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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1-02)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장 9-21절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며 어린양의 신부입니다. 모든 건축물이 구조적 특징이 있듯이 새 예루살렘 성도 내외적으로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양의 신부인 성도들의 모습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어린양의 신부로서 교회가 누리게 될 영광의 새로운 특면은 무엇입니까?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은 사실상 절정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21:2에서 짧게 소개된 신부가 이제 실제로 등장합니다. 신부 새 예루살렘입니다. 음녀 바벨론과는 확연히 대조됩니다. 외적인 아름다움과 구조, 열두 가지 보석으로 단장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신부는 사실상 대제사장의 위엄과 광채를 띠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최초 관찰(9-10)

결혼식에서 신부는 가장 주인공입니다. 신부들은 새하얀 옷을 입고서 순결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흠 없고 티 없는 제물을 원하셨듯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한 교회를 원하십니다. 거룩함이 없다면 교회나 성도가 아닐 수 있습니다. 분문의 말씀 속에서 성도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지 교훈받기를 원합니다.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9-10)

새 예루살렘은 견고한 성곽으로 돌로 싸였고, 열두 문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열두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신구약 백성으로 구성된 새 창조된 공동체가 얼마나 완전하고 장엄한지를 보여줍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연합을 닮은 공동체가 참 성전입니다.

(1) 어린양의 신부가 초청(9)

21:11-22:5은 21:9-10에서 언급된 신부와 도성의 이의를 확대합니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을 에스겔 40-48장의 패턴을 따라 묘사합니다. 기존 예루살렘 성과 정전의 물리적인 차원을 다 허뭅니다.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그림으로 승화시킵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의 코이노니아로 우아하게 빚어냅니다. 그래서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입니다. 바벨론은 정치가 경제, 종교 체제와 동맹을 맺고서 666 체제를 구현하는 곳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오직 어린양에게 신실한 신부입니다. 이 땅에 정의와 공의와 평화와 코이노니아를 실현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두 도시는 각기 동일한 복장으로 치장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금, 귀금속, 진주: 참조, 17:4; 18:12,16; 21:18-21). 그러나 각기 전혀 다르게 사역합니다. 동사 ‘보이다’(데이크노우)는 단순히 환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행위가 아니라 하늘 시각으로 영적 현실을 보게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신부 새 예루살렘과 음녀 바벨론을 대조하여 신부가 음녀를 대체함을 의도적으로 제시합니다. (1) 정숙한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21:2,9)와 땅의 임금들로 더불어 행음한 음녀(17:2); (2) 화려함은 하나님의 영광인 신부(21:11-21)와 제국의 착취로 축척한 것이 화려함인 음녀(17:4; 18:12-13,16); (3) 만국을 빛 가운데로 다니게 만드는 신부(21:24)와 만국을 타락시키고 기만하는 음녀(17:2; 18:3,23; 19:2); (4)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가는 신부(21:24)와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음녀(17:18); (5)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가는 신부(21:26)와 온 세상으로부터 재물을 착취하고 치부하는 음녀(18:12-17); (6)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을 하거나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하는 신부(21:27)와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을 지니고 복술을 행하는 음녀(17:4,5; 19:23); (7) 만국을 치유하는 생명수와 생명나무(21:6; 22:1-2)와 만국을 취하게 만드는 음녀의 포도주(14:8; 17:2; 18:3); (8) 생명과 치유(22:1-2)와 도살의 피(17:6; 18:24); (9) 하나님 백성이 들어가라고 요청받는 신부(22:14)와 나오라고 요구를 받는 음녀(18:4).

 

새 예루살렘에 등장(11-14)

하나님의 신부인 교회는 거룩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거룩하고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를 이렇게 완전하게 변화시키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이 땅의 교회가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의지하며 새롭게 변화되어가길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능력으로 교회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11-14)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가 길이와 높이와 너비가 같은 정방형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이 성전의 소성을 지닌 지성소임을 알게 해줍니다. 새 예루살렘이 영광스러운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교회, 하나님 없는 천국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새 예루살렘(11)

새 예루살렘의 모습도 바벨론과 분명히 대조됩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이 빛으로 비추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임재하심입니다(요한복음 1:14). 21:10b은 21:2a을 거의 축어적으로 반복합니다. 보석으로 단장한 신부의 장식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19:7-8). 매우 귀한 보석과 벽옥과 수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언급하는 또 다른 은유적 표현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백성에게서 반영됩니다(빌립보서 2:15). 둘째, 크고 높은 성곽과 열 두 문이 있습니다. 크고 높은 성곽은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성격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21:27; 22:14-15). 각 문마다 한 천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에스겔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진정한 이스라엘,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열두 장로들과 비교할만합니다. 요한계시록 21:1-22:5에는 이사야 50-66장이 상당수 인유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신부로(이사야 62:5; 요한계시록 21:2,9), 새 이름(이사야 62:2; 요한계시록 22:4)과 문(이사야 62:10; 요한계시록 21:12 이하). 이러한 인유들은 이사야 62:6의 파수꾼과 연결됩니다. 셋째, 문들의 이름은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입니다. 넷째, 성곽의 열두 기초석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습니다. 숫자 24는 성전 제의를 위해 다윗이 조직한 제사장(역대상 24:3-19)과 레위인 문지기(26:17-19)의 24반차를 반영합니다. 귀금속으로 된 기초석들은 대제사장의 흉패에 있는 열두 귀금속을 인유하고 있는데, 이들 각 돌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출애굽기 28:21; 39:14). 나라와 제사장(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속량을 입은 성도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에스겔의 이스라엘 특수주의를 넘어서 열방을 품는 보편주의로 나아갑니다. 열두 기초석 위에 열두 문이 있습니다. 새 시대의 이스라엘 지파는 열방으로부터 귀의한 셀 수 없는 무리들입니다.

