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사무엘하(13-03)

 

 

 


암논에게 복수하여 살인한 압살롬

사무엘하 1323-39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먹잇감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릴 계교를 짜고, 틈이 보이면 순식간에 악한 마음을 충동질하여 공동체를 찢어 놓습니다. 주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악으로부터 보존하고, 든든히 세워가려면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암논은 다말을 강간한 후 다말을 미워하여 집 밖으로 내쫓아버렸고, 다말은 자신의 채색옷을 찢고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친오빠 압살롬은 다말을 강간한 사람이 암논이라는 것을 안 순간 잠잠하라고 하였고, 다윗도 화낼 뿐 암논과 다말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피해자 다말만 가족과 공동체에서 고립된 채 외롭게 살아야 했고, 압살롬은 아무런 처벌도 없는 상황에 대해 암논과 다윗에게 분을 품으며 복수할 기회만 엿보게 됩니다.

 

암논의 죽음(23-29)

사랑이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따뜻하고 벅차게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사랑도 있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잘못된 일들이 연일 뉴스를 통해 흘러나옵니다. 또한 정의와 사랑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렵습니다. 정의를 강조하면 비정해지고, 사랑을 강조하면 불공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만 이 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 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24압살롬이 왕께 나아가 말하되 이제 종에게 양 털 깎는 일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데리시고 당신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 하니 25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이제 우리가 다 갈 것 없다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 하니라 압살롬이 그에게 간청하였으나 그가 가지 아니하고 그에게 복을 비는지라 26압살롬이 이르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청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27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그에게 보내니라 28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29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23-29)

암논의 범죄한 후 2년이 흘렸습니다. 다말에게는 수치의 시간, 다윗에게는 분노의 시간, 압살롬에게는 복수의 날을 벼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담한 일이었지만,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해석하거나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1) 다윗을 초대(23-25)

암논이 다말을 강간한 사건이 벌어진 지 2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털을 깎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바알하솔은 벧엘 동북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중앙 산지의 울퉁불퉁한 지역입니다. 압살롬이 잔치 장소를 이곳으로 택한 이유는 암논을 죽인 후에 그슬로 도망가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양털을 깎는 날은 일종의 추수를 하는 날로 양 떼의 주인은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는 관습이 있습니다. 압살롬은 이 잔치에 왕의 모든 아들들을 초대합니다. 또한 압살롬은 다윗에게도 신하들을 데리고 자신의 잔치에 와달라고 칭합니다. 여기서 압살롬은 다윗에게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부르고 다윗을 왕이여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다윗과의 관계를 부자 관계가 아닌 주종 관계로 설정하며, 자신이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압살롬의 행동은 자신의 의도를 감추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을 나의 아들이라고 친근하게 부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압살롬에게 부담을 주기 싫기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신하는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아들이 힘들 것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간청하였지만 다윗은 가기를 원치 않았고, 대신 압살롬 등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여기서 압살롬이 다윗을 초청한 것은 암논을 잔치에 초청하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암논만 초대하면 다윗이 압살롬의 의도를 오해할 수도 있기에, 왕과 신하들과 함께 암논을 부른 것입니다.

 

(2) 왕자들을 초대(26-27)

다윗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압살롬은 원래 목적대로 암논을 초청합니다. 여기서 압살롬은 암논을 나의 형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암논이 자신에게 오게 해달라고 다윗에게 요청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암논이 압살롬에게 가는 것에 대해서도 일단 거절합니다. 다윗은 다말 강간 사건을 잊지 않았고 압살롬이암논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압살롬이 다윗에게 간청하자 다시 거절하지 못하고, 암논과 왕의 모든아들들을 압살롬의 잔치에 보냅니다. 다윗은 자신의 명령으로 다말을 암논에게 보내어 강간당하게 한 것처럼, 이번에는 다윗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암논을 압살롬에게 보내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3) 암논을 죽인 압살롬(28-29)

28절은 압살롬이 왜 암논을 잔치에 초대했는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시점으로 보면 다윗과 암을 초대하기 위해 왕에게 부탁하기 전으로 압살롬은 이미 암논을 죽이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서 왕에게 간 것입니다압살롬은 자신의 종들에게 암논이 포도주에 취해서 즐거워할 때를 보다가 자신이 명령하면 암논을 죽이라고 미리 명령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 잔치가 무르익어 모두가 경계를 늦추고 술에 취하여 상황 파악을 빨리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암논을 급습하여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종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이 내린 명령이니 담대하게 용사처럼 행동하라고 권면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자신이 명령한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암논의 살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압살롬 자신에게 있으며,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는 뜻입니다.

