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요한계시록(14-02)


마지막 때 심판 : 두 종류의 추수

요한계시록 14장 14-20절


가을철에 추수한 곡식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풍족해집니다. 특히 농부들은 추수한 곡식을 보며 한 해의 수고를 다 잊습니다. 추수는 무계획적으로 진행된 일이 아닙니다. 봄철부터 씨를 뿌릴 때, 계획하고 예고된 일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인간의 마지막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부릅니다. 심판은 예고 없이 진행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모든 심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앞에서 세 천사들이 예고한 내용(6-12)이 두 가지 심판됩니다. 하나는 신자의 구원을 위한 곡식 추수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신자에 대한 심판입니다. 두 가지 이미지를 통하여 최후 심판의 양면성을 보게 합니다. 인자는 예리한 낫으로 익은 곡식을 추수합니다. 역시 예리한 낫을 가진 다른 천사는 포도 추수를 하여 포도주 틀에 던져 넣습니다. 그런데 포도주 틀을 밟는 자는 누구입니까?

 

성도의 구원을 위한 곡식 추수(14-16)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의 기간 동안 교회를 향한 핍박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을 그렇게 핍박하고 교회를 이기지 못했다는 증거는, 교회가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합니다. 심지어 박해가 심했던 지역일수록 교회는 더 순수하고 영롱했습니다. 오히려 박해가 없고 물질이 많은 곳에서는 교회들이 알아서 타락했고, 알아서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14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14-16)

하나님께서는 최후 심판 때에 이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겠지만, 그 전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역사의 곳곳에서 있었습니다. 그런 심판이 없다면 의인들은 소망의 끄나풀이라도 잡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들을 향한 심판은, 의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됩니다. 그러니깐 심판은 구원을 위한 심판과 형벌을 위한 심판으로 나눈 것입니다. 본문에는 그 두 가지 심판이 모두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추수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1) 인자와 같은 이와 예리한 낫(14)

처음 문단(14-16)은 인자가 흰 구름 위에 앉아 심판하시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분은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심판을 주관하신 분입니다(1:13; 마태복음 24:30). 추수를 친히 행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는 다니엘 7:13-14에 대한 정확한 인유입니다. 본문에 묘사된 심판 언어는 다니엘 7:13에서 왔지만, 본문은 전통적으로 인자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폭풍의 구름을 언급하는 것(시편 18:9)과 다르게 흰 구름에 앉으신 인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인자와 같은 이’는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계신 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됩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와 언어에 대한 왕권과 영광과 주권을 받으십니다. 인자의 머리에 있는 면류관은 인자를 왕이신 메시아로 제시합니다. 인자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낫은 추수하는 상황을 그려줍니다. 심판을 마지막 추수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곡식 추수의 때에 대한 천사의 청원(15)

이 ‘다른 천사’는 14장에 연이어 등장하는 세 천사들(14:6,8,9)와 구별되는 천사라는 의미입니다. 천사는 ‘인자와 같은 이(그리스도)’에게 땅의 곡식을 추수를 시작하시라고 부탁합니다. 천사는 하늘 성전에서 나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므로, 이것은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이 하나님의 뜻임을 나타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을 따른 자들과 짐승을 따른 자들을 같이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땅의 곡식을 거두어야할 이유는 곡식이 다 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때가 무르익으면, 하나님께서는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구원과 심판으로 완성됩니다.

천사는 그리스도에게 ‘낫을 휘둘러 거두시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에 임합니다(마태복음 13:30). 이 상황은 구약성경(이사야 17:5; 예레미야 51:33; 요엘 3:13)만 아니라 예수님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생각나게 합니다(마태복음 13:30,39). 세상 끝에는 의인과 악인, 택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가르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밀 추수는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마지막 심판 즉, 종말론적인 심판입니다(마태복음 13:36; 누가복음 10:2; 요한복음 35-36).

(3) 곡식 추수(16)

인자는 천사의 부탁에 따라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두셨습니다. 그 후에 알곡은 곳간에 쭉정이는 불에 태우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마태복음 13:30;40-43, 비교 말라기 3:18, 4:1).

