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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29-02)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신명기 29장 14-29절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가 되지 못할 때 안팎으로 실망을 줍니다. 때로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세상까지도 교회를 향해 ‘교회까지도 이러느냐?’는 말을 합니다. 이 세대의 마지막 소망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분명히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이 지상 교회는 완전할 정도로 거룩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약의 참여자는 수평적으로 현 세대의 회중에서부터 수직적으로 미래 세대의 회중으로까지 확대됩니다. 언약 조항의 법적 유효성이 세대를 거슬러 지속되는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과 그것의 개정판인 모압 언약을 후세대가 잘 지키면 축복이 임하지만, 후세대가 언약을 파기하면 동일한 저주가 쏟아질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기어코 불순종의 길을 가게 된다면, 이 경고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세대로 확대되는 언약 참석자(14-17)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방 민족과 별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으로써 거룩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14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15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이니 16(우리가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과 너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을 너희가 알며 17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14-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종교들처럼 사람들이 신이나 종교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애굽의 종이 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렀습니다.

 

‘시내산 언약’과 그것을 재확인한 ‘모압 언약’은 본질상 동일한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지금 동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잠재적 참 여자들도 이 역사적 현장에 함께 서 있습니다(15). 후대로 이어지는 조약의 유효성은 ‘에살핫돈 조약’ 문서를 비롯하여 고대 중동의 여러 계약 문서에서도 발견됩니다.

베드로 또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는 성령의 선물에 대한 약속이 ‘너희와 너희 자녀와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외칩니다(사도행전 2:39).

하나님의 언약은 당대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모든 세대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삽입부로 처리된 16-17절은 흐름을 깨지 않는 모세의 말로 간주해도 무방합니다. 모세는 과거 그들이 애굽 땅에서 살았던 때와 또한 출애굽 후 40년 광야에서 생활하다가 ‘여러 나라’를, 즉 에돔과 모압을 통과했던 순간을 상기 시킵니다. 그때 그들은 특별히 많은 종류의 우상들과 거짓 신들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피조물인 생물과 자연물을 신으로 숭배한 고대의 종교와 사상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가나안 일대뿐 아니라 애굽에서 가장 두드러졌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 시 하나님께서 애굽 전역에 퍼부으신 10대 재앙은 사실상 애굽의 여러 신들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에돔과 모압을 통과하면서 그들의 우상들도 목격하고 경험했을 것입니다. 에돔의 신은 구약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고대 애굽의 문헌과 에돔 지역에서 발견된 비문과 여러 주상들과 석상들의 조사를 통해 코스(Qos)라는 신으로 밝혀졌습니다. 구약에서 모압 신은 그모스, 암몬 신은 밀곰으로 등장합니다(열왕기상 11:1). 이스라엘이 암몬 국경을 통과한 적이 없으므로 그들은 에돔과 모압 국경을 통과하면서 그들의 신에 대해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 모압의 우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해를 끼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5:3-4에서 살펴보았던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바알은 주인을 뜻하므로, 바알브올을 해석하자면 ‘브올 성읍의 주인’을 의미합니다. 그는 모압의 주신 그 모스를 가리킬 것입니다. 에돔과 모압은 국가 신을 중심으로 다신 숭배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 중에 있는 목석과 은금의 우상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우상에 대해서 신명기에서 사용되지 않은 단어 ‘길룰림’이 특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똥’이란 단어와 비슷합니다. 이것은 우상의 더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단어 선택이 분명하며, 또한 그것들을 ‘가증한 것들’로 칭합니다. ‘시 쿠즈’는 특히 부정한 짐승의 고기를 가증하게 여기는 레위기 11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이런 이방 민족들의 우상에 현혹되어 하나님을 떠나 그것들을 ‘섬기게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로 인해 그들 가운데 쓰디쓴 독초의 뿌리가 사방으로 뻗고 쑥이 무성히 자랄 것입니다. 이런 비유는 그들이 당할 고통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스스로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두려운 저주의 경고를 지금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스스로를 위안하고, 자기 확신에 빠져 ‘젖은 것과 마르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 마음은 편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젖은 것과 마른 것’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가장 무난한 견해는 이 문구를 ‘모든 것’을 가리키는 총칭어법(merism)으로 보는 것입니다. 땅에는 물 공급을 충분히 받는 동식물과 땅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동식물과 땅도 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모든 것들이 다 ‘쓸려 간다’(사파트의 분사 세포트)는 뜻입니다. 즉, 세상이 어찌 되었든 그 마음이 완악한 죄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은혜이기 때문에 말씀을 따라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높이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거룩한 백성이 되길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거룩해져야 합니다.

