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05-01)
날아가는 두루마리에 적힌 저주
스가랴 5장 1-11절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다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삶의 기준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견고하고 안정감 있게 지켜준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말씀을 지킬 때 더 큰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 이전의 두 환상이 역사적 인물과 관계된 환상으로 특이한 점들이 많이 발견됐다면, 여기서는 다시 그 이전 환상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5장에서는 두루마리에 대한 환상과 에바 속의 여인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데, 각각 철저한 심판과 완전한 죄악의 제거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여섯 번째 환상 : 두루마리(1-4)
성경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말씀을 떠났을 때 어떤 결과가 있는지, 그런 사람이 받을 벌과 저주는 무엇인지 그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받을 복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겼을 때 받을 벌을 가볍게 여기고 사랑과 축복에만 초점을 맞추면 정작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1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2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3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4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1-4)
하나님께서는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2절의 두루마리는 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종이 같은 것으로, 주로 파피루스나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두루마리는 십계명, 언약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언약을 상징하는 두루마리가 임할 때, 복이 아니라 저주가 임하고 있습니다.
(1) 두루마리 소개(1-2)
3장에서 죄(정결)의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환상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간접적으로 이스라엘의 정결을 요구하지만, 이제 5:1-4은 저주를 상징하는 두루마리를 통해 온 땅에 저주로 인한 심판이 내릴 것을 예고합니다. 이렇게 죄를 제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거주할 수 없으므로 이스라엘에게 거룩함(죄가 없음)을 요구하십니다(레 19:2). 가나안 족속을 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이며,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그리고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도 죄악 때문입니다(레 18:27-28,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2절의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두루마리(렘 36:2)입니다. 주로 파피루스나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말아서 휴대할 수 있는 고대의 책입니다. 두루마리가 난다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며,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5:3)가 온 천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두루마리의 길이가 이십규빗이면 약 9미터에 해당하며, 너비 십 규빗은 4.5미터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이런 크기의 두루마리는 없습니다. 대부분 길이는 이와 같이 길지만, 너비가 이처럼 넓지 않습니다. 모양도 특이하며, 굉장히 큰 두루마리가 하늘을 덮은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루마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첫째, 두루마리의 크기와 법궤를 덮는 속죄소의 크기가 같은 점을 착안해 둘 사이의 연관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왕상 6:24-27). 크기 이외에도 두루마리가 난다는 점, 속죄소는 나는 존재인 두 그룹(cherub)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3절에도 나오듯이 두루마리 양쪽에 기록된 저주의 내용이 십계명과 관련 있습니다. 속죄소가 덮은 법궤(언약궤)는 십계명 두 돌판을 보관한 곳입니다(왕상 8:9). 이렇게 볼 경우 두루마리가 하는 역할은 십계명, 즉 언약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의 핵심 내용은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이 담겨 있는 언약궤(법궤와 그 법궤를 덮는 속죄소는 언약의 핵심을 늘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두루마리가 속죄소에 연관된다면,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를 통해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언약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이며, 죄악에서 돌이키라는 강력한 촉구의 메시지가 됩니다.
둘째, 어떤 학자는 ‘주랑’의 크기와 같다는 점에 착안합니다(왕상 6:3). ‘주랑’은 성전의 입구를 의미하며, ‘주랑’ 앞에 번제단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7:7에서는 ‘재판하는 주랑’을 소개하는데, 주랑은 제사장이 재판하는 곳입니다(슥 3:7; 욜 2:7). 솔로몬의 기도에서 성전은 심판의 기능을 담당하는데(왕상 8:31-32), 이런 측면에서 날아다니는 두루마리가 심판의 성격을 지닌다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셋째, 어떤 학자는 두루마리의 크기가 성소(출 26장)의 크기와 같다고 제안합니다. 성소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만나는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늘 기억하게 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5:3)는 하나님께서 보낸 저주이며, 따라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하는 강력한 권고를 의미합니다.
