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32-03)
모세의 찬양(3):여호와의 보응
신명기 32장 34-52절
모든 사람들은 칭찬 듣기를 원합니다. 꾸중을 좋아한 사람은 없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칭찬 듣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심지어는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칭찬 듣기를 원합니다.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인정받는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을 교육하는 데는 칭찬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계속 칭찬만으로 교육하면 실수 앞에서 자신의 실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좋은 일을 했을 때는 칭찬을 해야 하겠지만, 나쁜 일을 했을 때는 분명히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에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합니다.
모세의 시가 막바지에 이릅니다. 시의 분위기는 반전되어 백성을 행한 회복의 약속이 낭송됩니다. 원수를 향해서는 심판의 맹세가 선언됩니다. 원수들이 제압되고 이스라엘 백성의 위상이 만국 중에서 회복됨으로써 이제 모든 민족들이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 할 것입니다. 시는 종언과 더불어 마무리되고 시가 노래된 후 백성을 향한 모세의 당부가 덧붙이고 있습니다.
백성을 행한 회복의 약속(34-39)
무조건 악인을 용납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니지만, 자기 백성들이 범죄하였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계획마저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백성들이 포로된 곳에서 회개하면 다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심판하실 것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34이것이 내게 쌓여 있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36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37또한 그가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이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38그들의 제물의 기름을 먹고 그들의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를 마시던 자들이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고 너희를 위해 피난처가 되게 하라 39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36-39)
시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말씀의 주체가 누구인지 분지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20-35절까지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36-37a절은 모세의 말이며, 37b-42절은 다시 여호와의 직접 적인 말씀이고 마지막 43절은 모세에 의한 시의 종언입니다.
여기서는 모세가 다시 주어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실 것이다.’ ‘판결하다’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 재판은 뒤따르는 총들에 대한 애정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긍휼한 판정을 내리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이 무력한 가운데 있을 때, 또한 종들이든 자유인이든 아무도 보이지 않는 비참한 가운데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위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따지실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직접 적인 발언으로 전환됩니다(37b).
‘너희가 신뢰하던 그 반석이 이제 어디 있느냐?’, ‘너희가 바친 짐승을 먹고 붓던 포도주를 마시던 그 신들이 어디 있느냐?’ 여기서 ‘반석’은 비아냥대기 위한 풍자적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반석(Rock)은 하나님이신데, 너희의 반석(rock)은 하나님이신데, 너희의 반석은 무엇이냐?이 가짜 반석은 바로 앞에 언급된 ‘신들’과 이어지는 우상들을 가리킵니다.
3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말씀을 꺼내십니다. ‘내가 바로 그인 줄 알라.’ 다시 말해 ‘내가 바로 그 반석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모두 가짜 신들이며, 오직 여호와만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39).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다.’ ‘빼앗다’는 엄밀히 ‘구원하다,’ ‘구출하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발언은 ‘내 손에서 능히 구해낼 자가 없도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붙들고 계시는 언약 백성을 빼앗아갈 자가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사로잡은 대적들을 아무도 구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즉, 패배한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의지할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끝까지 우리의 피난처가 될 것은 아무 곳은 없습니다. 진정한 반석은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원수를 향한 심판의 맹세(40-4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는 영원히 멸하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백성을 향해서 보호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향해서는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40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41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42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40-42)
원수들이 받을 절망적 심판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불변을 약속하는 전형적인 맹세 형식을 사용하여 자신의 말과 약속의 확실성을 보장하십니다.
손을 하늘을 향해 드는 것은 원래 하늘에 계신 분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발언을 보장해줄 신적 존재의 임재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맹세의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위의 어떤 존재에게 맹세하는 분이 아니 기에, 단순히 ‘맹세 형식’으로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스스로의 다짐입니다. ‘내가 영원히 살리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로 번역하면 ‘내가 영원히 살아 있는 한’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맹세와 약속의 불변성에 대한 보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대적들을 향한 전쟁과 심판 철저한 복수에 대한 맹세입니다.
‘칼을 간다는 것’은 여호와의 본격적인 전쟁 준비를 의미합니다(42). ‘정의를 붙는다’는 말을 다소 추상적인데, ‘정의’는 ‘공의’, ‘정의’ 판결을 의미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정의의 심판’을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는 적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그분의 무기는 강합니다. 그분이 쏜 화살에는 피가 잔뜩 묻을 것이고, 칼은 많은 육체를 삼킬 것입니다. 여기서 ‘화살’과 ‘칼’은 모든 무기를 가리키는 총칭 어법(merism)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칼에 피살된 자들은 물론 포로로 잡힌 자들도 그 칼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포로로 잡힌 자들은 포로로 잡혀와 도륙을 당한다기보다, 칼에 부상을 입고 붙잡힌 것을 뜻할 수 있습니다. 대적들의 왕들과 대장들도 그분의 강력한 무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는 다소 모호한 번역입니다. 한글개역(개정)의 번역은 대장들의 ‘머리카락’이라기보다 베인 ‘머리’를 가리킬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어 원문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장발을 가리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 어구의 의미는 ‘장발의 우두머리’일 수 있습니다. 즉, 여호와의 화살과 칼이 장발의 우두머리의 피를 흘리게 하고 살을 벤다는 뜻입니다.
