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05)
하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에베소서2장 11-22절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한쪽 벽과 다른 한쪽 벽을 연결하는 부분입니다. 서로의 벽을 이을 때 중요한 돌을 사용하여 이어갑니다. 이 중요한 돌을 모퉁이돌이라고 합니다. 이것의 역할은 두 개의 벽이 직각으로 마주하는 곳에 놓아 그 벽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다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퉁이돌로서 어떤 역할을 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앞 단락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의 구원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는 이방인 성도들의 구원에 대해 초점을 맞춥니다. 과거 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던 비참한 모습을 상기시키고, 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광스러운 모습과 대조시킵니다. 본 단락을 세 부분으로, 첫째는 그리스도와 상관없던 이방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묘사하였고,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화해의 관점에서 이방인이 완전하게 변화된 삶을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구원받은 이후 영광스러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이방인(11-13)
‘차별(差別)’이란 ‘둘 또는 여럿 사이에 차등을 두어 구별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차별과 억압이 많습니다. 인종적 차별, 성별적 차별, 신분상 차별, 지역적 차별 등, 수도 없습니다. 대부분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 위에 군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이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차별 때문에 섭섭함을 느끼고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 위로를 전합니다.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1-13)
사도 바울은 먼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에게 과거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때를 ‘생각하라’고 촉구합니다.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던 비참한 상황을 생각하면, 현재 영광스러운 삶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감사가 넘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이방인들은 어떤 비참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11)
사도 바울은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의 영적인 신분에 대해 먼저 ‘무할례당(ακροβυστια)’라고 일축합니다. 유대인에게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영적인 특권과 복을 누릴 신분증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할례라는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민족적 우월성을 가졌습니다. 유대인은 할례 받지 않는 이방인들을 향해 ‘포피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한 백성들이라고 무시했고 언약의 백성이 아니라고 경멸했습니다.
이방인의 비참한 상황은 12절에서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를 소개합니다. 이방인의 상황은 그만큼 너무 비참했었습니다.
⑵ 그리스도 밖에 여러 가지 상황(12)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보는 관점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영적인 신분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목적은 과거에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부각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복과 특권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입니다.
① 그리스도가 없었음
유대인들은 ‘메시아 사상’으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이미 구원자가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메시아가 자기 민족에게서 나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사무엘하 7:13,16; 이사야 9:1-9). 그러나 과거에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서 메시아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메시아 자체를 알지 못했고, 당연히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② 이스라엘 나라에서 단절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나라에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은 단순히 유대인의 나라만 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종교적 정치적인 공동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셨고 유대인들은 그의 백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었으므로 그의 백성에서 제외되고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합법적인 백성이 아니고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이 누리는 영적인 복과 특권에서 제외되었습니다.
③ 언약들에 대해 외인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 있었습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를 통해 구원과 복을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2:1-3,사무엘하 7;8-16;시편 89편).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 언약과 상관이 없는 ‘외인(外人)’, 즉 ‘외국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 주신 언약들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는 외국인이었습니다.
④ 세상에서 소망이 없음
과거에 이방인들은 세상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인생의 성공이나 번영에 대한 소망은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소망일 수 없습니다. 참 소망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에 근거한 것만 입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참 소망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세상에서 불안과 절망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⑤ 하나님이 없는 자
과거 이방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스스로 우상들을 만들고 신으로 섬겼습니다. 신들은 많았지만 자신을 구원해줄 참 신은 없었습니다. 그 신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신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이방인들이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한마디로 매우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었고, 언약들과 무관한 외인들이었고, 소망도 없었고, 하나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던 비참한 상황을 “생각하라”고 충고합니다. 은혜 받기 전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합니다. 과거를 잊어버리면 스스로 주인이 되고 점점 교만해져 버립니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께서 받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믿을 때 가졌던 열정, 믿음 그리고 소망을 잊고 변질되었습니다. 첫사랑이 변질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요한계시록 2:4-5)
사도 바울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에게 과거 비참한 상태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현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구원에 대해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⑶ 그리스도로 가까워짐(13)
사도 바울은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언급한 후에, 이제 그들의 공통된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본 절에서 과거 상황의 ‘멀리’과 현재 상황의 ‘가까운’을 대조 시키면서 완전하게 달라졌음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영적으로 ‘멀리’는 11-12절에서 언급한 과거 이방인들의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을 의미하고, 현재 ‘가까운’ 상황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요약해서 설명합니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도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비참했던 상태로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들을 찾아오셨듯이(창세기 3:9), 허물과 죄로 죽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던 비참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함께 계서서 인도하고 계십니다(마태복음 1:23).
