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사무엘하(15-01)

 


욕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

사무엘하 15장 1-12절


 

공동체를 세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반대로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구성원들이 함께 깨어 공동체를 지키지 않으면 거짓과 미혹의 영은 순식간에 모두를 어둠에 빠트립니다. 공동체를 무너지게 하는 요인들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합니까?

 

압살롬의 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압살롬은 오십 명의 친위부대를 조직한 뒤에 그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가로채서 자신이 재판하고, 다윗 왕이 백성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습니다. 4년 동안 이렇게 하면서 백성들의 지지를 확보한 후에, 다윗의 허락을 받아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반란을 일으키니, 많은 사람이 모이는데, 아히도벨도 합류하였습니다.

 

반역을 위한 준비 기간(1-6)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인정받으려 하는 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아 성취의 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이뤄 가는 그분의 몸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들을 지도자로 세우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1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2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5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6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1-6)

 

압살롬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 철저한 반역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애로사항을 잘 들어 주며, 만일 자기가 왕이 되어 재판장이 되면 이스라엘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자신 앞에 엎드려 경의를 표하는 자들의 손을 잡아 주고 입을 맞추기까지 하며 환심을 샀습니다.

 

(1) 친위 부대 조직(1)

압살롬은 다윗과 만나고 나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합니다. 비록 형식적인 만남이었고 자간의 관계를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대외적으로 왕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왕자의 지위를 회복한 것으로 보이게 행동합니다. 장자 암논이 죽었기에 그가 왕위 계승 서열 1위였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에게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과 왕자로서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병거와 말들과 50명의 호위병을 앞세워 어디를 갈 때든지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아버지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백성의 지지를 받아 반역을 도모하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2) 다윗에 대한 흑색선전(2-3)

압살롬이 반역을 위해 준비한 또 한 가지 일은 다윗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가로채는 것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일찍 일어나 성문 길가에서 서성이다가 왕에게 재판을 요청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본 뒤에 그 사람이 압살롬에게 대답하면 그 사람의 편을 들면서 다윗 왕은 그의 송사를 들을 사람을 세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전쟁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백성의 송사를 지혜롭게 재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하나님께 백성들을 잘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다윗이 너무 바빠서 직접 재판할 수 없고 대신 재판할 다른 사람도 세우지 않은 상태라고 말함으로써 다윗이 재판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어 간접적으로 비난한 것입니다. 또 왕에게 가더라도 바빠서 제대로 옳고 그름을 판결할 수 없을 것이란 인상도 줍니다.

 

(3) 백성들의 친구가 된 압살롬(4-6)

이렇게 다윗을 험담한 뒤 4절부터는 자신에 대한 자랑을 시작합니다. 자신을 재판관으로 세우면 사람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올 것이고 자신은 그들에게 정의를 베풀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이 옳다고 말해주어 자기편으로 삼은 뒤, 자신이 왕이 되면 당신이 옳다는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것인데 왕이 아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왕으로 지지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압살롬이 백성들에게 한 또 다른 행동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와서 왕자인 그에게 절을 하며 예를 표하려고 하면 손을 뻗어 절을 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절을 하는 것은 군신 간의 예를 표하는 것으로 압살롬은 이런 행동을 사양하고 대신 친구나 친척들 간에 친밀하게 나누는 인사인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행동을 함으로써 친근감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왕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하였고,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훔친 것입니다.

압살롬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만한 조건이 충분했습니다. 첫째, 그의 외모는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는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얻기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둘째,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송사하러 온 백성들의 편을 들어주고 왕자로서 거만하게 행동하지 않고 매우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갔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매우 계산되고 정치적인 것들이지만, 백성들에게 효과적이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백성들과 끌어안고 입을 맞춘 것처럼 다윗이 돌아온 압살롬을 친근하게 대했다면 압살롬이 다윗을 향해 반역을 일으켰을지 의문입니다.

 

헤브론으로 간 압살롬(7-9)

성도는 경건을 의익의 방도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경건한 척하며 사람을 속이고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만큼 가증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는 연기는 언젠가 연기처럼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위선과 가식도 통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정직한 자에 의해서 세워져야 합니다.

