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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04-02)

   


사도 바울의 마지막 부탁

디모데후서 4장 9-22절


바울의 사역은 탄탄대로가 아닌 여러 고비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셨지만, 그렇다고 항상 그를 돕는 손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움과 외로운 과정도 있었습니다. 지금 편지를 받는 디모데의 도움이 절실한 정도로 그는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사역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위임한 바울은 이제 죽음을 앞둔 자신의 마지막 부탁을 말합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외로움 가운데 있던 바울은 죽기 전에 디모데를 한 번 더 보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를 대비해서 드로아에 두고 온 겉옷과 책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합니다.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부탁함(9-13)

‘교인은 많지만 성도는 적다.’란 말이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성도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어려움을 통해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바람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됩니다. 알곡은 남아있지만, 쭉정이는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바울 곁에 있던 사람들도 동일했습니다.

9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9-13)

고난이 닥쳐오자 주변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떠났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움 가운데 있던 바울은 차디찬 로마 감옥에서 최후에 순간을 기다리는 노사도의 숙연함이 잘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디모데를 한 번 보기를 원했습니다.

⑴ 모두 떠나고 홀로 있는 바울(9-10)

바울은 노년에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힘 있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감옥에 갇혀 더는 세상적인 소망이 없게 되자, 그렇게 많던 사람들은 바울을 버리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을 떠난 자들 중에는 바울을 배신한 자들도 있고 바울이 보낸 자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가만 그와 함께 남아있었습니다. 바울은 죽기 전에 디모데를 보기 원하는 마음을 피력합니다. 바울의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는 말에서 디모데를 보기 원하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두고 바울에게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속히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부탁합니다.

 

10절을 보면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말한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바울은 외로운 가운데 있습니다. 젊어서 복음을 위해 담대하게 일했던 바울도 이제 죽음을 앞두고 연약한 한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홀로 된 것도 외로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배신하고 떠난 일입니다. 바울을 배신한 것은 믿음을 배신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지만,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났습니다.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간 것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인데, 그것은 믿음을 버리고 과거의 세상적인 삶으로 돌아간 것을 의미합니다. 혹자는 ‘데마’가 복음을 전하다가 겁을 먹고 데살로니가로 도망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레스게’와 ‘디도’는 바울을 배신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임무를 부여하여 다른 곳으로 보냈습니다. ‘디도’는 원래 그레데 섬에 남겨두었으나 얼마 후에 그를 불러들이고 아테마를 대신 그곳으로 보냈습니다(디도서 3:12), 바울은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내고 대신 디모데로 하여금 바울에게로 오게 했습니다(디모데후서 4:12)

⑵ 마가와 함께 책을 가지고 오라(11-13)

바울은 디모데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합니다. 마가는 요한이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한때 바울을 실망시켰지만 지금은 바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 때에 바나바와 함께 떠나면서 마가를 데리고 갔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중도 하차하여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제2차 전도여행에서 바나바는 다시 마가를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바울은 중도에 하차한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바나바와 크게 다툰 후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헤어졌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육로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사도행전 15:36-41). 그러나 그 후에 바울과 마가는 서로 화해하고 마가는 바울의 사역에 동참했으며,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골로새서 4:10; 빌레몬 24). 전승에 따르면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했으며,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가는 한 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신실한 복음의 일꾼으로 거듭났으며 바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형제이며 신실한 일꾼입니다(에베소서 6:21; 골로새서 4:7). 두기고는 아시아 출신이었기에, 디모데를 대신해서 에베소로 보낸 것은 적절한 선택입니다(사도행전 20:4). 바울은 두기고가 도착하는 대로 디모데가 오기를 원했습니다. 디모데가 올 때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들러서 겉옷과 책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바울이 스페인에 다녀온 후 그레데와 에베소를 거쳐서 로마로 돌아올 때 두고 온 것들입니다. 책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추측컨대 성경일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떠나고 외로운 때에 주의 말씀과 함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바울을 대적한 자들(14-18)

