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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22-01)

 


정결한 공동체를 위한 법규들(2)

신명기 22장 1-12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게도 관심을 가집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찾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피조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여기고 슬픔을 당할 때는 같이 슬픔을 나누고, 기뻐할 일이 있으면 같이 기쁨을 나눕니다.

 

이어지는 공동체의 정결성을 간직하기 위한 법들은 이웃 간에 분실물로 인한 불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지침과 창조 질서를 지키고 동물과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법규들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설정하신 자연의 질서를 인간이 흘트려 놓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정결하고 거룩한 삶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질서에 부합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웃의 분실물(1-4)

하나님 나라, 언약공동체는 지체들의 형편에 매우 민감한 곳이어야 합니다. 지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고, 사람들이 가장 자기답게 삶아도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때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참 자상하게 상세한 법을 주셨습니다.

 

1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3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4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1-4)

 

언약 공동체는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야 합니다. 물질 문제, 특히 분실물의 처리에 있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인을 잃고 돌아다니는 소나 양/염소(1), 나귀와 같은(3) 가축을 발견한다면, 일단 그 짐승을 다른 사람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급히 자신의 집으로 끌고 와 보관해야 출애굽기 23:4-5는 설사 그 주인이 자신의 원합니다.

수요 심히 불편한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즉각 그 가축을 돌려줄 것을 명령합니다. 그가 그 가축을 몰래 감추기 위해 집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주변에 소문을 내고 주인을 수소문하면서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상황 때문에 내린 보관 조치입니다. 먼저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만 너무 먼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주인이 누군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2). 분실물을 습득한 당사자가 힘들여서 멀리 있는 주인을 찾아가 돌려줄 의무까지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물건을 잃은 사람이 물건을 찾으러 와야 하는 법입니다. 습득물을 보관하던 그 사람은 지체 없이 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습득물이 가축은 물론이고 옷이나 다른 물건이더라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덧붙여 길을 가다가 과도한 짐을 부리던 나귀나 소가 넘어진 것을 목격한다면, 적극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타인의 상황에 민감한 공동체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며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바울 서신에서는 교회 공동체를 한 몸으로 표현합니다(에베소서, 골로새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입니다. 성도들은 몸에 각 지체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가길 원했던 것입니다.    

 

창조 질서와 생명 존중(5-12)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질서를 보존하되 생명이 존중 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은 보여주는 다양한 법들을 제정하셨습니다. 자연을 존중하면 그 혜택이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힌 경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 조치를 잘 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5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6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8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 에 돌아갈까 하노라 9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10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1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12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5-12)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 질서를 존중하는 곳이 언약 공동체입니다. 남녀가 구별되고 동식물도 각기 고유한 종들로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남녀는 서로 복장을 구별하여 입음으로써 정체성을 잘 지켜야 합니다. 더는 문자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지만, 그 취지를 따라 하나님께서 다양하게 정하신 고유한 역할과 정체성을 잘 지켜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⑴ 의복의 성별 구분(5)

 