 

7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8당신의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9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7-9)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싶은 압살롬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 다윗을 속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압살롬이 반역하려는 왕 다윗은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였습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의 계략을 전혀 눈치재지 못했습니다.

 

(1) 압살롬의 요청(7-8)

이렇게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면서 예루살렘에서 4년을 지냈고 어느 정도 힘을 얻게 되자 압살롬은 반역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갑니다. 먼저 다윗에게 헤브론에 가서 자신이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갚겠으니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술에 있는 동안 여호와께서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서원하였다고 합니다.

이 서원의 내용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자신이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서원을 갚을 의무가 있으며, 그것은 자신이 헤브론으로 가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요압이나 드고아 여인의 계획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도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자신이 돌아온 것이 여호와의 뜻이었다고 다윗을 설득하여 압살롬에 대한 부담과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게 한 것입니다. 이런 압살롬의 설득에 다윗은 평안히 가라는 승낙을 해주었으며, 압살롬은 헤브론으로 향합니다.

 

(2) 다윗의 허락(9)

이번에도 다윗은 암논 때와 마찬가지로 압살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암이 목숨을 잃었다면 이번에는 다윗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어리석은 결정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식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지혜로운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이것이 다윗에게 내려진 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벌하실 때는 소극적인 방법과 적극적인 방법을 모두 사용하십니다. 직접 개입하지 않고 악한 본성과 마음의 욕심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실 때도 있고, 적극적으로 재앙을 내려서 벌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후자를 더 두려워하고,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의 벌일지 모른다고 여기며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벌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따라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수 있으며, 회개할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다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한 행동을 하는데 아무 제재가 없다면 혹시 나를 내버리신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간 것은 그곳이 유다 지파의 본거지이자 다윗이 처음 왕권을 얻었던 곳으로 다윗의 후계자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헤브론에서 반역을 도모하는 압살롬(10-12)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는 말씀에 기초해 나가야 합니다. 압살롬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나라만을 생각하며 하나님 나라를 외면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인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떠나면 더 이상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이 세상의 공동체가 되어 버립니다.

 

10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2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10-12)

 

압살롬은 정탐을 보내 각 지파의 동향을 살피고 200명을 헤브론으로 데리고 가서 나라의 근간을 형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모사인 아히도벨까지 데려왔습니다. 이처럼 압살롬은 사람들을 의지해서 모든 일을 진행했습니다. 압살롬이 세우려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나라였습니다.

 

(1) 선동하는 압살롬(10)

다윗의 허락을 얻은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에 정탐꾼을 보내어 나팔 소리가 나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외치라고 합니다. 미리 사람들을 심어놓고 언론 플레이를 하여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온 이스라엘에 재빨리 알리려고 준비한 것입니다.

 

(2) 초청받은 사람들(11)

헤브론으로 가면서 200명의 손님을 데리고 갑니다. 이들은 갈 때는 모르고 갔지만 후에 압살롬을 지지하게 되는데 예루살렘이 아닌 헤브론에서 압살롬의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 압살롬에게 대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이들을 볼모이자 지지 세력으로 삼기 위해 헤브론으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3) 모여드는 사람들(12)

마지막으로 그는 사람을 보내서 다윗의 참모인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데려옵니다. 표면적으로는 제사에 손님으로 초청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모사로 부리려고 초청한 것입니다. 이에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편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이며 다윗과 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인데, 왜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의 편에 섰는지는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아히도벨의 등장으로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아히도벨이 다윗의 반대편에 선 이유가 아히도벨은 다윗이 자신의 손녀 딸과 간통하고 손녀사위인 우리아를 죽인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은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사까지 얻은 압살롬의 반역이 구체화되었고, 그를 지지하는 백성들도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가 분란과 혼란에 빠지는 것은 애통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사탄에게 속아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리 사탄의 계략을 분별하고, 거짓과 이간, 분열과 다툼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말씀 안에서 분별력을 길러야 합니다. 삶의 목적뿐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도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지 않기를 원합니다.

 


구독과 공감 ♡ 그리고 광고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매우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