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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01-03)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 이유

로마서 1장 16-17절


종교개혁자 루터는 로마서에서 ‘오직 믿음으로만 살리라’라는 ‘이신칭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한 노력은 다양했습니다. 문학 석사학위를 받기하고, 법률학 수료했고, 엄격한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어보기도 했습니다. 헌신적으로 신학 공부해서 신학박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영혼을 만족시킬 순 없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오직 믿음만으로’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인 ‘이신칭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의 전체 주제는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본문은 2절이지만 로마서의 전체 주제를 담습니다. 복음은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의로,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긴장과 흥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의 의에 가득 찬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는 복음 안에 있는 의, 믿음, 삶을 다룹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선물로 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하나님과 소통하며 영광스럽고 의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소극적인 측면: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16)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 즉 복음입니다. 믿음으로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립니다. 불의하고 거짓된 죄인이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6)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복음에 대한 평가에서 기인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두고 많은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장본인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지식이나 상식으로 볼 때 그들의 유대교의 신앙을 기준으로서는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든가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허무맹랑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에 핍박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대한 배경이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로마 시대이며 유대 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에 속하였던 것입니다. 즉 유대 나라나 유대인들은 속국으로서 천대를 받았었습니다. 로마는 모든 정치, 경제, 지식과 철학 등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피지배국인 유대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버린 예수가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메시아라고 전하는 것은 비상식적이었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부끄러운 일이었으며 기독교는 무시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로마에서 활동한 학자들이나 지배계층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향해 ‘기독교는 무식한 종교다!’라고 조롱했습니다. 당시 헬라-로마를 중심으로 지식적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은 증거가 있는 지식을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잘 설명해 줍니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린도전서 1:22-23)

 

그 당시 사람들은 헬라의 화려한 학문과 로마 강력한 무력 앞에 위축되었습니다. 헬라 사람은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했고, 로마 사람은 군사력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우월성을 자랑했습니다. 따라서 로마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한 힘만이 진리라는 ‘힘의 철학’을 주장했습니다. 약한 자들은 강한 자들에게 철저하게 순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힘의 논리’ 앞에서 복음(福音)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의 발생지는 로마가 점령한 작은 유대에서 왔으며, 대부분 기독교인은 엘리트가 아닌 약한 사람이나 노예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죄인으로 십자가에 사형당한 예수님은 자랑거리가 아닌 수치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었고, 로마인들은 미련한 것으로 취급받았습니다(고전 1:23).

그러나 바울은 그런 조롱을 마음 두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복음에 대해 전연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임재인 복음에 대한 확신했습니다. 그는 확실하게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을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분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행 9장).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담대하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에 대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6b)고 주장합니다. 당당하게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헬라인 앞에서나 권력을 자랑하는 로마인들 앞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기독교를 무시하는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더 나가서 당당하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복음을 자랑했습니다.

로마는 그 강력한 힘으로 전 세계를 정복했지만, 정복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힘이라도 인류의 죄와 죽음의 세력은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결하지 못했던 인류의 죄악이 발흥(發興)하였고, 강력한 로마는 점점 타락해져 결국에는 로마까지 멸망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됩니다. 새로운 소망을 줍니다. 바울은 몸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에 복음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진정한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능력입니다(살전 1:5).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떠한 사악한 죄인, 더럽고 추악한 삶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들어가서, 영국은 해적의 나라에서 신사의 나라가 되었고, 해적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가 변화하여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온갖 가난과 어둠 속에서 헤매면서 살았지만, 복음이 들어온 지 120년 만에 세계에서 10대 강국으로 변했습니다. 복음이 생활의 질을 변화시켰습니다. 이제는 영혼을 변화시켜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복음이 나타나는 영역(16b)

복음을 전할 때, 많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까? 한 가지 알 것은 이것들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직 복음만이 사람을 온전하게 변화시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 거룩한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6)

 

복음은 단순하게 유대인이나 몇몇 사람에게만 전파될 폐쇄적인 메시지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구우너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칠 좋은 소식입니다(눅 2:10).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온 천하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그 명령을 따라 전 세계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의심 많은 제자인 도마는 인도로, 시몬는 북아프리카로, 요한은 복음 전하다가 밧모섬로,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제자들 역시 온 천하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모두 순교 당했습니다.

복음 전파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바울은 순서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16c)라고 합니다. 복음이 우연히 유대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진행된 것입니다.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해졌고,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선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왔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유대인으로부터 되었기 때문에 복음을 먼저 받아야 할 특혜를 누려야 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방인, 모든 인류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 전파의 순서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좋은 소식은 유대로부터 시작하여 헬라로, 헬라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복음이 당신에게까지 임했습니다. 이 복음의 능력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살려 왔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당신에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변화를 받아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복음을 전달해야 할 차례입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복음에는 당신이 모르는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도착한 복음은 우리를 통해 복음이 없는 곳을 향해 흘러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에게 복음의 주자로 배턴을 넘겨주셨습니다. 복음이 당신에게 멈추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복음에 빚진 자의 자세로 기회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곳을 향하여 어디에나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곳이 당신이 사는 근처일 수 있습니다. 또 더 나가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와 같은 이방 민족들에게 선교일 수 있습니다. 복음의 영역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인 측면:복음은 구원의 능력(17)

이러한 복음에 어떠한 능력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 속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성도들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7)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에게서 온 의’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땅히 사형선고 받아서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에게 무죄 석방을 선언함으로 살려주신 의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죄 없는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믿는 죄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모든 인류는 죄인 상태로 태어납니다. 죄인 상태로 있는데 하나님께서 의를 선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영접하는 바울은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구원은 인간의 공로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오로지 믿음뿐입니다. 이 진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4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4)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 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면, 그는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있는 빌라도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홀연히 정오에 태양 빛처럼,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인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신 말씀이 그의 심령에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성도의 구원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내린 판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신 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가는 사람들에게만이 구원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새롭게 탄생함을 느꼈고, 열린 문을 통해 홀연히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대답해 줍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복음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에 신실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하실 의무가 없을 때조차도 얼마나 큰 자비와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단순하게 용서만 하신 것이 아니라 큰 희생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죄인을 받아주신 것입니다.

 


죄인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심판과 정죄만이 아닙니다. 세상을 향한 죄인의 사랑을 압도할 만큼의 큰 사랑입니다. 감당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큰 영서와 자비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 소식입니다. 죄인을 변화시키고 살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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