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32-02)
모세의 찬양(2):패역한 이스라엘
신명기 32장 15-33절
어린 시절 여름 방학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섬진강에서 수영하며 놀았습니다. 항상 부모님들께서는 수영하려 가는 자녀들에게 조심시키고 타이르십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말씀을 잔소리로 들리지 훈계로 들리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종종 물길을 알지 못한 타지 사람들이 익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아이들에게 큰 경고의 메시지로 들리고 한 동안은 조심스럽게 물놀이하곤 했습니다.
-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배반합니다. 우상을 섬기고 새로운 신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의 패역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민족을 불러들여 치시고, 갖가지 자연재해와 질병과 전염병을 보내 벌하실 것입니다. 이때 다른 민족들은 승리를 자신들의 공적으로 여기며 자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방 민족들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배반(15-18)
‘관계’라는 것은 가변적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이라는 예식을 부부라는 관계를 결정해준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당연한 관계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관계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항상 기계적 무조건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은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15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16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18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15-18)
서론 부분(1-14절)에 묘사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변함없으신 분인 것을 보여주지만,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은 얼마나 하나님 앞에 패역한 백성인가를 강조합니다. 본문은 이 ‘모세의 노래’는 당시 근동 지방의 소송 형식을 띄고 있는데,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마치 눈 앞에서 이루어진 일처럼 세세하게 묘사합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고발’과 ‘하나님의 판결’, 그리고 ‘하나님의 고민’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세의 노래’는 역사의 회상과 함께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백성들을 인도하셨고 높이셨는지를 기술하며 그분을 찬미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땅을 정복했던 ‘여수룬’ 민족입니다. ‘여수룬’은 ‘올 곧은’, ‘곧게 선’이라는 뜻을 지녔는데, 그들은 이름값을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여수룬이라는 명칭은 항상 의로우시고 올바르신 하나님과 대비되면서, 이스라엘의 배은망덕에 대한 반어적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여수룬이 냉소적인 뉘앙스를 내포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모세와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깃든 표현으로 보입니다. ‘너희가 잘도 여수룬이겠다. 이 나쁜 녀석들아!’라기보다는 ‘너희가 여수룬 민족인데, 패역의 길로 가는구나!’ 힘든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상상 그리던 젖과 꿀의 향연을 마음껏 누리면서, 육신은 기름지고 비대해졌습니다. 그러나 기껏 살찌우고 키워 놓았더니 이들이 주인에게 발길질을 합니다.
그들은 다른 신, 가짜 신들을 섬기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격분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귀신들’에게 희생을 바칩니다. 이 귀신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고, 최근에 가나안에서 접하게 될 신들, 곧 조상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신들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신들에 빠르게 매료되고, 심지어 새로운 신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은 이제 그 신들을 두려워하고 제사를 바치며, 그들의 명령을 따르기에 열중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들은 그 신들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 초기에 잠시나마 순수했던 조상들의 신앙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낳으시고 조성하신 분입니다. ‘낳다’는 하나님의 여성적인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어머니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낳으셨고 그들에게 젖을 먹여 키우고 살찌워서 비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그들은 잊고 우상을 섬기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진노와 백성 심판(19-25)
종종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심판하신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자기 쓸모대로 만들어서 이용하겠다는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란 계념이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품는 것이 불편할 수 있겠지만, ‘심판’을 말할 수 없다면 ‘정의’를 말할 수 없습니다.
19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20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21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22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23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24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25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19-25)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은 존재합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을 탓하거나 거부할 수 있겠지만, 그런 기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잊으며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지 상기시킵니다.
⑴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백성(19-21)
하나님은 언약을 깨트린 그들에게 언약의 약속대로 책임을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무시하고 거절하십니다(19). 패역한 아들을 향해 부모가 진노하듯이 맹렬히 진노하십니다. 그들은 패역했고, ‘진실이 없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셨지만(4), 그들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헛된 우상으로 하나님을 격분케 했습니다. ‘하발람’은 공기나 증기를 말합니다. 우상들은 바람처럼 흩어지고 증기처럼 사라질 헛된 것들입니다. 그러한 허망한 존재들에게 제사를 바치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정당합니다.
21절은 기막힌 반어법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동일한 동사들을 사용하면서 뚜렷한 대구법을 만듭니다. 그들이 내 질투를 일으키며 분노(진노)를 일으켰으니/나도 질투를 일으키며 …분노를 일으키리라. 말하자면, 그들이 ‘신이 아닌 우상들’을 시중들어 하나님의 질투와 진노를 일으킨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민족이 아닌 사람들’을 지원하여 이스라엘의 질투와 진노를 일으키실 것입니다(21). ‘민족 취급을 받지 한 사람들’은 매우 미개하고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떠돌이 민족 집단을 일컫습니다. 이런 유형에 해당하는 족속은 역사 속에서 뚜렷한 영토를 구축하지 못한 미디안 족이나 아말렉, 다른 어떤 종족일 수 있는데, 이 용어가 굳이 특정한 종족을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민족답지도 않은 민족이나 나라를 사용해서라도 교만한 이스라엘을 치실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지식 없는 ‘우둔한/어리석은 민족’을 일으켜 그들을 치실 것입니다.
