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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15-03)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다윗

사무엘하 15장 24-37절


시공간 속에 사는 우리에게 상징물이나 예전, 공간은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상기시키는 중요한 교보재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셔서 좋은 상황 속에 있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스스로 그 유용함을 인정하시고 성전과 각종 제사와 절기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유용한 법궤를 돌려보냅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단을 내렸습니까?

 

본문에는 다윗의 피난길에서 예루살렘을 떠나 감람산 정상에 이르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 레위인을 만나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라 했습니다. 감람산을 올라가는 중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란에 동참했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그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감람산 정상에서 아렉 사람 후새를 만나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뜨리도록 압살롬에게 가서 거짓으로 그의 신하가 되라 했습니다.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돌려보냄(24-29)

성도는 자신의 계획과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세워져 갑니다.

 

24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25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27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28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29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24-29)

 

이 단락의 시점은 다윗이 성을 떠날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23절보다 이전으로 생각됩니다. 아마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빠져나왔을 때로 보입니다. 다윗은 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가져온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냅니다. 이 궤는 와권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물건이지만, 그는 법궤를 이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한 길에 자신을 맡기기로 결정합니다.

 

(1) 사독과 아비아달(24)

본 절은 ‘보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다윗 일행이 예루살렘 성문을 지나서 나온 다윗이 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보라’로 번역되는 ‘힌네’는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화자의 시점에서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바뀔 때 종종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다윗의 시점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2) 언약궤(25-26)

사독과 언약궤를 멘 레위인들이 언약궤를 내려놓은 상태로 있었고, 아비아달은 다윗을 맞이하기 위해 성문 앞으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언약궤를 가지고 다윗을 따라가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언약궤를 가지고 다윗을 따라가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약궤는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종교적 상징으로 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다윗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자 제일 먼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와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언약궤가 다윗을 따라간다는 것은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이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있는 다윗이 진정한 왕이라는 징표가 되며, 이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다윗에게로 돌리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다윗은 언약궤 자체가 자신의 왕권을 보호해준다는 일반적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의 원래 있던 곳으로 가져다 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는 왕권을 지키고 안 지키고는 전적으로 여호와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만일 내가 여호와의 은혜를 입으면 여호와께서 나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고, 그의 법궤와 그가 계신 곳을 보게 해주실 것이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지 않으시면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길 원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런 다윗의 모습은 왕이 되기 이전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울 왕에게 쫓기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3) 아히마아스와 요나단(27-29)

하지만 다윗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사독과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곳 사정을 정탐하고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제사장들을 이용해 예루살렘의 정보를 얻기 위한 정보망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여기서 이름이 거론된 두 아들이 다윗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연락책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들이 전해준 정보를 듣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가는 나루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임무를 받은 사독과 아비아달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에 도로 가져갔고 자신들도 다윗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여기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과 상황을 이용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인간이 노력하더라도 그 일을 성취하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온전히 여호와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아히도벨(30-31)

하나님 나라는 때로는 이 땅에서 극심한 위협을 당합니다. 사단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협을 일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위협당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30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31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30-31)

 

아히도벨은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였던 모사였습니다(삼하 15:12; 대상 27:33-34). 그가 베푸는 계략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을 정도니, 다윗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아히도벨의 배신은 다윗에게 매우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도 다윗은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가 회복되고 다시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1) 감람산 오르막길(30)

다윗 일행은 예루살렘에서 나와 맞은편에 있는 감람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갔고, 특히 다윗은 머리를 가린 채 맨발로 울며 올라갔습니다. 이들은 다윗이 왕위를 빼앗기고 도망가는 수치스러운 상황에 대해 애곡하며 감람산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다말이 암논에게 강간당한 후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쓰고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울부짖으며 집으로 돌아간 모습과 비슷합니다. 다윗은 다말이 당했던 수치를 동일하게 경험하며, 다말과 동일하게 쓰디쓴 아픔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2) 아히도벨(31)

다윗은 압살롬과 함께 반역을 일으킨 사람 중에 아히도벨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여호와께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만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다윗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결정적인 부분으로 그는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6:23에서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설명처럼 아히도벨은 당대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정하는 모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아히도벨이 압살롬을 돕는다는 정보를 듣고 상황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히도벨의 모략에서 자신을 구해주실 분은 오직 여호와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전적인 무능을 깨달은 순간 다윗은 다시 여호와께 의지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힘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 무슨 일이든 자기 생각과 힘으로 하려고 하며 실제로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보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 있고 강한 자들은 점점 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게 되며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야말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후새와 아히도벨의 대결(32-37)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위기를 이겨내고 아름답게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세워나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세워나가는 사람의 나라와 달리 하나님께서 세워 가시는 하나님 나라는 그 어떤 위기를 만나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32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33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34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35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왕의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리라 36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가 듣는 모든 것을 그들 편에 내게 소식을 알릴지니라 하는지라 37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32-37)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역시 뛰어난 지략가이며 선견자이자 다윗의 친구인 후새 역시 다윗의 피신 행렬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다윗은 그 역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이번에는 그가 압살롬의 충신인 척하면서 사독과 아비아달과 함께 자신을 돕도록 합니다.

 

(1) 후새(32)

 다윗이 기도한 후 하나님을 경배하는 제단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후새를 만납니다. 후새는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썼는데, 이는 다윗과 동일하게 애도하는 모습으로 후새가 다윗 편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후새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다윗과 함께 가기 위한 것이지만 다윗은 그를 보자 자신과 같이 가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짐이 된다고 말하면서, 다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하면서 자신을 위해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뜨려달라고 부탁합니다.

 

(2) 아히도벨과 대결(33-34)

다윗은 여호와께 기도한 후 후새를 만나는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후새를 통해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뜨려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후세를 통해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뜨리십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과 후새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다윗은 후대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어떤 정보가 생기면 이들을 통해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렇게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소식통 역할을 부탁하고 촘촘한 연락망을 짜놓습니다.

 

(3) 압살롬 동향 파악(35-37)

37절에서 ‘다윗의 친구’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이후에 그가 압살롬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의 진심은 다윗 편이라는 것을 미리 독자들에게 확실히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다윗의 친구’인 후새는 다윗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얼마 후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들어왔을 때 후새는 다윗의 부탁을 충실히 이행합니다. 그는 정말로 다윗의 믿음직한 친구였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예루살렘 성을 빼앗기고 계속해서 도망하는 신세가 됩니다. 하지만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찾고 조금씩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앙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에게 내려진 심판과 비극은 한편으로는 형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으로 인해 그의 자식들과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며,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나와 가정과 사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수 마련하신 언약궤를 성전으로 돌려보낸 다윗에게서 우리는 어떤 신앙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언약궤를 곁에 두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의지하는 것보다 그것없이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 더 나은 믿음임을 보여줍니다. 그 상징물이 자칫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이 앞에 닥쳤을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필요하고, 그 뜻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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