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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20-01)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전쟁

신명기 20장 1-20절


성도들의 생활은 항상 영적 전쟁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전전쟁에 눈을 뜨지 못했다면 아직 성령 충만을 경험했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군사도 신부도 아닌 그냥 성도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잃어버린 자를 찾아 당신의 거룩한 신부로 직접 부르시고 그중에서도 최고의 신부가 되도록 하기위해 이 땅에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은 곧 영의 눈이 열린 것을 말합니다. 하루하루 생활 속에 넘어지지 아니하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모세의 율법 강론은 전쟁 수칙으로 이어집니다. 가나안과의 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필수적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기에 제사장에 의해 전쟁이 선언되고, 대적을 두 부류로 나누어 각각 다른 전쟁 수칙이 주어집니다. 비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은 먼저 평화가 제의된 후 상대국의 응답에 따라 전쟁 여부가 결정되고, 이 경우 진멸(헤렘) 전쟁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과는 진멸 전쟁이었습니다.

 

제사장을 의한 전쟁 선언(1-4)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성도에게 가장 큰 무기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전쟁은 적군의 말이나 병거가 아무리 많아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큰 적은 마음을 녹이고 온몸을 떨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이 불신을 야기하고, 불신은 불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뼈아픈 실패한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2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1-4)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본문은 그 전쟁할 때에 대한 규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인도해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⑴ 하나님만 의지하는 전쟁(1)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하기 위해 진격해 들어가 싸울 때, 그들은 믿음의 무장이 필요했습니다. 과거 정탐꾼들의 보고를 통해 그 땅의 민족들이 얼마나 강한지 들은 바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 있었고, 성들은 견고했으며, 군사적으로 잘 무장되었습니다. 말과 병거라는 첨단 무기를 갖고 있었고, 군사도 이스라엘보다 많았습니다. 기병대뿐 아니라 특히 병거는 당시 블레셋을 중심으로 철기가 보급되면서 출현한 더욱 강력한 철갑 무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란 표현은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의 근원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최강의 애굽과 그들의 왕 파라오를 격파하셨기에 그들이 두려워할 적은 없습니다.

 

⑵ 전쟁을 선포한 제사장(2-4)

 

가나안 땅에서 전쟁을 시작할 때, 제사장이 선언하셨습니다. 이때 제사장들이 나서서 백성들을 격려하고 전쟁을 시작했습니다(2). 제사장에서 전쟁을 선언하라는 이유는 그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 말고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고 그분이 너희를 위해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전쟁이, 민족 대 민족의 전쟁이 아니라 그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의 전쟁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이 전쟁 역시 하나님과 이방신의 전쟁이기에 제사장이 전쟁의 시작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적군의 많음을 볼지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신 강력한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신명기에서는 법궤가 십계명 돌판의 보관물로 언급되지만(10:1-8), 전쟁에서 법궤의 주도적 역할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사령관으로 직접 나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최대의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애굽 군대도 여지없이 격파해 버리셨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이후에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해주시면 어떤 적과도 싸우더라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승리한 전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병에서 제외되는 군인들(5-9)

신앙생활 자체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하지만 종종 이 사실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사단에게 당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마가복음 13:33)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항상 군사들처럼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5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6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7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 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8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9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친 후에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6-9)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에 더 많은 군사를 모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모병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전쟁에 걸림돌이 될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각 성읍의 ‘책임자들’이 이 시행령을 따라 장정을 모병합니다. ‘책임자’는 앞서 지도자로 번역된 직급의 인물들인데, ‘쇼테르’라는 이 직책은 장로들의 직책으로 추론됩니다.

영적 무장을 독려한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 군대의 내적 무장을 갖추기 위해 구체적 지침을 내립니다.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거나 전력을 약화할 소지가 있는 군인들을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합니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네 부류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위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① 집을 새 로 짓고 기공식을 못한 사람

먼저 집을 새로 지은 뒤 준공식을 거행하지 못하고 입대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가 전사하면 집이 어떻게 처분될지 알 수 없기에 입대한 사람의 걱정거리가 되어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으므로 전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② 과수원을 만들고 열매를 거두지 못한 사람

둘째,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를 재배한 뒤 수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포도는 단지 대표일 뿐 모든 과실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과실을 먹다’라는 뜻은 사실 과실을 수확한다는 의미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포도나무를 세속화한다는 의미입니다.

 

③ 약혼한 사람

셋째, 약혼한 남자입니다. 남자가 입대해서 전사하면 그 여자와의 약혼은 깨지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습니다. 약혼할 때 예비 신랑은 신부 값을 지불합니다. ‘약혼했다.’ (betrothed) 대신 ‘신부 값을 지불했다’(paid the bride-price)로 번역합니다. 22:23-24을 보면 약혼한 사이는 법적으로 사실혼 관계입니다. 약혼한 남자는 신부 값을 지불한 약혼녀를 빼앗길까 노심초사하게 될 것이고, 불안한 심리는 전력에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집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규정이 24:5에 등장하는데, 이미 결혼을 한 사례입니다.

 

④ 심약한 사람

마지막으로 두려워하는 심약한 남자는 사기가 가장 중요한 전쟁에서 군대의 분위기를 저해하므로 모병에서 제외됩니다. 이렇게 군대가 조직되면 각 계급의 장교들(지휘관들)이 임명된 뒤 군대를 이끌고 출정합니다(9).

