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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33-01)

 


모세의 축복 : 지파들의 축복(1)

신명기 33장 1-17절


성도는 이 세상에서 몸답고 살아갑니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여수룬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갑니다. 세상은 자신을 의지하라고, 즉, 하나님보다 재산과 학식과 그리고 인간관계에 더 의지해야 한다고 속삭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그분이 주시는 복을 힘입어 사는 존재입니다. 복의 군원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어떤 분이시겠습니까?

 

 

본문은 임종을 앞둔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한 유언이자 축복의 노래의 전반부이며, 더 이상 질책과 훈계와 경고, 저주의 선언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온전히 희망찬 미래에 대한 축복만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이 예언적 축사는 오경에서 가장 어려운 본문으로 꼽힙니다. 드문 단어들이 나열되고, 많은 문법적, 구문론적 어려움이 있으며, 뜻 자체도 매우 모호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서문 :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1-5)

모세의 마지막 유언적인 축복의 노래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1절은 모세의 이 노래를 도입하는 서사적 진술이며, 2-29절이 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2-5절 서언(Exordim), 6-25절 지파들의 축복; 26-29절은 종언(Code)입니다. 각 지파를 축복하는데 시므온 지파만 누락되어 있는데, 불행히도 축복해야 할 미래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중에 시므온의 후손들은 유다 영토로 흡수됩니다(여호수아 19:1,9; 창세기 34:25).

 

1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3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4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5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수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1-5)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영웅이며, 광야 40년 동안 불순종하던 이스라엘을 인도했고,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문 앞까지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 모세에게 놀랍게도 죽음을 선고하십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를 ‘새로운 시대 사람’이 아니라 ‘옛 시대 사람’으로 정하셨습니다. 그가 행한 단 한 번에 불순종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냉정하게 보이지만 그것은 그의 존재 차체가 가나안 정복의 장애가 되며, 또한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의 존재보다 그의 사라짐이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서언은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임재의 현상으로 묘사하면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이 거쳐간 시내 산, 세일 산, 바란 산은 특정한 산봉우리라기보다는 높은 산지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바란 산에서 비치고 오른손에 번쩍 이는 불이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영광의 광채로 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바란 광야에 거하고 있을 때에도 그 영광의 빛을 발현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수많은 성도 가운데 임재하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시내산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했던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토라) 자체를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라고 율법이 상속받을 재산이요 기업이 된다는 것이 강조됩니다(시편 119:11). 이스라엘은 여수룬 백성입니다. ‘여수룬’은 앞서 32:15에서 살펴본 대로 ‘올바른 자’, ‘곧게 선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각 지파들을 향한 축복(6-25)

모세가 각 지파를 위해 축복한 본문을 읽고 있으면, 창세기 49장에서 요셉이 12지파를 위한 축복한 예언과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신명기 본문에 집중해서 해석하겠습니다.

 

⑴ 르우벤 지파(6)

 

6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6)

 

첫 번째 등장하는 지파는 르우벤으로 야곱의 장자입니다. 그에 대한 축복권은 단 한 줄로 도입부가 없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르우벤의 자리는 선두에 배정했으나, 그의 축복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여 단 한 줄에 그칩니다. 그가 장자 지파지만 장자의 축복권을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레아의 아들이자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 지파가 수적으로는 소수(창세기 34:30: 신명기 4:27; 예레미야 44:28; 시편 105:12; 역대상 16:19)이나 그의 후손이 끊이지 않을 것을 기원합니다. 물론 독법에 따라 수가 많아지기를 소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야곱의 유언은 서모를 범한 르우벤의 소행 때문에 부정적이었으나(창세기 49:3-4), 모세의 유언은 다소 긍정적입니다.

실제 이후의 역사에서 급격히 침체의 길을 걷습니다. 창세기 49장 야곱의 예언에서 그는 ‘물의 끓음’과 같은 성급한 기질과 분별력 없는 성격을 지녀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죄악을 저지른 일로(창세기 35:22) 더는 ‘탁월하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받습니다(창세기 49:4).

르우벤의 실질적인 장자권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넘어갑니다. 장남의 특수한 위치는 통상적으로 두 배의 지분과 지도권을 보장받습니다. 법적으로는 르우벤이 일련의 계보들 속에서(창세기 49:3-4: 출애굽기 6:14; 민수기 26:5; 역대상 5:1) 장남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만, 실제 두 배 몫은 요셉에게 배당됩니다(참조 창 48장).

