니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사람들의 의지나 우연 그리고 변덕스러운 마음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오직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예정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행위가 사람의 스스로 의지인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성경에서는 분명히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하십니다성경에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고영접한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이것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28-29)

부족하지만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순간부터 어느 누구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도록 하십니다또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풍성한 기업을 주셨고측량할 수 없는 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이 복을 누린 사람들마다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이처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기 위합니다.

⑵ 성령의 보증(保證)(14)

본문에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라고 소개합니다‘보증(ἀῤῥαβών)’은 헬라어로는 ‘보증금’이라는 뜻이며, 또 ‘먼저 맛봄’, ‘담보’, ‘완전한 지불을 약속하는 지급 보증료’, ‘미리 내주는 일부 지불’ 등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성도 안에 내주하셔서 구원받은 사실을 확실하게 보증하십니다성도의 구원에 대해 보증이 되셔서 미래에 받을 천국의 기업을 미리 맛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성령의 보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4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린도후서 5:4-5)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과거에도 일하셨지만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지금 성령께서는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셔서 책망하시고(요한복음 16:8), 우리를 위로하시고(사도행전 9:31), 우리에게 승리하면서 살도록 능력을 주시고(에베소서 3:16),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주십니다(로마서 8:16).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성령의 사역들은 장차 누릴 것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하지 않습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지금까지 보증하셨던 것들이 완전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이유(엡 1:3-14)
성부 하나님 무조건적인 선택(3-4)
사랑으로 예정(5)
성자 하나님 너그러운 속량(7)
하나로 통일(8-10)
영원한 기업(11)
성령 하나님 약속의 인치심(13)
기업을 보증(14)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의 소유주이십니다장차 그들을 완전히 구속하셔서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그러므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토록 찬미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구원을 확증시키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갈대처럼 흔들리는 상태에서도 꾸준하게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우리 안에 임재하시여구원의 보증하시고 믿음에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정말 감사한 일이므로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모든 성도들이 분명히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영원토록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사도 바울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린 찬양의 내용은 무엇보다도 귀한 구원 사역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주신 신령한 복입니다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길 원하십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값이 주신 은혜(恩惠)’에 대해 삼위일체 하나님께 ‘끝없는 영광(榮光)’을 돌려야 합니다지금까지 하나님께 누린 모든 복을 헤아려보면 바울이 찬양했던 것처럼 우리도 항상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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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01)


신령한 인사말

에베소서 1장 1-2


오늘날 예배당은 현대 감각으로 아름답게 건축되어 있습니다이렇게 건축된 아름다운 예배당은 많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인도하지만교회 안에서는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먼저 믿는 성도들의 삶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다시 발길을 세상으로 돌려 버립니다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외형적인 예배당도 아름다워야겠지만내면적인 구성원의 삶들은 더 아름다워야 합니다이런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때많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서 이런 모범적인 교회와 아름다운 성도에 대해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은 초대교회들을 돌아봅니다본 서를 기록할 당시에 그는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습니다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 교회를 보살핀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현장에는 직접 갈 수 없지만 서신을 통해서라도 멀리 있는 교회들을 돕고자 했습니다이러한 열정적으로 옥중에서 기록한 편지가 바로 ‘옥중서신’인데그 중에 본 ‘에베소서’가 속해 있습니다본문은 에베소서에서 서론(序論중 인사말입니다.

 

발신자 바울(1)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은자기 정체성을 회복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자신의 정체성은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입니다이 사실을 바르게 깨달았을 때요셉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고또한 능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사도 바울은 이러한 정체성이 회복된 사람이었습니다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서신의 첫 부분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1a)

본 에베소서는 당시 일반적인 편지 형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그 당시 편지에는 발신자수신자 그리고 인사말 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바울은 이러한 형식은 에베소서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골로새서디모데후서에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서신을 기록할 때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부름 받은 ‘사도’로 소개합니다.

