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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8-01)

 


이스라엘 제사장에 대한 규례

신명기 18장 1-14절


성도들은 하나님의 복을 많이 잘 누려야 합니다. 또한 그 복을 자신만 누릴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주변도 밝아지고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천국이 되어 집니다. 이것은 공연한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시는 이유로서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면, 우리 일과 관계 속에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세상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러한 사명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 제사장을 보내주셨습니다.

 

  • 전 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의 직분을 제시하시고, 이번에는 영적인 지도자들 및 그들과 같은 가문인 레위인과 관련된 규정들이 설명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땅을 분배받지 못하기 농사로 생계를 꾸밀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부양하시는데, 백성들의 소득의 십일조와 첫 소산물과 첫 태생의 제물과 같은 봉헌물이 그들의 분깃이 됩니다. 이것들은 모두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바쳐진 예물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의 분깃(1-5)

오늘날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물질에 대해 많이 접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할 것은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은 자신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제사장처럼 하나님께서 먹여 살리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을 통해 누군가를 먹이실 때, 성도들은 제사장 하나에게 몫을 준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1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 3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4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5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였음이니라(1-5)

 

모세는 왕에 이어 제사장 및 레위인과 관련된 문제를 강론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신명기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고 말하며 사실상 양자를 함께 다루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신명기와 달리 앞선 책들은 레위인의 역할에 있어 여러 가지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미 밝혔듯이 신명기가 앞선 책들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신명기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1-5절은 민수기 법안에 비추어 서 제사장에 대한 것으로 이해되고 6-8절은 레위인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⑴ 레위인들의 공급된 양식(1-2)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각자 자신들의 분배받은 기업(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들은 분배 받은 기업이 없었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해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습니다. 오직 그들은 여호와의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화제물’(엄밀히는 음식 봉헌물과 그분의 기업)과 ‘그분의 기업’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자신이 그들을 부양하시며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셨습니다(민수기 18:20). 이 원리는 제사장이 백성들에게서 일정한 몫을 받는 방식으로 실현됩니다.

레위 지파도 이스라엘인데, 왜 지분을 주시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집례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르게 섬기는 데만 관심을 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농사나 목축까지 하면, 사람의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합니다. 점점 하나님의 사역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⑵ 이스라엘 백성들의 후원함(3-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레위 지파 사람들이 얻어야할 분기에 대해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3)라고 하셨습니다. ‘응식(應食)’을 오늘날 표현으로 바꾸면 ‘몫’ 또는 ‘보수’입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의 몫으로 하나님께서는 특정 부위를 주셨습니다. 가장 좋은 부위를 레위 지파 제사장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동역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축복이었습니다. 이것은 분깃은 변함없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물질적인 생필품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물을 통해 제공되었습니다. 그들이 드릴 때, ‘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4)라고 합니다. 필요 없는 물건이나 남은 물건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최상의 것을 드립니다.

신명기는 해당 품목으로 단순히 화목제 짐승에서 받는 고기 부위와 첫 소산물과 첫 태생, 그리고 첫 번째 깎은 양털만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사장 가문이 이런 품목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분명 신명기는 이미 민수기의 규정을 전제로 간단한 예시만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민수기는 사제들의 생계 지원 수단, 곧 제사장이 받는 분깃과 레위기이 받는 분깃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제사장 몫은 다음의 여섯 가지입니다. ① 제단의 제물들 ② 여러 봉헌물(거제물) ③ 첫 소산물 ④ 헤렘(전적으로 바친 헌물) ⑤ 첫 태생들 ⑥ 십일조의 십일조 등이 있습니다. 레위기의 분깃은 민수기에서 백성들의 십일조만 언급됩니다. 현재의 신명기의 화목제 고기 분배 규정은 레위기와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신명기는 오른쪽 앞다리, 두 볼과 위를, 레위기는 오른쪽 뒷다리와 가슴을 제사장에게 할당한다(레위기 7:32-33). 이에 대해 필로(Philo)는 신명기에 맞추어 레위기 법의 히브리어 쇼크를 앞다리로 보았습니다.

