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34-01)
모세의 마지막 사역
신명기 34장 1-12절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새롭게 창조된다는 뜻입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우 시작입니다. 새롭게 창조된 백성으로,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가치관으로, 새 주인을 모시고 살기 위해 맨 먼저 요구되는 것은 죽음입니다. 모세가 죽어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광야 시대의 죽음, 엣 시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 본 장은 신명기의 마지막일 뿐만 아니라 모세오경의 마지막 장입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출애굽 시대’라는 한 시대의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다른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나안 동편까지는 ‘모세의 시대’라면, 이후부터는 ‘여호수아 시대’입니다. 모세의 안수를 받은 여호수아는 지혜로 충만해졌고 백성은 그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 이후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가는 길(1-8)
죽음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불행해 보입니다. 하지만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계가 있기 때문에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사명을 다 이룰 때까지 사명자의 생명을 보호하십니다. 그 사명이 다 하는 날,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수고의 눈물을 닥아 주실 것입니다.
1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1-8)
⑴ 약속의 땅을 바라본 모세(1-4)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는 이제 120세의 나이로 가나안 땅 동편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요단강 동편 산인 느보 산 정상에서 비스가 산꼭대기에 세우셨습니다(1). 특별히 34:1-6은 신명기 전체의 역사적 배경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줍니다(1:1-3:27; 32:48-52: 민수기 27:12-14).
34장은 긴 화자의 설명이 짧은 여호와의 명령(4)을 압도합니다. 이제 모든 수고와 노력들 그리고 모든 교훈과 노래들과 축복을 진술한 모세는 희망과 절망의 장소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미 모세는 짜인 군사적 리더십과 종교적 리더십의 퇴임사를 모두 낭독한 후입니다. 비록 모세는 오래전에 약속받았던 조상들(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가자는 못하지만, 그가 들어가고자 애쓴 지경들을 마치 아브라함처럼 높은 산에 올라가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약속의 땅에 대한 조망(2-3)은 시각적인 측면에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일종의 파노라마적 시야를 제공하는 것으로, 수사학적 측면에서 과장법일 수 있고, 계시적인 측면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초자연적 행위로 그 전체를 볼 수 있었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북쪽을 향하여 자신의 시야를 열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지평선을 따라 서쪽으로 그리고는 남쪽으로 이동하며 그 후에는 다시 사해 계곡을 구성하는 데 ‘리프트 밸리(Great Lift Valley)’를 지나 시작점으로 돌아갑니다. 길르앗 지파의 영토는 느보산의 북쪽이며 요단강의 동쪽으로 이릅니다. 여기서 언급된 단은 단지파가 사사 시대에 라이스를 정복하고 새로 붙인 지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4:14에서 말하는 단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납달리 지파의 영토는 긴네렛 너며 북서쪽에 이르고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들의 영토는 요단강의 서쪽 산지에 위치합니다. 유다의 영토는 요단강과 사해 너머의 산지에 위치합니다. ‘평지’는 사해의 북쪽 지역을 의미하지만 소알, 즉 사해의 남쪽 끝에 대한 언급으로 인해 사해의 양쪽 끝 지역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화자는 신명기의 독자가 모세가 행한 이상한 은퇴사와 그의 초자연적인 죽음을 오해할까 봐 그것을 교정하려는 차원에서 ‘모세가 죽을 때 120세였지만, 그의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는 말을 첨언합니다. 사실상 모세는 7절이 말해주듯이 기력이 쇠하여 이스라엘의 리더십에서 은퇴한 자가 아니고, 자신의 건강과는 상관없이 여호와의 뜻에 따라 은퇴해야 했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의 모든 권세와 특권을 내야놓았습니다.
⑵ 모세의 임종과 장례(5-8)
모세는 120세에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눈을 감았습니다. 본문에서는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 이곳은 모세의 마지막 설교가 행해진 곳이며, 이스라엘이 시혼과 옥과의 싸움에서 승전한 곳입니다(3:29; 4:46-49). 이 지역은 모세에게 실패의 장소이며, 이스라엘에게는 희망의 장소입니다. 야곱은 자식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했지만 모세는 여호와의 인도로 홀로 장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 그의 육신이 매장되어있는 무덤은 잊혔습니다. 모세가 죽자 백성들은 아론의 장례처럼 30일을 애곡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었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리더십 승계(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과 백성을 위해 언제든지 그분이 원하시는 일꾼들을 예비하십니다. 지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그로 인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신다. 참으로 훌륭한 일꾼은 죽었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더욱 훌륭하게 이어가도록 역사하십니다.
9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9)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모세의 죽음과 함께 여호수아에 대한 지도력의 승계 언급은 민수기 27:12-23에서도 나타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사망 직후 보고되는 이 임명식이 집행됩니다. 민수기의 임명식에 잘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모세의 염려는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기원(祈願)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부분은 앞서 언급한 대로 신명기의 결론뿐만 아니라 모세오경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즉 이것이 모세의 마지막 언급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모든 준비의 대단원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9절에서 화자는 민수기 27:18-23처럼 여호수아의 승계를 한 번 더 언급합니다. 31장에서는 여호수아의 임명에 대한 (백성 앞에서의 제시와 위임의 요소들을 강조했다면, 34장에서는 모세가 안수한 결과들(지혜의 영이 충만 백성들의 순종)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절차들은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신정적 통치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모세와 같은 이가 없어도 이제 백성들 앞에는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그는 국가적 리더십의 위임으로, 모세에게 안수를 받았고, 그로 인해 지혜의 영이 충만한 자입니다. 이와 같은 안수식은 전임자와의 동일시, 혹은 대체 직책의 임명 혹은 시작, 권위와 권능의 전가와 같은 상징적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민수기 27:18에서 ‘영이 이미 내재하는 여호수아에 대한 안수’라는 묘사와 모순된다는 견해도 있으나, 임직 후 ‘지혜의 영’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모순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을 직접 정복하고 분배하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할 준비가 되었다 게다가 신명기는 민수기 27:20의 여호와의 명령인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는 말씀의 성취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라는 낙관적인 묘사로 종결됩니다. 이것은 신명기 화자의 ‘오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세와 같은 이가 없다는 말로 인해서 비관적인 결론으로 볼 사람도 있지만, 화자의 견해와 같이 그 점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낙관적 묘사는 신약의 사도행전의 말미(28:30-31)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신명기 내부의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제시와는 대조됩니다.
모세에 대한 평가(10-12)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의 사후(事後)에 역사적 평가를 기대한다면 지금 이 시대의 국민의 뜻을 이해하고 국민의 바라는 바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화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10-12)
모세라는 인물에 대한 짧고 강렬한 평가가 신명기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본문을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모세에 관한 일종의 ‘문학적 묘비명’, 혹은 ‘부고(訃告)’라고 부릅니다. 모세는 전무후무한 지도자였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사실 모세는 지금까지 40년간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지도자였습니다.
4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비교 불가능성이 대조된 바 있었는데, 이제는 여호와와 제시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시던 자며,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애굽 땅에서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이스라엘 앞에서 행한 유일한 대행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후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이제 더 이상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서 직접 행하지 못하고 엘르아살 제사장 앞에 서며 엘로아살이 우림의 판결을 통하여 여호와의 뜻을 물어야 했습니다(민수기 27:21). 그러므로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듣고 백성에게 대언하는 기능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의 미래적 등장에 대한 언급(18:15-22)과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자신이 바라던 것은 이루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이뤄드린 지도자이십니다.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기까지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순종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 끝에서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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