6절에 나오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는 ‘우둔한 백성’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둔하니 그들을 징계하는 것은 다른 우둔한 백성으로도 충분합니다.
⑵ 백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22-25)
하나님의 진노가 재앙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스올(음부)은 당시 세계관에서 무덤 아래 망자들이 가는 지하 세계입니다. 분노의 불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불’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각종 재앙에 대한 은유입니다.
스올까지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번진다는 것은 심판의 범위가 하늘 아래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불길이 온 땅을 뒤덮고, 땅 위의 모든 소산물을 삼키며 산들의 기초들, 곧 땅의 뿌리까지 불에 탈 것입니다. 재앙에 의한 전면적 파국입니다. 23-25절에 그 재앙의 목록이 나열됩니다. 23절은 24-25절의 재앙들에 대한 요약적 진술로 볼 수 있으며, 그것이 ‘재앙’과 ‘화살’로 묘사됩니다. ‘재앙’은 24절의 다섯 가지 목록으로 구체화되고, ‘화살’은 25절의 전쟁의 두 가지 비극적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24절의 재앙 목록은 히브리어가 너무 난해해 번역과 주석이 다양합니다.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재앙들의 정체는 더욱 그렇습니다.(한글개역은 ‘더위와 독한 질병’). 필자의 견해로 24절에 나오는 재앙들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근, 열병(fever, CJB, ‘더위’ 대신), 역병, 맹수, 독사. 25절에 두 가지가 추가됩니다. 검, 공포, 마지막 공포는 전쟁으로 인한 공황 상태를 가리키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젖먹이까지 온 백성이 넋을 잃습니다. 이렇듯 모세의 시는 재앙들을 완전수 ‘7’에 맞춰 일곱 가지로 간추려 열거하면서 백성들이 이것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대적들 심판(26-33)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다른 이방 민족을 통해 심판하시지만, 지속하지 않습니다. 원수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업신여길까 걱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심판을 되돌리신 상황은 광야생활에서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다가 멈추고 대적을 심판하십니다.
26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27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28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29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 30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31진실로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아니하니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다 32이는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독이 든 포도이니 그 송이는 쓰며 33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라 (26-3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은 피할 길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엄격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이스라엘은 역사상으로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다시 한 번 큰 하나님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⑴ 심판을 오해하는 대적들(26-3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맹렬한 진노를 계속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멈추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긍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개역개정 성경번역에 아쉽게도 ‘그러나’(27)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이 확고하지만,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러나’라는 표현을 통해 스스로 제동을 거십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그들의 반석이셨던 하나님을 멸시하며 우쭐대는 모습을 저지하기 위해서입니다(27). 대적들이 준동하도록 자극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원수들은 그것을 오해합니다. 자신들의 모략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제압한 것으로 생각하며 우쭐댑니다.
28-29절은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의한 업적이라 생각하며 우쭐대는 그 대적들은 모략도 없고 분별력도 없으며 지혜도 없습니다. 자신들의 능력과 힘이 여호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마침내 그들도 종말의 파국을 맞을 것입니다. 30절의 그들의 반석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반석’(Rock)은 하나님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이스라엘) 팔고 그들을 내주지 않았다면, 어찌 대적들이 그들을 격파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은 한 명이 이스라엘 백성 천을 쫓고 둘이 만 명을 도망가게 했을 것입니까? 31절은 분명하게 확증합니다. 그들의 ‘반석’(rock)이 이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반석은 우리의 반석 (Rock)과 다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들의 반석이 이 일을 도왔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제압했다고 오판합니다.
⑵ 대적들이 받을 심판(32-33)
그러나 이토록 교만한 대적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는 말은,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와 똑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좋아 보이는 포도는 쓴 포도일 뿐이고,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이 든 포도주를 창고에 잔뜩 쌓아두셨으며, 언제든지 원수들에게 공급하여 마시고 쓰러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 대적들이 웃음이 그칠 환난의 날이 곧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원문 그대로 변역하면 ‘복수는 나의 것! 내가 보응할 것이며 그날이 속히 오리라!’라는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계속 실패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과 씨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과 씨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업신여기고 계속해서 어기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씨름하시며, 결국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해 가십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은 시작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의 씨름을 포기한 순간, 이스라엘은 정말로 역사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자신과의 씨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연민과 사랑을 남겨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씨름하시며,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위한 연민과 사랑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보고 반응하는 자들을 일으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요로움 속에 타락하면 진노의 매를 드시지만, 자신의 백성들이 소멸하기까지 심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 백성들이 바르게 살아가길 원하고, 의에 길로 돌아오길 기다린 것입니다. 성도들은 항상 심판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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