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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02-04)


능력 있는 아름다운 초대교회

사도행전 2장 37-47절


과테말라에는 인구 2만명의 알모롱가(Almolonga)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범죄율이 매우 높았고 길거리에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가 넘쳤고, 그리고 우상숭배도 심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가 범죄율이 급격히 감소했고 중독자들도 거의 사라져 가고, 많은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언제부터인가 토양까지도 비옥해졌습니다. 그와 같은 변화에는 1974년부터 목숨을 걸고 기도하며 복음 사역을 시작한 마리아노 목사(알모롱가 갈보리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협박과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처럼 목숨을 건 치열한 영적 전쟁을 통해, 그 도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알모롱가는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영적인 개인의 변화는 교회 공동체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교회의 변화는 그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 베드로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메시지로 변화된 사람들은 3,000명이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 일로 초대교회는 불같이 부흥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을 중심으로 능력 있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갔습니다.

 

사람들의 반응(37-41)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듣는 사람들에게 반응을 일으킵니다. 말씀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갑니다. 오순절 이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37-41)

 

오순절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재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또한 충만해져 오순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가이사의 복음이 아니라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유대인만의 복음이 아니라 만민을 위한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을 향해 앞 강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는 약속을 성취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나라와 왕이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와 왕을 거절했습니다. 그 순간 오직 하나님만 믿는다고 했던 사람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가장 큰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경배하고 찬미한 하나님은, 그들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구속하실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고안해낸 우상에 불과 했다는 사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모두 들어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깊이나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에 대한 방향의 문제였습니다.

 

⑴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37)

사도 베드로가 설교를 통해 예루살렘에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에게 회개와 죄 사함을 호소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베드로의 메시지를 진리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분수령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성경이 말하는 회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마음이 찔렸습니다. 이처럼 말씀은 마음을 찌르고 쪼갭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히브리서 4:12). 메시지를 통해 마음이 찔림을 받을 때, 할 일은 회개할 일입니다. 말씀을 통해 마음이 찔림을 받을 때 망설이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심판대 앞에서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회개는 죄인을 의인되게 만드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예루살렘에 오순절 이후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되는 것의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듣는 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는 말에, 대부분 예루살렘에 없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잘 죽었다.’고 생각했고, 아무 저항 없이 허망하게 죽은 것을 보니, 율법에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자신들이 예수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들도 그 예수님의 처형 자리에 있었다면, ‘예수를 못 박으라!’고 소리쳤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찔렸습니다.

성령께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큰 죄를 어떻게 씻을 수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가룟 유다도 마음에 찔렸지만,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가책을 받은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메시지에는 반드시 반응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반응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선포에 반응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쳤습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누가복음 3:7-10)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들었던 사람들도 찔림의 반응이 일어났었습니다. 무리들이 세례 요한에게 묻습니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눅 3:10)

 

세례 요한은 회개하려는 요단강에 나온 그들에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아름답게 살라고 권고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세례에 참여한 사람들은 삶에 변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2) 사도 베드로의 권고(38-40)

사도 베드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들에게 영적인 권고합니다. 베드로는 진정한 회심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회심은 ‘회개(悔改)’는 어디로부터 돌아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른 삶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회개는 성도의 과거를 다룬다면, 삶은 성도의 미래를 다룹니다. 진정한 회개는 두 가지가 떨 수 없습니다. 회개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답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성경 연구에만 힘썼던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이 병들고 무감각한 문화에서 빠져나오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을 때에 어서 나오십시오!(Get out while you can; get out of this sick and stupid culture!)(40/Eugene 譯)

① 회개하는 것(38a)

‘회개’는 잘못된 방법으로 살아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이와 열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방향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잘못된 방향에서 바른 방향을 전환한 것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 대한 모든 죄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촉구했습니다.

