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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16-02)

 


진행될 일곱 대접 심판(2)

요한계시록 16장 10-21절


하나님의 심판은 역사 속에서 인간이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바벨론 제국 같은 세력을 통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악한 세력들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때로는 의롭지 않은 자들을 통해 나타나는 이유는 악이 원래 파괴적인 특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악이 스스로 자신을 파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들은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들은 자신의 악 때문에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첫 번째 네 천사의 대접 재앙은 자연에 대한 재앙이었다면, 본문의 다섯째 천사부터 마지막까지는 두 짐승과 용 그리고 바벨론에 대한 심판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제 세 가지 대접 재앙은 더 강도가 심해지고 긴 심판이 임합니다. 짐승의 보좌에 쏟는 심판으로 맹목적인 삶이 주는 고통을 받습니다. 아마겟돈의 전쟁은 맞이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바벨론이 받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다섯째 대접 재앙(10-11)

하나님께서는 악한 영들에게 대한 심판의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이제 그것을 시행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최종적으로 악한 사탄의 중심을 공격합니다. 인간의 악은 고통과 불안을 만들기 때문에 숫자, 색깔, 여러 상징적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짐승의 제국은 어둡고 악성종기의 전염병처럼 주체성을 상실하고 짐증의 체제에 편입됩니다.

10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10-11)

온 천하 왕들이 한 곳에 모였으니, 그들은 세상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만만했겠지만, 도둑같이 오시는 주님의 급습, 곧 일곱째 대접의 심판을 한꺼번에 당하기 위해 한 곳에 모인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권세와 종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멸을 당하게 됩니다.

(1) 짐승의 왕좌에 대한 재앙(10a)

다섯째 대접 재앙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라고 합니다. 재앙의 대접을 쏟아 부은 곳은 짐승의 왕좌였습니다. ‘짐승의 왕좌’는 바벨론, 즉 로마제국입니다.

(2) 우상숭배자들의 고통(10b-11a)

전체 나라가 어두워졌습니다. ‘어두워지는’ 것이 실제로 흑암이 있을 것을 가리키는 지, 아니면 영적으로나 도덕적인 어두움이 있을 것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암흑천지로 만들어버린 것(출애굽기 10:22-23)은 애굽의 태양신 ‘라(Ra)’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바로는 태양신 ‘라’가 성육신한 자로 여겼습니다. 애굽인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가련한 처지를 비관합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느낄수록 더욱 무거운 심리적인 짐을 지게 됩니다. 영적 고통은 극에 달합니다. 로마도 바로와 같습니다. 암흑천지는 빛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상징합니다. 암흑의 심판은 눈이 멀어 맹목적인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성경에서 흑암은 기근과 같은 극심한 영적, 경제적 환경을 말하기도 하고(이사야 8:21-22), 신에게 버림 받은 자의 심리를 말할 때도 쓰입니다(베드로후서 2:17; 유다서 13). 그 고통이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자기 혀를 깨뭅니다. 쿰란 문헌을 보면 흑암의 천사가 우상숭배자로 하여금 흑암의 길로 인도하고 참람한 말을 하는 혀를 가지도록 만둡니다(1QS 3:20-21; 4:11).

(3) 우상숭배자들의 반응(11b)

맹목적인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재앙을 통해 회개하지 않고 자신들의 고통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욕하여 그 성품을 왜곡합니다. 더는 회개의 여지기 없을 정도로 완악해집니다.

 

여섯째 대접 재앙(12-16)

예수님께서는 임하는 날, 즉 재앙의 날입니다. 그 날은 도적같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해 깨어있는 성도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옷을 갖추어 입고 주님 재림하실 때에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벌거벗은 수치는 구약적 배경으로 볼 때 우상 숭배와 하나님께 대한 범죄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옷을 갖추어 입으라는 권면은 성도의 신분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12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13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12-16)

옷을 잘 지키는 자는 종말론적 영적 전쟁에서 이기게 될 것입니다. 극렬한 핍박 가운데서도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고, 성도의 고귀한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이들은 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매일 치러야할 영적인 전투의 마지막 단계가 될 것입니다.

