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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9-02)


타인의 재산을 위한 보호

신명기 19장 14-21절


지금 우리나라는 ‘개인의 인격이 우선이냐?’,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냐?’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성범죄자들의 신상명세의 공개를 놓고 ‘공개할 것인가?’를 고민 중에 있습니다. 선진국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성범죄자의 신원을 공개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전자 팔찌를 차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신원파악이 되도록 하였고, 그가 살고 있는 집 앞에는 “위험 성범죄자의 집”이라고 푯말을 붙여 놓았습니다. 어느 누구가 피해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의 인격보다는 공공의 유익을 위해 표시를 해놓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인격을 보호하게 되면 다른 범죄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인격도 중요하지만 공공의 유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조상이 정한 경계표를 옮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고의가 아닌 살인자에게 재판 때까지 피할 수 있는 도피성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이 중요한 만큼 재산도 중요합니다. 그것을 보호해 주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 증거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말합니다.

 

경계석을 대한 교훈(14)

건강한 사회는 구성원들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고, 구성원들이 서로를 인정하며 배려하는 사회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웃의 재산이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14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언제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찌니라(14)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을 공정히 분배해야 했으며, 이웃의 재산권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더욱 하나님께서는 약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경계석을 지정하셨습니다.

경계석은 재산권입니다. 각자의 땅을 구분 짓고 표시해 주는 것으로서 소유권을 상징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이동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땅을 탐내는 것입니다. 남의 소유나 재산을 탐내거나 침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하는 도둑질입니다. 제 8계명에서 “도둑질하지 말라”(출애굽기 20:15)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경계석을 옮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십니까?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신명기 27:17)

경계석을 옮기기 시작하면 재산권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회가 점점 험악해지고, 재산권 때문에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스스로 자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기 지파대로 땅을 나누어 받을 것입니다. 각 지파 사람들이 좋은 땅 쪽으로 경계석을 조금씩 옮기게 되면, 땅 때문에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싸움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인 아합은 탐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왕궁 주변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탐낸 아합 왕은 나봇에게 처음에는 좋은 말로 부탁을 하지만, 나중에는 죽이고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죄악을 지적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인 권리를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결국 이웃의 것을 빼앗은 아합 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왕상 21:1-26, 22:37-38).

 

이러한 탐심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으로 채워 주심을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만족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자신의 분량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이 바로 욕심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경고를 들어야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

욕심은 작은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15)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속임수나 사기 같은 행동을 멀리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재산도 중요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오늘날 자신의 재산은 매우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재산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재산과 인격 정도는 쉽게 생각해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한탄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이웃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이웃의 재산이나 권리를 빼앗거나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것을 생각한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먼저 보호해 주는 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짓 증거자에 대한 처벌(15-21)

성도들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공정하게 분쟁을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모든 상황에서 공평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합니다.

 

15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6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17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18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19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21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15-21)

 

어떤 어려운 일이 발생되었습니다. 그래서 재판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증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살인 사건이 일어났거나 도둑질이 발생이 되었을 때, 증인은 그것을 혼자만으로는 증거가 불충분합니다. 그 현장을 같이 목격한 두세 사람이 같이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증인으로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증인으로써 나왔지만 그 증거가 거짓 증거일 때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처럼 악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들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관용할 수 없습니다.

 

그 때는 거짓 증인에 대한 심판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짓 증거는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일단은 엄격하게 ‘동해 보복법’으로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동해 보복법’이라는 것은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21)고 하는 것입니다.

 

재판장은 거짓 증거로 판단될 때, 남을 모함한 것이 사실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면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거짓 증거했던 사람에게 그 죄과를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상대방에게 죄과를 물어야 합니까?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19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18-20)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 거룩한 백성들에게 거룩한 질서를 파괴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악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질서를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암 5:24).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땅의 교회들이 단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종교 집단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여 억울한 자를 구제하는 참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망므을 이해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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