종들은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을 죽입니다. 압살롬은 정말 자신이 계획한 대로 암을 죽인 것이다. 압살롬은 다말을 강간한 암을 죽이기 위해 2년 동안 상황을 살피고 준비하면서 아버지 다윗과 암논 앞에서 자신이 암을 죽이고 싶어 할 만큼 미워한다는 사실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압살롬이 공공연하게 암에 대한 미움과 다윗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면, 다윗이 암논을 압살롬의 잔치에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고, 암논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본심을 철저히 숨기고 행동하였기에 암을 죽일 기회를 얻었고 마침내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이 암을 죽인 것은 표면적으로는 다말의 강간 사건에 대한 복수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자신이 왕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왕위 계승 서열 1위를 제거한 것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이며 위로는 암논과 길르압이 있지만, 길르압은 사무엘하 3:3에서 언급된 것 이외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어려서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암논이 죽으면 압살롬이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됩니다. 이렇게 압살롬은 누이의 강간 사건을 자신이 왕이 되려는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압살롬이 암을 죽인 것을 본 다른 왕자들은 각각 노새를 타고 그곳에서 도망하였는데, 압살롬이 왕의 다른 아들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암논을 제거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노새는 수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이종교배로 태어난 짐승이며 이스라엘에서는 금지되어 있었지만(19:19), 왕가의 운송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왕자들의 귀환(30-36)

간교한 자에게서 감정, 공감, 동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랑의 감정은 없고, 팩트만 범람할 때 세상은 정말 비정해집니다. 모든 일을 꾸민 간교한 자가 왕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윗의 나라는 위태롭습니다. 능력이 출중할지라도 간교한 자는 멀리해야 합니다.

30그들이 길에 있을 때에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31왕이 곧 일어나서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눕고 그의 신하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32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아뢰어 이르되 내 주여 젊은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 33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 줄로 생각하여 상심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하니라 34○이에 압살롬은 도망하니라 파수하는 청년이 눈을 들어 보니 보아라 뒷산 언덕길로 여러 사람이 오는도다 35요나답이 왕께 아뢰되 보소서 왕자들이 오나이다 당신의 종이 말한 대로 되었나이다 하고 36말을 마치자 왕자들이 이르러 소리를 높여 통곡하니 왕과 그의 모든 신하들도 심히 통곡하니라(30-36)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속여 암논을 초대한 후, 다윗이 요압을 통해 우리아를 죽였듯이, 신복들을 통해 암논을 제거합니다. 다윗은 암논에게 속아서 딸이 겁탈당하는 것을 도왔는데, 이번에도 압살롬에게 속아서 암논의 죽음을 본의 아니게 돕고 맙니다.

 

(1) 다윗의 슬픔(30-31)

암논을 제외한 다윗의 아들들이 노새를 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즉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도망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다윗에게는 압살롬이 모든 아들들을 죽였다는 허위보고가 들어갑니다. 여기에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을 쓴 것은 모두 죽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아직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서 이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허위 보고를 한 것입니다이 소식을 사실로 믿은 다윗은 옷을 찢고 땅에 누워 아들들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이것은 12:16-23에서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병에 걸렸을 때 했던 것과 동일한 행동입니다. 다윗은 범죄한 이후에 계속해서 아들을 잃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2) 요나답의 분석(32-33)

이번에는 지난번과 다르게 다윗의 신하들도 옷을 찢고 다윗의 곁에 서서 함께 애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암논에게 간교한 계책을 알려준 요나답이 이 상황에 대해 합리적인 해석을 해줍니다. 그는 왕자들 모두 죽임을 당하지 않고 암만 죽었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암이 다말을 강간한 날부터 압살롬이 걸심하였던 것이라고 말한다. 요나답은 암이 말을강간하면 압살롬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요나답은 암논에게 다말을 강간할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가장 약한 인물은 요나답이라고 볼 수 있다.

 

(3) 왕자들의 귀환(34-36)

요나답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파수꾼들이 뒷산 언덕길로 사람들이 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요나답은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말대로 왕자들이 살아 왔다고 다윗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왕자들이 도착하였고, 그들은 안도감과 반가움에 큰 소리로 울었고, 다윗과 모든 신하들도 같이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다윗은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암논을 잃은 것에 대해 크게 상심하였을 것입니다.

 

압살롬의 도피생활(37-39)

사랑의 이름으로 잘못을 눈감아주지만, 깨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책임을 안 질 만큼만 참여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만큼만 참여했습니다. 사람이나 배려가 없는 지혜는 간교한 모략에 불과합니다.

 

37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니라 38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에 산 지 삼 년이라 39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37-39)

암논을 죽인 압살롬은 그슬로 도망합니다. 그의 외할아버지 달매가 그술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로 인해 날마다 슬퍼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아들이 누군지 언급되지 않지만 왜곡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압논의 죽음에 대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애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암논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고 대신에 그술로 도망간 암살롬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한 아들을 잃고 또한 아들은 크지 못하는 불행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만일 암논이 다말을 강간한 직후 다말의 부르짖음을 듣고 암논에게 적절한 처벌을 내려 다말과 암살롬의 마음을 위로했다면 이런 불행한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한 자의 계교로부터 공동체를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거짓과 미움, 분열의 영이 간계로 끊임없이 흔들어놓기 때문입니다. 구성원 모두가 깨어 이간과 속임을 분별하고, 간교한 자를 멀리하며 사랑의 신뢰와 용서로 결속할 때, 공동체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구독과 공감 ♡ 그리고 광고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매우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