우리가 항상 바라봐야 할 이는 주님 한 분입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때, 어떤 사역이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주신 주님은 또한 감당할만한 능력까지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힘과 건강을, 어떤 이에게는 물질이나 사회적인 지위를 주셨습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나라를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14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4-18)

교회 안에 있으면서 바울의 가르침을 심하게 반대하여 어려움을 준 알렉산더를 특히 조심하라고 경계합니다. 그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로운 재판장이 다 알고 계시고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⑴ 알렉산더를 주의하라(14-15)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악한 대적자를 주의하라고 디모데에게 경고합니다. 구리장색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었던 거짓 교사입니다. 본문에서 ‘해를 많이 입혔으매’란 ‘밀고하다’란 어원입니다. 주석가들은 바울이 감옥 두 번 투옥되었는데, 그 중에 2차 투옥은 알렉산더의 밀고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반대하도록 주동했습니다. 그는 얀네와 얌브가 모세를 대적했던 것처럼 알렉산더는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알렉산더는 믿음과 양심을 버린 배신자이며, 급기야 바울은 그를 출교 조치했습니다(디모데전서 1:20). 그러나 여전히 에베소 교회에서 영향력은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모세를 대적했던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셨듯이, 알렉산더도 심판하실 것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도 알렉산더를 조심하라고 당부합니다.

⑵ 재판정에 홀로 서게 된 바울(16-18)

거짓 교사 알렉산더에 대해서 잠시 언급했던 바울은, 다시 자신의 외로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바울이 처음에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바울을 변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바울을 버리고 떠나고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내리고 떠났다’는 말은 10절에서 데마가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과 믿음을 배신하고 떠났듯이, 이들도 바울을 배신하고 떠난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배신하고 떠난 자 때문에 심히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허물을 돌리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바울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알렉산더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아주 대조적입니다.

바울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지만 주께서는 결코 자신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참된 친구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떠나 홀로 외롭고 두려운 가운데 있었지만, 주께서 함께하셨기에 담대하게 감옥에서 복음을 변증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방인 권력자와 재판장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말은 아마도 당장 죽임을 당하지 않고 디모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일 것입니다.

바울은 결국 감옥에서 순교하게 되지만, 그들 앞에서 복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키셨습니다. 바울은 또한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지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지막 순교를 앞두고 끝까지 은혜로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끝인사(19-22)

인생의 마지막에 기억나는 사람들은 역시 충성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생애 가운데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연약한 자를 돌아보고 배려하게 하시고, 누군가의 생애 최후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역에서 가장 소중했던 이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19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19-22)

아무도 복음을 위한 바울을 변호해주지 않고 떠났지만 바울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변호인이 되어 바울 곁에 서서 그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굴복하지 않고 복음 전파자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함(19-20)

바울은 마지막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문안 인사를 전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글라우디우스 시대에 로마에서 쫓겨난 후 고린도에 와서 바울과 함께 텐트를 만들었으며, 나중에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가서 거기서 머물렀습니다(사도행전 18:2).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을 사람들’(로마서 16:3-4)이라며 바울이 극찬할 정도로 특별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라스도’와 ‘드로비모’는 바울의 동역 자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은 바울과 함께 있지 않습니다. 특히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고 왔다고 말하는데 그를 향한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⑵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디모데에게 안부(21-22)

마지막으로 바울은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한 번 더 디모데를 독촉합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의 성도들 중에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를 비롯한 모든 형제들의 문안 인사를 전합니다. 아마도 디모데가 이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겨울 전에 속히 오라는 말은 두 가지 필요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겨울이 오기 전에 바울의 겉옷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둘째, 겨울이 되며 항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 전에 속히 출발하라는 뜻입니다.


결국 복음의 일꾼들은 끝까지 곁에서 변호해주시고 증인이 되실 예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도 힘이 되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위로가 큰 힘이 됩니다. 현실에서 실제적인 필요를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여 끝까지 감당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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