(1) 발신자

에베소서를 기록할 당시에 편지을 작성하는 형식은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먼저 발신자의 이름을 기록합니다이 에베소서에서도 자신을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한국 성경은 번역하면서 바울 앞에 많은 단어들을 수식하고 있지만헬라어 원문에는 먼저 발신자의 이름인 ‘바울’을 기록하였습니다영어 성경들도 번역하면서 원문 헬라어 어순(語順)을 따르고 있습니다오늘날 서양의 편지들은 이러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will of God, … (NASB)

사도 바울은 본 에베소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 있는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습니다투옥된 상태에서도 각 지역 교회들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았습니다옥중에서 각 교회들의 소식을 듣고서 회답 형식으로 기록한 서신들이 바로 바울이 기록한 ‘옥중서신’입니다이 옥중서신 중에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록한 서신이 바로 본 ‘에베소서’입니다하지만 이 서신은 단순하게 에베소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에베소 근동 소아시아에 있던 교회들에게 돌려가면서 볼 수 있도록 기록된 ‘회람형 서신’이었습니다그래서 지금 우리까지도 회람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삶이 변화되었던 사람이 필요합니다에베소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시키기 위한 일군으로 바울이 적격(適格)이었습니다바울의 일생을 살펴보면 더욱 적당한 일군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본 서신을 기록한 바울의 삶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① 바울의 출생

사도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길리기아 다소에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출생했습니다(사도행전 22:25-28). 또한 그는 율법에 정통한 독실한 유대인이었고(사도행전 9:11;21:39;22:3), 그의 이름은 유대식으로는 ‘사울’이며로마식은 ‘바울’이었습니다(사도행전 13:9).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그의 부모님은 다소에서 영향력 있는 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소의 바울은 엄격한 근본주의 유대교 가정에서 자라서모세 율법대로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성인 때까지 율법을 준수하며 성장했습니다(갈라디아서 1:14;빌립보서 3:5-6). 다소에서 살다가공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다소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예루살렘에서 그는 바리세인으로 저명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철저한 근본주의 유대교 교육을 받습니다(사도행전 21:39;22:3,28). 그는 가말리엘 문하 중에서 가장 총망 받던 문하생이었습니다.

② 바울의 변화

유대교에서 총망 받던 바울을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생각과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자신이 유대인으로써 최고의 엘리트라고 착각하면서 거만하게 행동했었습니다유대교를 위해서라면 목숨 받힐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이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바울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 받을 만한 자격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주후 33-34년경에그는 매우 특심이었습니다당시 다른 유대인들처럼 나사렛 예수를 이단자라고 생각했었고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즉기독교인들은 이단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거룩한 이스라엘에서 암적인 존재로 생각했습니다그들을 박멸시키기 위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습니다더욱 모든 이단자들을 박멸하기 위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600km가 넘는 먼 거리인 다메섹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그 지역에 여러 회당에 있는 기독교인을 체포하려고 대제사장의 인가를 받았습니다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사도행전 9:3-5). 이 사건은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일이지만역사적으로도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그는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하게 됩니다.

③ 바울의 사명

사명자는 사명을 다 할 때까지 죽지 않습니다반대로 사명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변화된 바울은 평생 동안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사명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이렇게 한 길을 갈 수 있엇던 것은 자신의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3:7-13).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확신은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을 통해서 입니다다시 다메섹 사건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면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눈이 멀었고사람들에 인도되어 다메섹 직가(直街)에 위치한 유다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주께서 아나니아에게 바울에 대한 사명을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사도행전 9:15)

