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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02-01)


성령 임재로 세워진 교회

사도행전 2장 1-13절


약속(約束)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와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친구들과 변치 말고 약속한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작은 약속은 개인과 개인과의 거래약속도 있지만, 국가와 국가와의 약속인 조약(條約)이라고 합니다. 어느 때는 개인적으로 한 생명이 좌우될 때도 있지만, 국가적으로는 국가의 운명이 좌우할 때도 있습니다. 약속 때문에 싸움과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약속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통해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하신대로 성도들은 성령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성령께서 다락방에 오셨습니다. 첫 열매가 될 하나님의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영적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사역하심으로 계속적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성장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1-4)

성령의 가정이 될 때,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성령의 교회가 될 때, 그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유명한 목사나 거대한 건물이나 많은 무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는 심령을 가진 심령들이 있는 곳에 주님을 기쁘게 거하시고 영광 중에 머무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 사건을 통해 새로운 성전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1-4)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다락방에 있던 제자들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맛디아를 새로운 사도로 뽑았습니다. 비로소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신할 12사도가 준비되었습니다.

계속 예루살렘 다락방에 있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하신 성령 임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순절 날이 이르매, 약속대로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각자 성령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⑴ 오순절의 의미(1)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는데, 많은 날 중에 성령께서 오순절에 임하였는지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잠시 오순절(五旬節, Pentecost)에 대해 살피고 가야겠습니다.

오순절은 모세오경에서 유대인의 중요한 세 가지 절기 중 하나입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 시기는 겨울을 지내고 보리나 밀과 같은 맥류들을 추수를 마친 시기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을 맥추절(출애굽기 23:16), 칠칠절(출애굽기 34:22) 또는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민수기 28:26)로 불렸습니다. 유월절은 종 되었던 애굽의 땅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축제라면, 오순절은 약속의 땅을 소유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 절기입니다. 따라서 오순절 축제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축제입니다. 오순절은 곳곳에 사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서 즐거운 축제를 드린 날입니다.

오순절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계명을 받는 사건과 닮았습니다. 하늘에서 나는 소리와 불의 혀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임하신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소리와 불과 사람들이 알아들을 말은 시내산에 있었던 특징들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약식이 있었듯이, 신약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재하심으로 새로운 언약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신약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오순절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신 것에 축하하는 날입니다. 기독교적 오순절은 유대인의 날자 계산을 무시하고, 항상 부활절을 기준으로 오순절을 계산하여 주일에 지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주일에 있었다는 날짜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⑵ 오순절 성령임재(2-3)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약속인 성령 강림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성령께서 임재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령의 임재한 모습에 “홀연히”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이 사모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지 않은 시간에 갑자기 임했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모든 사람들이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게 임하셨습니다. 먼저 하늘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하늘로부터 강한 소리가 온 집에 임했습니다. 다음으로 성령의 임재의 모습은 불이 혀와 같이 갈라지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 속으로 임하였습니다. 불처럼 임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출애굽기 3:2)과 불로 정결케 하는 임재를 상징합니다(에스겔 1:13). 계시적인 하나님의 나타나심인 신현(神顯)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온 집에 가득하며”(2)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래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막과 성전에 임재 하셨을 때, 구름이 가득 찼던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다락방 있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가득 찼다는 의미는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이 성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거하시는 성전은 건물이 아니고 성령이 충만한 성령의 공동체란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 안에 하나님께서는 즐거이 거하십니다.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그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열망하는 공동체를 하나님께서는 거처로 삼아서 주의 영광을 들어내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3)라고 소개합니다. 성령은 누구에게는 필요하고, 누구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 사람들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은 성령께서 임재하십니다. 성령이 없는 자는 죽은 자이고, 성령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성령님은 성도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인격이십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2:3). 그 성령을 얼마나 의지하고 사느냐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 교회가 가족 같이 하나로 결속할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가 패쇄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요한의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를 연관시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하나님은 불로 세례를 주신 것입니다. 각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불의 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⑶ 성령 충만(4)

성령께서 임한 성도들은 성령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외적으로 성령 충만한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자신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스스로 놀랐을 것입니다.