웬한(Wenham)도 조심스럽게 그것이 앞다리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는 라기스에 있는 가나안 신전에 여러 짐승들의 오른쪽 앞다리가 제단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근거 중 하나로 듭니다. 그러나 현대의 학자들은 대부분 레위기는 오른쪽 뒷다리, 신명기는 오른쪽 앞다리를 제사장에게 할당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비평주의 학자들은 제사장 문서와 신명기 문서의 상이한 전통으로 인해 발생한 차이라고 봅니다. 반면 미드라쉬는 신명기의 규정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3절)를 화목제 희생 도살이 아닌 일반 도살로 해석하면서 이 문제를 피해 가려 하는데, 이 표현이 일반 도살로 이해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반 도살된 짐승은 성소에 바치지 않으므로 수용될 수 없습니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광야의 성막법에서 가나안 땅의 성전 중앙화로 인한 규정의 개정이라 봅니다. 광야에 적용된 몇 가지 율법들이 가나안 땅의 지리적 배경과 사회적 정황에 맞춰 변경된 점에 비추어 보면 가능한 해석입니다. 신명기의 제사장 몫의 화목제 고기는 레위 기의 그것보다 축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장차 전체 인구가 증가할 가나안 땅의 사회적 정황에 따라 화목 제물을 나눠야 할 사람의 수가 늘어나 평민에게 돌아갈 몫을 늘리기 위한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신명기에서 앞선 책들의 법들이 가나안 땅의 상황에 맞춰 변경된 사례들이 수차례 발견되기에, 이것을 억지스런 해석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외 제사장에게 할당되는 분깃은 첫 수확물과 포도주(포도즙), 감람유, 그리고 처음 깎은 양털입니다. 마지막 양털의 봉헌은 신명기에서 차음 언급되는데 아마다 레위인에게도 분배되었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이것은 그들의 옷과 천을 위한 필수품이었을 것입니다.

 

⑶ 사명에 대한 제사장의 책임(5)

 

레위 지파 사람들은 당연히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에서는 받는 의미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레위인 사역의 책임도 소개합니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였음이니’(5)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서 일용한 양식을 공급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권을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워진 제사장 직분입니다. ‘서서 섬기게’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항상 준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것들 때문에 사역에 방해가 된다면 무엇이 되었던지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현대 목회자들에게도 권고합니다. 다른 것이 신경을 쓰지 않고 양 떼에만 마음 두는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이중직(二重織)을 반대합니다. 목회자는 목양에 관심을 두고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다른 곳에 신경 쓰면 목양이 풍성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영적으로 점점 피폐(疲斃)해져 갑니다. 성도들을 돌아볼 시간이 없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공동체는 무너집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물질주의에 휩싸인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픕니다. 목회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물질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목회자들은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항상 준비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첫 수확물과 생산품이 어느 정도의 양인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서 16:16-17절에서 말한 대로, 랍비들은 형편이 넉넉한 농부에게는 1/40을 제시했고 샴마이 학파(the House of Shammai)는 최대 1/30, 평균 1/50, 궁한 경우 1/60로 정했습니다.

 

거처를 옮기는 레위인의 권리(6-8)

사람이 모인 곳에는 특권의식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먼저 믿은 성도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특권의식이 있는지 항상 살펴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는지 돌아봄으로 항상 형제를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6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7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8그 사람의 응식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라(6-8)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공급 받는 레위인들은 자칫하면 특권의식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당시 삶의 ㄱ정황의 단편을 엿보게 합니다. 민수기에 따르면, 레위인들은 각 지파가 봉헌한 전국 48개의 레위 도성들에서 삽니다. 레위 지파는 세 가문으로 나뉘는데(고핫, 므라리, 게르손), 오경은 말해주지 않으나 가문별로 지정된 레위 도성들에 분산되어 살았을 것입니다.

이 상황은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의 성막 시대에는 성막 동편에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민수기 3:38).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인구가 크게 늘어났을 모든 제사장 가족들이 여전히 성막 곁에 살았는지 의문입니다. 분명 실로에 세워진 성막을 섬긴 엘리 가족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앙 성소 주변에 제사장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확인되지는 않으나 정황적 추론에 따라 더 많은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은 레위 도성들에 흩어져 살면서 지방의 여호와 성소에서 중앙 성소의 통제를 받으며 레위인들을 거느리고 제의 활동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레위인들과 함께 순번을 따라 중앙 성소에 올라와 직무를 감당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봉헌물과 예물을 관리하고(역대하 31:12) 성전의 곳간을 관리하고 지켰습니다(역대상 9:26, 26:20). 성막을 수리하고(대하 24:5) 청소를 했으며(대하 29:16), 아마도 율법서를 필사하는 일을 하고(대하 34:13) 율법을 가르치는 일(신 33:10)과 율법을 기준으로 재판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인간의 삶의 현실이 그러하듯이 사제들도 자신이 원했거나(6), 때로는 불가피 한 상황 때문에 주거지를 이동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때 새로운 주거지인 ‘여호와의 택하신 곳(성소)’에 이르면 거기 사는 다른 형제 레위인들처럼 계속 사제로서 직무를 감당할 권리가 있습니다(7). 그가 팔고 온 부동산은 그의 재산으로 남아 있습니다(8). 중앙 성소 예배를 명령한 후에도 여전히 지방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합법적인 성소가 아마도 어떤 레위 도성들에서 운용되고 있었으며, 레위인들의 이사 문제는 그런 정황을 배경으로 설명되고 있다고 제안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과 권리를 통해, 그들이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소중한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셨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세상에 His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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