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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22-02)


정결한 공동체를 위한 법규들⑶

신명기 22장 13-30절


오늘날은 성에 대해 너무 자유스러운 시대입니다. 역사적으로 성적인 타락은 나라의 멸망까지 가져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폼페이도, 위대한 로마제국도 방탕함으로 성적인 타락으로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오늘날 많은 성적 개방으로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적인 모습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도덕적이고 순결한 삶은 극히 중요합니다. 한 가지 강력한 이유를 든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삶이 하나님의 피조물 중 으뜸인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언약 공동체는 성적인 측면에서도 정결해야 합니다. 부부의 정절은 두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가족의 결속, 나아가 공동체 전체에게 중요합니다. 고대 사회의 가부장적 한계로 인해 현재의 법규들은 여자의 처녀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들도 결혼 전에는 성적 순결을 지키는 것이 원칙입니다. 모세의 법은 결혼 후에 대두된 아내와 처녀성문제와 더불어 몇 가지 성관계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처녀성 문제(13-21)

성적인 순결은 유지하는 것은 가정의 질서를 지키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철저히 다르고 있습니다. 본문은 여성에 순결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날 여성들이 읽으면 기분이 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본문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3누구든지 아내를 맞이하여 그에게 들어간 후에 그를 미워하여 14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이르되 내가 이 여자를 맞이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가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15그 처녀의 부모가 그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가지고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16처녀의 아버지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17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에게서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의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18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19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을 씌움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버지에게 주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평생에 버릴 수 없는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20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의 표적이 없거든 21그 처녀를 그의 아버지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니라(13-21)

 

성경이 기록될 고대근동 당시에는 심한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당시에는 남편들이 아내가 실증나면 아내에게 누명을 씌워서 쫓아내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남편의 의무를 끝까지 다하도록 권고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성의 억울한 상황을 베려해줄 수 있는 계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⑴ 처녀성의 증거가 있을 때(13-19)

 

어떤 이스라엘 남자가 결혼한 후 아내를 미워하여 이혼하려는 마음으로 아내의 처녀성을 구실로 삼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남자가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소문내고 아내를 비방함으로써 공론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혼인 관계를 깨뜨리고 고액의 신부 값을 돌려받으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이때 그 성읍 사람들은 아내가 누명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 진상을 조사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남편은 이혼 사유로 당시에 치명적으로 중요했던 아내의 처녀성을 내놓았습니다.

15절의 ‘그 처녀의 부모’라는 표현은 원문으로 ‘그 소녀의 부모’입니다. 이것은 그 여인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애정이 식고 미운 감정이 가득 찬 남편은 ‘내가 그 여자가 처녀라는 증거(처녀인 표)를 보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처녀성의 표’는 신혼 첫날 밤 신부가 처녀막이 찢기면서 옷에 흘린 핏자국입니다. 그 옷은 당시 전통을 따라 부모가 준비해서 보낸 특별한 옷일 것입니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중동의 관습입니다. 이 증거는 신부 가족에게는 대단히 중요했기에 잘 간수해야 했습니다. 사건이 공론화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공동체의 정결성을 보존하기 위해 둘 중 한 사람이 야기한 막을 속히 제거해야 했습니다. 입증의 책임은 그녀의 부모에게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회집한 가운데 장로들이 성문에서 재판을 하였습니다(15). 부모가 자신들의 딸이 처녀인 것을 보관한 옷을 통해 증명한다면 딸은 무죄가 됩니다(17). 증거 조작의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나, 아마도 첫날밤 후 남편 자신이 그 피 묻은 옷을 자신의 아내의 것으로 보증하는, 가령 남편의 서명 같은 확실한 증거가 있었을 것입니다. 증거가 확실하면 그 남자는 무고죄로 큰 벌을 받습니다.

벌은 삼중적이었습니다. 먼저 매질을 합니다. 채찍질과 같은 매질이 아니라 ‘훈육하다’, ‘타이르다’, ‘꾸짖다’를 의미한다고 말하나, 이 동사는 체벌이 동원된 꾸짖음을 가리킵니다. 보통 이 매질은 채찍이나 막대로 때리는 형벌로 이해되며 25:1-4의 40대의 태형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둘째 형벌은 은 100세겔의 벌금입니다. 남자는 아내의 아버지에게 벌금을 냅니다. 도움말에서 언급했듯이 이 돈은 당시 상당히 큰 액수였습니다. 이 사실은 또한 22:28-29에서도 확인됩니다. 남자가 처녀를 붙들고, 함께 동침한 것이라면, 남자가 은 50세겔을 배상하고 아내로 삼아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 액수는 두 배이므로 매우 큰 벌금이었을 것입니다. 끝으로 그 남자는 그 여자와 이혼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남편의 이혼 권리가 매우 컸던 당시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큰 벌입니다.

이러한 삼중적인 중벌로 인해 남편이 함부로 아내를 모함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 법이 당시 고대에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⑵ 처녀성의 증거가 없을 때(20-21)

 

부모가 처녀성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 여자에게는 가장 큰 형벌인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장로들은 그녀를 성문에서 아버지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한글개역은 오역), 그곳에서 투석형으로 처벌합니다. 이것은 그녀가 아버지의 집에 사는 동안 ‘창기의 행동’(21), 곧 극도의 수치스러운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며, 동시에 딸을 간수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문책성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장로들과 성읍 사람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수치스러운 일’, ‘어리석은 일’을 쓸어내야 했습니다.

