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01-01)
새로운 사역의 출발점에 선 제자들
사도행전 1장 1-11절
사도행전이라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합니다. 현재 마음은 마치 마라톤 선수가 출발선에서 출발을 기다린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한편으로 거룩한 부담감이 밀려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보내드린 후에 자기 스스로 사역해 나가야 했기 때문에 아마 제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그대로 지속하길 기도합니다. 의사이던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합니다. 이 서신은 장문이기 때문에, 전편은 누가복음으로, 후편은 사도행전으로 둘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전편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복음을 위한 사역을 기록했고, 후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했던 사역을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지를 소개합니다. 제자들이 복음 사역하는데 홀로두지 않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함께 사역하십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들이 사역했던 길들을 살펴보며 따라가 보겠습니다.
본문은 사도행전 전체 중에 서론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사명을 완수해 나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수님 대신 오실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과 함께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후에 구름 타시고 승천하십니다. 특별히 8절은 사도행전의 주제를 다룬 핵심으로, 기독교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대한 서론(1-2)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이 복음을 전파했던 행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움직이셨고, 제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성령께서 움직이신 역사의 현장으로 출발하겠습니다.
1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1-2)
본문은 누가복음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누가복음과 같이 ‘데오빌로(θεοψιλε)’에게 바친 작품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당시 문학적인 관행을 따라 자신의 작품을 헌정하는 방식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은 당시 문학적인 저작물로서도 뒤지 않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누가복음에서도 거론한 적이 있지만, ‘데오빌로(θεοψιλε)’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만, 전통적으로 귀족으로 실존한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당시 유명한 사람에게 자신의 책을 헌정하는 관례가 있었음을 감안하고, 성경적으로 누가복음에서 ‘데오빌로’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누가복음 1:4). 때문에 실제 인물로 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도입인 이 단락은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 내용(누가복음 24:44-53)과 겹칩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성장과 사역과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기록했고, 이제 사도행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승천 이후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위탁한 복음 사역이 진행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들, 탄생, 사역, 죽음 그리고 부활 등을 ‘일(사건)’으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무고히 수난 당하신 사실들을, 당시 제자들은 ‘확실한 많은 증거’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유무에 대해 변론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된 가르침은 부활 이후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생전 지상 사역으로부터 시작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누가복음 4:43).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나라, 즉 구원 사역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증인들에 의해 기록된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토대로 형성된 신앙공동체입니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경험이나 사상에 기초한 신앙은 굳게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을 따르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역(3-5)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소식이, 예수님께서 살아 계서서 지금도 왕으로 다스린다는 소식이, 바로, ‘기쁜소식’인 ‘복음(福音)’입니다.
3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3-5)
누가는 누가복음에서는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기록한 후,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무덤을 박차고 부활하셨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을 ‘고난’이라고 표현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지만, 이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모두 믿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불신앙의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부활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통해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들을 소개합니다.
⑴ 부활하신 예수님(3)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 동안 지상의 마지막 사역을 설명합니다.
① 부활에 대한 소개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면 모든 사람을 믿게 하기에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하게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셔서, 이것이 단순한 환생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 가시 전에 약속하신 것도 ‘부활’이지 ‘환생’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영으로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몸으로 살아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많은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②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개
예수님께서 하신 또 다른 일은 장차 이 세상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완성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통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눈에 보이는 왕으로서 대리 통치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은 그 왕을 하나님께서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왕을 가리켜 ‘메시아’ 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이라면 모두 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가져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그 메시아 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도래케 하셨고, 그 나라를 왕으로 다스리시며, 그 나라의 권능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⑵ 약속하신 것을 기다림(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 후에, 제자들에게 즉시 나가서 전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전하기 전에 그들이 들어야할 명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모아놓으시고 분부하셨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과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깨닫고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버지의 약속’은 구약에서 이사야 32장 15절과 요엘 2장 28-32절에서 예언으로 약속되었습니다.