(1) 동방 왕들의 대로가 열림(12)

여섯째 나팔 심판의 발전입니다. 유프라테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 되었습니다. 이만 만의 군대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서 불신자 3분의 1을 죽입니다(9:13-21).

(2) 세 더러운 영이 온 천하 왕들을 소집(13-14)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이 각각 666 체제에서 나옵니다. 사탄은 로마 황제와 거짓 선지자들과 결합하여 666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전 세계적인 정치, 경제적 체제입니다.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귀신들이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을 미혹합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있을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한 곳에 모입니다. 그곳이 아마겟돈입니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옛날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출애굽 사건의 패러디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온 천하 왕들은 또 다른 종류의 출애굽으로 멸망의 장소로 들어갑니다. 요한의 시대에 바벨론은 로마제국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유프라테스 강을 국경선으로 하여 대치하고 있었던 동방의 파르티아 제국입니다. 자살한 네로가 환생하여 파르티아 군대와 함께 로마를 공략하러 온다는 소문으로 로마는 혼란에 빠졌습니다(시빌 신탁 4:115-139; 에녹 1서 56:5-7). 요한은 로마의 집단 심리를 잘 이용합니다. 왜 개구리가 미혹하는 영들을 대변하는 소재로 선택되었습니까? 개구리 우는 소리는 크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개구리 소리는 공허한 소음으로 영혼 없는 의견과 추측을 상징합니다. 무엇보다 개구리는 더럽고 미혹하는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더럽다는 말은 바벨론의 음행과 관련이 있습니다(17:4). 개구리 영들이 미혹하는 대상은 온 천하 왕들입니다. 애굽의 개구리 재앙으로 오직 왕들만이 타격을 입었습니다(시편 104:30).

(3) 성도를 향한 경고(15)

바벨론의 체제를 숭배하는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들이 해를 입을 것입니다. 왕들은 전쟁을 위해 한 곳 아마겟돈에 소집됩니다. 여기 전쟁이란 단어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여러 전쟁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불경스런 세계 체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따로 준비하신 전쟁임을 보여줍니다. 구약에 예언된 종말의 전쟁입니다(스가랴 12-14장; 스바냐 3장; 요엘 1:11,31). 아마겟돈은 문자적으로 ‘므깃도 산’입니다. 갈멜 산 근처에 있는 산이며, 구약에서 여러 번 결정적인 전투와 대량 살육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왜 요한은 갑자기 므깃도 산을 언급합니까? 독자들로 하여금 엘리야 시대를 되돌아 보도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와 맞불기 위해 모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을 중명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바알은 잠을 잤습니다. 그 결과 거짓 선지자들은 도륙을 당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든 악한 세력들을 아마겟돈으로 다 불러 모으십니다. 세 가지 더러운 개구리 영이 속이는 활동을 하도록 풀어주십니다. 이는 제국의 제체에 부역하고 결속한 나라들을 한 번에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의 심판을 위한 전쟁입니다. 요한은 아마겟돈이 가진 모형론적 의미와 예언적 의미를 결합하여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왕들이 패배하였습니다(사시기 5:19-21). 거짓 선지자들이 멸망을 당했습니다(열왕기상 18:4). 아마겟돈은 예루살렘을 대항하는 모든 열방이 멸망을 당한 곳이고, 모든 이스라엘이 통곡하며 회개하는 곳입니다(스가랴 12:9-12).

(4) 아마겟돈 전쟁(16)

성도는 아마겟돈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지만 깨어는 있어야 합니다. 도둑의 비유는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비유에 전형적인 이미지입니다. ‘깨어 자기 옷을 지키라.’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는 잠을 잘 때 벌"벗고 잡니다. 벌거벗고 허둥대는 모습으로 수치를 당일 수 있습니다. 복장을 갖추고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벌거벗음은 음행의 이미지이고 우상숭배의 상징입니다. 대접 심판은 우상숭배자들에게 임하는 가혹한 심판입니다. 