사람의 생각으로 광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어떻게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람을 기독교를 세우는 일군으로 사용될 수 있겠습니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 바울을 불러 구원하시고 이방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그릇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사도직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라고 소개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친히 사도로 뽑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변화시켜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던 중에베소 교회는 3차 전도여행 때에 세우게 됩니다. 3년 동안 많은 고난을 받아가면서 세웠던 교회입니다그 만큼 사랑이 가는 교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들려온 에베소 소식은 모두가 좋은 소식만은 아니었습니다부정적인 소식으로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회의와 갈등을 느끼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지금 바울이 처한 형편 때문이었습니다일반적으로 젊어서 고생하고 노년에 열매를 먹고 삽니다하지만 오직 복음만을 위해 헌신했던 바울은 그 법칙에서 예외였습니다그들은 오직 신실하게 평생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역했던 바울이 노년에 호사(好事)는 누리지 못할지라도로마 감옥에서 중죄인 신분으로 사형을 기다리는 상황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이미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미숙한 상태였습니다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세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상황에 마치 불난 곳에 기름을 끼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그들은 바로 거짓 선생들이었습니다바울이 전했던 곳에 거짓 선생들이 방문해서바울이 가짜 사도이며 가짜 사역자라고 가르쳤습니다가짜 사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정말 미숙한 성도들에게는 매우 혼돈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혼란(混亂)은 회의(懷疑)를 부릅니다회의는 삶을 방황케 하고결국 세속적인 방식대로 살아가고결국 방황하면서 범죄 하도록 만듭니다방황하는 사람은 사단의 먹잇감입니다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집니다사단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아직 미숙한 에베소 성도들이 혼란스러워할 때거짓 교사들로 정확하게 공격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혼란스러울 때는 다른 무엇보다 바른 신앙으로 정립한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에베소 소식을 들은 바울은 에베소를 직접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서신으로 격려하고 신앙을 바르게 정립합니다그 결과가 바로 이 ‘에베소서’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2) 사도성

사도 바울은 대외적으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소개합니다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 받고 투옥되었지만자신의 사명이나 상황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부족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 나라의 사자(使者)로 쓰임 받고 있음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 받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죽도록 충성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복음이 확장되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일군들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가령 그 대상이 돈에 약하면 돈으로이성에 약하면 이성으로명예에 약하면 명예로 유혹해서 공격합니다깨어있지 않는 일군들은 바람에 낙엽 떨어지듯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집니다사단은 선한 일군인 바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공격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군인 사도권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다른 사도들과 비교해서 그 점에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사단이 바울을 공격할 목표는 사도직이었습니다사단은 바울과 충돌이 일어나는 곳마다 사도직을 가지고 단지를 걸었습니다바울에게 사도직을 공격하면힘을 잃을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교회 안팎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항상 ‘사도권’이 공격을 받았습니다특히 갈라디아 교회에 있던 거짓 선생들도 바울을 공격하면서 정면으로 사도가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사도권’을 흔들면 흔들수록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더욱 더 강력하게 ‘사도권’을 주장하며 나갔던 것입니다일반적으로 ‘사도권’에 대해 살펴봅시다예수님 이후 사도에 대해 설명한 곳은 사도행전입니다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가 죽은 후그 빈자리를 대신할 사도를 뽑았습니다이 때 사도의 자격을 소개했습니다.

21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사도행전 1:21-22)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12사도들처럼 함께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지 못했고더 나가서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신을 사도로 부르셨고, 12사도들과 동일한 사도직을 주셨다고 확신합니다그러므로 바울은 주장하는 ‘사도권’을 로마서를 통해 살펴보면사도로서 3가지 조건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로마서 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어야 하고

2. 하나님의 복음 속으로 온전히 구별되어져야 하며

3.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당시에는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고 있었기에 사도나 성도로서 자격이 없었습니다하지만 다메섹에 성도들을 체포하려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반전을 이룬 확실한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바울을 사도로 부르셨고바울은 사도로서 부르심에 응답 하였습니다.

(3) 사도의 근원

수많은 공격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흔들리지 않고 사역할 수 있었던 근거가 있습니다바로 자기 사명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었습니다이는 스스로 자기 확신에 찬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실한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소개했습니다이곳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가 된 것이 자신의 자격으로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되었다는 겸손한 고백입니다다른 의미는 당시 바울에게 사도권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방어였습니다‘사도’라면 예수님을 직접 목격해야 된다고 공격할 때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던 사건으로 방어했던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대표적인 공격은 갈라디아서에 나와 있습니다거짓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공격할 때자신의 사도권과 사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변론합니다.

