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21-01)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영광
요한계시록 21장 1-8절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궁극적 영광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이 땅에서 누려 보지 못한 안락하고 편안하며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천국을 꿈꾸곤 합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세상의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소망해야 하는 영광스러운 미래는 무엇입니까?
음녀 바벨론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전이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옛 창조 세계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자리를 양보합니다. 새 예루살렘도 하늘에서 땅에 내려옵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가 땅에 이뤄집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하고 선포하십니다. 새 창조의 때가 이르면, 이기는 자와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자가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1-5)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망이 없고 애통하거나 곡하거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므로 이전 것은 지나가고 모든 만물이 새 것이 되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절서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하늘과 새 땅의 질서 속에 거하며 거룩한 천국의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1-5)
최후의 심판과 불못을 본 요한이 이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보았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마치 결혼한 신부처럼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완성될 교회를 가리킵니다.
(1) 새 하늘과 새 땅(1)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자리를 내어 줍니다.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않습니다. ‘새롭다’는 형용사는 질적인 구별을 나타냅니다. 옛 것의 소멸이 아니라, 새 것과 옛 것 사이에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이 있습니다. 갱신과 변혁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합니다(이사야 65:16-17; 고린도후서 5:14-17; 골로새서 1:15-18). 새 창조의 세계에는 바다가 없습니다. 계시록에서 바다는 악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악한 존재가 출몰하는 곳이며, 죽은 자의 자리입니다.
(2) 새 예루살렘(2)
대신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옵니다. 어린양의 신부처럼 단장을 합니다(이사야 61:10). 성경이나 초기 유대교에는 죽으면 천국 간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낙원에 갈 뿐입니다. 낙원은 천국(하나님 나라)이 아닙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땅에서 통치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신앙생활은 영육 이원론이나 현실도피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성도가 땀과 피를 흘려야 할 곳은 땅입니다. 땅은 하나님 창조의 본질입니다. 음녀 바벨론이 멸망했습니다. 신부 새 예루살렘이 음녀를 대체할 것입니다. 음녀에서 신부로 전이되는 마지막 과정에 요한은 맛보기로 신부를 짧게 소개합니다. 그리고 21:9-22:5에서 충분하게 소개합니다. 성도는 지금 제국의 그늘에서 신실한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타협에 대한 유혹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신부를 소개합니다.
(3) 새 성전으로서의 임마누엘(3-4)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있고, 열방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21:1-3). 여기서 백성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요한은 에스겔 37:27-28과 스가랴 2:10-11에서 ‘하나님의 장막’ 개념을 도출합니다. 이 두 구절은 구약 소망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를 채택합니다. 스가랴는 많은 민족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개종자로서 합류하여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요한계시록 21:3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모든 민족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 가운데서 신실한 증인의 복음에 반응한 열방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장막’은 광야 이스라엘의 성막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성전 속에 가두어 놓으려고 했고, 자신의 왕권을 높이려고 했으며, 하나님을 조종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스데반은 솔로몬의 성전을 우상의 전당이라고 단정합니다(사도행전 7:48). ‘손으로 지은 곳’은 칠십인역에서 우상의 전당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두 번이나 파괴되었습니다. 성전은 더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아니고, 도둑의 소굴로 변질되었습니다(누가복음 19:46). 그런데 그 하나님의 장막이 참 이스라엘인 성도들 속에 돌아옵니다. 그 결과 눈물과 사망과 애통과 통곡과 고통이 없는 세상이 됩니다. 옛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과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겪었던 고난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국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로서 경제적 착취와 인권 유린과 정당한 권리의 강탈과 정서적이고 육신적인 고통을 받았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경험을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제2의 출애굽이 일어났습니다.
(4) 새 창조의 선언(5)
요한은 이사야가 꿈꾸었던 새 창조의 예언(43:18-19; 65:17; 66:22)을 마음껏 활용합니다. 고린도후서 5:17에서 바울은 이들 이사야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봅니다.