멀리 비참한 상황에 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가까이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신 중매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죄값을 지불한 순간 분리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 때문이라고 소개합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서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공동체 일원이 되는 방법은 ‘할례의 피’를 흘려야만 유대인으로 자격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십자가에 대속적인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구원의 증표를 ‘할례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바꾸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그리스도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더 이상 비참한 외국인이나 나그네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길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인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14-18)
‘인간의 죄성(罪性)’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서로 높은 담을 만들고 깊은 틈을 만들어 점점 관계가 깨어집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죄성’의 결과로 항상 혼자라 생각하며 불행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지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관계 회복을 위해 사람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4-18)
이제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멀리’ 있던 비참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워진’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인은 과거의 습관대로 자기 민족에 대한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서로 화목하고 하나로 연합된 ‘화해의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을 ‘평화’와 ‘화해’로 꼽습니다.
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14-16)
예수 그리스도께서 ‘멀리’ 있던 이방인들을 찾으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많은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수평적으로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서로 화평을 이루셨고,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이에 평안을 만드셨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공동체에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① 그리스도의 사역(14-15a)
㉮ 둘을 하나 되게 하심(14a)
14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소개하길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로 소개합니다. ‘화평(ειρηνη)’는 구약의 ‘샬롬(מולשׂ)’과 동일한 의미이며, ‘나라끼리 화목함’ 또는 ‘마음이 평안함’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불화나 적대 관계가 해소됨으로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세례를 통해 서로 하나로 연합합니다.
즉, 불일치와 갈등 그리고 적대감의 관계가 그리스도께서 중재자가 되시어 하나님과 사람사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조화와 평화의 일치로 회복시키시고,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여신 것입니다. 영적 화평을 가져다주면 세상에 많은 충돌을 유방하는 요인들이 사라집니다.
㉯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심(14b)
사도 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화평을 위해 이루신 일을 설명합니다. 본문에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소개합니다. 이곳에서 ‘둘’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셔서 적대감을 없애고 ‘하나’로 일치와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과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장막이라는 담이 있었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견고한 장벽도 존재했습니다. ‘막힌 담’이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던 성전의 담을 염두해 둔 것입니다.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막혔던 휘장을 제거시키셨고(마태복음 27:50-51),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서로 원수 되었던 막힌 담을 하나로 무너뜨려 다 이루셨습니다(요한복음 19:30). 이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습니다.
㉰ 계명들의 율법을 폐하심(15a)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중에는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존재했던 적대감을 제거하셨는지 설명합니다. 본문은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라고 소개합니다. 서로 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계명의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 백성으로 지켜야 했던 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기 때문에 언약의 율법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는 막힌 담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라고 하셨는데, ‘폐하셨다(καταργησας)’는 ‘무력화했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는 모든 인류에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막혀 있던 율법의 담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가는 율법의 담은 사라지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담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② 그리스도의 결과(15b-16)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던 지상의 사역에 대한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 사역을 한 결과를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부터 수평적인 관계 회복의 창조와,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 즉,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 적대감을 소멸하시고 화목하게 하신 수직적인 창조인 것입니다.
㉮ 새 사람의 창조(15b)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의 결과로 ‘한 새 사람의 창조’를 제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옛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듯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 새 사람’ 즉,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창조됨을 설명합니다. 후반부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사실에 대해서 에베소서 4장에서 잘 설명합니다.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1-24)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열과 대립의 옛 사람 대신에 화평과 연합하여 새롭게 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아닌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전하게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수직적인 관계로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가 다 함께 한 지체가 된 것입니다(갈라디아서 3:28; 골로새서 3;11). 하나님께서 첫 창조 후에 타락한 사람들은 분열과 전쟁으로 비극적인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창조를 통해 서로 화해시켜 하나로 아름다움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회복시킨 재창조 사건도 첫 창조 때처럼 하나님께서 보시기 매우 좋았습니다.
㉯ 하나님과 화해시킴(16)
사도 바울은 수평적인 관계인 사람과 사람들과 화목과 연합을 거론한 후에, 이제 하나님과 사람과의 수직적인 화목한 관계를 언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궁극적이 목적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그 둘’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로 서로 화목하게 된 믿는 유대인과 믿는 이방인들을 즉, 모든 사람들이 수직적인 관계에서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습니다. ‘화목하게 하다’라는 ‘불화하는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을 재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타락으로 둘 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어 하나님과 적대관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노와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로마서 1:18).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대적하던 원수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에 수평적인 관계 회복으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수직적인 관계 회복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리에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은 서로 화목하며 하나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나가길 원하십니다.
⑵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17-18)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원래 자신의 자리인 하나님 우편으로 돌아 가섰어도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지금부터 하늘에서 하신 사역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모두에게 평화를 선포(17)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셨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먼 데 있던 이방인과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한 평화가 임했습니다.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명합니다.