15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이사야 32:15)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요엘 2:28-32)
특히 위에서 언급된 요엘서는 베드로가 설교할 때, 직접 언급되어 인용됩니다(사도행전 2:17-2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이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과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릴 것’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49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4:49)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어야 할 일은, 당시에 상황에 따라 진행된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부터 준비하신 약속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다림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한 다음 단계를 준비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죽음을 통해 절망과 실망 속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두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따라다닐 때, 제자들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자신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패배와 절망을 안겨준 자리이지만, 인간의 실패와 불순종과 한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실패와 불순종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응시할 때, 성령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⑶ 성령 세례를 기다림(5)
두려움 속에서도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기다려야할 이유는, 세례 요한의 말(누가복음 3:16)을 인용하여 ‘아버지의 약속’은 ‘성령 세례’임을 깨닫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세례’는 물속에 담근다거나 물을 쏟아 붓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정결을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세례가 성령과 연관되어 나올 때는 성령이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것을 말하며, 죄 사함과 연결됩니다(사도행전 2:38). ‘성령 세례’는 성경 전체에 두 번 등장합니다(사도행전 1:5; 11:16). 모두 세례 요한의 예언과 연관에 ‘성령을 받는다’, ‘성령이 임한다’, ‘성령의 부으심으로 받는다’ 등으로 표현합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공생애 기간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지식으로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만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권능을 주실 때, 온전히 담대하게 땅끝까지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령 임재의 신앙(6-1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을 통해 장차 일어날 일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⑴ 제자들의 질문(6-8)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충분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질문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임하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나라가 임할 표적으로, 곧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로마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으로 새로운 장면을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제자들의 질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6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6-8)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는 것은 무너진 ‘다윗 왕국’이 팔레스틴 지역에 새로운 유대인들만의 나라가 다시 세우진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① 유대교적인 편협한 사상(6)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줄곧 말씀하십니다(3).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주여, 지금이 나라를 이스라엘에게 회복하실 때입니까?’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그들은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직까지 제자들은 터무니없게도 유대교적 종말론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 성취를 민족주의적으로 이스라엘에게만 국한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기준으로 제자들의 생각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인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관련해서 일어날 징조들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15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16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17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18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19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20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이사야 32:15-20)
② 새로운 기독교적 종말론(7-8)
예수님께서는 유대주의적인 편협된 생각을 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는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 제자들에게 장차 임할 성령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편협한 유대교적 종말론을 넘어 온 민족을 품는 새로운 기독교적 종말론으로 확장시켰을 것입니다(7-8).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시기는 아무도 모르고 예수님까지도 모릅니다. 다만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만 달려있다는 사실(참고 마가복음 13:32)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는 시기를 말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역할이 강조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사역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
제자들의 사역은 이 말씀으로 집약됩니다. 앞으로 전개될 사도행전의 모든 사역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누가는 성령이 임하면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사도행전 2:42-8:3)에서 복음을 전하고, 원수 같이 지내고 있는 유대(8:4-11:18)와 사마리아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더 나가서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땅 끝(11:19-28:31)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팔레스틴의 경계를 넘고,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서 땅 끝까지 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은 ‘아버지의 약속’(4)과 ‘성령 세례’(5)로 지칭하면서, 사도행전 2장에서 펼쳐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예고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강림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면,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첫째, ‘능력을 받고’, 둘째, 주님의 ‘증인’이 됩니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 제자들에게서 일어났습니다.
⑵ 하나님의 관점(9-11)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적인 생각으로 변화됩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편협하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땅 끝까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세상에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루살렘 중심의 구심적 운동만 기대했던 제자들은 이제 성령을 받고 전 세계로 펴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11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9-11)
다른 복음서의 저자와의 달리 오직 누가만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해 소개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단순하게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건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 우편으로 승귀한 사건으로 보았습니다(사도행전 2:33-3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본 가운데 ‘감람원’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본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재림하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성령을 의지하여 맡겨진 일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하늘을 쳐다보는 자가 아니요, 하늘의 시각으로 온 땅을 쳐다보고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발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세상에서 충실한 모습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진실하게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은 역경을 이겨 내는 원동력입니다. 성령 충만해지면 소망을 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모이기에 힘쓰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여기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며 모인 사람들은, 지독히 많은 고난을 받은 민족이기에 그들에게 과연 소망이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으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자기 일도 감당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힘을 입습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땅 끝은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미전도지를 의미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교의 각오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자들이나 사도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존재합니다. 증인은 탄생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집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자기를 부인하고 삶의 관점이 변합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중심의 구심운동(이사야 2:2-4)만 기대했지만, 이제 성령 임재를 체험하고 계급과 혈통과 영토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원심 운동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기중심적으로만 살던 사람은 자아가 죽고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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