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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2-02)

 


아멘 주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장 6-21절


초대교회 성도들이 인사말로 ‘마라나타’라고 인사했습니다. 이 의미는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달라는 것은 주님의 일을 이루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셨다고 시작했고, 마지막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기다린다는 것으로 마무리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이루어 가실 일들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이자, 성경 66권의 마지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요한계시록을 통해 약속한 말씀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본문에는 여러 증언들이 나옵니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시작인 1장 3절과 마지막 22장 7절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6-9)  

이 단락은 요한계시록 본문의 중심 글을 마치는 부분입니다. 요한은 결론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본서에 기록된 내용에 순종하고 거룩함을 지켜 구원의 상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본문은 6-10절, 11-15절, 16-17절 등 세 단락으로 나뉩니다.

6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6-9)

본문은 예언의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이 책에 담긴 예언을 잘 지키라는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장차 될 일을 알리려고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장차 될 일은 우리 주님의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 본문은 1:1-3a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종들에게 장차 될 일을 보이셨다는 것과 장차 될 일은 속히 일어날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1) 두루마리의 예언의 본질(6)

마무리 주제는 두루마리 예언입니다. 요한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라고 두루마리 예언의 신적 권위를 확증하는 말로 화두를 연입니다. 다니엘 2장은 하나님 나라는 악의 제국에 궁극적인 승리를 하고, 이 땅에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적 환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니엘 2:45의 데오도션 역은 ‘이 꿈은 진실되고(ἀληθινὸν) 그 해석은 신실하다(πιστὴ)’고 확증합니다.

요한은 계속하여 다니엘 2:45을 활용합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은 다니엘의 ‘이 일 후에’를 ‘속히’로 변경한 주해의 산물입니다. 긴박성을 나타낼 뿐 아니라 개시성을 함축합니다. 두루마리의 예언은 다니엘에게는 후에 일어날 일입니다. 하지만 요한에게는 이미 시작되어 언제라도 실현될 수 있는 확실한 일입니다. 1:1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요한은 교회에 전달한 예언입니다. 요한은 ‘선지자들의 영’을 대변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언의 영을 주십니다.

(2) 두루마리 예언의 역할(7)

반드시 속히 될 일은 구원과 심판의 성취를 염두에 둔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1:3)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복된 말씀은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서언은 계시에 순종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지만, 종언은 계시에 불순종하는 이들 모두를 저주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최후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 임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진정한 예배(8-9)

요한은 다시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달했던 천사를 경배하려고 합니다(요한계시록 19:10). 천사는 숭배를 금하는데, 이는 자신이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천사는 요한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권면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착각한 것을 기록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통해 두루마리 예언의 궁극적 권위는 전달자인 천사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천명하기 위함입니다. 천사 숭배는 우상숭배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조차 우상숭배는 미묘하고 난해한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루마리 예언에 대한 반응(10-15)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상을 갚아 주리라는 말씀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황제 숭배와 같은 사탄의 압박을 받았던 아시아의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메시지로 다가왔음에 틀림없습니다. 황제 숭배에 굴복하는 자들은 심판을, 그것을 견디어 승리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이 약속은 예수께서 속히 오실 것이라는 긴박감 속에서 더욱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10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10-15)

본문은 교회에게 거룩하라고 권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13절을 가운데 두고 11-12절과 14-15절 등 두 단학으로 나뉘는데, 두 단락 모두 같은 내용을 다룹니다. 그것은 ‘거룩하라’는 권면입니다. 전반부(11-12)는 두 상반되는 사람을 비교함으로써 거룩할 것을 권하고, 후반부(14-15)는 각각의 사람이 받는 복과 심판을 대조함으로써 거룩할 것을 권합니다.

(1) 두루마리 예언을 인봉하지 말라(10)

다니엘 12장과 일곱 우레의 메시지(10:4)는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는 왜 인봉하지 말라고 합니까? 다니엘의 경우에는 두루마리가 비밀로 감춰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예언들을 요한의 독자들은 엄청난 통찰력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곱 우레 심판으로는 우상숭배자들이 강퍅해집니다. 회개를 유발하는 재앙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재앙 대신에 두 증인의 신실한 증언을 통해 두루마리 예언이 선포될 필요가 절실했습니다. 이제 두루마리의 일곱 인은 개봉되었습니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카이로스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2) 두루마리 예언에 대한 반응(11-13)

주님이 오셔서 마지막 심판을 행하시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바꿔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게 내버려두’고 더러운 자들은 그대로 더러운 채 두어라.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두루마리 예언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다시는 회개의 기회가 없습니다. 이제는 강퍅한 자와 신실한 증인의 운명이 바뀌지 않습니다. 반응한 대로 보상합니다. 상은 종말론적 상급으로 구원입니다(이사야 62:11). 첫째는 불의하고 부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개와 점술가와 음행자와 살인자와 우상숭배자와 거짓말쟁이들입니다. 거짓이 그 특징입니다. 신앙공동체 내부에 들어와 있는 가짜 신자들입니다. 사탄의 영을 받은 자들의 특성입니다. 이들은 최후 심판을 위해 성 밖에 있게 됩니다. 성의 출입이 금지됩니다. 둘째는 정의롭고 거룩한 자들입니다.

(3) 두루마리 예언을 지키지 않은 자의 보상(15)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출입 자격이 있는 자들입니다. 요한은 첫째와 둘째를 일종의 대차구조로 구성합니다. 초점은 두루마리 예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자들의 상급입니다. 불의와 부정은 정의와 거룩과 상반됩니다. 안식이 거룩의 근본이고, 희년이 정의의 기초입니다. 땅에서 안식과 희년을 지키는 신실한 증인들입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역사의 처음과 끝을 관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적 권위로 확언합니다.

