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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13-02)


땅에서 올라온 두 번째 짐승

요한계시록 13장 11-18절   


‘모조품’을 영어로 ‘이미테이션(imitation)’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가짜 물건을 젊은 세대들의 언어로 ‘짝퉁’이라고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짝퉁은 허술하게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명품의 경우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을 진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진짜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가짜일 뿐입니다. 겉모양만 대충 보고 속아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부분에서도 짝퉁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는 짐승 후에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등장합니다.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용처럼 말을 합니다. 큰 이적으로 미혹합니다.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을 우상숭배하게 만듭니다. 우상숭배 하지 않는 자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짐승의 수인 666을 받게 합니다. 그 표가 없으면 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666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첫째 짐승이 정치 지도자이고 둘째 짐승은 종교 지도자입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등장(11-12)

교회가 초림부터 재림까지 사탄으로부터 어떤 공격을 받습니다. 사탄의 공격을 받지만 교회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해 주시는지, 그 보호 속에서 교회가 교회답게 존재하는 것은 그들이 증인의 삶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증거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식이라는 것을 계속보고 있습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로마제국의 정책을 선전하고 황제숭배를 동해 권력을 유지하고 개인적 이익을 챙기는 식민지의 토착 권력자들입니다.
11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11-12)
사탄도 삼위 하나님을 모방하여 자신들도 하나님의 행세를 해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먼저 용이 성부 하나님을 모방하고, 바다에서 올라온 한 짐승이 성자 그리스도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요한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보았고(1-10), 이제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도와서 용의 뜻을 전합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사람들에게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섬기도록 하고, 그를 선전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1) 둘째 짐승의 특징(11)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위력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다르지만 성품은 비슷합니다. 일곱 뿐이 아니라 두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다니엘 7장에 등장하는 짐승들처럼 생겼다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다니엘 8장에 나오는 두 뿔 가진 숫양과 비슷한 모습입니다(다니엘 8:3).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그림이 두 뿔을 가진 어린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어린양을 흉내 내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5:6). 짐승은 양처럼 생겨 훨씬 더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를 흉내 냅니다(11; 5:6). 그가 어린양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그가 하는 말(言)에서 나탑니다. 어린양이 하나님의 말을 하는 것(19:13)과 달리 짐승은 용처럼 말을 합니다. 용처럼 말을 한다는 것은 그가 사탄 같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땅에서 올라온 두 번째 짐승은 말로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고 속였던 뱀과 같습니다.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의 종교적 대리인입니다. 온 땅과 거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속이는 도구입니다. 분별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짐승은 저항해야 할 어떤 숭배의 대상입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치 지도자를 숭배하게 만드는 자들의 원조입니다. 바람과 이세벨과 같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결국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 모두 용을 섬기는 자들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2) 둘째 짐승의 권세(12)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용을 경배하듯이(4), 땅에서 올라온 짐승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경배하도록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이적을 행합니다. 이 짐승은 기독교의 울타리 안에서 공공연히 활동합니다. 반기독교적인 제국을 선전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19:20).
종교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반대되는 것을 지지하거나 결탁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킵니다. 특정 사상과 기독교를 동일시합니다. 경계가 필요합니다. 광범위하게 지지되고 있는 이념은 ‘명백’하고 ‘상식적’이며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권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하기를 원하는 소집단의 강력한 기득권을 감싸주거나 두둔할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둘째 짐승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이 첫째 짐승의 말과 활동을 정상적이며 훌륭하다고 보도록 설득합니다. 이에 대항하는 행동과 의견은 반사회적이며 거부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요한은 짐승의 지배 과정에서 감추고 있던 정체를 폭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이적을 행하는 것에 미혹되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마태복음 24:24; 마가복음 13:22).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활동(13-17)

