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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01-02)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

사도행전 1장 12-26절


어떤 영화에서 출연 배우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금’을 주셨는데, 첫째는 ‘황금’, 두 번째는 ‘소금’,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어떤 금을 선택하겠습니까? 황금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황금을 많이 택할 것입니다. 소금은 선택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금은 몸에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없으면 죽게 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소금은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금은 ‘지금’입니다. ‘지금’이 없으면 ‘황금’도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금’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시간을 말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후해도 돌아오지 않으며, ‘미래’는 아직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과거’를 만회하고 ‘미래’를 멋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을 배웅하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지켜봤던 제자들은 예루살렘 한 다락방에 모여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며 기도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 베드로는 시편 두 구절을 제시하며 사도 직무를 저버린 가룟 유다는 대신할 사도를 선출합니다. 다락방에 모인 120여 명의 성도들은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맛디아를 뽑아 열두 사도로 선출합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도들(12-14)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역하시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이제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12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2-14)

예수님께서 승천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장소가 예루살렘 근처인 감람원(올리브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 갈 수 있는 정당한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안식일에 기도하러 가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항상 쉬고 기도하신 곳입니다(누가복음 21:37).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성도들은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특별한 장소로 모였습니다. 아마 이곳에서 예수님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던 다락방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모여 있던 장소일 것입니다. 두려움에 언제까지 숨어 지낼 수는 없지만, 지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당’에 속한 괴수인 예수를 죽인 후에 힘을 받았습니다. 예수당에 속한 사람들을 모두 잡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락방 안에는 어디에선가 조용하고 나직막한 찬송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둘 기도하기 시작하고, 점점 기도 소리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약속’이 생각하기 났습니다. 그 약속이 언제 임할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약속’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아래와 같은 그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곱의 아들 유다 등

 

이제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은 누가복음 6장에서 소개되었던 명단과 동일합니다. 이들이 초대교회의 핵심 지도자 멤버였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에는 제자들만이 아닌 다른 세 그룹의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도 있었습니다(누가복음 8:2-3; 23:49; 24:10). 그 여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이곳에서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으로 그곳에는 예수님의 동생들도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는 메시아로 믿지 않았지만(마가복음 3:21,31-35; 요한복음 7:3-5),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 후에 영적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동생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입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약 120여명 가량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여인들은 위기의 순간에 함께했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은 오로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전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잃은 슬픔 속에서 그들에게 성령의 임재와 권능이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님은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하나로 연합되어 갔습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할 맛디아(15-26)

깊은 묵상과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지경이 넓히고, 경건의 능력을 지닌 성도로 만들어 갑니다. 제자들은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가룟 유다를 대신한 사도를 선택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인 완전한 수인 열두 사도를 채웁니다.

 

⑴ 가룟 유다에 대한 평가(15-20)

누가는 예수님의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하나 소개합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출하는 일이었습니다. 누가는 매우 중요하게 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5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15-20)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성도들은 성령 충만해졌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의 빈자리를 수습하기 위해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문제점은 이스라엘 12지파를 근거한 12사도의 역할이었습니다. 가룟 유다 때문에 공석된 한 사도 자리를 선출함으로 12사도를 완성하여, 사역을 차질 없이 이루어나가는 일이었습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문장은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20)고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는 의도적으로 모인 수를 소개한 것입니다. 단순하게 모인 수를 소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유대법에 자치위원회를 갖춘 하나의 공동체를 설립하려면 최소 남자 백 이십 명이 필요했었습니다. 결국 다락방에서 결정될 사항은 바른 결정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보낸 후, 베드로는 수제자로서 남은 성도들을 인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첫 임무는 가룟 유다가 떠난 공석을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도 베드로는 가룟 유대에 대해 말씀으로 풀어갑니다. 그는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을 사랑으로 어우르면서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비록, 피를 나눈 혈통 관계는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한 가족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16).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해서 팔았고, 불행하게도 회개할 기회마저 놓쳤습니다. 결국 자책감에 의해서 비극적으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은 많은 성도들에게 너무나 큰 미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모든 행동은 구약 성경에서 이미 예견되어진 사건이며, 구약 시편에서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9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편 41:9)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한 배반을 거론하시면서 시편 41편 말씀을 인용하실 때(요한복음 13:18), 베드로도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이 가룟 유다 사건을 풀어갈 때, 예수님처럼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은 성령에 의해 다윗에게 전해진 말씀이기 때문에 그대로 성취되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가룟 유다에 관한 일들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구역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라고 표명합니다.