언약 백성은 정결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창조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남녀가 구별되었고 동식물도 각기 고유한 종들로 창조되었습니다. 남녀는 구별된 복장을 입어야 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라는 명령에서 의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켈리’는 사실 옷이 아닙니다. ‘옷’, ‘복장’으로 사용된 사례가 없으며 언제나, ‘그릇’, ‘용기’, ‘장비’, ‘비품’, ‘도구’, 간혹 ‘무기’(창세기 27:3, 에서의 ‘기구, 곧 화살통과 활’; 창 49:5, ‘칼은 폭력의 도구’)라는 뜻을 지닙니다. ‘남자의 의복’은 이어지는 여자의 의복에 맞춘 번역입니다. 따라서 어떤 유대 문헌은 ‘무기’로 해석합니다. 아마 이것은 미드라쉬의 해석처럼 웃을 포함한 특수한 도구, 무기와 같은 ‘남자의 장비’일 수 있습니다. 남녀의 복장을 섞어 입지 말라는 것은 현대의 관점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이 법은 분명 남녀의 성역할과 정체성의 구별을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⑵ 동물을 위한 생명 존중(6-7)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보존과 존중은 생태계와 인간 사회 속에서 생명 존중 사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나무 위나 땅의 수풀 속 새 둥지에 어미 새와 새끼 새들이 함께 있거나 어미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어미는 반드시 풀어주고 새끼 새들이나 알을 취해서 가져와야 합니다. ‘새와 새끼를’이란 말은 정확히 ‘어미와 새끼들’입니다. 어미와 새끼를 함께 취하는 것은 매우 잔인한 행동입니다. 이것은 어미의 젖에 새끼를 삶지 말라는 규정을 비롯하여(출애굽기 23:19, 34:26),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 잡지 말라는(레위기 22:28), 다른 인도주의적 법들과 그 정신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찮은 짐승에게도 그런 자비심을 베푼다면,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장수할 것입니다. 자연 법칙의 측면에서도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이러한 선행은 결국 인간에게 큰 혜택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⑶ 사람을 위한 생명존중(8)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히거나, 다른 사람이 생명을 잃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조치 의무를 명령하는 법이 주어진다. 낙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지붕에 난간을 만들라는 지침입니다(8). 고대 중동의 지붕은 평평했으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곳은 농산물을 말리고 보관하는 장소,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낮잠을 자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 공간이었기에 자칫 추락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난간을 만들어 사고를 방지해야 했다. 미드라쉬는 구체적으로 난간은 열 뼘(약 80-90cm)의 높이로 사람이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해야 합니다.고 규정합니다. 미드라쉬는 이 난간 설치 규정을 다른 모든 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로 확대합니다. 구덩이, 결함이 있는 사다리, 사나운 개, 해롭거나 상한 음식과 음료 등, 만일 관리 소홀로 인해 인명 사고가 날 경우 그 피 값은 주인에게 돌아간다. 여기에 구체적인 배상 규정은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출애굽기에 비추어 볼 때 유족에게 고액의 합의금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관리 소홀에 의한 사고와 그 배경에 대한 더 자세한 법규들은 출애굽기 21:28-36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인 경우, 웅덩이에 가축이 빠진 경우, 소가 다른 소를 받아 죽인 경우 등, 모세 율법의 안전사고와 배상법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안전 관리를 잘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⑷ 생물의 종별 구분(9-12)

 

앞서 창조 질서에 따른 남녀의 복장 구분에 대한 지침이 주어졌는데, 여기서는 동식물의 종자 혼합을 금지합니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서 재배해서는 안 된다. 아마 포도를 재배하면서 거기에 곡식을 동시에 재배하는 행위로 보인다. 이렇게 거둔 수확물은 결코 먹어선 안되며 몰수해야 합니다. 이 원리는 포도원이 대표로 예시될 뿐 모든 과수원과 논밭에 확대 적용될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현대 농법에서도 이런 혼합 농사법은 생산량의 측면이나 수확 시기의 차이, 타작의 불편함 등으로 인해 효율성이 떨어져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 이 법은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참고로 레위기 19:19은 짐승을 다른 종류와 이종교배를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 법의 본질은 창조 질서 교란을 금지하는 데 있을 뿐이므로, 현대에는 다른 종들 간의 인위적인 유전자 배합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와 나귀가 함께 쟁기질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10). 이 것은 두 가축의 힘의 불균형 때문에 약한 가축이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문맥에 비추어 볼 때 여기도 이질적인 것의 혼합 금지라는 취지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어선 안 됩니다(11). 요세푸스(Josephus)에 동의하여 티게 이는 제사장은 베실과 양털을 섞어 맞춘 옷을 입었으니, 이 규정은 일반인에게만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대제사장 옷은 베실에 청색, 자색, 홍색 실을 섞어 만드는데 이 색실들은 털실을 염색한 것들입니다. 관유와 향품이 그런 것처럼 제사장에게만 혼합 모직의 사용이 허용되었다는 주장인데 설득력이 있습니다. 12절 이스라엘의 복장규정은 역시 난데없이 끼어든 것으로 보이나, 11절의 혼합 직물로 짠 옷의 금지와 연결된 규정입니다. 언약 백성의 표지는 혼합 직물 옷을 입지 않는 것인데, 덧붙여 구별된 디자인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어 달아 입는 것입니다. 민수기 15:38-40은 그 귀의 술에 '청색 끈을 달 것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이 청색 끈이 달린 옷단 술의 목적을 설명하는데, 그것은 계명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청색 염료는 가장 비쌌고 고결한 상징성을 지녔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옷을 입고 다니면서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늘 기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생각하신 것은 창조질서입니다. 이 창조질서를 깨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만드는 피조물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피조물까지도 소홀하게 다루면 그것이 재앙으로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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