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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16-01)


진행될 일곱 대접 심판(1)

요한계시록 16장 1-8절


연말이면, 한 해를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이룬 것이 많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상실감이나 공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 무조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매 시간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노력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반드시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발생하는 각종 재앙들은 ‘빨리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은 장차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일곱 대접 심판이 시행됩니다. 무대 설정은 마쳤고, 실제 공연만 남았습니다. 처음 네 재앙은 땅과 바다와 강과 해에 마치는 짧은 재앙입니다. 온 우주에 전면적으로 미치는 심판입니다. 우상숭배자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회개의 기회도 없습니다. 심판의 연기도 없습니다. 불신자들이 받을 재앙이 얼마나 강도가 높은지, 제국에 타협하고 순응한 자들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심한지를 나타냅니다.

 

네 가지 대접 재앙들(1-4)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과연 이러한 환란과 고통을 이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고, 개인적인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역사는 하나님의 큰 물줄기의 역사 가운데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 백성의 승리와 원수에 대한 심판에 대해 진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모든 고난과 환란의 역사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1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2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3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1-4)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큰 소리가 성전에서 들려 왔습니다. 이것은 이 재앙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행하신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땅’에 속한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며, 짐승을 따른 사람들이고 자비보다 힘을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앞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무대를 소개했지만, 본문은 이제 심판의 집행하고 있습니다. 

(1) 일곱 대접 재앙의 도입(1)

나팔 심판과 비슷합니다. 단지 효력에 차이가 있습니다. 나팔 심판은 우주의 3분의 1을 망라하고, 대접 심판은 우주 전체가 심판의 대상입니다. 나팔 심판은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 심판을 연기하고 삽화가 있었지만 대접 심판은 전혀 없습니다. 나팔 심판과 대접 심판은 동일한 순서로 재앙을 당하는 대상들을 표현합니다. 땅-바다-강-해-어둠에 있는 사악한 자의 영역과-유프라테스(마귀들의 영향을 받은 사악한 자들과 더불어)-최후 심판으로 전체 세계, 나팔 심판과 대접 심판의 모델은 출애굽 재앙입니다. 출애굽 재앙의 징벌 자체는 사람을 강퍅하게 만들고, 이 심판이 의로우며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독특성과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함을 증명합니다. 마찬가지로 대접 심판에서 마음의 강퍅함으로 인해 불경한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 강퍅함은 우상승배의 표현으로 그들은 회개하기를 거절하고 성도를 핍박합니다. 나팔 시리즈가 비유적인 방법으로 진술하는 것을 대접 시리즈는 좀 더 직접적으로 진술합니다. 나팔 심관과 대접 심판 시리즈는 문학적으로, 주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병행합니다.

일곱 천사는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쏟아 부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천사들은 대접 일곱은 ‘땅’에 쏟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땅’은 땅과 바다와 물과 해 등 피조세계 전체를 총칭하는 용어이며, 일곱 대접은 피조 세계 전체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내린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심판이 시행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재앙의 실행이 은유적이라면 그 효력도 은유적입니다. 유대 문헌에서는 출애굽 재앙들을 은유적으로 해석합니다(지혜서 15-17장). 요한은 대접 재앙을 같은 해석 전통 속에서 묘사합니다. 애굽을 심판하셨듯이, 요한의 시대에 모든 악과 고난의 현실을 만드는 로마 제국을 심판하십니다. ‘쏟아붓는다’는 표현은 성전에서 제사장이 제단의 기단부에 희생제물의 피를 붓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레위기 4:6-7, 17-18). 이를 통해 죄로 더럽혀진 하나님 백성을 정결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접 심판은 죄로 더럽혀진 땅을 심판을 통해 정결하게 합니다.

(2) 땅을 향한 첫째 대접 재앙(2)

첫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자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그 우상숭배한 자들의 몸에 독한 종기가 났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과 ‘우상숭배자’와 ‘땅에 거하는 사람’은 동의어입니다. 이들은 성도를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할 때 애굽인들의 행동이 이들과 같았습니다. 요한은 출애굽 열 재앙 중에 인체에 미친 재앙으로 종기 재앙을 등장시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조롱하고 비방한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의 분노의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에서의 여섯째 재앙이 하나님의 백성과 구별되어 애굽인들에게만 내려진 것처럼, 여기서도 재앙이 어린 양에게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입니다. 이 재앙은 짐승에게 속하여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내려집니다.

(3) 바다를 향한 둘째 대접 재앙(3)

둘째 대접은 ‘바다 가운데 있는 생물’에게 임합니다. 그들은 해양 경제에 의존하던 자들을 은유합니다. 바다가 피로 변하여 고통과 죽음을 맛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바다’는 불경한 인류를 나타내는 은유입니다(24회). 17:1의 ‘많은 물’은 온 땅에 있는 불신자에 대한 그림입니다(17:15). 사탄이 ‘바다 모래 위에 서 있습니다’(12:18). 사악한 나라들에 대한 사탄의 주권을 말합니다. 불경한 나라들은 ‘바다의 모래’와 비교됩니다(20:8).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왔습니다(13:1).

