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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11-02)


두 증인의 최후 승리

요한계시록 11장 14-19절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천국의 맛, 순종의 맛, 사랑의 맛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즉석음식들과 같은 신앙생활에 길들여진 삶은 천국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할 수 없습니다. ‘천국의 맛’을 아는 사람이 전하는 복음이, 그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도 복음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이것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증인이 가장 강력한 증인인 것처럼 말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의 사명을 받고 살아있는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나팔 심판이자 셋째 화가 시작됩니다. 9장의 여섯째 심판이자 둘째 화와 연결됩니다. 나팔 시리즈의 절정이자 결론입니다. 그 내용은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다.’ 세상 나라가 신실한 증인들의 증언으로 하나님 나라가 되어 갑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심판을 받고, 성도는 상을 받습니다. 하늘 성전의 언약궤가 보입니다. 그것은 속량의 상징이자 심판의 상징입니다.

 

셋째 화 예고(14)

우리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상 나라의 힘과 권세는 언젠가는 끝날 날이 있는 유한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나라의 화려함은 꽃과 같지만 곧 시들어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유혹하고 핍박하는 세상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받게 될 것이며, 성도들은 항상 이 사실만은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14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14)

13절까지 내용은 독수리가 전해주는 화 세 개 중에 두 번째 화에 해당합니다(9:13-11:13). 본문은 지진이 나서 도시가 철저히 파괴되고 사람들을 두려워 떨게 하는 혹독한 화가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 더 남아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첫째 화(9:1-12)와 둘째 화(9:13-11:13)에 이어서 11:15-19에는 셋째 화가 소개됩니다.

일곱째 나팔을 불 때,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완결된다고 10:7에서 그리스도가 단호하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재앙도 없고, 오직 하늘 찬양만을 담고 있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여섯 가지 나팔 재앙은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가혹한 심판이 가해졌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 당시의 바로와 같이 더 강퍅해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회개 유도 전략을 바꿨습니다. 우레 심판을 취소하고 두루마리의 예언을 선포합니다. 두 증인이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열방이 대대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일곱째 나팔은 그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이시기 때문에 영원히 왕 노릇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확립되어갑니다. 사실 찬양에는 심판과 구속의 행위가 기술되어 있습니다(11:18-19). 하나의 노래가 환상이 될 수 있으며, 하나의 화(禍)도 나팔의 내용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짐승과 우상숭배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확립은 다른 어떤 나팔 재앙보다도 가혹한 재앙입니다.

 

일곱째 나팔(15-18)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요한계시록 20:13; 베드로전서 1:17)이 우리를 신원하실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불신 세력의 유혹에도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 우리에게 합당한 상을 주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최후 승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를 박해하는 악한 세력의 행위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5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24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15-18)

24장로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전능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완성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권능의 통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 모두를 보응하실 것입니다.

(1) 하늘의 찬양(15)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상황을 묘사합니다. 일곱째 인을 뗄 때는 고요함이 있었습니다(8:1). 그런데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에는 고요함이 아니라 큰 음성이 울립니다. 이후에 벌어질 장관에 어울리는 내용을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15)라고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사상 나라는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됩니다(15-18, 참조 19:1-10).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무대 설정은 완전히 갖추어졌습니다. 어린양이 교회에 하나님의 일곱 눈이자 일곱 영이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복음 증거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신실한 증인들의 순교적 증언으로 열방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시동을 걸어 행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요점 정리하여 찬양으로 선포합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된다.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시다.’ 하나님의 비밀(10:7)이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성취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늘 보좌 예배에서 찬양을 통해 그 성취가 선포됩니다.

(2) 24 장로의 찬양(16-18)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적으로 도래할 때 반응하는 하늘의 찬송을 소개합니다. 이 찬송을 주도하는 자는 24장로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전과 마찬가지로 지금 다시 왕 노릇하신다는 것과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노를 내리시고 그분의 백성에게 상을 주시게 된 것을 감하여 그분께 경배하며 찬송합니다.

① 24장로의 경배(16)

하늘 보좌의 구성원 중에 24장로들이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하늘 보좌의 장로들은 진짜 장로답습니다.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 장로가 얼마나 장로다운지 표시가 납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한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신을 숭상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제의적 태도입니다. 장로들이 이러한 전통을 받아들이지만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인 참여와 찬양의 반응을 보입니다. 심지어 4:10에서는 자신들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립니다. ‘면류관’은 명예이자 권위의 상징입니다. 24장로는 정치적인 직함입니다. 장로들은 땅에 있는 하나님 백성의 대표들입니다. 대표로서의 권위와 명예와 위엄을 다 벗어던집니다. 그리고 왕 되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왜 장로들이 하늘 보좌의 대표로서 찬양을 하십니까? 땅에 있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에게 신앙고백이자 하늘 포고문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② 왕이신 하나님(17)

