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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32-01)

   


모세의 찬양(1):신실하신 하나님

신명기 32장 1-14절


복음송 중에서 ‘하늘 문이 열리면 노래할 이유 있네. 놀라운 일 그곳에 있으리 노래할 이유 있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생명수가 될 것입니다.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와 찬양의 제목을 삼고 있습니다.

 

  • 본문은 모세의 노래로서 첫째 부분의 내용을 시를 여는 서언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먼저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간결하게 그러나 최상의 표현들을 동원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신 과거의 일을 기억하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아는 순간,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세의 노래 : 서언(1-3)

성도들은 세상의 어떤 위엄이나 권위 권세보다 하나님께 그 위엄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가장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면서 살아갑니다.

 

1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3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1-3)

 

이 찬양은 ‘모세의 노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치라고 지시하신 노래가 신명기 32장에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기쁨의 찬양이기보다는 어두운 면을 나타내는 슬픈 찬양입니다.

먼저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더불어 초대하고 하늘과 땅을 청중의 일원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시작됩니다. 하늘과 땅이 증인으로 초대되고 있습니다.

앞서 여러 차례 ‘하늘과 땅’을, 혹은 ‘천지를’ 증인(증거)으로 삼는다는 표현들이 사용된 바 있습니다(3:24; 4:26; 30:19, 28; 한글개역[개정]의 번역에 일관성이 없는 아쉬움이 있다). 이들이 믿을 만한 증인인 것은 사람은 변해도 천지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습니다.

자신의 교훈이 백성에게 생명수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 교훈은 마치 단비와 이슬이 대지를 적시는 것같이 백성들에게 잘 흡수되어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흥미롭게도 증인으로 초대된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또 다른 증인인 땅은 그 비를 흡수하여 생명을 풍성케 합니다. 시의 첫째 교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과연 누구이신가 하는 것입니다(3). 모세가 증인으로 청한 땅과 하늘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증인으로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4-6)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에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모습을 가는 비와 이슬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은 이러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4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5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6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4-6)

 

본문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성품과 속성을 시(詩)이기 함축적으로 짧은 구절 안에 비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이십니다. 사실 반석의 의미는 반석보다 커다란 바위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바위 요새와 같으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바위산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고 진실하십니다. 의로우시고 바른 분입니다. 참고로 ‘의로운’은 사법적 뉘앙스가 강한 ‘공의롭다’ 보다는 ‘의롭다’가 더 나은 번역입니다. ‘야샤르’는 ‘올곧다’, ‘올바르다’를 뜻하는데, 사실 두 단어는 비슷한 의미의 동어 반복이며, 이러한 그분의 성품과 속성은 형편없는 인간 존재와 잘 대비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흠투성이에 때가 묻어있고 금이 가 있는 존재이며, 늘 변하고 의롭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고 흠이 있으며, ‘뒤틀리고 비뚤어진’ 백성일 뿐입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백성이요 무지한 백성’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고 자랑했습니다. 선택 받은 이스라엘은 무한 감사해야 하고 무한 책임을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순종치 않고 악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베풀어주신 은혜를 배반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시고 세우시는 분이시고, 그분은 그들을 지으시고 만드신 아버지이십니다(6). 아마도 신약에서는 자주 등장한 표현이지만, 구약에서는 여기서 최초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이미 출애굽기 4:22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심을 천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라고 하셨지만, 직접 이렇게 ‘아버지’라 부른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역할을 해주셨기에 불순종과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을 수 있었고, 그들을 향한 기대와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삶을 거룩하게 살아가야할 이유가 이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무엇인가 차이가 나야 합니다. 더 거룩하고 귀감된 삶을 살아갈 때,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라(7-14)

우리에게 전해진 성경은 기억에 대한 명령에 누군가가 순종한 결과입니다. 기억과 기록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 시키고 그 역사를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가장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지존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7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8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10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 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7-14)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쉽게 잊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거룩한 성도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그 비결을 소개합니다.

 

⑴ 이스라엘을 선택하심(7-9)

 

모세는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과거에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역사를 열거하면서 기억하라고 노래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역사를 말씀합니다.

모세는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찬양합니다. 태고의 역사부터 최근의 역사를 짧은 몇 개의 소절에 담고 있습니다. ‘역대의 연대’란 문자적으로 ‘세대와 세대의 해들(the year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즉 여러 세대의 날들입니다.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고 또한 아버지에게서 조상들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존하신 분입니다. ‘지존’이란 히브리어 ‘엘욘’은 ‘최고’, ‘지존’을 가리키는 말로 견줄 대상이 없이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뜻이며, 구약에서 종종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별칭에 사용됩니다(창 14:18-20; 민 24:16). 가장 높으신 분이 세계 질서를 정하시고, 각 민족의 경계선을 그으셨습니다. 그분이 ‘인종을 나누실 때’ 곧 인류를 세계에 흩어 분산시키시고 각 민족에게 기업, 곧 땅을 배분하실 때, 그분은 이스라엘 자손의 수에 맞춰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백성들의 경계를 정했다’(8)는 뜻은 민족들의 땅을 나누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인류의 경계선을 나누실 때, 이스라엘 자소의 수대로 나누셨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10장은 인류가 분산되어 구성된 70개 나라의 목록을 제시하는데, 이 것은 70명의 야곱 가족의 숫자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실제적으로 정확히 70개의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며, 야곱의 가족도 사도행전에서는 75명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숫자 ‘70’은 많은 민족들과 야곱의 첫 가족의 숫자에 대한 어림수이며, 문학적 숫자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어림수의 문학적 사용이 성경의 무오성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성경을 신학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족보의 세대를 계산할 때도 여러 세대를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특징을 보입니다(예, 마태복음의 14대 족보는 중간에 여러 세대가 누락됨).

경계를 정해 흩어진 열국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자신의 기업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구원의 섭리와 계획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선택이기에, 인간은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무한히 감사해야 할 뿐입니다.

 

⑵ 이스라엘을 보호하심(10-12)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보배로운 민족으로 택하시고, 그들을 황량한 광야 길에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났다’의 원래 뜻은 ‘발견하다’는 뜻입니다. 우연히 광야에서 만나 뒷바라지를 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심에 대한 문학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친 광야 길을 독수리가 새끼를 업어서 오는 것처럼 그들을 홀로, 완벽히 안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⑶ 이스라엘을 높이심(13-14)

 

백성을 광야 길에서 안전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큰 복으로 채우십니다. 가나안 땅은 고원 지대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곳을 주로 타고 다니게 하시고, 땅의 온갖 풍성한 소산물들을 만끽하며 즐기게 하실 것입니다.

‘높이신다’는 말은 지정학적으로만 높이시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 중에서 으뜸 되는 민족으로 높이셔서 그들이 가장 큰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실 것입니다.

반석의 꿀과 굳은 반석의 기름은 바위산의 여러 갈라진 틈과 구멍들에서 발견되는 막대한 양의 야생 꿀과 석회질 암반의 감람나무 단지에서 대량으로 채취되는 감람유를 말합니다. 그 외 우유와 각종 유제품들과 최고 품질의 (‘기름’이 그런 뜻이다) 양과 염소 고기를, 들판의 곡식과 과수원의 포도를 마음껏 먹게 하실 것입니다.


신앙은 기억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기억의 활동입니다. 찬양과 기도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잊지 않도록 노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 사람들만이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 뜻을 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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