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9-02)
백마 타고 오신 예수님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현상에서는 정의로운 자들이 불의한 자들에게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정의를 포기하고 불의의 편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 속에서 용기 얻기를 원합니다.
어린양이 이제는 백마 탄 신적 용사로 등장합니다.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6:15)이 다가왔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철장으로 다스리는 아이(12:5)는 이제 심판하러 옵니다(19:15). 심판을 받은 자들은 공중의 새의 먹이가 됩니다. 13장의 두 짐승도 유황불 못에 던져지고, 어린양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바벨론 멸망 이후에 바벨론의 동맹 세력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제 용만 남았습니다(20:1-3).
백마를 탄 신적 용사(11-16)
성도는 십자가 군병으로 우리 앞에 나가 대적과 싸우시고 승리하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름으로 승리의 영광에 참여해야 합니다. 요한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하늘의 군대들이 백마 탄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하늘의 군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11-16)
17:1-19:10은 음녀 바벨론의 환상이고, 21:9-22:5은 신부 새 예루살렘의 환상입니다. 19:11-21:8은 음녀 바벨론에서 신부 새 예루살렘으로의 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다룹니다. 4:1에서는 하늘 문이 열리고 요한이 올라갑니다. 두루마리의 복음을 증언합니다. 19:11에서는 하늘 문이 열리고 신적 용사가 전쟁하러 내려옵니다. 하늘에서 듣고 보는 환상들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늘 무대에서의 신적 활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19:11 이후에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을 볼 일도, 들을 일도 없습니다. 하늘이 역사의 시공간을 뚫고 땅에서 일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입니다.
요한은 계시록 앞 단락들에서 이 파루시아(19:11-21)를 예고하는 다섯 가지 지표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1) 6:15의 인 심판을 받는 자들은 19:18에 등장합니다. 심판을 피한 자들이 이제는 새의 먹이가 됩니다. 6:17에 예고한 심판이 19:11-21에 기술됩니다. (2) 12:5에서 철장으로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어린아이는 하늘로 올라갑니다. 19:15에서 심판하기 위해 땅으로 돌아옵니다. (3) 14:20의 포도 추수에서 천사가 포도를 수확하여 포도주 틀에 넣습니다. 그런데 포도주들을 밟는 자의 정체는 남겨두었습니다. 19:15에서 그 정체가 밝혀집니다. 신적 용사인 그리스도입니다. (4) 16:14,16에서 악한 영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전투’를 위해 왕들을 모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계시록에서 여기와 19:15에서만 등장합니다. 왕들의 모음은 시편 2:2을 인유하는데 19:19에서 분명하게 반향 합니다. (5) 17:14에서 어린양의 타이틀은 짐승과 왕들의 정복자로서 19:16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추종자들은 19:14에서 하늘 군대로 다시 등장합니다. 이 다섯 가지 지표들은 파루시아 환상에서 수렴되어, 일종의 합주곡을 만들고 있습니다.
(1) 신적 용사의 등장(11-14)
성전(포)의 이미지가 전체 단락을 지배합니다. 바벨론을 배후에서 조종한 짐승들과 바벨론의 부역자들을 심판하러 옵니다. 구약과 쿰란 공동체와 열심당원들과 유대 백성이 기대했던 종말의 성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합니다. 요한은 모든 기대를 넘어서서, 하늘에서 오는 신적 용사를 무대에 등장시킵니다. 스가랴 9장에서 나귀를 타고 행진하는 어린양은 이제 백마를 타고 하늘에서 등장합니다. 로마제국의 역사적 라이벌이었던 동방의 파르티아 왕과 그의 기병대를 연상시킵니다.
신적 용사는 한편으로 대적을 심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도의 정당성 입증을 위해 오십니다. 하늘 군대도 백마를 타고 흰 옷을 입고 뒤따릅니다. 이들이 입은 옷은 제사장의 옷입니다. 하늘 성소에서 섬기던 하늘의 군대입니다. 흰색은 박해를 받은 성도들이 ‘옳다고 인정’을 받는 정당성 입증과 관련된 색입니다. 신적 용사가 벌이는 전투는 문자 그대로의 전투가 아닙니다. 12장에서 미가엘과 용이 벌인 하늘 법정의 전쟁입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악의 세력들과 싸웁니다. 하나는 정의로 심판하는 심판자입니다(11-12). 그래서 이름이 ‘충신과 진실’(신실과 참)입니다. 언약에 신실한 분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대적을 심판하고 그 백성이 옳음을 입증한다는 약속을 지키러 옵니다. 그래서 거짓과는 반대되는 참이십니다. 다른 하나는 신실한 증인(11장)입니다. 피 뿌린 옷은 신실한 증언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순교의 피 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백마를 탄 기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자기만 아는 이름, 비밀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문학적 기교로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a) ‘충신과 진실’로 칭합니다. (b) 자기만이 아는 이름입니다. (a')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칭합니다. 다른 누구에게 일려진 이름은 이마와 옷에 드러나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름은 무엇입니까? 16절에서 드러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입니다. 다리에 기록된 이름입니다. 용사가 전쟁을 수행하면서 옷이 바람에 휘날리면서 드러나는 이름입니다. 자신만이 알도록 기록된 이름이지만, 요한은 세심한 독자가 눈여겨볼 수 있도록 문학적 장치를 해놓았습니다. 알지 못하는 이름은 여호와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름(nomen ineffabile, 필로, 모세의 생애 3:519, 529)입니다. 여호와는 대제사장의 이마에 있는 금으로 된 명찰에 쓰여 있는데, 유대인들은 읽을 때 발음을 하지 않기에 어떻게 부르는지 모릅니다.