 

불법적 성관계(22-30)

하나님께서는 결혼 관계 외의 모든 성관계에 대해서는 그 죄를 물어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성을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과 성을 터부시해 비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 모두 성경의 원리에 위배됩니다. 성도는 말씀의 원리를 따라 영육을 성결하게 지켜 우리 몸과 마음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22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23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24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25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26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죽인 것과 같은 것이라 27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약혼한 처녀가 소리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음이니라 28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동침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이 발견되면 29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30사람이 그의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여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지 말지니라(22-30)

 

부부가 아닌 다른 이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삶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강경한 정죄입니다. 다섯 가지 유형의 성 범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⑴ 유부녀나 약혼한 여자와 동침한 경우(22-24)

 

이어지는 문제 또한 성적인 쟁점입니다. 만일 어떤 남자가(유부남이든 미혼남이든) 유부녀와 간통을 하면 둘 다 사형에 처하여 언약 공동체로부터 시급히 ‘악’을 제거해야 했습니다(레위기 20:10).

약혼한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식을 앞둔 여자가 성 안에서 만난 어떤 남자와 간통하면 둘 다 투석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번에는 처형 장소가 정읍 문입니다. 약혼한 남녀는 아직 결혼식을 앞두고 있고 잠자리를 갖지 않았지만 신부 값을 다 치른 상태이기에 이미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간통인 이유는 여자가 성 안에 있으면서 성관계를 막기 위해 도움을 구하는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간통은 죄를 범한 남녀 모두를 더럽히는 행위이며(레위기 19:20; 민수기 5:20) 두 사람 모두 책임을 면치 못하고 사형을 당합니다.

 

⑵ 강간과 기타 불법적 성관계들(25-30)

 

만일 어떤 약혼한 여자가 들판에서 겁탈을 당했는데 그 남자가 체포되었다면, 그 남자만 사형에 처하였습니다. 그녀는 무죄입니다. 여자는 소리쳐도 소용없는 들판에서 그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몰래 그 이웃을 때려죽이는 행위처럼 갑자기 당한 범행입니다(26). 따라서 그 약혼한 남자는 그녀를 여전히 존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했습니다. 다음 사례는 어떤 남자가(유부남이든 미혼남이든)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만나 그녀를 붙들고, 잠자리를 하다가 발각되는 경우입니다(28). 이때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50세겔의 벌금을 신부 값으로 지불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그는 그녀와 평생 이혼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강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2:16-17은 처녀를 ‘꾀어’ 동침을 한 사례가 나옵니다. 이때 남자는 상실된 처녀성을 대가로 ‘납폐금’(신부 값)을 물고 그녀를 아내로 삼아야 합니다. 납폐금 액수는 명시 되지 않았는데, 남자의 재력에 따라 액수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처녀의 아버지가 그 남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신부 값만 받아내고 딸은 주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남자의 책임은 무거웠던 것입니다. 현재의 신명기 법은 이것과 비슷하나 약간 다른 사례에 대한 법으로 보입니다. 남자가 처녀를 유혹한 것이 아니라 ‘붙들고’ 함께 동침한 것입니다. 이 경우 남자는 은 50세겔을 신부 값으로 배상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아야 합니다. ‘붙들다’란 의미를 강간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으며, NⅣ도 강간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오류로 보입니다. 강간을 가리키는 단어는 분명 25절에서 강한 강제력을 가리키는 헤헤지크(קיזהה)동사가 사용됩니다. 분명 이것은 타파스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보통 ‘수치스럽게 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디나의 강간 사건에 비추어 볼 때, 구약의 세계에서도 처녀 강간은 큰 범죄였습니다. 현재의 사례에서는 처녀의 아버지가 신부 값을 받고 딸을 그 남자에게 시집보냅니다. 이것을 강간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남자 쪽에서 물리적 강제력은 있었을지라도 처녀 역시 어느 정도 동조한 듯 보이는 상황입니다. 출애굽기와 다르게 아버지가 그 딸을 남자에게 주지 않을 권리는 없으며, 신부 값을 받고 반드시 그녀를 줘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딸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그녀를 반드시 데려가서 평생 살아야 하며 이혼도 금할 정도로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유혹이든 강간이든 처녀와 아버지는 그런 결혼은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느 정도 그 처녀의 합의가 개입된 성관계라고 보아야 합니다.

30절은 다시 한 번 이질적인 법이 갑자기 끼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성관계 법의 범주에 들어맞습니다. 아버지의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다른 아내나 첩인 경우입니다. 아버지와 이혼을 했거나, 아버지의 사망 이후 홀로 된 그 여자를 결코 아내로 맞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수치스럽고 역겨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음란한 상황에 빠져 있을 때,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3:16)라고 책망했습니다. 몸이 하나님의 계신 성전으로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오늘날 성적인 부분에서 너무 개방되어 도덕적으로 분별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만큼 질서가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는 화를 부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성도들은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깨어서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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