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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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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을 유혹하여 범죄한 암논

사무엘하 131-14


교회나 사회가 경건하여 악한 일들이 없으면 좋겠지만, 성폭력의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내가 속한 곳을 포함하여 완벽한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만약 주변에 생각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면, 우리는 이 일을 어떤 절차와 과정을 밟아 다루어야 합니까?

 

압살롬의 반란이 일어나게 되는 첫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이 병든 체하고 셋째 아들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자기 집으로 오게 했습니다. 암은 강제로 다말과 동침한 뒤, 곧 싫증을 느끼고 집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다말은 자기 오빠인 압살롬을 찾아가 그의 집에서 거주했습니다. 압살롬은 다말에게 당분간 조용히 지내라고 충고하면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채 암을 죽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암논의 계략(1-6)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범죄의 길을 가고 세상의 길을 가려면 여러 사람을 속여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를 떠나려고 하면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악의 수렁에서 자기의 힘으로 헤쳐 나올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능력으로 덧입혀 주셔야만 죄악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항상 성령께서 은혜 가운데 인도하시길 간절히 구하시길 바랍니다.

 

1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2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3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4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5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6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1-6)

세상은 자신의 기지와 능력을 발휘해 악을 돕고자 하는 자들로 넘쳐납니다. 요나답은 암논의 불의한 욕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간교한 자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간교한 뱀이 접근을 허용함으로 범죄했듯이, 암논의 욕망은 간교한 자의 접근을 허용하면서 증폭되었습니다.

 

(1) 암논의 상사병(1-2)

암논이 다말을 강간한 사건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뒤에 일어난 첫 사건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 다말을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아름다운 누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 이유이며, 전에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한 이유와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유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입니다또한 다말을 다윗의 딸이 아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누이로 소개하는데, 이것은 다윗이 다말에게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와 대조적으로 암논이나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로 소개함으로써 다윗의 애정이 아들들에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건은 암논이 배다른 누이 다말을 사랑하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강간한 후에 급속히 식어버리는 육적인 욕망에 불과했습니다. 다말에 대한 암논의 욕망이 너무 강했지만 다말이 처녀라서 만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처녀의 경우 남자 형제가 늘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암논은 자신의 동생이자 경쟁자인 압살롬을 배제한 채 다말을 만날 방법이 없었습니다암논은 다말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심히 괴로워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다말을 그의 누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암논의 욕망이 잘못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요나답의 계교(3-5)

이때 암논의 사촌 요나답이 등장합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요나답을 심히 간교한 자로 번역하고 있지만, 원문을 직역하면 매우 지혜로운 남자입니다. 여기서 지혜의 모티프가 등장합니다. 요나답은 암논을 보고 왜 그렇게 날마다 야위어 가느냐고 묻습니다. 암논은 다말에 대한 욕망을 채우지 못하여 괴로워하였고, 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는 병이 난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요나답의 질문에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합니다. 사실 암논은 욕망은 있었지만, 그것을 채울 지혜와 능력은 없었는데, 요나답이 암논에게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암논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3) 암논의 요청(6)

요나답은 왕인 다윗의 권위를 이용하여 다말을 그의 보호자인 압살롬에게서 떼어낼 방법을 알려줍니다.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고 있다가 다윗이 병문안을 오면 누이 다말이 만든 떡, 그것도 특별히 자신 앞에서 만든 떡을 먹고 싶다고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암논을 매우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요나답이 아픈 암논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염두에 둔 계획입니다요나답은 자신의 지혜를 범죄에 악용하고, 결국은 암논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일조합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후에 암논의 잘못된 행동을 막으려고 했던 지혜로운 다말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 말을 들은 암논은 요나답의 말대로 아픈 체하고 있다가 다윗이 병문안 왔을 때, 요나답이 알려준 대로 다윗에게 요청합니다. 여기서 암은 다말을 나의 누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요청이 형제간의 우애인 것처럼 포장하며 자신의 욕망을 숨깁니다. 하지만 그녀의 손으로 자신을 먹여달라는 요청은 단순히 남매간의 우애로 보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다말과 동침한 암논(7-14)

죄란 결국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그것을 채우고 싶어 하는 그릇된 열망입니다. 성도들은 욕망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듣기 좋은 간교한 말보다 옳은 말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이 다른 성도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하며 삶을 살아야 합니다.