땅의 공동체는 지금 로마제국의 지배 속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상하는 움직임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제국인 로마가 이제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법적인 왕이십니다. 그런데 사탄이 세상에서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사탄은 세상 제국을 통해 세상을 향한 자신의 가치와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짐승이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왕이 되고, 나라가 하나님 백성의 손에 넘어갑니다. 왕의 등극이나 왕국의 설립에 당연히 나팔을 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하나님의 비밀을 대표하고 있는 교회에 포고문으로 전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다.’ 전형적인 표현을 변형합니다. 미래(‘장차 오실 이’)를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로 대체하고,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로 부연합니다. 바로가 그 백성을 억압하고 있을 때, 광야 가시떨기 나무에 나타나셨습니다.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여호와)로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여 현존하십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미래를 희생시켜서라도 현재를 강조합니다. 역사의 시공간을 뚫고 들어오셔서 친히 왕 되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그 증거입니다. 신실한 증인들도 양을 따라서 그렇게 하십니다. 이는 사탄에 대한 패러디입니다. 사탄은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지만, 현재는 없다.’ 사탄의 결정적인 취약점을 파고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영원하심을 패러디를 통해 강조합니다. 누가 진짜 왕입니까? 누가 세상을 통치하기에 합당합니까? 로마 황제는 모조품입니다. 하늘 보좌의 예배는 지극히 정치적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가 이 찬양을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어린양을 경배할 것입니까? 짐승을 숭배할 것입니까? 단지 종교적인 질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질문입니다. 로마제국 치하의 교회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합니다. 국가에 대해서는 매국노 또는 배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는 잘못된 정치에 대해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답을 해야 합니다.

③ 심판과 보상(18)

하나님께서 신원하시는 때가 임하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과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분명하게 가르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이 주어지고, 반면에 ‘땅을 망하게 한 자들’은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17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자 이방인들이 분노합니다(시편 2편). 하나의 대차대조기법으로 성도의 보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행위는 이방의 진노와 심판(a) - 성도의 보상(b)-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의 멸망(a′)의 구조로 구성됩니다. 신실한 증인에게 주실 상급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의 심판을 통해 성도가 옳다고 인정받음을 강조하는 구조입니다.

신실한 증인들은 ‘그리스도가 왕이시다’라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열방은 분노로 반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의 분노에 심판으로 대응하십니다. 증언은 심판의 시작입니다. 죽은 자들은 ‘땅을 황폐하게 하는 자들’입니다(a-a'). 황폐하게 하는 자들은 황폐하게 됩니다. 노아 홍수는 땅을 황폐하게 한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파괴한 자들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레위기 25:23). 제국은 땅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만듭니다. 제국은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를 통해 적출과 축적을 합니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 제도는 땅과 사람을 위한 규범입니다. 제국은 이를 통째로 무시합니다. 이세벨의 가르침입니다. 아합의 집안처럼 황폐하게 됩니다. 바벨탑과 같은 제국을 건설하고 땅을 황폐하게 한 세상의 모든 정치 집단은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여 황폐하게 만듭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조세계를 악의 위협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장소가 됩니다.

 

하늘 성전과 언약궤(19)

최후의 심판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순간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상을 받을 순간입니다. 이처럼 심판은 믿는 사들에게 소망의 때입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며 구원의 언약이 성취되기를 확신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거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구원을 확신하게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 때를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묵묵히 이겨야 합니다.

19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19)

하늘의 참 성전이 열린 것은 하나님께서 신원하신 결과입니다. 성전에 안에서 언약궤가 보입니다. 땅의 성막은 하늘 성전의 그림자입니다. 하늘과 땅은 실재와 그림자로 상응합니다. 하늘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심을 상징합니다. 성전의 언약궤는 바벨론 포로 기간에 사라졌습니다. 유대 전승은 언약궤가 돌아온다고 기대합니다. 성경은 문자적인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심을 기대합니다. 마태는 임마누엘로, 요한은 성육신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그 백성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이 개념은 11:19에서 시작되어, 새 하늘과 새 땅(21:3), 새 예루살렘(21:33)에서 반복 확대됩니다. 하늘의 언약궤의 등장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은 신현과 동시에 심판의 마지막 행동을 시사하는 정형문입니다.


예배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세세토록 변함없는 여원하신 왕을 알현하는 시간입니다. 단정한 마음으로 겸손히 예배할 때 우리의 예배는 하늘로 이어질 것입니다. 곧 완성될 하나님 나라가 눈앞에 밝히 드러났습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세상 나라를 압도하며 담대하게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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