(2) 두루마리의 확인 및 파급 효과(3-4)
3절에서 ‘두루마리’'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고 확인됩니다. ‘온 땅 위에 내리는’이라는 표현은 저주가 미치는 범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저주’는 궁극적으로는 언약적인 저주를 가리키며,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기억나게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3절에는 두루마리 양쪽에 각각 ‘도둑질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 대한 저주가 기록되어 있는데, 저주가 있게 된 죄악과 그 죄악으로 인한 저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주의 대상으로 도둑질과 망령되이 행한 거짓 맹세는 십계명의 셋째와 여덟째 계명에 해당합니다. 4절에서도 이 표현과 내용을 확대하여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언약 공동체를 훼손하는 죄악을 중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환상: 에바 속의 여인(5-11)
하나님의 기준 대신 자기 스스로 잣대를 가지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성숙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별도로 자기중심적인 신앙, 왜곡된 믿음을 가지기가 쉽니다.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만 판단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멋대로 행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한다고 우깁니다.
5○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이니라 하시고 또 이르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7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니 그 때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8그가 이르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귀 위에 던져 덮더라 9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오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10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니 11그가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것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것이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5-11)
이어지는 에바 속에 들어앉은 여인의 환상은 보다 실생활 속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꼬집습니다. 에바는 곡식을 세는 단위로 곡식을 되로 다려줄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주 남을 속여서 부당이익을 취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여러 선지서에서 이런 죄악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에바에 대한 소개(5)
여섯 번째 환상은 죄가 가득한 상황을 보여주는 환상이며, 일곱 번째 환상은 죄가 제거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이제 일곱 번째 환상에서 본격적으로 죄의 제거에 대한 미래적 소망을 다룹니다. 새 언약에서도 이미 죄에 대한 미래적 소망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렘 31:33-34). 특히 일곱 번째 환상에서는 주요 초점이 되는 대상을 옮겨가며 주목하게 합니다. 먼저 에바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어떤 용도인지 궁금증을 유발하고, 이어지는 6-7절에서 에바의 용도를 알려줍니다. 즉, 한 여인을 담고 있으며, 무엇보다 에바 자체보다 에바를 덮은 뚜껑이 납으로 되어 있어 얼마나 무겁게 누르는지를 반복을 통해 강조합니다. 다음 장면인 8-11절에서는 이 ‘악’을 의미하는 여인을 담은 에바를 옮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2) 한 여인과 에바의 납 뚜껑 확인(6-7)
6절의 ‘에바’는 측정 단위나 담는 용기를 가리킬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담는 용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1에바는 약 22리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 시기에는 큰 용기를 가리키며,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클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에바에 들어있는 여자(7)를 작은 조각상, 즉 우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한편 에바는 단순한 용기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 용기이기 때문에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언약의 기준에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7절의 장면은 에바에 납으로 된 뚜껑이 덮고 있었으나 이 뚜껑을 여니 ‘한 여인’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한 여인’은 이 환상에서 ‘악’(8)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더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맥상 ‘여인’은 우상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우상에만 한정할 수는 없고 통상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 전반에 일어난 죄를 대표적으로 언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여인을 담은 에바의 이동 확인(8-11)
8절의 ‘납 조각’은 무거움을 상징하며, 악을 에바 용기에 넣어 닫을 때 무거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무거워 꼼짝하지 못하도록 하여에바에 ‘악’을 가두는 것은 악을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9절의 ‘두 여인’은 8절에서 ‘악’을 상징하는 ‘한 여인’과는 다릅니다. 9절의 ‘두 여인’은 ‘악’의 해결을 상징합니다. 날개에 바람이 있다는 표현은 사무엘하 22:11과 시편 18:10에도 등장하며, 하나님이 그룹을 타고 가는 장면을 묘사할 때 나옵니다. 여기서도 역시 그릅과 같은 존재인 ‘두 여인’이 하늘을 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 여인’은 사람을 지칭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영적 존재(그룹)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환상의 장면에서 에바를 옮겨간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악’을 옮겨가는 것, 즉 악의 제거를 의미합니다.
11절의 ‘시날’은 메소포타미아에 있으며, 바벨론과 연관됩니다(단 1:1). 한편, ‘시날’은 바벨탑을 쌓은 곳이기도 합니다(창 11:2). 바벨론이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지만, ‘시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의도적으로 바벨탑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는 죄악과 연결시키기 위한 저자의 의도로 보입니다. 집은 악을 가둘 장소를 가리킵니다. ‘바이트’는 ‘집’이나 ‘성전’(또는 사원)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바벨론에 우상들을 놓을 사원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이 당연시하는 죄를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다들 죄를 짓는다고 해서 우리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을 버리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욕심과 죄악을 제해 버리고 우리의 정체성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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