‘바다’는 짐승이 지배하는 나라들을 상징합니다. 로마제국의 군사와 무역에 대한 심판입니다. 로마제국은 해양 군사력과 산업을 바탕으로 번영하였으며 지중해의 패권을 잡았습니다. 이 재앙은 전 세계적으로 겪는 경제적 환란을 가리킵니다. 경제적인 재앙은 한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짐승의 표는 표면적으로는 종교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경제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양 무역은 지역과 국가를 초월한 무역 체제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로마의 경제적 제국주의에 대한 당대의 가장 신랄한 비판입니다. 로마는 전 세계에 걸쳐서 소중한 자원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로마 경제의 근간은 정복 전쟁을 통해 얻은 노예 노동입니다. 과도한 세금과 부역을 통해 부속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로마인들은 향연과 오락에 빠져서 풍요를 탐닉하였습니다. 이것이 로마가 말하는 평화이고 정의였습니다. 주후 66년에 발생한 유대의 대로마 항쟁도 세금과 빚과 토지 문제를 해결하기 의한 저항운동입니다. 오늘날도 가난하고 약한 나라의 노동력과 자원을 착취해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경제 체제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는 심판에 직면합니다. 둘째 대접 재앙은 해양 산업에 기반을 둔 제국주의 경향을 지닌 나라들의 경제적 재난을 대변합니다.

(4) 강을 향한 셋째 대접 재앙(4)

강과 물 근원의 심판은 바다에 대한 심판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나일강에 내린 재앙(출애굽기 7:17-21; 시편 78:44)을 인유합니다. 나일강은 애굽 경제의 젖줄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농경 산업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 기근은 치명적입니다. 강과 물 근원의 심판은 바벨론과 같은 제국에 대한 경제적 심판입니다. 어떤 심관입니까? 그 열쇠는 천사의 찬양과 제단의 응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5-7)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동안 믿는 자들에게 핍박했던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이 없어 보이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모두 체크하고 계십니다. 때가 되면 그 결산대로 정의롭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5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5-7)

*****

(1) 천사의 고백(5-6)

천사는 심관의 실행자이고, 제단은 하늘 보좌의 제단에서 기도하는 순교한 성도들입니다. 천사와 제단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의롭다고 찬양으로 화답합니다. 왜 이렇게 찬양합니까? 6절과 18:24은 어구적으로 병행합니다.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혔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상기시킨다. 나봇의 피를 흘려 포도원을 강탈한 이세벨은 행한 그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18장은 바벨론이 로마의 죄악을 고발합니다. 로마의 죄악의 근원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이세벨의 바알 경제법에 있다.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희년제도를 초토화한 장본인입니다. 그 딸 아달랴는 남쪽 유다의 희년 경제를 붕괴시켰습니다. 두 나라의 패망 원인은 바알 경제 정책으로 희년 경제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시돈과 두로는 페니키아 제국의 본거지이며, 바알 종교의 중심지입니다. 페니키아는 지중해 전역에 바알 경제법을 확산시킨 주범입니다. 페니키아는 북아프리카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와 두 번에 걸쳐 벌인 포에니 전쟁으로 패망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용병들은 카르타고에서 바알 경제법으로 엄청난 재력을 쌓아서 로마에 가져왔습니다. 요한의 시대에 이르면, 소수 엘리트의 손에 농경지가 집중된 부재 지주 제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점령지의 토지 강점과 매매를 통해 축척된 부를 바탕으로 로마는 경제 성장과 호황을 누렸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경제법인 희년법을 거스르는 경제는 심판을 받습니다. 희년 경제의 기본은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은 노동의 열매를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레위기 25장). 땅을 황폐하게 하는 자들은 황폐하게 됩니다(11:18).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을 취하고, 서민과 청년 세대에 고통을 안기는 자들이 받을 심판이 둘째 대접 재앙입니다.

(2) 제단의 응답(7)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는 것에 대해 제단이 참되고 의롭다고 반응합니다. 제단이 의인화되었는데, 이것은 제단에 있는 성도들의 응답을 표현한 것입니다(6:9-11).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대신하여 악인들을 멸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다’고 흡족해 합니다.

 

넷째 대접 재앙(8-9)

심판은 뒤틀리고 방향과 내용을 상실한 상태로부터 돌이키는 것입니다. 일종의 종합평가이며 재편을 위한 시작입니다. 지금도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할 만큼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실체를 알면서도 굴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재앙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경고하시는데도 애써 외면합니다.

8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8-9)

고통과 아픔은 죄인들이 돌이키도록 진지한 성찰을 가져다줍니다. 뽑고 파괴하는 것은 심고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 회개를 위해 하나님께서 오시도록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1) 해를 통한 재앙(8-9a)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길 원하십니다(요한복음 3:16). 모든 인류를 심판에 이르지 않길 원하시며, 회개의 시간을 주십니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요한계시록 2:21).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거부합니다. 더 완악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면, 결국 심판에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분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권세를 받아서 사람들을 불로 태웁니다. 해는 피조 세계의 질서를 대변합니다. 우상숭배는 창조질서를 파괴합니다. 피조세계가 인간을 심판합니다. 이 재앙은 요한계시록 7:16에서 속량을 입은 자들이 받는 고난의 반전이자 패러디입니다. 순교자들을 핍박한 자들이 겪은 고난은 상징적으로 굶주림과 기근입니다.

(2) 사람들의 완고한 반응(9b)

이제 그 대적이 그 고난을 받습니다. 경제적인 안전보장이 박탈됩니다. 그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거짓말을 합니다. 짐승이 행하는 짓입니다(13:1,5,6; 17:3). 하지만 결국 자신이 짐승이 되어버렸습니다. 666은 거짓 선지자와 결탁하여 인간을 짐승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정치, 경제 체제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영상을 돌리지 않습니다. 셋째, 회개하지 않습니다. 재앙을 받으면 받을수록 강퍅해집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성도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억울함을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회개의 길로 나가기보다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삶을 더 살아갑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성품을 닮아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길 위해 노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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