 

7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8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9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10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1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12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3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4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7-14)

다윗은 암논의 욕망 성취를 위한 연극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누구보다 자기 욕망 실현에 능수능란했던 다윗은 암논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한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욕망을 품고 있는 자, 그것을 부추기는 자, 모른 채 방임하는 자는 모두가 공범입니다.

 

(1) 과자를 준비한 다말(7-9)

이런 암논의 요구에 다윗은 다말에게 사람을 보내어 암논의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음식을 차리라고 명령합니다. 장자인 암논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다윗은 경우에 합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암논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딸 다말을 암논의 손에 넘겨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다윗의 이런 어리석은 모습은 밧세바와의 범죄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면서 주시던 지혜가 사라졌음을 암시합니다왕인 아버지 다윗의 명령에 따라 암논에게 간 다말은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명령대로 과자를 만들어 암논이 먹게 차려 놓았습니다. 다말이 과자를 만드는 모습을 자세히 설명한 것은 그녀가 아버지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성실한 다말의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다가올 다말의 운명에 대해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며 암논과 다윗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다말이 다 만든 음식을 암논 앞에 놓았지만 암논은 먹기를 거절하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의 원래 목적은 음식이 아니라 다말을 강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말이 음식을 다 준비하자 자신은 강간할 준비를 한 것입니다.

 

(2) 암논의 유혹(10-11)

암논은 다말에게 음식을 침실로 가져와서 자신에게 먹일 것을 명령합니다. 암논은 다말이 거절할 수 없게 매우 강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큰 오라버니의 말을 어길 수 없어서 방으로 음식을 들고 들어갑니다. 여기서 그의 오라버니 암논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다말이 암논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3) 암논의 다말을 강간함(12-14)

암논은 다말을 침실로 들어오게 하여 강제로 붙잡고 동침하자고 명령합니다. 이때 암논은 다말을 나의 누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다말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행동이 금지된 행동이라는 것을 표현합니다이런 암논의 말에 다말은 자신의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합니다. 그녀는 암논을 오빠로 부르면서 자신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과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욕되게 한다는 것은 다말에게 수치와 굴욕을 준다는 것으로 다말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일을 하다라는 구문은 창세기 34:7과 사사기 19:23의 본문에서 공통적으로 강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암논에게 해당하는 말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강간은 중범죄로 다루었기 때문에 다말은 암논에게 강간을 하면 죄인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다말은 어리석은 행동의 결과로 다말 자신은 수치를 입게 되어 공동체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암논도 범죄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 후 좀 더 지혜로운 조언을 하는데, 강간 대신에 결혼이라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다말과 암논의 명예를 모두 지키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두 제안 다 아버지 다윗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다말은 간교한 요나답보다 훨씬 지혜로운 제안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말이 아버지를 통한 결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으로 보아야 합니다당시 이스라엘 법(18:9)에 따르면 이복 남매간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만일 암논이 다윗에게 다말과 결혼시켜달라고 말하더라도 다윗이 이 결혼을 허락할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강간에 대한 수치를 지고 평생을 사는 것보다는 암논과 결혼하는 것이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다말은 암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입니다하지만 욕정에 사로잡힌 암논은 다말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를 강간합니다. 결국 암논은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누이인 다말을 강간하여 다윗 가문에 피바람을 몰고 옵니다. 이는 밧세바와 간통할 때 그 일이 가져올 파장이나 여호와께서 보고 계신다는 생각하지 않았던 다윗과 매우 비슷합니다. 다윗의 악한 행실이 자녀들에게 악한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상황에서 다윗도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하여 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하며 그가 지혜롭게 행동하게 하셨으며 어리석은 일을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막으셨지만, 이번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으셨고, 지혜로운 말조차 묵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악한 본성이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다말을 행한 암논의 사랑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왜곡된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드러난 사건을 공동체가 해결하거나 치유하지 못하여 피해자의 아픔이 가중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고 감쌈으로써 교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예도 있습니다. 교회를 거룩한 기관으로 보존하기 위해 성도는 지혜와 의지와 성찰로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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