18-19절에서는 가룟 유다가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 )안에 넣어진 것은, 당시에는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은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베드로가 직접 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후대 독자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판 돈으로 양심에 가책을 받아 성전에 헌금하고 목매어 자살해 죽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은 그 돈을 받지 않고,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구입해서 나그네들을 위한 묘지로 구입했습니다. 나중에 그 땅의 이름을 ‘피의 밭’이라 부릅니다(마태복음 27:5-8).

 

누가는 다시 베드로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베드로는 다락방에 있는 성도들에게 다윗의 시편 두 구절을 통해 가룟 유다에 대한 심판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시편 69:25)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시편 109:8)

 

베드로는 가룟 유다에 대한 심판에 시편 69편은 메시아를 대적하는 자를 향한 저주의 말이며, 시편 108편은 원수에게 연달아 저주를 퍼부으며 타인이 그의 직분을 빼앗기를 원하는 탄원입니다. 그의 죽음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악한 인물들과 동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별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내용은 가룟 유다의 계승자를 지명하고 열 두 사도를 충원하는 성경적인 근거로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12사도는 새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상응하는 완벽한 12제자를 충원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⑵ 사도의 자격(21-22)

사도 베드로는 가룟 유다의 죽음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한 다음, 공석이 된 자리를 충원하기 위한 설명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보선될 사도가 갖추어야 할 요건과 자격을 제시합니다.

 

21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21-22)

 

보궐될 사도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입니다. 보궐될 사도로서 최소한의 조건을 설명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공생애 전 기간 동안 예수님과 동행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같이 다닌 사람이라야 자격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과 행하신 교훈을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이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후보자는 당연히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 중에 나타났을 때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사도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을 증언할 사람이어야 합니다.

 

⑶ 사도로 선출된 맛디아(23-26)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성령의 인도하십니다. 많은 성도들 가운데 두 사람으로 대상의 범위가 좁혀졌습니다. 그들은 바로 ‘요셉’과 ‘맛디아’였습니다.

 

23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23-26)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은 보궐할 사도로서 자격을 따라 맞는 후보자를 성정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었단 사람이어야 했습니다(마가복음 3:14-15).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항상 함께했던 사람들 중에서 선정하였습니다.

가룟 유다의 공석을 보궐할 때, 가장 적합한 두 사람이 천거됩니다. 첫 후보자는 ‘요셉’은 그의 별명은 ‘바사바’로, 그 의미는 ‘안식일의 아들’이었습니다. 라틴식으로 ‘유스도’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두 번째 후보자는 ‘맛디아’입니다. 그는 누가복음에서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누가복음 10:1). 맛디아에 대해서는 이후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나중에 그는 에디오피아 선교사로 나갔다고 전해집니다.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습관에 따라 두 명 중에 한 명으로 ‘제비뽑기’로 선택했습니다. 둘 다 합당한 후보여지만, 자신들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비뽑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해관계와 탐욕을 방지하고자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제비뽑기 선출방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를 선택하실 때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잠언 16:33). 그 모든 결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로 일꾼을 뽑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둘 중에서 ‘맛디아’를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누가는 맛디아 사건을 통해 누가 선택되었는가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 나라 사역에 12사도의 부족한 수를 채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사역할 조직이 완벽하게 갖추어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기 전에 하나님의 합당한 일꾼을 세우시고 공동체를 회복시키십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다락방 공동체는 새로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완성된 12사도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기초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부름 받은 첨병(尖兵)으로서 세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하고 명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자기를 버리고 순종의 훈련입니다. 공허한 광야같이 보이지만,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사역에 합당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합당한 일꾼들은 그 시간이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가장 귀한 시간임을 압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합당한 일꾼으로 연단하는 시간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쓰임을 받을 때는 하나님 나라의 첨병으로 강력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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