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라디아서 1:10-12)

사도 바울의 ‘사도직’은 자신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던 것입니다다른 사도들처럼 직접 예수님을 따라다니진 못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섭리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그래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항상 낮추어서 말합니다.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9-10)

하나님께서 바울을 강제적으로 사도로 부르셨습니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즉 하나님의 주권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변호했던 것입니다종의 권한처럼‘사도권’도 자신의 의도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은 어떤 권한이 없습니다주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뿐입니다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도권’을 부인하는 것은 단순히 사도권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그 동안 사도권을 가지고 사역했던 모든 하나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이것은 복음을 무력화하기 위한 사단의 공격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도로 세우신 것을 확신하고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을 위한 사역이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깝지 않고 죽도록 충성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 영적 정체성이 흔들릴 때사단은 그 성도들을 공격 목표로 삼습니다과거의 약점으로 너는 죄인이다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공격합니다이렇게 사단이 공격해올 때성도들은 담대하게 과거에는 몰라서 그렇게 살았지만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사단은 이러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두려워합니다그러므로 성도들이 자신의 신분과 직분에 대해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요셉처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수신자 성도들(1b)

성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때로는 세상적인 것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가질 수 있습니다그렇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지금까지 우리가 누렸던 복을 헤아려보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누렸고 또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1b)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었고이제는 세상과 단절되고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의 풍속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라면 그의 소유로서 합당한 새로운 방식과 그의 요구에 걸맞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에베소 성도들은 또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⑴ 영적인 직분

사도 바울은 본 에베소서 수신자들을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자세히 살펴보면에베소 성도들에게 이중으로 성도(聖徒)’와 신실한 자이라고 부릅니다.

① 성도

먼저 성도(ἅγιος)’란 구약에서 종교적 경외심을 뜻하는 신성한 사람’, ‘봉헌된 사람’이란 의미를 지닙니다구약에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였습니다(신명기 33:3).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영적인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결국,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거듭난 자또는 세상으로부터 성별(聖別)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도’란 호칭이 도덕적인 의미에서 거룩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거룩한 신분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身分)을 의미합니다이 ‘성도’란 호칭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名譽)입니다.

② 신실한 자

다음으로 ‘신실한 자(πιστος)’란 ‘신뢰하다(πειθω)’에서 유리한 단어로 ‘믿을 만한 자’, ‘신임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신약에서 사용할 때는 성도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결국 성도의 신실한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한 무리’ 또는 ‘성도’가 되었습니다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종합해 보면신분상으로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성도’이고실제 삶에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이러한 호칭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자신들을 구별된 거룩한 사람이며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불렀습니다신약에서는 하나님께 세상에서 구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쉬운 표현으로 두 가지를 정리해 보면하나님의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이제는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하나님의 거룩함만 닮아가는 사람입니다그들은 세속적인 방법에 영향 받지 않을 사람입니다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과거에는 세상에 속해서 부정한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거룩한 사람그리스도인입니다바울이 이 표현을 사용한 의도한 것은 에베소 성도들이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과 동격으로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또한 믿음을 소유한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정체성으로 ‘성도’와 함께 ‘거룩’이 동시에 사용됩니다‘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며말씀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⑵ 실질적 생활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할 에베소 성도들은 실질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과 후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지속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었지만일상에서는 일반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이처럼 성도가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성도들이 에베소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란 매우 힘들었습니다.

① 다양한 구성원

에베소 교회 안에는 구성원이 유대인과 이방인로마인과 지역민주인과 종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예를 들어 유대인들은 소수지만 영적 자부심 때문에 서로 화합하기 힘들었습니다이방인 출신 성도들은 아직까지 이방 영향으로 도덕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도 했습니다유대인 성도들은 이러한 이방인 성도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그러므로 비판하게 되고 점점 파벌 싸움으로 비화될 수 있었습니다.

② 지역적 상황

서론에서도 소개했지만에베소는 물질적으로는 풍부했지만영적인 면으로 보면 매우 열악했습니다항구도시로서 무역이 활발해서 경제적인 부요했습니다당연히 물질적인 풍요에 따라오는 것은 도덕적인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에베소는 매우 음탕한 지역이었습니다종교적으로 달의 여신 아데미를 섬긴 우상숭배의 중심지 지역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음탕한 에베소에서 거룩하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도덕적으로 심각했던 지역이라 그만큼 영적인 전쟁이 심각했습니다날마다 강력히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가야했지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③ 영적 성숙도