16절은 르우벤이 인구가 줄어 간신히 유지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민수기를 보면 다른 지파와 비교해 볼 때 평균치를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 시대 이후로 요단 동편에 있던 그들의 땅이 갓과 길르앗 땅으로만 언급될 뿐 르우벤은 언급되지 않아 그들이 급격히 쇠퇴했음이 암시됩니다(사무엘상 13:7; 사무엘하 24:5). 그들은 요단 동편 땅의 동쪽에 자리한 여러 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약해졌을 것입니다.

결국 주전 730년경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의 침략으로 다수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고 동쪽 유브라데 강 쪽으로 이주하면서 점점 흩어집니다(역대상 5:3-10).

 

⑵ 유다 지파(7)

 

7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의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의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가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7)

 

다음은 유대에 대한 축복입니다. 야곱의 축복에서(창세기 49:8-12) 유다는 장자권을 넘겨받지 않았으나, 온 이스라엘 지파를 이끌도록 지도권을 양도받는 지파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장차 그가 수행할 군사적인 지도자로서의 역할이 크게 부각됩니다(민수기 2:3-4; 10:14; 그리고 사사기에서의 전쟁들, 사사기 1:1-19; 2-:18). 이후 유다 지파에서 다윗 왕이 등장하고, 그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십니다. 유다는 요셉을 구하고 언약 가족을 세우기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이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창세기 44:18-34).

 

⑶ 레위 지파(8-11)

 

8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8-11)

 

레위 지파는 성직으로 임명된 특별한 지파입니다. 이 부분은 모세의 기도 중에서 둘째로 길며, 해석하기 어려운 점들도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야곱의 축복에 나타난 비제의적 측면보다는 상대적으로 제의적 축제의적 측면보다는(창세기 49:5-7) 상대적으로 제의적 측면(8-10)이 강조됩니다. 그들에게는 ‘우림과 둠밈’이 있다는 점이 강조되는데, 이는 대제사장의 흉패에 보관된 물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신탁의 도구입니다.

여기에서 레위인들이 맡은 신탁, 교육 그리고 제의적 업무가 언급됩니다. 레위지파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쓰는 ‘둠밈과 우림’을 맡은 ‘헷세드’의 사람들입니다. 우림과 둠밈은 레위인들을 통하여 특정한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즉 ‘예’의 ‘아니오’)을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된 신탁의 매체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백성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용된 여러 사건들이 시적 형태로 혼합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맛사와 므리바 사건 때에 백성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그들과 다투셨지만(모세와 아론으로 대표되는 레위인들, 출애굽기 17:1-1; 민수기 20:1-13; 신명기 32:51, 시편 81:7; 95:8-9; 106:32),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과 언약을 지키고 백성에게 계명과 토라를 전하기 위해서 부모와 형제와 자녀의 인연도 무시하였습니다(황금 송아지 사건, 출애굽기 32:25-29; 민수기 25:1-9).

이들은 여호와의 규례들을 야곱에게 여호와의 토라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여호와 앞에서 향(희생제물의 타는 연기, 참조. 사무엘상 2:16; 호세아 4:13; 11:2: 이사야 1:13)을 피우며, 여호와의 제단에 아침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는 것과 같은 직무를 받았습니다. 본격적인 레위에 대한 축복은 11절에만 나옵니다.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때 레위인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옳다면, 모세의 이 진술은 사건들을 뭉뚱그려 설명하는 신명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부모와 형제와 가족들에게 냉정하라는 레위인에 대한 명령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킨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성막에 봉헌된 특수한 신분을 보여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언약)’을 지켜 이 일을 우선시하므로, 부모와 가족들에게 더는 우선순위를 둘 수 없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의 경우 직계 가족이 사망해도 장례에 가지 못했습니다(레위기 21:11). 그들은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성막에서 백성의 모든 제사, 특히 매일의 아침과 저녁의 번제를 맡았습니다. 이러한 직무를 수행하는 레위인들이 비록 땅을 분배받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부족함 없이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11). 그들이 특별히 원수의 허리를 꺾는다는 것은 실제로 레위인들이 전쟁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임무를 지시 합니다. 전쟁 중에 제사장들은 법궤를 멘 뒤 실제 전투에서 싸우지는 않지만, 전쟁터의 최전선까지 앞장서 백성을 이끄는 역할을 했습니다.

모세는 여러 제사와 다양한 직무수행을 위하여 그들에게 힘(혹은 재산)을 주시기를 레위인들의 업무가 하나님께 용납되기를 원수들에게서 보호하시기를 간구합니다.