 

언약 파기에 따른 저주(18-21)

하나님께서 열방에게 당신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순종하는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어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나라가 척박한 땅에서 번성하고 강대국 사이에서 안전한 것을 보면 열국도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인정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이 큰 재앙으로 쏙대밭이 되는 것을 보면, 열국도 하나님의 존재감을 놀라게 될 것입니다.

 

18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19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20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버리시되 21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언약의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18-21)

 

다시금 여호와의 분노와 저주가 확정적으로 선언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며, 앞서 모세가 나열한 모든 저주가 그에게 쏟아질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땅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다 이름의 제거는 앞서 아말렉에게 선언된 가장 무서운 저주였는데, 모세는 언약 백성에게도 해당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구별되어’ 모세가 강론한 뒤 기록될 율법서의 경고대로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구별이란 동사 ‘힙딜’은 특별한 떼어놓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저주를 붓기 위한 구별을 의미하는데, 풍자적 의도로 쓴 단어입니다. 이것은 평화로운 공동체 안에서 악을 행하는 개인에 대한 경고다 한 사람의 죄로 인해 공동체 전체가 징벌을 받지만, 여기서는 공동체의 보존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징벌하신다고 경고합니다. 공동체가 우상숭배자들을 감시하여 통제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공동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게 되지만, 적발되지 않은 채 은밀히 우상을 섬기는 행위를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직접 제거하실 것이라는 경고로 이해됩니다.

 

열국을 놀라게 한 이스라엘의 재앙(22-29)

심판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랑의 하나님만 믿는 자들은 사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우상 하나를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상태와 상관없이 좋기만 한 그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은밀히 저질러진 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드러난 일은 사람을 통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22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23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24여러 나라 사람들도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 하면 25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26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27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28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 29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22-29)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인해 당할 재난은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처절할 것입니다. 우선 그 재앙을 당할 그들의 후손들과 그 땅을 잠시 찾은 외국의 방문객들이 이 광경을 보고 충격에 빠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으로 그 땅이 온통 유황과 소금이 뒤 섞이고, 가뭄으로 건조하여 산과 들판이 불에 타 농사는커녕 풀도 나지 않는 땅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유황과 소금’은 이어지는 ‘불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 및 위성 도시들인 아드마와 스보임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황불 심판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소금’이 뿌려진 것으로 보아 다른 성격의 재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금은 하늘에서 심판의 일환으로 뿌려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국이 침략하여 소금과 유황을 들판에 뿌려 농사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으로 해석됩니다. 후손들과 외국의 방문객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나라들도 그 재앙들이 자연 재앙들일 수가 없음을 알고 놀랍니다. 그들은 자문자답할 것입니다(25).

 

25-26절에서 네 개의 일련의 동사가 연속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이방인의 입술을 통해 증거 됩니다. 그들이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했다.’ 27-28절에서도 일련의 동사들이 나열되면서 이방인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표현됩니다. ‘진노하사’, ‘재앙을 내리시고’, ‘크게 통한하시어’, ‘뽑아내시고’, ‘내던지셨다’. 여기서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서 뽑아내 내던졌다는 것은 나무나 작물을 뽑아내 짐승의 먹거리나 폐기물로 내던진 것처럼 그들이 버려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변의 열국들도 여호와와 그분의 율법 및 율법서의 경고를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29절의 결론적 진술은 난해 구절입니다. ‘감추어진 일은 여호와께 속했고 나타난 일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했습니다.’ ‘감추어진 일들’과 ‘나타난 일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은밀히 저질러진 죄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드러난 일은 사람이 심판한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있습니다(탈굼 요나단). 둘째, 감추어진 것은 율법의 신비로운 의미이며, 드러난 것은 율법의 표면적 의미로 인간은 그저 감추어진 의미를 몰라도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의무라는 해석입니다. 셋째, 감추어진 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미래의 일이고, 드러난 것은 현재 주어진 율법들이며, 인간은 주어진 율법에 따라 사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해석입니다(현대의 일부 해석가들). 이 중 첫째 견해가 가장 타당해 보입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라는 진술과 잘 어울립니다. 율법을 불순종하면 은밀한 행위는 하나님이 직접 재앙을 내리시고 드러난 행위는 공동체가 사법적 징벌을 내리기에, 두려운 마음으로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종종 성도들에게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문제점들을 듣습니다. 모든 문제점들을 인정합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될 사실은 지상의 교회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때를 따라 교회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문제들을 들추기보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자신부터 거룩해져 갈 때,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자녀들에게 예수 믿어야 복을 받는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잘못 이해한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 받은 방편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믿는 것 자체가 바로 복’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한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시편 73:28). 하나님 앞선 성도들은 축복만 아니라 불순종의 대가 역시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개인이 아름다운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의 공동체가 거룩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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