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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31-02)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

신명기 31장 14-30절


부모의 가르침을 무시하던 아들이 결국 패가망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그 아들이 ‘이것이 다 부모가 나를 잘못 가르친 탓이다.’라고 한다면, 부모의 심정은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죽음 이후 가나안 이방신들을 섬기며 언약을 어기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날에 백성들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입을 다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죄악된 역사를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임박한 모세는 이제 마지막 유언의 메시지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앞서 여호수아를 ‘실무적인’ 후계자로 세우는 절차를 시작했는데(이미 후계자 임명식은 민수기 27장에서 완료되어 일종의 대통령 당선자 신분),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회막으로 불러 직접 명령을 내리시고 격려하십니다.

 

여호수아의 임명 준비(14-15)

노래는 그 시대의 문화와 철학을 반영하는 도구이며, 다음 세대를 향한 교육적인 증거입니다. 그래서 역사상 독재자들은 노래를 통해 사람들을 자극하고 통제했습니다. 진실을 드러내고 불의를 고발하는 노래는 매우 강력한 증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노래를 만들어 후손에게 가르치라고 권고합니다.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14-15)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그의 후계자로 내정된 여호수아를 회막으로 불러들이십니다. 회막 장면은 신명기에서 이곳이 유일합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익숙한 장면이 여기서 재현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구름 기둥이 회막 위에(14), 구체적으로 회막 입구에(15, ‘장막 문 위’의 장막은 곧 회막) 내려와 있습니다. 이 구름 기둥은 하나님 임재의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비평학자들은 이 회막이 진영 밖에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보수적 견해는 이 회막을 진영 안의 성막으로 봅니다.

일단 15절 자체의 표현은 언뜻 모순되어 보입니다. ‘장막에’(in the Tent)와 ‘장막 문 위에’(on the entrance of the Tent), 이 중 ‘장막에’는 비평 주의자들이 말하는 진영 밖 회막의 특징에 들어맞지 않습니다. 진영 밖 회막은 항상 회막 입구에 구름이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5절을 신명기 특유의 대략적인 표현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회막/성막은 구체적으로는 마당 구역을 제외한 천막 건물 부분, 즉 내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본당만으로 국한됩니다. 따라서 현재 그 건물 위에 하나님의 구름이 내려와 있고, 모세와 여호수아는 그 내성소를 가리는 휘장 앞의 성막 마당에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때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지성소에도 특별하게 입장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여호수아와 함께 진영 안 성막 마당에 성막 본당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땅에서 백성들의 반역이 예언됨(16-18)

풍요는 축복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멸망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보다 가나안이 더 축복의 공간입니다. 하지만 광야만큼 가나안은 영원한 복락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더 쉬운 공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반역할 것을 예언합니다.

 

16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17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18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16-18)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이 걷게 될 배교의 길을 알려주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여호와를 버리고 그 땅 신들을 섬기며 언약을 파기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배교가 부부의 정절을 버리는 것(‘음란’)에 비유됩니다.

이어지는 진술에서 맺은 언약을 어긴다는 말에서도 확인되듯이,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맺은 일종의 결혼 서약의 파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실 하나님을 버린 적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신들을 동시에 섬긴 것입니다. 이것은 간통이며 결혼과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시고 얼굴을 숨기실 것입니다(17,18). ‘얼굴이 함께 있다’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당사자가 거기에 있음을 의미하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창세기 3:8;4:16;35:1; 신명기 4:37; 사무엘상 1:22; 이사야 63:9). 반대로 ‘얼굴을 숨기다’는 역겨움과 반감, 거절을 표현하는 숙어입니다(이사야 53:3; 시편 132:10). 백성을 ‘외면’하시는 하나님의 이탈은 그 자체로 심판이요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패요 산성이요 강한 보호막입니다. 그분이 백성 가운데 계셔서 질병과 기근과 메뚜기 떼를 비롯하여 모든 재앙을 막아주시며 적들이 노리지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침입을 물리치십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시는 순간 이 모든 재앙들이 한꺼번에 그 땅과 백성들에게 엄습할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이 허다한 재앙과 환란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은 까닭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비관적 예언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희망에 부풀어 있던 백성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백성의 미래는 열려 있습니다. 이 예언은 어쩌면 배교의 길을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예방적 경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역사는 모든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 패역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 신들을 따라 여로보암의 길로 갔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경고대로 숱한 재앙들을 맞았고 이 땅에서 추방당하였습니다.