 

전쟁에는 많은 군사가 필요한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돌려보내신 것입니까? 그것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방 우상들에게 지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사사기 기드온의 군대에서 잘 나타납니다. 불레셋과 싸울 때 군사를 모집할 때 32000명이 모집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300명의 용사로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사사기 7:2)

적군들과 말도 안 되는 군사로 전쟁에서 승리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군사로 전쟁해서 승리했다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이라고 자랑할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군사가 적고 무기가 형편없다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4)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전쟁 수칙(10-20)

교회를 이끌어감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가야 합니다. 서로가 격려하고 도와주면서 나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실수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헐고 자신이 세워지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다른 성도가 실패하면 같이 공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0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11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12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1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15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16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하라 18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19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10-20)

 

전쟁의 목적은 모든 족속을 진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방민족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영적, 내적인 무장을 한 군대의 조직과 더불어 가나안 땅에 진격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대상에 따라 두 가지 전쟁 수칙을 따라야 한다. 첫째는 비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이고, 둘째는 가나안 족속의 전쟁입니다.

 

⑴ 비가나안 족속과의 전쟁 수칙(10-14)

 

비가나안 족속은 대체로 가나안 땅 변방 먼 곳의 나라들입니다(15). 그들에게는 즉각 선전 포고를 통한 전쟁을 시작하지 않고 먼저 평화협상을 제안해야 합니다. ‘화평’(샬롬)의 선언은 평화로운 해결책을 의미합니다. ‘샬롬’은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근 ‘샬람’은 ‘완성’, ‘성취’, ‘통합’, ‘일치’를 의미합니다. 상대방과 어긋난 관계는 상호 조약이나 때로 필요한 경우 배상과 대속의 수단으로 샬롬의 상태로 회복됩니다.

평화를 위한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이스라엘은 그들을 속국으로 삼아 종주국으로서 그들의 조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평화의 제안을 부하면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정복하고 모든 남자를 진멸하되, 다른 사람들, 곧 여자와 유아들은 살려줘야 합니다. 성인 남자들만 진멸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가축을 비롯하여 성의 모든 물건을 전리품으로 거두어 올 수 있습니다. 비가나안족속과의 전쟁은 성인 남자들만 모두 죽이기 때문에 진멸(헤렘) 전쟁은 아닙니다.

민수기 31장의 미디안과의 전쟁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비록 미디안이 이스라엘에게 죄를 저지른 전력으로 인해(바알브올 사건을 주동함) 이보다 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긴 했지만 말입니다(이스라엘 군대는 미디안의 남자 아이와 처녀가 아닌 여자들도 모두 죽이고, 처녀인 여 자들만 살려주고 모든 전리품을 챙겨왔다).

 

⑵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 수칙(15-20)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은 ‘헤렘’ 즉 진멸 전쟁입니다(17). 이들에게는 평화 협상이 불필요하며, 사람은 모두 진멸하고 물품은 모두 파괴해야 합니다.

평화의 제안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녀마저 희생으로 바치는 가나안의 가증한 종교적 관행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서입니다. 헤렘 전쟁에서는 아무 전리품도 허용 않고 불태워 진멸하는 사례가 발견됩니다(신명기 13:12-16).

다른 사례에서는 불에 타는 것은 모두 태우고 가축도 칼로 전멸시키며, 다만 금속 제품은 전리품로 가져와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보관합니다(여호수아 6:18-19, 21). 전리품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 정확한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아마 성읍이나 국가의 범죄가 심각할 때 지시되는 여호와의 전쟁 규칙으로 보입니다. 가나안 족속의 멸절은 여리고 성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사울이 아말렉을 동일한 방식으로 진멸한 바 있습니다(사무엘상 15장). 정복 후 거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읍이더라도 우상숭배에 빠진 경우에(신명기 13:12-16) 가혹하게 남김 없는 진멸을 명하십니다.

이런 진멸 전쟁은 모압 메샤 왕의 비문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여러 국가들의 관행이었지만, 여호와의 헤렘 전쟁에는 ‘죄로 인한 심판’이라는 중대한 신학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도 인간의 죄에 대한 일종의 헤렘 심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멸’이 무조건 전적인 집단 학살을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 전쟁에서 ‘진멸’은 전쟁에서의 살상과 더불어 언제나 전면적 추방의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바벨론과 앗수르의 정책이기도 합니다. 성경도 ‘내쫓았다’는 말을 수없이 동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출애굽기 23:28, 29, 30; 34:11; 레위기 18:24, 20:23; 민수기 32:2, 39, 신명기 2:22; 6:18; 신명기 7:1 등; 이후 역사서에서도 마찬가지;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7:45). 이에 덧붙여진 추가적인 전쟁 수칙 하나는 쓸데없는 파괴의 금지입니다. 공격하는 성읍 주변의 나무를 베어내선 안 되며 과실수는 더욱 그러합니다. 랍비들은 나무만이 아니라 정복지의 가구, 비품, 옷, 건물 등도 파괴하지 않았다고 해석합니다. 예외적으로 과실수가 아닌 나무를 베는 것이 허락되는 경우는 그 포위된 성읍에 맞서 주변을 에워싸는 포위벽을 세울 때입니다. ‘성읍을 치는 기구’(siegeworks)는 무기가 아니라 포위벽, 혹은 공성벽인데, 이 벽은 성읍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여 그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게끔 유도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성전(聖戰)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나가서 싸우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전쟁터에 임하게 되면, 백발백중 패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거룩한 전쟁에 세상에 미련을 가진 사람들은 전쟁에 참가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다른 사람들을 세우는 성도와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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