 

두루마리 예언은 초청과 경고(16-19)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승리의 복음입니다. 요한은 또한 성령과 교회가 세상을 생명수로 초대하는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목이 마른 자나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아 마시라는 복음입니다. 계시의 주체자인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과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16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16-19)

본문은 다윗의 뿌리이며 자손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는 기원과 요한계시록을 듣는 사람들에게 재림 때 있을 복에 참여하라는 초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두루마리 예언의 원천이신 예수(16)

이제 최종적인 초청과 경고가 남아 있습니다. 예수와 성령과 신부가 초청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으로 초청합니까? 주 초청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를 위하여 예언자들을 보내 신실하게 증언하게 하십니다. 어린양 예수는 증인의 모델이십니다(11장). 예수는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 곧 광명한 새벽 별입니다. 요한은 ‘열방의 귀의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독자들에게 친숙한 구약 예언을 인유합니다. 다윗의 뿌리는 이사야 11:10의 인용입니다. 이사야는 다윗의 후손인 왕이 세워지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모든 열방이 모여드는 비전을 이사야 11장에 그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뿌리는 예수입니다. 광명한 새벽 별(민수기 24:17)은 신약에서 메시아 별과 같습니다(베드로후서 1:19). 여명과 함께 떠오르는 별은 어둠을 물리치고 종말론적 시대의 빛을 가져오는 별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비치면 열방이 그 빛으로 나오는 비전을 예언합니다(60:1-3). 히브리어 ‘자라흐’는 보통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묘사할 때 사용되고, 예루살렘에 그의 영광으로 떠오르는 여호와의 이미지는 여명의 이미지입니다.

(2) 두루마리 예언으로의 초청(17)

요한은 두 가지 예언적 본문(이사야 11:10; 60:3)을 인용하여 예수에게 적용합니다. 열방은 구원을 위하여 예수께 모여드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열방의 구원자로서 예수는 요한에게 계시해왔습니다. 마지막 날에 그의 교회가 열방을 향한 자신의 증언에 참여하도록 요청합니다. 성령도 열방을 초청합니다. 계시록에서 성령의 역할은 종말론적입니다. 성령은 환상과 예언적 신탁으로 하나님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백성의 기도를 인도하고, 세상을 향한 백성의 선교적 증언에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도록 함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의 관점으로 자신들의 현재를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신부도 열방을 초청합니다. 신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입니다(21:2). 즉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 시에 있는 교회입니다. 신부는 어린양이 오실 때 혼인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의로운 행위의 세마포를 입고 줄을 서 있는 교회입니다(19:7-8).

신부는 파루시아의 관점으로 보는 교회입니다. 예수와 성령과 신부의 초청은 17절에서 네 가지 명령법을 구성합니다. 생명수로의 초청입니다. 신부 새 예루살렘으로의 초대입니다. 이 초청장은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열방의 구원을 위한 기도입니다(디다케 11:6). 파루시아(주님의 재림)의 기도는 두루마리의 예언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입니다. 두루마리 예언에 대한 경고가 마지막으로 선포됩니다. 요한계시록을 새로운 이스라엘을 위한 새로운 법조문으로 보고 있으며, 옛 율법 조문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신명기 4:1-2, 19-20).

(3) 두루마리 예언에 대한 경고(18-19)

요한계시록을 듣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경고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있는 예언의 말씀에 어느 것이든 더하거나 그 예언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제하여 버리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저주입니다.

계시의 말씀을 ‘더하거나’, ‘제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신명기에 따르면, 거짓 선지자의 미혹하는 메시지에 더한 경고입니다. 신명기 4장이 모델로 삼고 있는 고대 근동 조약 문서들도 의도적인 변조에 대비하여 성문화된 규제와 저주의 수단으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약속과 반응(20-21)

주의 재림으로 완성될 심판과 구원은 모든 성도와 함께 죄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입니다. 이 소망을 붙잡고 인내로써 연단을 받아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음성에 귀 기울임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20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0-2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줄 상을 가지고 속히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환영하며, 맞을 준비를 잘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것을 알릴 수 있을까요?

(1) 약속과 반응(20)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 교회에게 교회의 가장 큰 소망인 ‘주 예수께서 속히 오신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오신다는 약속은 요한계시록 내용을 증언하신 이의 증거로 확증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실한 증인입니다. 두루마리 예언의 종언에 직접 참여합니다. ‘반드시 오리라’고 약속합니다. 주의 파루시아는 초림과 최후 임재 사이에 계속됩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교회는 성찬에서 ‘마라나타’라고 외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와 ‘주 예수께서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 그야말로 모든 역사가 지향하는 것들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에 누구든지 값없이 동참할 것을 성령과 신부가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 초청에 응하는 자들은 새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바벨론과 함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축원(21)

구원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불완전한 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자기들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갈증을 해소시켜주시고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하게 해주시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될 때까지 둘 사이에 긴장은 계속됩니다. 파루시아를 위한 기도는 멈추지 않습니다. 교회는 제국이 해체되고 열방이 돌아오는 ‘그 날’을 향해 신실한 중언을 계속해야 합니다.

요한은 아시아의 여러 교회에서 이 편지를 읽고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편지를 마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이고 적절한 끝맺음입니다(고린도전서 16:23; 고린도후서 13:13; 에베소서 6:23).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사하며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위가 구원의 근거는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의 증거가 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함으로 맡겨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며 그리스도돟의 인격과 사역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칭찬과 존귀로 상 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상급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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