요한은 이사야 새 창조 예언의 완전한 성취를 묘사합니다. 새 창조의 완성된 성취를 부각하려고 요한은 이사야의 표현에 ‘모두’를 첨부합니다. 이전에 부분적으로만 시작했던 새 창조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선언합니다. 만물이 새 창조로 변혁될 것입니다. 현재 동사(포이오)는 미래에 새 창조가 일어날 것이라는 확실성을 강화해주는 ‘예언적 현재’입니다. 히브리어의 예언적 완료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실 때를 예견합니다. 하늘 보좌로부터 확실하게 신적 승인이 선포 됩니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5b). 두 가지를 확증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창조의 약속은 의심할 여지없이 실행됩니다. 둘째,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약속의 절대 취소 불가능성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들 말씀은 타당하고 신뢰할 만하다.’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승인 도장을 찍으십니다: ‘이루었도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7장과 요한계시록 4장의 보좌에 앉으신 분입니다. 새 창조를 승인하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이사야 41:4; 44:6; 48:12).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표현합니다. 이 표현이 요한계시록의 초반과 후반에 각각 나타납니다(1:8,17; 22:13). 일종의 상극법입니다. 양극단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1:8과 21:6 사이에 서술되고 묘사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습니다.
새 창조의 귀결(6-8)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르지 않는 생수를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를 원하십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깊은 영적 생수를 맛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 날 우리에게 허락하실 완전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망하길 바랍니다. 새 창조 후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6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6-8)
새 하늘과 새 땅과 함께 임할 새 예루살렘 성을 상속받을 자는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입니다. 불 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에 이른 ㄴ자들과 달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거룩하고 정직한 길로 걸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임마누엘의 복(6-7)
새 창조를 선언하고 승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두 부류를 구별하십니다. 마치 백 보좌 심판의 결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와 같습니다(마태복음 25장). (1) 먼저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인데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줄 것이다’(이사야 49:10). ‘생명수 샘물’의 소유격은 동격 병렬 용법(‘물 근원, 곧 생명이라’) 또는 형용사적 용법(‘살아있는 물의 근원’; 이사야 12:3은 구원의 샘물)으로 이해됩니다. ‘생수’는 영생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근원입니다(22:1,17: 예레미야 2:13; 시편 36:8-9; 요엘 3:18; 요한복음 4:10; 7:38; 요한계시록 7:17),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누리는 영원한 교제의 삶입니다.
‘값없이’(도레안)는 ‘자유롭게’(마태복음 10:8; 로마서 3:24; 데살로니가후서 3:8), ‘공짜로’(요 15:25; 고린도후서 11:7; 갈라디아서 2:21)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여 ‘샘물 근원’(하나님 구원의 현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이사야 55:1). 둘째,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아들은 유업을 상속받는 자입니다(시편 2:7-8; 사무엘하 7:14).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입니다. 성도의 유업입니다. 새로운 가나안 땅입니다.
(2) 불 못에 들어가는 자들(8)
불 못에 들어가는 자들의 목록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타협한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들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가짜 신자들이며,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빠진 자들입니다. 음녀 바벨론이 주는 포도주를 마신 자들입니다.
용과 짐승들과 바벨론의 부역자들이 던져진 유황불 못으로 던져집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이들의 목록은 여덟 가지입니다.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a)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소심한 자입니다. 짐승과의 전투에서 용감한 신앙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는 신실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b)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은 교회 내부의 타협하는 자들입니다. 흉악한 행동은 우상숭배 주변에서 나타나는 불경한 행동들입니다. 살인자들은 박해자들입니다(13:15; 17:6). 음행은 우상의 제단에서 벌어지는 제의적 매춘 행위입니다. 점술과 마술은 신약 시대 훨씬 이전부터 우상숭배와 결부되어 실행되어 왔습니다. (c) ‘거짓말(프쉬데신)하는 모든 자들’로 마무리됩니다. 겉과 속이 다른 가짜들입니다. 경건한 신앙의 모양은 있는데, 실상은 바알 숭배자들입니다. 앞의 일곱 가지 목록에 속한 모든 자는 다 거짓말쟁이들이며, 사탄을 닮았습니다. 거짓의 영에 사로잡힌 공동체는 신부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아닌 음녀 바벨론의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악이 사라진 곳에 하나님의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이 완성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오늘도 영적 축복을 맛보게 하십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더욱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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