  

모세가 노래를 지어 백성들을 가르침(19-23)

신신하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지만, 목이 곧은 이스라엘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노래를 만들어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19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22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23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19-23)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자손 대대로 불러야 할 노래를 지어 가르치라고 명하십니다. 이 노래는 세대를 거듭하며 백성들이 불러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노래를 그들에게 마치 옆에서 사실을 증언하는 ‘증인’(21절에서 보듯이 증거라기보다는)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 땅에 들어가 젖과 꿀의 온갖 풍요를 누리며 배부르고 살찐 뒤 정작 하나님을 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들의 풍요가 가나안의 농경 신 바알과 풍산의 신 아세라의 선물이라고 착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배은망덕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32:19에서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백성을 ‘멸시하실’ 것입니다.

 

모세가 지어서 들려줄 이 노래는 장차 그 땅에서 그들이 불순종으로 인해 온갖 재앙과 고초를 당할 때도 여전히 그들의 입술에서 불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노래 자체가 그들 곁에서 소리쳐 그들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증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원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온 노래는 세대를 거치며 그들의 삶에 중요한 교훈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미리 아시고 이 노래를 통해 예방적 조치를 취하고 계십니다(21). 모세는 그 날 이 시를 지어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당연히 하나님의 영감에 사로잡혀 이것을 작시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직접 말을 건네 그를 격려하십니다(23). 그가 이제 모세를 이어 백성을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을 북돋는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여호수아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흥미롭게도 여기서 하나님의 명령이 모세의 중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여호수아에게 하달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받는 장면은 이곳이 처음입니다.

 

율법책을 법궤 옆에 보관(24-30)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해석하고, 예고하고, 경고하고 돌이키게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사후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후계자를 세우는 한편, 말씀을 기록하고 언약궤 곁에 두게 하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24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6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7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28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관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 29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30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24-30)

 

모세는 이 율법서를 기록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 책은 당시의 관행대로 양피지 두루마리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단 이 책이 신명기에서 모세가 강론한 율법들의 기록이라 볼 수 있지만, 앞서 말한 대로 오경의 정경론적 관점에서는 어쩌면 이전에 모세를 통해 반포된 모든 율법들을 포괄하는지도 모릅니다.

모세를 이 율법책을 레위 사람들에게 ‘법궤 옆에’ 보관하라고 지시합니다. 여기서 ‘레위 사람’은 제사장 계층을 포함한 포괄적인 명칭을 볼 때, 좁게는 제사장을 지시할 것입니다. 레위 지파 고핫 자손들이 법궤를 운반할 때, 그 율법책은 제사장들이 별도로 운반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이런 각자의 임무에 대한 포괄적인 묘사로 보아야 합니다. 고대 중동에 조약문들은 성소에 보관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어떤 항아리나 상자에 넣은 뒤 법궤 옆에 두었을 것입니다(예레미야 32:14; 탈굼). 법궤 옆에 보관한 이 율법서는 그들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앞서 모세의 노래가 증인이 된다고 언급되는 반면, 여기서는 이 율법서가 그들에게 증거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율법서가 의인화된 ‘증인’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조약문으로서 ‘증거’ 능력을 갖는 징표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법궤 옆에 보관되어야 할 이 율법서는 오랜 배교 역사 속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훗날 요시야 왕 때 대대적인 종교개혁과 더불어 성전을 정비할 때 성전의 어느 구석에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이 율법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지파의 모든 어르신들, 곧 장로들과 관리들(행정 지도자들)을 소환하여 이 언약의 말씀을 거듭 읽어준 뒤 앞서 31:19에서와 같이 이 언약의 불변성을 확증하기 위해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습니다.

모세는 염려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오래도록 그들을 지도했음에도 그들이 여호와를 거듭 배반했는데, 자신이 죽으면 어찌 될 것입니까?(27) 하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모세도 그들이 장차 배교의 길을 갈 것이 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의 재앙으로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래와 율법과 천지를 증거물로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변할 수 있어서 나중에 다른 소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확실한 증거를 통해 다른 소리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하고 미련한 우리가 죄악의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미리 할고 조심하라는 배려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세의 노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매우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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