19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사 57:19)
이사야서는 멀리는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과 가까운 데는 본토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로 대조를 이루어 설명했지만, 에베소서에서는 ‘멀리 있는 여러분’은 이방인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평화는 가까이 있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이방인들에게 그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평안(ειρηνη)’은 ‘걱정이나 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개인적인 내적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진 관계적인 차원에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방인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아무 걱정 없이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방인들도 이방인의 뜰을 지나서 유대인의 뜰을 지나고 더 하나님의 성소까지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5-16)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 선포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수직적인 관계 회복에서 평화가 임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더 나가서 수평적인 관계인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합니다. 그 바탕에서 하나의 새로운 인류인 ‘하나님의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② 함께 아버지 하나님께 나감(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평화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 누구나 똑같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대제사장을 통해 1년에 한 번 속죄일에만 하나님의 성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레위기 16장).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마태복음 27:50-51). 이 사건은 모든 성도들이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까지 교회 안에서 조차도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반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한 성령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하나님께서 나아간다고 담대하게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유대인들에게 분노를 살만했지만, 분명히 그리스도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적대감을 제거하셨고 한 공동체인 교회를 이루고 생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근거는 사람의 행위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로 입양하셨고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데는 더 이상 제사장이나 복잡한 의식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동일하게 믿는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과거에 원수같이 반목하고 대립하던 둘이 이제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한 형제와 자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함께 손을 잡고 나갈 수 있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새로운 인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인(19-22)
이주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내에서 자국민들과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땅에 같이 살지만, 한국인으로서 누릴 특혜들을 누리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대한민국 국적(國籍)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국적을 취득하면 자국인들과 동일한 해택을 받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도 혈통적으로 유대인처럼 구원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19-22)
사도 바울은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이 이방인이라고 무시당하고 소외되지 않길 원했습니다. 과거에 아무 소망도 없던 이방인들도 이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나님 백성으로서 특권을 누립니다. 이방인 성도들이 누릴 새로운 신분과 특권이 무엇인지를 풍성하게 묘사합니다.
⑴ 동일한 시민들(19)
첫 번째 특권으로 영적인 신분의 변화가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 이방인의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외인이 아니며 나그네도 아닙니다. 그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고 선언합니다.
과거에 이방인은 하나님 나라에서 외인이라서 차별을 받아 하나님의 권리나 특권을 별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바울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무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과거처럼 출신이 이방인이라 구원에 대해 외국인이나 손님도 아닙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도이며 동일한 시민이며 동일한 권속(眷屬)이 되었습니다.
당시 에베소 이방인 성도들 중에는 육신적으로 신분의 변화는 꿈도 꿀 수 없는 종(從)들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육신적으로 계속해서 종의 신분으로 살지만, 영적인 면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에서 자유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동일한 시민권을 가짐으로 신분의 변화되었습니다. 신분은 종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나라의 모든 특권을 함께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합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모든 보장과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출신 배경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더불어 살아가고자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 교회의 생활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⑵ 사도와 선지자들의 토대 위에 세워짐(20)
두 번째 특권을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신앙을 성전 건물에 빗대어 묘사합니다.
이방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처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며 그것을 전파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물 전체의 모퉁잇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교회로서 한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안에 비록 이방인이고 종의 신분일 수 있지만,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수고를 통해 맺어진 영적 열매들입니다.
⑶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감(21-22)
이방인 성도들은 굳건한 반석으로 만들어진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를 기초로 해서 세워졌습니다.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이방인들도 쓰임 받아 함께 성전으로 세워간다고 합니다.
교회를 성전에 비유할 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성전을 구성하는 돌입니다(베드로전서 2:4-5). 다양한 돌들이 모여서 건물을 이루듯이 다양한 배경의 성도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모퉁잇돌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이룹니다. 서로 주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함께 아름답게 지어져 갑니다.
건물은 수많은 돌이 모아져서 아름다운 건물을 만듭니다. 구성하는 건축 자재는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이 모두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아름다운 교회에서는 성도들 또한 이방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모두가 귀중한 성도들입니다. 모퉁잇돌인 그리스도께서 믿는 모든 자들을 연합시키고 결속시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현대 교회에도 성도들은 각자 출신 성분이 다릅니다. 성품도, 학벌도, 재물도 달란트까지도 모두 차이가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안에서는 이런 차이가 서로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었습니다. 각자 성도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일률적인 재료로 건축할 수 없습니다. 각자 성분과 형태가 다른 건축 재료들을 통해 특성에 맞게 이용해서 아름다운 건축을 만드는 것입니다. 서로 장점과 단점을 통해 서로 상합해서 버팀이 되어줍니다. 교회 안에 구성원들도 서로 보완해서 되어 하나님의 한 공동체인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야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성도나 교회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미완성적인 존재입니다. 현재도 하나하나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직 불안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성 되어져 가는 존재입니다. 서로가 단점은 보완해주고 세워줌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완성해 나가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성전으로 묘사함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공동체가 되는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이제는 더 이상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닙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백성,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방인들이 구원 받은 후, 성도로서 영적 변화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과거에는 외인으로서 소망 없던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모든 권세와 특권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용서와 사랑을 통해 하나 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완성되어 나갑니다. 당신이 속한 교회가 서로 화해가 이뤄지고 상호 간의 신뢰 속에서 평화의 공동체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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