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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16-01)


시바의 거짓말과 시므이의 저주를 듣는 다윗

사무엘하 16장 1-14절


잘못에서 비롯되었든 세상의 악함이 야기한 것이든, 고난은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합니다. 고난의 상황에 매몰되면, 쉽게 분별력을 상실하고 성정이 날카롭게 변하며 관대함과 여유를 잃게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보며 불평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무엇인지를 겸손히 헤아립니다. 고통이 지속될 때, 성도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행동해야 합니까?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막을 군사력이 없기 때문에 급히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이때 사독과 아비아달이 언약궤를 가지고 다윗을 따르려 하지만, 다윗은 이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려는 충성스러운 산하 후새도 돌려보냅니다. 대신에 이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면서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시바와 만나는 다윗(1-4)

성도는 다른 사람의 말에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릴 때도 있지만, 그 일을 통해서 그 사람만 탓한 것이 아니라 신중하지 못한 자신과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장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다윗이 시바에게 속아 잘못 판단하고 결정한 일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그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1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2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1-4)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징계(12:9-12)로 인해서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징계받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준 시바가 므비보셋에 대해 거짓말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그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시바의 소유를 다시 므비보셋과 나누게만 했을 뿐입니다.

 

(1) 시바가 가져온 음식(1-2)

다윗이 감람산 마루턱을 조금 지났을 때, 므비보셋의 종인 시바를 만나게 됩니다. 시바는 안장을 지운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이합니다. 이런 시바의 모습을 본 다윗은 이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시바는 다윗과 다윗의 가족과 수행원들을 위해 가져온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25:18에서 아비가일이 다윗의 병사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과 유사합니다. 시바는 설명을 통해 자신이 매우 꼼꼼하게 다윗을 위해 양식을 준비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다윗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2) 므비보셋의 말과 다윗의 선언(3-4)

그런데 다윗은 이런 시바의 설명이나 음식보다는 므비보셋의 행방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고 시바에게 물은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여전히 시바를 사울의 신하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시바는 더욱 다윗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다윗의 질문에 시바는 므비보셋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족속이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자신에게 돌릴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도망간 사이에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다윗과 같이 도망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시바의 말에 대해 다윗은 더 알아볼 생각을 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완전히 믿었고 화가 난 다윗은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 시바에게 줍니다.

이에 시바는 다윗에게 감사의 절을 하고 왕의 신하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는 이제 더 이상 사울의 신하가 아니라 다윗의 신하로 받아달라는 의미입니다. 시바는 이전부터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칭하며 다윗의 신하가 되고 싶어 했지만, 므비보셋이 등장함으로 다윗의 신하가 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울의 집 신하로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 왕국에서 사울 집의 신하로 지내는 것은 더는 출세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출세를 원한 시바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자신이 나설 기회가 생기자 재빨리 므비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에게 온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정말 반역을 했는지 이 부분에서는 알 수 없지만, 사무엘하19:24-30에 가면 므비보셋은 다윗을 배반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바가 므비보셋을 배반하고 모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현재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배반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요나단의 아들이 배반했다는 소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탐욕스러운 인간의 말을 그대로 믿고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모든 것을 빼앗아 그를 모함한 인간에게 줘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는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므비보셋을 찾아 은혜를 베풀고 함께 지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진 지금 그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까지 깨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생긴 의심은 나중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므이의 저주(5-14)

예수님께서는 의인이셨지만 채찍질과 침 뱉음을 당하며 조롱과 멸시 가운데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분의 희생을 생각할 때 우리의 억울함은 너무나 미미한 것입니다. 성도는 억울한 일을 통해서도 깨닫음을 얻고 자신을 훈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허용하실 수 있는지에 주목하기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 아브라함과 이스보셋 등 사울 집안 사람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었습니다.

 

5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6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7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8당신의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9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10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2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13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5-14)

 

다윗의 신복 아비새는 시므이를 죽은 재라고 하며 죽이게 해 달라고 다윗에게 청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므이를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겪는 고난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징계로 여겼기 때문에 시므이의 저주를 기꺼이 감내했습니다. 자신의 원통함을 보시고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1) 시므이의 등장(5-6)

다윗이 바후림에 가까이 갔을 그곳에서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나왔는데, 그는 사울의 친척입니다. 바후림은 사울의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가 사는 지역으로 이곳에 사울의 친척들이 살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이 시므이인 것입니다.

 

(2) 저주(7-8)

시므이는 압살롬에게 쫓겨 바후림으로 온 다윗을 보고 나가라고 소리칩니다. 그는 다윗을 ‘피의 사람’, ‘불량배’로 부르는데, 이 중에서 불량배는 이전에 나발을 부르던 표현으로 지금 다윗은 자신이 악하게 생각하던 나발과 같은 인간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피의 사람’ 즉, 살인자로 표현한 이유는 다윗이 반란을 일으켜 사울 집안 사람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므이는 여호와께서 사울 집의 모든 피를 다윗에게 돌리셨고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나라를 넘기셨다고 말합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이 이렇게 쫓겨나게 된 것은 다윗이 사울 집에 저지른 살인죄 때문에 여호와께 벌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시므이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지만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신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인과응보의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 집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거나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3) 아비새와 다윗의 반응(9-12)

시므이가 저주하는 말을 들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는 화를 내며 시므이를 죽은 개라고 욕하면서 자신이 그의 머리를 벨 수 있게 해달라고 다윗에게 요청합니다. ‘죽은 개’라는 표현은 사무엘하 9:8에서 므비보셋이 다윗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 위해 사용한 표현으로 아무쓸모 없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아비새의 말에 다윗은 너희가 상관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도록 여호와께서 허락하셨는데, 누가 그에게 뭐라 할 수 있겠나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도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하면서 반복하여 여호와께서 저주하게 하신 것이니 내버려 두라고 부하들을 말립니다. 그리고 혹시 여호와께서 저주받은 것 때문에 도리어 자신에게 선을 베풀어주실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런 다윗의 말은 이전에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으면서 원수 갚는 것은 여호와의 손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손으로 원수 갚지 않겠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때도 다윗은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하나님께서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갚아 주시길 기원했습니다.

 

(4) 감람산을 내려가 다윗(13-14)

이번에도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만일 그렇지 않고 여호와께서 자신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직접 원수갚지 않은 것을 선하게 보시고 선을 베풀어주시길 원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일어난 압살롬의 반란과 모욕들을 통해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주신 심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시므이의 저주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 중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시므이의 저주가 부당하다면 그것도 여호와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점점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다윗 일행은 시므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길을 갔고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오면서 계속해서 저주하고 돌을 던지고 흙을 뿌리며 괴롭혔습니다. 이것은 시므이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결국 시므이의 저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임을 암시합니다. 다윗 일행은 시므이의 적대적 행동으로 인해 바후림에서 쉬지 못하고 계속 행군하였고, 결국 목마르고 배고픈 상태가 되었습니다. ‘피곤한’이란 뜻의 단어 ‘아예프’는 배고프고 목말라 지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윗 일행은 바후림에서 쉬면서 물과 양식을 보급 받아야 했는데, 여기서 배척받았기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르고 지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한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겨 길을 헤매면서 그동안 왕궁에서 편안하게 살면서 잊었던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하나님을 가장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조를 하사하신 이후 그는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궁 밖으로 쫓아내시고 다시 하나님을 찾게 만드신 것입니다.

 


계속되는 시련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마련입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한 상황도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원통함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시련의 시간이 지나갈 때 얼굴을 들게 하십니다. 시련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라야 합니다. 견디기 힘든 상황일수록 더욱 겸손하게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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