마지막으로 성도들의 성숙도 문제였습니다이방인 성도들 중에는 부르심을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지만아직 미숙한 상태였습니다세상에서 생활한 모습은 거룩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에베소에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사도행전 19:1-20). 먼저 사도 바울이 안수 기도할 때 성령 임재 체험하였고바울이 가는 곳마다 병자들이 치유되고 악한 귀신들도 떠났습니다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수많은 우상 책과 부적들을 불사른 적이 있었습니다그 결과외적으로 믿는 사람이 많아졌지만아직 내적인 면에서는 성숙하지 못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봅니다아직 부족하고 미숙한 모습이 있었지만이들을 향해 바울은 성도라고 부릅니다분명한 것은 에베소 성도들은 부족해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고 있었습니다지금은 부족해서 ‘성도’로써 합당해 보이지 않지만장차 성장하면 강력한 일군이 될 것을 본 것입니다지금은 연약해도 그들은 분명히 성도(聖徒)’입니다그래서 세상은 부족하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하나님께서는 장차 장성한 모습을 바라보시고 자녀로 축복하십니다.

 

인사말(2)

오늘날 어느 시대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갑니다그렇다고 다른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감사한 것은 아닙니다오히려 감사치 못하고 불평이 많습니다감사치 못한 이유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태도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환경이나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2)

사도 바울은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전합니다그 인사에는 은혜 평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이 단어들에는 헬라식 인사와 히브리식 인사를 하나로 만들어서 기독교화한 인사법입니다이러한 인사는 바울의 서신에 잘 나타난 특징입니다간단한 몇 단어로 구성된 인사법이지만그 속에는 에베소 교회 안에 히브리 성도와 이방인 성도들로 분열을 일치하도록 하는 인사가 담겨있습니다.

⑴ 은혜

은혜(καις)’란 자격 없는 사람에 주신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호의그리고 성령을 통한 모든 은총을 의미합니다이 은혜는 사람의 행위와 조건을 뛰어넘어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⑵ 평강

평강(ειρηνη)’은 구약 히브리어의 샬롬(שלום)’이라는 단어에서 기원했습니다‘평강’은 ‘평화’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서 모든 관계가 회복된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므로 은혜 없이는 평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은혜’가 임하는 곳에 ‘평강’이 찾아옵니다그러므로 심령에 ‘평강’이 없다면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맺어 있지 않습니다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곧 세상에 모든 조건상황 그리고 환경을 넘어서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⑶ 은혜와 평강의 기원

‘은혜’와 ‘평강’이 어디에서 오는지 기원(起源)을 살펴야 합니다사도 바울은 그 기원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고 소개합니다이 근원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합니다.

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십니다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창조주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특별한 관계인 아버지로서 주시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의 자녀입니다자녀로서 특별하게 은혜와 평강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으며(2:3), 하나님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2:12).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시고 자기의 아들로 입양시켜 주셨습니다(1:5).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줄 것이며어떤 방법으로든지 아낌없이 주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마음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낌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② 

다만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만 옵니다예수님을 수식하는 단어는 (κυριυς)’입니다‘주’란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자신의 우편에 앉히시고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빌립보서 2:9).

당시에는 란 표현은 로마 황제에게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로마제국은 ‘팍스 로마(Pax Romana)’라고강력한 힘을 가진 로마 황제가 무력으로 지배한 지역에는 로마가 주는 평화가 임한다는 것입니다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주는 평화는 로마가 주는 평화와 달랐습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셔서 진짜 평화를 주십니다이 평화는 로마의 평화처럼 무력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주신 평화입니다죄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주신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부른 것은 모든 세상에 진짜 통치자와 주권자는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은혜와 평강을 부여하는데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합니다.

사단은 성도들에게 거짓 평화를 누리길 원합니다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평강은 모든 세상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참으로 위대한 평화입니다오직 하나님께 나갈 때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평강을 누립니다대표적으로 이것을 누리는 곳은 바로 하나님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누리길 원하십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연약한 사람들이지만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성도로 세우셨습니다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령한 복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이제 세상에 어떤 것에 얽매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은혜와 평강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이것은 깨닫는 성도들은 모든 관계가 회복되고 어느 곳에든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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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서론


》에베소서 서론《


이 에베소서에서 우리 시대를 향한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새 생명을 얻는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분명히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새 생명을 얻었으므로 성령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과 세상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런 현실 속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되었으며, 그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에베소서의 제목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헬라어 원제목에서 유래 되었으며, 또한 수신자들의 지역을 반영합니다.