 

불신자의 심판을 위한 곡식 추수(17-20)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는 영혼들을 추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가 씻긴 사람은 곡식처럼 하나님 나라로 거둬들일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인내하며 살아간 성도들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기 욕심을 따랐던 자들은 결국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17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17-20)

하나님의 심판은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복이지만, 짐승을 따르는 자들은 저주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추수한 후에, 이제 포도를 틀에 던져 포도주를 짜듯이, 악인들을 맹렬한 진노의 틀에서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1) 예리한 낫을 가진 또 다른 천사(17)

이번에는 포도를 추수하는 상황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추수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가 추수를 주도합니다. 왜 인자 대신에 천사가 등장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천사가 마지막 추수하는 천사로 등장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추수 때 추수꾼으로 천사들을 동원하신다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마태복음 11:30,39,41;16:27). 날카로운 낫을 가진 것은 포도 추수가 심판을 행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천사에게 낫을 휘둘러 포도 추수를 하라고 부탁하는 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옵니다. 그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로 설명되었고 그 불은 제단의 불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단은 성도들의 신운의 기도가 모아지고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땅에 쏟는 장소입니다(6:9-10; 8:5). 그 천사는 다섯째 천사에게 ‘포도가 익었’으니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부탁합니다. 포도가 익어 추수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대주재께 ‘어느 때까지’ 자신의 피를 갚아주지 않으시겠느냐고 탄원한 것과 연결됩니다(6:10). 포도 추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신원하시는 진노의 표현입니다.

(2) 포도 추수의 때에 대한 천사의 명령(18)

추수하는 천사는 제단의 불을 관리하는 천사였습니다. 포도 추수에 사용된 이미지는 특별히 이사야 63:1-6 말씀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이사야 본문에서는 장차 남쪽 에돔과 보스라에서 오시는 주님께서 만국을 짓밟은 용사로 등장합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그들의 원수를 칼로 심판하십니다(이사야 63:4). 그날은 원수 갚는 날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심판 즉, 악한 자들을 위한 심판을 행하신다는 내용을 추수 장면으로 묘사한 표현이 여럿 있습니다(예레미야 25:30; 예레미야애가 1:15; 요엘 3:13).

(3) 포도 추수(19)

구약성경에서 포도 추수는 기쁨의 축재였습니다(예레미야 3:12,13; 요엘 3:18; 아모스 9:13,14). 그런데 포도를 추수하는 상황에서 천사가 낫을 휘둘러 성 밖에서 포도송이를 거두어 즙을 짤 때 포도주 틀에서 흘러나온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피’였습니다. 축제의 포도주가 심판의 피로 바뀐 것은 축제가 심판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축제 이미지가 하나님의 심판 이미지와 연결된 이 장면에서는 기쁨과 두려움의 대조와 구원을 행하는 중에 행해지는 심판에 강조가 있습니다.

‘성 밖’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며, 예수님의 중인들이 죽임을 당한 곳입니다(11:8; 참조. 마태복음 21:39; 히브리서 13:12,13), 포도원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을 가리켰습니다(이사야 5:1-7; 마태복음 21:33-46). 성 밖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사는 장소입니다. 심판이 성 밖에서 이루어지는 깃은 세상이 우리 주님과 주의 증인들에게 행한 것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응하려는 것(lex talionis, 보복법) 때문입니다.

(4) 포도주 틀의 위력(20)

포도주 색의 피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밖에서부터 말굴레(약 2m) 높이로 천육백(1,600) 스타디온까지 퍼질 것입니다. 천육백 스타디온(186m×1600=320km)은 이사야 63:6에서 취한 것인데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인 320km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사무엘상 3:20), 천육백(1,600)이라는 숫자는 4×4×10×10으로 조합이 되었는데, 4라는 수가 세상 전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5:6; 7:1), 천육백(1,600)은 하나님의 심판의 전 포괄적인 규모를 나타내려고 제시된 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팔레스타인 전체 지역 구석구석까지 퍼질 것이다(참조, 사무엘하 24:15). 물론 여기서 포괄하는 범위는 이스라엘만 아니라 온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의 보편성을 표현합니다.

포도주 틀을 밟는 것과 같은 심판은 19:15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성안은 깨끗하게 남아 있다. 성안에는 더러움이 들어 설 여지가 없다(21:27), 이 사상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계시될 구원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 간의 엄격한 구분과 새 예루살렘의 거룩함과 연결됩니다(21:26,27). 본문(14:14-20)에 추수가 이처럼 밀 추수와 포도 추수 등 두 가지로 언급된 것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이 성도들을 구원하고 악인들을 심판한다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데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를 이끄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복락으로 인도하실 그날에는 주님을 거부하고 조롱하던 자들이 모두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져 밟힐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대한 비전을 간직한다면 우리는 고난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견딜 수 있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대한 기대를 붙들고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