 

666과 대조된 신부 새 예루살렘(15-17)

성(城)의 역할은 성 안에 사는 사람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성에 거주할 사람에게는 보호막이 되어야 하고, 성에 들어오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는 방패막이기가 되어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음녀에게 미혹되어 이 ᄄᆞᆼ에서 안락한 삶을 누린 자들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반면에 음녀의 유혹을 뿌리치고 어린양을 따르는 고난의 길을 선택한 성도들은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 새 예루살렘에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15-17)

성의 문과 성곽을 측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측량은 하나님의 미래 현존과 더불어 속량을 입은 자들의 안전과 죄가 전혀 없음을 보증하는 포고문입니다. 거주민들을 어떤 해로움이나 오염, 미혹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입니다(21:27; 22:14-15). 새 예루살렘은 에스겔이 본 환상을 뛰어넘습니다. 에스겔의 성전은 단지 정사각형일 뿐이지만, 새 예루살렘은 입방체(cubic)입니다. 필로는 제사장 흉패의 직각 모양을 절대적인 안정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선한 사람과 관련하여 완벽 또는 완전을 상징합니다. 16-17절의 묘사는 고대 바벨론 성에 대한 기술과 현저하게 유사합니다. 바벨론은 눈에 띄게 도성을 통과하여 흐르는 강이 있었고, 그 강의 양쪽 측면에는 가로수로 조경한 간선도로가 뻗어 있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음녀 바벨론의 창의적인 대안입니다. 성의 길이와 높이와 너비 그리고 성곽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묘사합니다. 상징서 해석을 요구합니다. 15-17절의 측량은 유대 신자들뿐 아니라 속량된 인류까지 다 포함합니다. 성의 엄청난 크기가 이방인을 포함합니다. 요한은 에스겔 40-48장 환상에서 상세한 장면을 단순화하고 요약합니다. 에스겔 환상이 내포하는 몇몇 요소들을 보편화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성곽을 측량하니 144규빗입니다.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입니다. 144규빗은 7:4-9과 14:1, 3의 144,000을 반향 합니다. 인간의 총량과 천사의 측량이 같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요한이 독자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입니다: 요한의 환상을 표면적인 차원이나 문자적인 의미로만 숙지하려고 한다면,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666 체제는 인간을 짐승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체제입니다. 이에 저항하는 새 예루살렘은 인간을 천사의 수준으로 고양하는 체제를 상징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고귀함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곳입니다.

 

대제사장의 자질을 갖춘 신부 새 예루살렘(18-21)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룩하게 거하는 곳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순간마다 그 성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빌립보서 3:20).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는 이 땅의 시민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땅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18-21)

새 예루살렘 성은 정금입니다. 정금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속성의 은유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전체를 금으로 덧칠했음을 반영합니다(열왕기상 6:20-22). 성곽의 기초석을 장식하는 열두 보석은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에 있는 열두 돌(출애굽기 28:17-20; 39:8-14)과 이사야 54장의 복합 인유입니다. 아론의 옷은 지상의 성막의 작은 복사판입니다. 지상의 성막은 하늘 성막을 모델로 삼습니다. 보석으로 장식된 흉패는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이 거하는 지성소의 축소판입니다. 출애굽기는 열두 지파에 적용하고, 요한은 열두 사도에게 적용합니다. 사도들은 최고의 주요 증인들이며 종말의 진정한 이스라엘인 교회의 대표들입니다(21:14). 진주 문은 이사야 54:11-12에 대한 인유입니다.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를 상징합니다. 한 개의 진주로 한 개문 전체를 만들려면, 대략 66미터 높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진주는 세상에 없으므로 상징적입니다. 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추가적으로 강조합니다. 성에는 큰길이 있는데, 중인들의 시신을 늘어놓고 불경한 세상이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도록 방치되는 곳입니다(11:8-9). 이전에 수치를 당하던 거리가 이 시즌 그들의 영원한 영광이 거리로 대체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하고 아름답게 보존하십니다. 새 예루살렘의 보석으로 성도들을 부르시고, 거룩함과 아름다움, 영광스러움에 동참하기 원합니다. 우리들의 믿음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해같이 빛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오늘부터라도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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