 

에베소서의 저자

이 서신의 저자는 바울입니다.

⑴ 내적 증거 : 본 서에서 바울이 자신이 기록했다고 두 번이나 소개합니다(1:1;3:1). 또한 본문의 내용에서 엿보이는 바울의 영적 통찰력을 살필 수 있습니다.

⑵ 외적 증거 : 초대교부인 이레네우스, 테르툴리아누스 같은 교부들도 그의 저작설을 확신하고 있음이 뒷받침해 줍니다.

 

에베소서의 수신자

이 서신은 바울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 교회에 전한 서신입니다. 그 사실은 본문에서 ‘에베소에 있는’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에베소 교회만 한정하지 않고, 근처에 있는 성도와 교회들에게 전하는 서신이었습니다.

 

에베소서의 기록연대

주후 62년경. 에베소서 3:1; 4:1 등으로 보아 죄수의 신분에서 쓴 것이 명백합니다. 주후 61년 봄에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후 2년간 감금생활을 하는 도중, 다른 옥중서신들과 함께 집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배경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2년 이상 목회한 곳이며, 바울과 이곳 성도 들은 매우 친밀한 정을 나누었으므로 헤어짐을 크게 아쉬워했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에서 떠나 있으면서도 이단의 가르침이 스며들 것을 염려했고, 실제로 그런 문제가 나타났으므로 본 서신을 쓰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 20:28-30; 디모데후서 2:116-18).

 

에베소서의 기록목적

① 친히 설립하고 양육한 교회이지만 감옥에 갇혀 방문할 수 없으므로 서신으로 권면하기 위하여,

② 당시 에베소 교회의 심각한 문제였던 이방인과 유대인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하여

 

에베소서의 주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성도들을 택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교회를 이루시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 되게 하신 비밀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유기적 조직으로서 연합을 이루도록 가르쳤습니다.

 

에베소서의 특징

⑴ 교회론적 서신-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유기적이며 생동적인 교회에 대한 비밀이 계시됨(1:9, 23).

⑵ 전 복음의 집약-구원의 계획, 실현, 미래의 완성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간결하게 집약시켰다.

 

에베소서의 교훈

이 서신은 에베소 교회에 널리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서 현재 우리 시대에 큰 도전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 도전은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요청은 웅장한 교향곡처럼 들려줍니다.

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룩한 새 인류로 만들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아들들 됨이, 새 인류 됨이 그분의 계획입니다.

⑵ 바울의 기도는 우리의 관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거룩한 하나님 아들들 됨이, 새 인류 됨이 그분의 계획입니다. 에베소서는 이 요청을 웅장한 교향곡처럼 들려줍니다.

⑶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철저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시종일관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따르지 말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⑷ 이런 삶이 함께 공동체로 실현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참 공동체 실현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복수의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거룩함을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각자의 역할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거룩한 공동체가 이루어질 때, 참된 성전이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널리 퍼집니다.

 

에베소서의 분석

Ⅰ. 머리말 / 1:1-2

Ⅱ. 본론 :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1:3-6:20)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새 인류를 만드심(1:3-3:21)

  ⑴ 요약적 제시:하나님의 뜻 실현과 바울의 기도(1:3-23)

   ⑵ 구체적 설명(2:1-3:21)

         ①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구체적 모습(2:1-22)

         ②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도 바울의 기도(3:1-21)

새 인류 되는 마땅한 모습(4:1-6:23)

   ⑴ 새 인류 됨을 위한 이론적 원칙(4:1-24)

      ① 공동체적 측면(4:1-16)

      ② 개별적 측면(4:17-24)

   ⑵ 새 인류 됨을 향한 구체적 권면(4:25-6:9)

      ① 개별적 측면(4:25-5:21)

      ② 공동체적 측면(5:22-6:9)

   ⑶ 새 인류 되는 싸움의 실체와 방법(6:10-20)

Ⅲ. 맺음말 / 6: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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