사람들은 외형을 중요시 합니다. 하지만 너무 겉만 봐서는 안 됩니다. 나타나는 형상만 보면 속을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무엇을 더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눈에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나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때로는 회유나 위협으로 우상숭배를 강요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떠난 은사나 체험이나 영성을 주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13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3-17)
짐승의 표가 찍힌 오른손은 제국의 충성하는 우상숭배자들의 행위이며, 이마는 의식을 말합니다. 충성은 삶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제궁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동화하지 많으면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시장에서도 매매는 어려웠고 빈곤과 조기 사망의 원이 되었습니다.
(1) 둘째 짐승의 이적(13)
둘째 짐승은 일반적인 종교 지도자가 아닙니다. 이들의 활동은 기적과 미혹과 종교적 탄압으로 요약됩니다. 먼저 그는 큰 이적을 행합니다(마태복음 24:24). 엘리야의 권능을 흉내 낼 수도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 앞에서 모세의 이적을 모방하여 재현한 애굽 술사들과 같습니다. 정치 지도자에게서 권위를 위임 받습니다. 원래는 사탄이 준 권세입니다. 우상을 만들어 우상에게 생기를 부여하며, 다양한 마술적 기교로 숭배자들을 현혹합니다. 실제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다양한 마술 행위가 넘쳐났으며, 유대교에서도 마술이 통용되었습니다. 복화술로 말 못하는 우상이 살아있는 것처럼 말을 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성령의 이름으로 보여 온 종교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인생 기적을 거둔 기독교 지도자들도 많습니다. 교회는 외부의 미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국가에 충성하는 것, 지역주의에 헌신하는 것, 특정한 공공사업에 이바지하는 것이 신앙보다 우선이라고 주장하면서 강요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한 일본 군국주의나 나치즘이 그 예입니다. 교회를 국가에 종속시키려는 시도들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더 경계해야 할 대상은 교회 내부에서 활동하는 거짓 선지자와 사도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풍요와 번영이란 바알의 가치로 변질시킵니다. 세상의 지배적인 가치와 행동 방식과 타협하도록 미혹합니다. 단군신상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일부 기독교 세력들은 특정 정치인의 동상에는 침묵하고 용인하고 장려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가장한 유사종교이며 이단적인 교훈입니다.
(2) 둘째 짐승의 우상숭배 활동(14)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미혹합니다. 미혹은 사탄의 주목기입니다. 에덴부터 지금까지 그 버릇을 고친 적이 없습니다. 사탄은 이적을 행함으로 자신들의 권위에 확실을 줍니다. 13절의 ‘이르기를’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지시하고 명령하고 요구한다는 뜻입니다. 묵묵히 따르게 받습니다. 미혹의 목표는 우상숭배입니다. 첫째 짐승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어린양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치명적인 정치적 죽음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나서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그는 교회에게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며, 우상을 만들도록 부추깁니다. 참람함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요한의 시대에는 로마 황제 숭배가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진리를 대체하는 것은 다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돈도 사람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안식에 여주행하는 생산과 소비주의도 우상입니다. 이단의 교주들도 우상입니다.
(3) 둘째 짐승의 핍박(15)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통제합니다. 외부 세력이 진정한 교회에 고난을 주는 것은 종교 탄압과 핍박입니다. 기독교 내부에서 저항하는 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통제와 억압입니다. 재국은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바벨탑의 망령은 시대마다 나타납니다. 한 언어와 생각만이 건건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건설적인 의견도 이단이나 불순세력으로 배도하여 죽입니다. 제국은 온실이나 인큐베이터를 좋아하지만 광야는 좋아하기 않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는 거북하고 불편하여 침묵시킵니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15)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신앙적인 고난입니다.
어떻게 저항합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가 가장 좋은 본보기입니다. 교회는 불 가운데 들어가서 견인(堅忍)되어야 합니다.
(4) 둘째 짐승의 표(16-17)
666은 무엇입니까? 666의 의미를 푸는 열쇠는 계시록의 본문과 당시의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세 가지 연속적인 심판의 여섯째 심판은 우상숭배자들이 받는 심판입니다.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13장에서 666은 용과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의 삼위일체입니다. 6은 불완전수이며, 7은 완전수입니다. 8은 새 창조의 수입니다. 666은 사탄의 삼위일체를, 777은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888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요한이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문학적 기법 중 하나가 ‘수비학’입니다. 네로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음역하여 숫자사로 환산하면 666입니다. 로마에 퍼진 네로의 환생설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안에서 666의 의미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666만 놓고 묵상하면 오해의 늪에 빠집니다. 666과 더불어 144를 봐야 합니다. 666은 인간의 수요 짐승의 수입니다. 144는 새 예루살렘의 수입니다.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입니다. 14장에서 144,000이 666을 이기고 승전가를 부릅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666은 인간을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모든 체제입니다. 특정 인물이 아닙니다. 반면에 144는 인간을 천사의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모든 체제입니다.
666은 태고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역사 속에서 부상했다가, 어린양의 군대 144,000에 의해 패배를 당하고 사라졌습니다. 666은 사탄이 그 근원입니다. 사탄은 정치 세력과 종교 세력과 동맹을 맺고, 인간을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시킵니다. 사탄은 지금도 역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을 통해 인간을 천사의 수준으로 고양시켜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자는 666의 표를 받은 자들입니다.
 

성도에게 주는 경고(18)

성도들은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분별력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불완전으로 뭉쳐진 악의 삼위일체를 이루고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사탄의 교묘한 유혹과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8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18)
지혜와 총명(18)은 분별력과 통찰력입니다. 13장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용이 앞장세운 짐승의 정체를 분별하고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주변 사회를 지배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짐승의 체제에 저항하고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해 상상력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정치적입니다. 예배는 현실에 대한 분별력을 하늘의 시각에서 갖도록 만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의 전조가 드리운다 해도 ‘저항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배제와 소외로 협박하는 ‘순응하라’는 사회적 압박을 성도는 ‘저항하라’는 메시지로 맞서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의 권력 구조에 대하여 치밀하게 선지자적 비판을 가합니다. 제국의 모든 혜택을 거부하는 것은 로마가 자신의 권세와 번영을 절대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을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유일한 참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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