(2) 신적 용사의 성전(15-16)
15절은 네 가지 구약 본문을 복합 인유합니다(이사야 49:2; 11:4; 시편 2:9; 이사야 63:2-6). 하나님 백성의 대적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본문들입니다. 입의 검(이사야 49:2; 11:4)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사야 11:4을 칠십인역은 ‘그 입의 호흡으로 악인들을 도살할 것이다’로 번역합니다. ‘검’의 은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합니다. 히브리서 4:12과 지혜서 18:15-16에서도 검증됩니다. 지혜서 본문은 하나님 말씀과 계명들을 동등하게 여기는데, 이집트인들을 응징하였던 ‘예리한 검’과 더불어 하늘 보좌로부터 튀어나옵니다. 두 본문에서 검의 은유는 심판의 실행 도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철장으로 다스리다’는 시편 2:9의 인유입니다. 시편 2:8-9, 12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불경한 왕들을 전복한다고 예언합니다. 이들 왕들은 주와 메시아를 대적하는 자세를 취하고 공모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 63:2-6은 포도주 틀을 밟는 자의 정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벨론의 부역자들을 심판합니다. 포도주 틀에 있는 포도를 짓밟듯이 철저한 심판입니다.
짐승에 대한 심판(17-18)
성도는 이 세상에서 악이 강해 보이고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군대로서 끝까지 인내하며 영적 싸움을 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능력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악한 세력의 미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주님이 속히 오셔서 짐승과 추종자들에게 예비하신 궁극적인 심팜을 이루어 주시길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17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17-18)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여기서 초점은 음녀 바벨론이 주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여 부역했던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천사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그 군대에 다가올 멸망을 에스겔 39:4, 17-20에 선포된 곡과 마곡의 패망에 사용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선언합니다. 포식성 새들의 초대는 다가올 패망의 확실성을 비유적으로 강조합니다. 왜 이 시점에서 에스겔을 인유하고 있습니까? 악의 세력의 말세의 패배를 언급하고 있는 다른 구약 예언들(다니엘 2, 7-12장; 스가랴 14장)에서도 도출할 수 있었겠지만 에스겔 39장의 그림이 포함된 이유는 이 단락의 주요 요지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곡과 마곡을 패망시키신다, 이스라엘을 압제한 자들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그의 거룩한 이름을 알게 만드십니다. 신적 이름의 계시가 주목적입니다. 그리스도도 심판과 구원을 통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름을 열방에 알릴 것입니다.
두 짐승의 심판(19-21)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두렵지만,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심판이 두려움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과 함께 승리의 영광을 얻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실하시고 참되시며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기를 원합니다.
19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19-21)
이 단락은 16:14와 20:8의 복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19:19은 16:14과 20:8에서와 같이 최후 전쟁에 대한 동일한 전주곡을 언급한다. 16:14에서 귀신의 영들이 온 땅에 거주하는 왕들을 불러 모아서 함께 전쟁을 일으키려고 미혹합니다. 20:7-8에서 사탄은 열방, 즉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그들을 함께 불러 모아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나올 것입니다. 왕들과 그들의 군대는 자신의 힘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귀신의 영향력으로 모여듭니다. 여기서 전투는 그리스도와 그의 하늘 군대를 대항하여 수행됩니다. 시편 2:2의 인유입니다. 전투 결과는 두 짐승의 포획입니다. 13장에서 등장한 두 짐승으로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입니다. 유황불 못에 던져져서 그리스도의 칼로 처형되고, 그 시신은 공중의 새들이 먹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중인 이야기의 패러디입니다. 두 중인과 같은 처벌을 받는데, 살아나지 않고 비참하게 죽어 장사도 치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원수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은 모든 성도가 소망하는 바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멸망,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예언은 현실에서 악의 세력에 핍박 받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절대로 절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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