 

일곱째 대접 재앙(17-21)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악한 영들의 꾐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악한 세력은 하나님을 모방하여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악한 영과 하나님을 구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잠시 악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잘 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들의 결국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악인의 성공에 대해 부러운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17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18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17-21)

큰 지진을 통해 땅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과 그 동맹국들이 만든 체제가 전복됩니다. 섬과 산악이 사라지는 것은 제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 대한 타격과 무력화를 의미합니다.

(1) 큰 지진의 재앙(17-18)

일곱째 대접은 공중에 쏟아집니다. 그 순간 마지막 심판이 완료 ‘되었다’는 선언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울려나옵니다(비교 21:6). 여기서 ‘공중’은 온 세상을 가리키는데,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활동 영역을 염두에 두면서 언급한 것입니다(에베소서 2:2). ‘되었다’ 표현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완수되었음을 의미합니다(비교 요한복음 19:30).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들에게 최종적인 심판이 내리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2) 바벨론의 멸망(19-20)

이제 제국의 체제는 최종적인 멸망을 당합니다. 바벨론과 그 동맹군은 한 자리에 모여서 멸망을 당합니다. 왜 멸망을 받습니까? 바벨론이 한 일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열방에게 진노를 드러내며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게 한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의 정치, 경제 체제에 합류 또는 협력하지 않은 자들에게 분노하여 공격하였습니다. 부역하는 자들에게는 우상숭배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제국이 가진 특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게 희석되지 않은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합니다(14:8,10). 요한은 대지진과 큰 우박으로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세계 체제에 최후 심판을 가합니다. 일곱째 대접 재앙은 물리적인 지구의 붕괴를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의 독자들은 상징적인 이해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 예언자들이 열방의 심판을 묘사할 때 은유적 언어로 서술해왔습니다(예. 이사야 24장).

무시무시한 일이 인류 사회에 일어날 것입니다. 가장 적합한 은유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대지진과 큰 우박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핵폭발이 될 것이다. 땅에 있는 전체 사회적 정치적 체제의 붕괴를 기술하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대지진은 묵시문학에서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길을 열기 위해 옛 우주를 파괴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왜 요한은 우박 재앙을 마지막 목록으로 채택하십니까? 묵시문학에서 요한만이 특별하게 도성의 멸망을 위해 지진의 효과를 최고조로 부각합니다. 시내산 인유의 특징을 극대화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출애굽 행진은 여리고 함락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여리고 함락은 아모리 족속에게 내린 큰 우박으로 마무리됩니다(여호수아 10:11). 요한은 전체 출애굽 사건을 인유하여 새로운 출애굽의 모델로 삼습니다. 여리고 함락은 마지막 심판의 결정적인 핵심 모델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재앙이 크면 클수록 회개하지 않고 신성 모독하는 행위를 지속합니다. 더 이상 회개의 여지가 없습니다.

(3) 큰 우박 재앙과 우상숭배들의 반응(21)

일곱째 대접 재앙은 17-20장의 사건들이 일어나기 이전에 발생하는 일들을 기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17-20장은 일곱 대접에서 그리고 있는 궁극적인 실재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환상들입니다. 우리 시대에 우상과 같은 세계적 경제 사회, 환경, 정치 체제의 붕괴가 임박하였다고 한다면, 신실한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심판은 폭력의 역사를 끝장낼 것입니다. 새로운 대안적 세상을 열 것입니다. 돈과 권력을 의지했던 개인과 사회는 마비되고 와해될 것입니다. 아마겟돈은 전쟁 없는 샬롬의 세계를 열망하는 반전이 있을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악한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어린 양의 거룩한 옷을 입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악한 일에 고집하지 않고, 거룩함에 속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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