② 성령으로 사는 삶(38b)

‘회개’는 세상으로부터 돌아섰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방향을 고쳐서 바른 방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동안 잘못된 방향이 바른 것처럼 살아왔던 것을, 더 이상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③ 회개하는 영역(39-40)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혈통적인 선민주의가 얼마나 하나님 나라의 장애물이었으며, 폭격이었음을 회개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감히 인간이 훼손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신 것이 진정한 회심이고 예배입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에 기록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설교로 그들을 권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회심에 대해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이것은 바로 회심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다시 표현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라고 권고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대 유대인들 만에 축복도 아닙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 모든 세대 그리고 모든 지역에 필요한 사역이었습니다. 죄된 종의 삶으로부터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삶으로 돌아서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천국 피켓을 얻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패역한 세대가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과거의 하나님을 떠난 모든 세계관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고,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관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⑶ 예루살렘의 회개(41)

사도 베드로는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기 위해서는 쉽고 간단한 싸구려 신앙고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대충 입술의 고백이나 허술한 영접 기도 같은 것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전한 회개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 방법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 증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겠다는 사람들이 쇄도했습니다. 폭발적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다음 영적으로 무감각한 문화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들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생활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도 메신저의 설교를 들으면서 반응이 나타납니다. 대체적으로 두 가지 반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긍정적으로 흡족함을 느끼는 것과 다음으로 부정적으로 마음에 찔림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않음으로 말씀을 통해 찔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초대교회처럼 말씀대로 살길 원해 ‘내가 어찌할꼬?’하는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균형 잡힌 교회(41-42)

폭팔적인 부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들이 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에게 수치를 당할 만큼 어려워졌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기독교가 동원되고, 교회가 이익 단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들이 말씀을 통해 회개하면,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부흥입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를 통한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의 회개는 예루살렘 교회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41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41-42)

 

사도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말씀이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본 41-42절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삶에 대해 요약한 구절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변화된 삶이 네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회심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먼저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가르친 내용은 예수님의 교훈, 행적,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메시아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들었습니다(사도행전 4:18, 5:28-31, 9:20-22). 둘째는 받은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게 됩니다. 여기서 교제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성도들의 영적 연합을 의미합니다. 더 나가서 다른 모든 사람들을 긍휼이 여기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궁핍한 자를 구제하는 일을 포함한 실천적인 교제까지 나누었습니다(사도행전 2:44-45, 4:32-37). 셋째로, 회심한 사람들은 서로 떡을 떼었습니다. 그래서 식탁의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날도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떡이란 단어에 ‘그 떡(τη κλασει)’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주의 만찬’으로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사도행전 10:41, 누가복음 24:35). 마지막으로 그러한 변화된 삶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직전에 예수님의 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여성들이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사도행전 1:14).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생겨난 새로운 공동체도 마찬가지로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변화의 삶은 아름다운 교회 생활로 나타납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와 기도와 말씀 생활 그리고 친교와 봉사에 균형을 이뤘습니다. 개인이나 교회 모두 신앙의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기도만 하고 말씀을 멀리하거나 그 반대로 말씀만 보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안 됩니다. 그들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았습니다. 모여서 열심히 예배하면서 봉사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봉사는 하면서도 예배가 소홀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도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을 잃지 않습니다. 한쪽만 집중적으로 먹으면 ‘편식(偏食)’이라고 합니다. 편식하는 사람들은 영양결핍을 느낍니다. 항상 균형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부분에서도 같습니다.

영적으로 우리 교회들도 균형 잡힌 신앙 공동체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필요한 것은 균형 잡힌 조화로운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칭찬 받고 부흥하는 교회(43-47)

참된 변화는 놀라운 부흥을 가져옵니다. 초대교회의 이런 영적인 균형은 결과적으로 교회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변화된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3-47)

 

변화된 예루살렘 성도들은 모든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개인적인 변화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는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의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회심은 새로운 가족과 하나님의 공동체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새로운 교회를 출산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변화는 이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일어났고, 그 교회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이 공동체의 나타난 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각자의 소유를 공유하고 또 팔아서 궁핍한 사람들을 구제했습니다. 이런 일이 초대교회만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성령이 임재 하는 곳이나 성령 임재가 강력하게 임했던 시대에는 비슷하게 일어났습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아마 그 장소는 솔로몬 행각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장소는 예수님이 공생애 말기에 자주 가셔서 가르치시며 논쟁했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또한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이곳에 모였을 것입니다(5:20,25,42). 이러한 변화된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의 성장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세상의 비난과 공격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물론 그 비판과 공격이 지나치거나 사실과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 대한 자책이 필요합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사회로부터 칭송을 받고 그로 인해 복음이 널리 확산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패악한 세대에서 돌아섰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아들에게로 이동한 사람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변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성도가 될 때, 그 좋은 성도들을 통해 좋은 교회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십니까? 당신은 좋은 교회의 일원인비다. 당신을 통해 좋은 교회가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지역 사회가 당신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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