여기 ‘긴 머리’는 지도자나 장군들의 위엄 있는 풍채와 뽐내는 장식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예. 압살롬의 장발). 어쨌든 적들은 피살자나 포로나 나아가 우람한 풍채를 자랑하는 그들의 지도자들이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의 무기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언(Coda)(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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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43)
모세의 노래가 마무리됩니다. 이 종결부에서 갑자기 시의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민족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여 함께 즐거워합니다. 주께서는 주의 백성의 대적들에게 복수하심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열국을 초대하셔서 잔치를 베푸시는 장면을 연출하십니다. 그분은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속죄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단어 키페르가 나타납니다. 이 동사는 모세의 노래의 마지막 동사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있습니다. 이 동사에 대한 번역이 학자들과 역본마다 갈리는데, 키페르는 밀그롬이 말한 대로 속죄제 본문에서는 ‘정결케 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그 외의 본문에서는 단순히 어떤 값을 지불해서 ‘보상적 대속을 하다(make atonement for)’라는 뜻을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민수기 35:33에 비추어 볼 때, 동사 키페르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는 이중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하나님의 대적을 향한 보응은 곧 이스라엘을 위한 보상적 대속이자 그들로 인해 더럽혀진 오염의 씻어냄입니다.
시 낭송의 완료와 당부(44-47)
오늘날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도록 신실한 선포하고 바르게 가르치고 마음에 새기도록 돕는 일을 잘 감당해야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여전히 모든 사람들을 축복과 생명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생명의 잔치에 초대할 때,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될 것입니다.
44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45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벌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44-47)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여호수아)와 함께 백성들 앞에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낭송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호세아’로 등장하지만,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로 부른 것은 민수기 13:36절에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실제로 낭송을 하지는 않고, 단지 시의 공동 선포자 자격으로 모세 옆에서 참관했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45절이 그것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 시를 기억하라고 요청하면서 이 모압 평지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지켜 행하고, 자녀들을 잘 가르치라고 당부합니다. 이것만이 그 땅에서의 축복과 장수와 생명을 보장받는 길입니다. 이제 모세가 이 노래(32:1-43)를 다 부른 후에 모든 설교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교훈합니다.
모세의 죽음 예고(48-52)
무지한 인생들은 자신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겉으로는 생을 만끽하면서 사는 보이지만, 실은 걸음을 내디딜수록 더 죽음에 가까이 갈 뿐입니다. 뒤틀린 인생의 결국은 죽음입니다. 모세는 이제 모든 사역을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 앞에 한 발 더 다가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8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9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52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48-52)
여호와께서 같은 날(출애굽 40년 11월 1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죽음을 준비합니다. 모세에게 아바림 산지의 느보 산에 올라가 약속의 가나안 땅을 바라봅니다. 들어갈 수 없지만 가나안 땅을 조망하도록 허락해줍니다. 그리고 아론이 이전에 호르 산에서 죽은 것처럼 모세도 이제 조상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모세는 민수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도록 아바림 산, 비스가 산 그리고 느보 산을 모두 오릅니다. 모세는 아바림 산맥에 올라 여러 봉우리들 중 하나인 느보 산을 등산해야 합니다. 느보 산은 해발 850여 미터에 이르는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요단 동편과 서편 양쪽 모두를 조망할 수 있다고 알려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소 가혹하고 냉정하게 느껴질 수 있는 드라마와 같았던 모세의 인생에 마지막 슬픔을 자아내는 말을 다시 꺼내십니다. 그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가데스 므리바의 사건은 식수난의 현장에서 백성들이 아우성치고 하나님께 대들며 범죄했을 때, 모세는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들어내야 했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합류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20장). 당시 그는 지도자로서 백성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혈기를 드러내며 이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백성들과 거의 동일한 불순종을 범하였습니다. 그는 그 땅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말씀과 때를 따라서 사는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이스라엘이 세상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지 않길 간절히 원합니다. 세상의 법칙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법칙이며 영적인 타락을 가져오는 법칙이요, 결국에는 재앙을 불러오는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심판과 보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협박이 아니라 무서운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축복의 길이요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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