 

 

⑷ 베냐민 지파(12)

 

12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12)

 

베냐민은 야곱의 열두째인 막내이자 라헬의 둘째 아들입니다(창세기 35:18,24; 참조. 창세기 42:4,38; 44:1-34). 하나님께서는 베냐민을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는 것처럼 보호하실 것입니다.

모세는 야곱의 축복과 같이 군사적인 탁월성을 강조합니다. 모세는 베냐민 지파를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부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오래 함께하실 것이며, 그들이 여호와의 어깨 사이에 거할 것을 기대합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애정과 보호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고대 근동에서 아버지가 아이를 품에 안거나 목말을 태워 이동하던 관행에서 비롯된 유비입니다. 즉 모세는 베냐민 지파가 안전하게 거하기를 기원합니다.

훗날 베냐민은 남북 분열 시 유다의 보호 아래 남유다와 동맹하며 포로 귀환기에는 유다와 함께 국가 재건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열왕기상 12:21,23; 역대상 12:2,16; 역대하 15:9;25:5; 34:9,32; 스 1:5;4:5).

 

⑸ 요셉 지파(에브라임 므낫세/13-17)

 

13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14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15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16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7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요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리로다(13-17)

 

이 부분은 모세의 축복에서 가장 긴 내용이며 야곱의 축복(창세기 49:22-26)과 유사한 점들이 많습니다. 요셉에게는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한 두 배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그들은 하늘의 상수원과 땅의 지하수로부터 물이 넉넉히 공급되는 좋은 땅, 농사와 목축이 잘되는 기름진 땅을 얻을 것입니다. 넉넉한 일조량을 통해 열두 달 내내(‘태음’) 소산물이 잘 자랄 것입니다. ‘옛 산’은 당시 문화권에서 풍성한 자원들이 쏟아지는 곳을 의미했습니다. 이를테면, 목재, 돌, 금속, 귀금속, 과일 등. 실제로 요셉 족속의 땅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의 요단 서편 땅은 삼림이 우거지고 나중에 많은 과수원이 개간되었습니다(여호수아 17:16-18).

므낫세 반 지파의 요단 동편 고원 지대도 좋은 숲과 목초지를 지녔다. 축복의 근원은 모세 가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불타는 떨기나무에 현현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16). 그들은 ‘구별된 자’란 말을 들을 만큼 특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북왕국 에브라임은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쏟아 붓고 배교의 길을 가고야 말았지만, 대단한 물질적 번영과 더불어 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요셉에게 실질적인 ‘첫 수송아지’의 권리, 즉 장자권의 축복이 옮겨왔습니다. 원래 르우벤은 ‘내 기력의 첫 열매’라는 수식어가 붙은 장자의 신분이었습니다(창세기 49:3). 그러나 그 별칭이 요셉에게 넘어갑니다. 장남이 통상적으로 두 배의 지분을 받는 것처럼, 요셉은 두 아들을 통해 두 배의 몫을 상속 받습니다. 다만 자손 번영의 축복은 므낫세보다는 에브라임에게 압도적으로 크게 주어질 것입니다.

 

요셉지파는 야곱이 가장 사랑한 지파이며, 모세의 축복에서도 그러한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요셉 지파보다는 두 개의 독립된 지파들로 언급됩니다(참조. 3:13-14: 삿 5:14). 요셉 지파에 대한 축복은 두 지파들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질적인 풍요(13-16)와 이방 국가들 사이에서 군사적 능력(17)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13-16절에서 모세는 요셉지파의 지도자들(나실인)의 머리에 임하길 원하는 하늘 위의 물과 지하의 물과 태양의 결실물과 달의 결실물(곡식)과 옛 산들과 영원한 언덕들(참조, 창 49:26; 합 3:6)의 탁월한 것들(삼림)과 땅과 그 위에 거하는 것들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를 나열합니다. 비와 물은 하늘과 땅의 소산(所産)이자 하나님이 하늘에서 주시는 선물로 이해합니다. 산과 언덕에 대한 표현은 영적 풍요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삼림은 풍요와 번성을 의미하는 갈멜산의 삼림을 언급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세는 요셉지파가 군사적(혹은 수적으로 막강해지길 기원한다. 16절의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으로, 출애굽기 32 이하에서 양을 찾아 헤매다가 하나님의 산 앞에 있던 불타는 덤불 가운데 계신 여호와를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17절은 요셉 지파의 첫 수송아지 같은 위엄이 뿔에서 나타나며 민족들을 세상 끝까지 들이받을 것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에브라임 지파의 수만 마리와 므낫세


모세 오경의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레위 지파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가르칠 때 책임감과 특권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그 의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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