성령 임재한 결과, 성령 충만한 성도들에게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말하기 하심을 따라 각각 세상의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말한 언어가 다른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그 나라 사람이 되어가는 시작입니다. 이 언어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란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자신만 아는 언어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고 누군가를 소외시킨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그 숨은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다른 언어를 구사하게 하신 것은 성령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유대 땅의 경계를 넘어 온 세상 땅 끝까지 전파될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통한 변화된 성도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신 성령을 세상 속으로 들러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 임한 성령의 능력을 당연히 들어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말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자들입니다. 갈등과 분열, 파괴하는 언어가 아니라 세우고 고치고 붙들어 주는 언어를 사용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5-11a)

구약 시대 하나님과의 언약식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참석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많은 이방인들까지 참여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 임재는 새로운 언약식이었습니다. 새로운 언약식을 통해 전 세계로 복음이 뻗어 나갈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5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5-11a)

 

예루살렘 다락방에 있던 120명의 성도들이 각 나라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자신이 깨달은 것을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예루살렘에서 전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마침 예루살렘에는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세계 각 나라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살고 있는 지역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공용어인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자기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 언어를 사용했었습니다. 헬라어는 외국어였기 때문에 헬라어로 듣는 것보다 자기 나라 언어로 듣는다면, 훨씬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나그네들이 자기 나라 언어로 듣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벨탑의 저주를 푸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바벨탑 사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한곳에 모이고 하늘까지 닫는 탑을 쌓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온 세상으로 흩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지려는 자들은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소통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는 흩어져서 각 나라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하신 큰 일을 하나 같이 듣게 하신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벨탑은 사람들이 하늘에 올라가려고 교만했지만, 오순절 사건은 하늘에서 땅으로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지 성도들을 통해 각자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크신 일들을 알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그런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교만하여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해 졌습니다(창세기 11:1-9). 그런데 오순절 사건은 하나님께서 언어를 통해 하나로 묶으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죄로 파괴된 것을 회복시키는 사건입니다.

성령께서 예루살렘 다락방에 임함으로 새로운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백성들이 세워졌고, 새로운 나라인 하나님의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원동력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성령이십니다. 교회를 이끌어나가는 지도자들은 성령 충만해서 성령의 인도하신 방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원활해지고 교회 자체가 능력이 있습니다.

 

오순절 사건에 대한 반응(11b-13)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만 받아들으려 합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나타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반응과 받아들이지 않는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누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십니까?

 

11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11b-13)

 

오순절 사건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성령 임재를 체험한 성도들은 학문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이 아니지만, 그들은 세계 각 나라의 언어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자기 나라 언어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며 당황했습니다. 특히 별 볼일 없던 갈릴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 두 가지로 나누어져 나타납니다. 먼저, 긍정적인 반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임을 알고 찬양하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일 말함을 듣는 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차원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차원입니다. 그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편경에 사로잡혀 방언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낮에 ‘새 술’에 취했다는 것은 패인에 가깝다는 의미로 매우 조롱하는 말입니다. 당시는 포도를 수확하기 전이기 때문에 ‘새 술’이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새 술’에 취했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이루신 역사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령께 붙들려 성령 충만한 사실을 마치 술 취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진지하게 영적인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정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상상할 수 없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성령의 역사나 능력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 가를 가르쳐줍니다. 다른 사람의 변화를 무시하는 행위는 좋은 신앙의 태도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변화된 사람들에게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중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있던 성도들은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에 성령이 임재 함으로 그런 인간적인 조건은 더 이상 제약이 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길 준비된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대신할 새로운 성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언어와 영적인 안목을 얻어서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은 성령께서 다스리도록 내어드리고, 자기 의지가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말과 행실로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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